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신상담

4.10 니나노 공지

작성자
혜원
작성일
2019-04-07 21:37
조회
84
4.10 니나노 공지

데카르트의 '오류의 정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인간은 잘못한 것이 있으면, 그것을 고치기보다는 오히려 잘못을 반복해서 그 잘못을 옳은 것으로 '정정'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인간이 나아질 리가 없지요. 그저 자신의 오류를 정당화 하는 스킬만 늘어가고, 그럴수록 점점 자기를 기만하게 되고 자기환멸에 빠지게 됩니다. 안고가 보기에 다자이는 이 '오류의 정정'의 전형이었던 것 같습니다. 안고의 표현을 빌리면 '숙취적으로' 살면서 깨어있는 감각을 결국 상실해 버린 것이 아닐까요? 계속해서 숙취에 시달리는 것 같은, '욱 하는' 심정을 몇번이고 반복하며 그것이 마치 정당한 것처럼 사는 것. 그의 자살시도 역시 '오류의 정정' 같은 느낌을 줍니다. 여러번의 자살시도 끝에 '가장 극적이고 이상적인 자살'의 무대를 꾸며 다자이는 자신의 자살을 정당화한 것이죠.
문인으로서의 다자이는 상당히 팬 서비스가 좋은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안고가 보기에는 눈살 찌푸려지는 일입니다만, 연고 없이 날아오는 요청에도 적극적으로 응해줄 정도로 '고객님들'에 대한 서비스가 남달랐다고 하지요. 안고가 볼 때 그런 서비스 정신은 그의 여유가 아니라 오히려 허약함입니다. 오류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생각은 넘쳐나면서도, '살아있음'에 이것저것 이유를 붙이고 남들의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계속해서 극적인 자살과 대단한 서비스 정신을 오가게 된 것이죠. 취해 있는 상태에서는 어쩐지 대단한 삶이니 죽음이니 하는 것이 '욱'하고 올라옵니다. 하지만 살아가는 것은 그 숙취에서 벗어나, 촌스럽고 초라한 것이라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안고가 볼 때 숙취와 같은 대단한 죽음이나 관계는 결국 어딘가에 의지하고 마는 상태인 것 같습니다. 그것도 계속해서 반복하고야 마는, '오류의 정정' 루트를 맴도는 정당화 된 오류인 것이죠.
안고는 다자이에 대해 계속해서 '숙취적' 그리고 '욱 한다'라는 표현을 씁니다. '숙취'는 저번 시간에 썼듯이 '술을 마신 다음날까지 이어지는 취기'입니다. 그리고 '욱 하는 상태'는? 일본어로 '赤面逆上' 라고 합니다.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져서는 뭔가 억하심정이 치고 올라오는, 그런 상태죠. 그런데 이 말은 어떻게 번역하면 좋을까. 물론 '욱 한다' 라고 하면 바로 느낌이 오고(?) 좋습니다. 그런데 안고는 한자 네 글자로 마치 '문자 쓴' 느낌으로 다자이의 상태를 묘사한 것이란 말이죠. 그럼 '욱 한다'라는 표현은 다소 저렴해(?) 보입니다. '낯뜨거워하고 울컥하다'라고 번역할 수도 있지만, 아예 이것과 딱 맞는 사자성어를 집어넣고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천인공노' 같은 느낌은 아니고... 갑자기 치밀어 오르는 충동적인 감정에 대한 말로 뭐가 있을까요?
フツカヨイ的に衰弱(すいじゃく)した心には、遠い一生(いっしょう)のそれらの恥(はじ)の数々(かずかず)が赤面(せきめん)逆上(ぎゃくじょう)的に彼を苦しめていたに相違(そうい)ない。そして彼は、その小説で、誤謬(ごびゅう)の訂正(ていせい)をやらかした。フロイドの誤謬の訂正とは、誤謬を素直(そつちよく)に訂正することではなくて、もう一度、類似(るいじ)の誤謬を犯(おか)すことによって、訂正のツジツマを合(がっ)せようとする意味である。
けだし、率直な誤謬の訂正、つまり善(ぜん)なる建設(けんせつ)への積極的(せっきょくてき)な努力(どりょく)を、太宰はやらなかった。
彼は、やりたかったのだ。そのアコガレや、良識(りょうしき)は、彼の言動(げんどう)にあふれていた。然し、やれなかった。そこには、たしかに、虚弱(きょじゃく)の影響(えいきょう)もある。然し、虚弱に責(せき)を負(お)わせるのは正理(せいり)ではない。たしかに、彼が、安易(あんい)であったせいである。
숙취처럼 쇠약한 마음은 긴 세월의 온갖 부끄러움이 무수한 낯뜨거움과 울컥거림으로 그를 괴롭혔음에 틀림없다. 그래서 그는 그런 소설에서 오류의 정정을 저질렀다. 프로이트가 말한 오류의 정정이란, 오류를 솔직하게 정정하는 것이 아니라, 한 번 더 유사한 오류를 저질러서 정정의 조리에 맞추려 한다는 의미다.
게다가 다자이는 솔직하게 오류를 정정한다는, 즉 선하게 되려는 적극적 노력을 하지 않았다.
그는 하고 싶었다. 선함에 대한 동경이나 양식은 그의 언동에 넘쳐나고 있었다. 하지만 하지 않았다. 거기에는 분명 허약함도 영향이 있다. 그러나 허약함에 책임을 돌리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 분명 그가 안이했기 때문이다.

むかし、太宰がニヤリと笑って田中英光に教訓(きょうくん)をたれた。ファン・レターには、うるさがらずに、返事(へんじ)をかけよ、オトクイサマだからな。文学者(ぶんがくしゃ)も商人(しょうにん)だよ。田中英光はこの教訓にしたがって、せっせと返事を書くそうだが、太宰がせッせと返事を書いたか、あんまり書きもしなかろう。
しかし、ともかく、太宰が相当(そうとう)ファンにサービスしていることは事実(じじつ)で、去年(きょねん)私のところへ金沢(かねさわ)だかどこかの本屋(ほんや)のオヤジが、画帖(がじょう)(だか、どうだか、中をあけてみなかったが、相当(そうとう)厚(あつ)みのあるものであった)を送(おく)ってよこして、一筆(いっぴつ)かいてくれという。包(つつ)みをあけずに、ほッたらかしておいたら、時々サイソクがきて、そのうち、あれは非常に高価(こうか)な紙をムリして買(か)ったもので、もう何々さん、何々さん、何々さん、太宰さんも書いてくれた、余は汝(なんじ)坂口先生の人格(じんかく)を信用(しんよう)している、というような変なことが書いてあった。虫(むし)の居(い)どころの悪い時で、私も腹(はら)を立(た)て、変なインネンをつけるな、バカ者め、と、包みをそっくり送(おく)り返(かえ)したら、このキチガイめ、と怒った返事(へんじ)がきたことがあった。その時のハガキによると、太宰は絵(え)をかいて、それに書(しょ)を加(くわ)えてやったようである。相当のサービスと申(もう)すべきであろう。これも、彼の虚弱から来ていることだろうと私は思っている。
예전에 다자이가 히죽 웃으며 다나카 히데미쓰에게 교훈을 주었다. 팬레터에는 성가시게 되기 전에 답장을 써라, 고객님들이시니. 문학가도 상인이라고. 다나카 히데미쓰는 이런 교훈에 따라 바로바로 답장을 썼다고 하나, 다자이는 바로바로 답장을 썼을까, 그다지 쓰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어쨌든 다자이가 정말 팬 서비스를 하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작년 내게 가네사와인가 어딘가의 서점 주인이 화첩(하지만 어떤 것인지 안을 열어보지 않았으나 상당히 두꺼운 것이었다)을 보내주면서 한 줄 써 달라고 했다. 포장을 열어보지도 않고 내버려 두었더니, 수시로 독촉이 왔다. 그 가운데, 그것은 매우 비싼 종이를 무리해서 산 것으로, 이미 누구누구 씨, 누구누구 씨, 누구누구 씨, 다자이 씨도 써 주셨다, 나는 당신 사카구치 선생의 인격을 신용하고 있다, 라고 하는 이상한 소리가 써 있는 것이다. 작은 일에도 심기가 불편하던 때라 나도 짜증을 내며 이상한 인연을 짓지 마라, 바보 같은 놈 이라고 보따리를 죄다 되돌려 보냈더니, 이 미친놈, 하고 화내는 답장이 온 적이 있다. 그때 엽서에 따르면 다자이는 그림을 그렸고, 거기에 글도 써 준 것 같다. 상당한 서비스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것도 그의 허약함에서 비롯되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4월 10일 니나노 세미나 합니다~

과제는 첨부파일을 봐주세요~
전체 1

  • 2019-04-08 01:37
    청춘이니, 타락이니, 윤락이니 등. 안고가 내세우는 표제어들이 워낙 발랄하고 경쾌하기 때문에 놓치기 쉬운 점이 있습니다. 안고는 철저한 사유를 무엇보다 근본적인 윤리로 가져갑니다. 청춘의 모든 고민이 결국은 자기 윤리를 발명하고 구현하는 과정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자이의 자살에 어찌나 냉정한 평가를 내리시는지. 읽으면 읽을수록 이 글은 무겁습니다. 너의 삶을 사유의 대상으로 삼아라. 취미의 도구로 쓰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