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신상담

4.3 니나노 공지

작성자
혜원
작성일
2019-03-28 17:03
조회
68

檀一雄、来る。ふところより高価なるタバコをとりだし、貧乏するとゼイタクになる、タンマリお金があると、二十円の手巻きを買う、と呟きつゝ、余に一個くれたり。

「太宰が死にましたね。死んだから、葬式に行かなかった」

 死なない葬式が、あるもんか。

 檀は太宰と一緒に共産党の細胞とやらいう生物活動をしたことがあるのだ。そのとき太宰は、生物の親分格で、檀一雄の話によると一団中で最もマジメな党員だったそうである。

「とびこんだ場所が自分のウチの近所だから、今度はほんとに死んだと思った」

 檀仙人は神示をたれて、又、曰く、

「またイタズラしましたね。なにかしらイタズラするです。死んだ日が十三日、グッドバイが十三回目、なんとか、なんとかゞ、十三……」

 檀仙人は十三をズラリと並べた。てんで気がついていなかったから、私は呆気にとられた。仙人の眼力である。

 太宰の死は、誰より早く、私が知った。まだ新聞へでないうちに、新潮の記者が知らせに来たのである。それをきくと、私はたゞちに置手紙を残して行方をくらました。新聞、雑誌が太宰のことで襲撃すると直覚に及んだからで、太宰のことは当分語りたくないから、と来訪の記者諸氏に宛て、書き残して、家をでたのである。これがマチガイの元であった。

 新聞記者は私の置手紙の日附が新聞記事よりも早いので、怪しんだのだ。太宰の自殺が狂言で、私が二人をかくまっていると思ったのである。

 私も、はじめ、生きているのじゃないか、と思った。然し、川っぷちに、ズリ落ちた跡がハッキリしていたときいたので、それでは本当に死んだと思った。ズリ落ちた跡までイタズラはできない。新聞記者は拙者に弟子入りして探偵小説を勉強しろ。

 新聞記者のカンチガイが本当であったら、大いに、よかった。一年間ぐらい太宰を隠しておいて、ヒョイと生きかえらせたら、新聞記者や世の良識ある人々はカンカンと怒るか知れないが、たまにはそんなことが有っても、いゝではないか。本当の自殺よりも、狂言自殺をたくらむだけのイタズラができたら、太宰の文学はもっと傑すぐれたものになったろうと私は思っている。

단 가즈오가 온다. 품에서 값비싼 담배를 꺼내며 '가난하면 사치를 부리고 돈이 많으면 20엔짜리 권련을 사겠다'라고 중얼거리며 나에게 한 개 준다.

"다자이가 죽었지요. 죽었으니, 장례식에는 가지 않았지."

죽지 않는 장례식이 있을 리가.

단은 다자이와 함께 공산당의 세포인가 뭔가 하는 생물활동을 한 적이 있다. 그 때 다자이는 생물의 우두머리 격으로, 단 가즈오의 말에 따르면 그 단체에서 가장 진지한 당원이었다고 한다.

"뛰어든 곳이 자기 집 근처였으니, 이번에는 정말 죽었다고 생각했다."

단 도사가 신기를 발하며 또 말한다.

"또 장난을 쳤군. 뭔가 장난을 친 겁니다. 죽은 날이 13일, <굿바이>가 13회째, 뭐랄까, 뭔가 13......"

단 도사는 13을 죽 늘어놓았다. 전혀 눈치 채지 못했기에 나는 기가 막혔다. 선인의 통찰력이란.

다자이의 죽음은 누구보다도 내가 빨리 알았다. 아직 신문에 보도되지 않았을 때 <신쵸우> 기자가 알려줬던 것이다. 그 소식을 듣고 나는 그저 집에 편지를 남겨두고 행방을 감췄다. 신문과 잡지가 다자이에 대한 일로 습격할 것이라 직관했고, 다자이에 대해서는 당분간 말하고 싶지 않았기 떄문이다. 그래서 방문하는 기자 여러분 앞으로 편지를 써 남기고 집을 나온 것이다. 이것이 착각의 시작이었다.

신문기자는 내가 써둔 편지의 날짜가 신문기사보다 빨라서 수상히 여겼다. 다자이의 자살은 농담에 불과하며, 내가 두 사람을 숨겨줬다고 생각한 것이다.

나도 처음에는 살아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강변에 떠내려온 흔적이 확실히 있었다고 들었기 때문에, 그것으로 정말 죽었다고 생각했다. 떠내려온 흔적까지 장난칠 수는 없다. 신문기자는 내 제자로 입문해 탐정소설을 공부하도록.

신문기자의 착각이 정말이라면 정말 좋겠다. 1년 정도 다자이를 숨겨두었다가 갑자기 되살린다면 신문기자나 세간의 양식 있는 사람들은 노발대발할지도 모르겠지만, 가끔은 그런 것이 있어도 좋지 않겠는가. 정말 자살한 것보다는 자살극을 꾸미는 정도의 장난이었다면 다자이의 문학은 더욱 훌륭했으리라 나는 생각한다.






 フツカヨイの、もしくは、フツカヨイ的の、自責や追悔の苦しさ、切なさを、文学の問題にしてもいけないし、人生の問題にしてもいけない。

 死に近きころの太宰は、フツカヨイ的でありすぎた。毎日がいくらフツカヨイであるにしても、文学がフツカヨイじゃ、いけない。舞台にあがったM・Cにフツカヨイは許されないのだよ。覚醒剤をのみすぎ、心臓がバクハツしても、舞台の上のフツカヨイはくいとめなければいけない。

숙취 혹은 숙취와 같은 자책과 후회의 괴로움과 절박함은 문학의 문제나 인생의 문제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죽음에 임박할 무렵의 다자이는 숙취와 같은 기분에 있었다. 아무리 매일같이 숙취에 시달려도 문학이 숙취 상태여서는 안 된다. 무대에 오른 M.C에게 숙취는 허용되지 않는 것이다. 각성제를 너무 마셔서 심장이 폭발하는 한이 있더라도 무대 위의 숙취는 막아야 한다.




다자이 오사무는 애인과 함께 강물에 투신하여 생을 마감했습니다. 문제는 그런 일이 한두번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단 가즈오처럼 '다자이가 죽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장례식에 가지 않겠다'라고 말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정도로 다자이는 숱한 자살시도를 했다고 합니다. 그의 자살은 네 번의 자살극이 선행된 후에 일어난 것이죠. 그럼 자연히 생각하게 됩니다. 다자이는 정말 생을 마감하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그의 죽음 또한 하나의 연극에 불과할까.

다자이가 쓴 <인간실격>을 보면, 주인공은 배우를 자처합니다. 생의 실용에 대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그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생을 연기하기로 합니다. 주변 사람들은 모두 그를 좋아하지요. 재밌기도 하고 자기를 잘 이해해주는 것 같고 같이 있으면 편하거든요. 하지만 그것은 필사적으로 꾸며낸 것에 불과합니다. 그것도 잘 계획된 한 편의 연극이지요. <인간실격>이 다자이의 자선적 소설인 점을 고려하면, 다자이는 계속 이러한 연극적인 삶을 살았던 것 같고, 다른 사람들에도 그렇게 보였던 것 같습니다.

안고가 다자이의 죽음에 대해 보이는 감정은 복합적입니다. 친구가 죽었으니 속상하기도 하고 또 그의 죽음에 대해 또 장난이겠거니, 안고 당신이 숨겨주었겠거니 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에 화가 나기도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자이의 죽음 자체에 대해 일말의 연민을 보이지 않는 것이 안고답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안고가 보기에는 다자이의 필사적인 연극과도 같은 삶, 인간실격이니 자살이니 하는 것은 '숙취'에 불과한 일인 것입니다. 후츠카요이(フツカヨイ, 二日酔い)는 '술 마신 다음날의 취함'이라는 뜻입니다. (잘 알려진 ' 호로요이(ほろよい)'라는 음료수는 '살짝 취한다'라는 의미이고요.) 사람이 술을 마시거나 아니면 마신 것 같은 기분이 들면 죽고 싶어지기도 하고 괴롭기도 하고 또 즉흥적으로 극단적인 일을 할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안고는 그런 기분을 문학에, 삶에 끌어들여서는 안된다고 단호하게 선을 긋습니다. 그래서야 무대에 올라 M.C(마이 코메디언)을 자처한들 어엿한 코메디언은 되지 못한다고 하지요. 삶은 남에게 보여주기식의 흉내에 그쳐서는 안되는 것이니까요.


이번에 번역하면서 재밌었던 것은 시제에 대한 것입니다. 일어나 한국어는 원래 시제가 정확히 표시되지 않지요. 한문에도 시제랄게 없고요. 그러다가 영어와 만나면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확실하게 나누는 시제를 쓰기 시작합니다. 글에서 시제가 맞지 않으면 세련되지 못하다고 여겨지지요. 그런데 일본어는 시제가 그렇게 딱 맞지가 않습니다. [현대사상]에 나오는 논문도 가끔 시제가 왔다갔다 하지요. 그럼 이걸 다 잡아야 할지(?) 아니면 원문에 충실해야 할지 고민이 됩니다. 하물며 작가의 문체가 드러나는 문학의 경우, 작가가 시제를 쓰는 방식을 어떻게 따라야 할지 고민이 됩니다. 이번에 읽은 것 중, '檀一雄、来る。(단 가즈오, 오다)' 같은 경우도 그렇습니다. 원문대로라면 '단 가즈오, 오다'라고 써야 하지만, 화자의 회상인점을 고려하면 '단 가즈오가 왔다'라고 써야 맞습니다. 아무래도 현장성을 강조하고 싶은 문장 같아서 작가의 문체를 따라 번역했지만 읽는 사람 입장에서는 '단 가즈오가 왔다'라고 쓰는 것이 더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어쩌면 좋을지 ㅎㅎ

선민샘은 한국어나 일본어가 영어를 만나지 않았더라도, 자본주의를 만난다면 시제를 확실해서 구분해서 써야 했을 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내가 다르고, 그런 인식이 반영된 글쓰기를 했을 거라고요. 그렇게 보면 지금 시제를 구분하는 것이 그저 '이전에는 뒤죽박죽이던 시제를 가지런히 다듬은 방향으로 나아갔다'라고 볼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과제는 첨부파일을 봐주세요~


다음주에 만나요//
전체 1

  • 2019-03-29 13:14
    니나노의 맛! 천천히 일본어를 읽고, 그 결 하나하나를 음미하고. 그렇게 안고의 사상 전체를 또 생각해보고. 거북이처럼 가면서 한 학기가 지나갔군요.
    불량소년이 된다는 것은 숙취에 빠지는 일이 결코 아니라는 점을 안고는 거듭 강조합니다. 현실에 발을 딛고 있어라, 계속해서 실패하고, 다시 또 실패하라. 그러기 위해서는 여기를 떠나면 안 된다! 안고가 다자이의 자살을 통렬히 비판한 것은, 그가 링을 떠났기 때문이었습니다. 여기에는 변명의 여지가 없기 때문에! 아! 안고는 정말 대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