와신상담

3.27 니나노 공지

작성자
혜원
작성일
2019-03-22 20:23
조회
91
<불량소년과 그리스도>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다자이 오사무의 자살을 계기로 쓴 글인데, 엉뚱하게도 안고는 자신의 이가 아픈 일에서부터 글을 시작합니다. 이가 아파 죽겠는데 약을 먹어도 소용이 없고 병원에 가도 전에 들었던 이야기나 또 하면서 곧 나아지니 참으라고만 합니다. 짜증은 차오르는데 아내는 옆에서 약병으로 장난이나 치면서 거슬리는 소리나 내네요. 단지 몸의 작은 부분, 이가 아픈 것일 뿐인데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고 세상을 이렇게 만든 신도 싫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다자이는 언제 나오는가... 네, 아직 저희가 읽은 부분에서는 다자이의 '다' 자도 안 나왔습니다. 과연 그의 자살을 안고는 뭐라고 보았을까요? 그건 다음주를 기대하는 것으로^^ 다만, 어쨌든 살아가는 것만을, 생활을 중시하는 안고의 입장에서 다자이의 자살을 좋게 보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이가 아픈 이야기로 돌아와서, 안고는 치통을 호소하며 재밌는 이야기를 합니다. '원자폭탄으로 백만 명이 한 순간에 날아간들, 한 사람의 치통이 멈추지 않아서는 무슨 놈의 문명인가!' 전후, 분명 예민한 소재였을 원폭을 치통과 바로 연결하는 안고의 대담함과 유머러스함이 느껴지는 대목이지요. 세상에 대한 온갖 걱정을 하다가도 모기에 물리면 순간 온 신경이 거기에 쏠린다는 루쉰이 떠오르기도 하고요. 문명, 국가, 혁명 같은 대의에 기대지 않는 인간의 삶을 고민한 작가의 발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번역 얘기를 해보자면, 이번에 논란이 된 장면은 대화 장면입니다. 일본어는 기본적으로 문장부호를 엄밀하게 표시하지 않습니다. '~라고 했다' 식으로 문장을 구사하지요. 그러다보니 한국어로 옮기면 주어가 너무나 길어지거나, 인용문도 발화문도 아닌 것들이 문장 구석구석을 차지하는 애로사항이 꽃피고는 합니다. 그런가 하면 주어를 꼬박꼬박 표시하지 않습니다. 소설을 읽을 때면 으레 보이는 '~~가 말했다' 라는 지문이 너무나 적지요. 그러다보니 말투나 맥락을 보며 따라 읽어야 합니다. 그런데 말투도 맥락도 잘 모르겠는 대목은? 그때는 해석이 힘을 발휘하게 되겠지요. 가령 다음과 같은 장면이 있습니다.

 
마누라가 설파제의 유리병을 세로로 세우려다 짤가닥 넘어뜨린다. 소리가 날아오르듯 울렸다.

"이런 바보!"

"이 유리병은 제대로 세울 수 있단 말이야."

상대방은 곡예를 즐기고 있는 것이다.

"너는 바보같아서 싫단 말이야."

마누라의 안색이 바뀐다. 화가 나서 열 받은 것이다. 나는 통증으로 열 받아 있다.

 

치통으로 드러누운 안고의 옆에서 아내가 약병을 세우며 장난을 치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누가 무슨 대사를 하는지는 표시되지 않았습니다. 도대체 누가 무엇을 말한 것일까요? 이에 대해 세 가지 의견이 나왔습니다. 1. 세 대사 모두 치통으로 예민해질대로 예민해져 아내에게 있는대로 핀잔을 주는 안고의 말이라는 의견. 2. 유리병을 세우다가 실패하자 '이런 바보!'라고 한탄조로 말하는 아내에게 안고가 두 대사에 걸쳐 핀잔을 주는 장면이라는 의견. 3. 셋 다 아내의 의견이고, 아내가 안색이 바뀐 이유는 유리병을 세우는 것에 실패해 제풀에 지쳐 열받은 것이라는 의견.

셋 다 일리있는 의견이다보니 정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남자냐 여자냐, 한 사람의 말이냐 여러 사람의 말이냐에 따라 아무래도 다르게 번역될 수도 있으니까요. 다만 뒤에 나오는 아내와 안고가 대화하는 또다른 장면을 참고해서 첫번째는 아내의 대사, 두번째는 안고의 대사라는 합의를 보았지만, 여전히 정확하진 않습니다. 이런 것은 그냥 우리가 읽은대로 애매한 채로 원문에 충실하게 두어야 할지, 아니면 좀 더 적극적으로 해석해서 번역해야 할지 갈피를 못잡는 지점 중 하나입니다. 안고를 불러다 물어볼 수도 없고 말이죠^^;;; 하지만 당연히 안고와 아내의 대화 장면이라고 생각했던 저로서는 셋 다 아내의 대사라고 해석하는 의견도 있다는 것이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같은 텍스트라도 정말 읽는 사람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알게 된 시간이었습니다. 다음에는 또 어떤 파도가 우리를 덮칠지, 조마조마하며 열심히 일본어와 한국어 사이를 건너가 보렵니다~

 

 

과제는 첨부파일을 참고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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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1

  • 2019-03-25 18:18
    그래도 안고를 계속 읽다보니, 안고라는 사람이 계속 고민하고 있는 문제를 중심에 놓고 우리도 번역하고, 해석도 하고 하게 됩니다.
    누군가의 말, 그 사상을 이해한다는 것은 결국 지난한 번역 과정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