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세키와 글쓰기

9.24 청소후기(수경조)

작성자
gini
작성일
2016-09-27 20:06
조회
399
 

* <도련님> 어떻게 읽었나.

<도련님>을 학교라는 근대적 공간과 이를 둘러싸고 있는 시코쿠(전근대적·봉건적 공간)라는 시골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로 읽은 라쿤샘의 글에 대한 여러 의견

- 학교와 시골이라는 일반적 개념에 의거한 피상적 읽기는 아닌지, 그렇게 읽을 수도 있지만 그 논리적 근거를 텍스트에서 찾아야 한다.(수경)

- 새로 부임한 선생님을 놀려먹는 아이들, 선생님도 풀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는 도련님의 독백 같은 것은 오히려 근대의 특징적 모습이 아닌지(지은)

- 능력별(?) 급여 차등(종은), 사회초년병의 신고식 같은 모습(규창)은 현대 조직 사회의 모습과 너무나 흡사. 근대와 전근대라는 이분법으로 읽기에는 좀 무리가 있다

 

“부모님에게서 물려받은 앞뒤 가리지 않는 성격”을 가진 도련님은 머리를 굴리기 보다는 마음가는대로 움직이는 사람으로 그 때문에 사회와 불화하고 따라서 고독한 사람. 도련님의 모습이 바로 그 시대와 그 시대 사람들이 처한 상황을 보여준다(지니).

 

도련님은 과격하고 대쪽같이 보이지만(종은) 오히려 미성숙한 사람으로 보이기도(수경). 조직사회에서 제 맘대로, 할 말 다하고 사는 도련님이 부럽기도(종은).

 

* 도련님과 기요의 관계

기요는 도련님에게 돌아가고 싶은 안식처 같은 존재다라는 생각에는 공감. 그러나 그렇게만 단정하기에는 기요의 구구절절한 편지도 걸리고(무슨 연인사이처럼-라쿤), 할머니·손자사이 같기도 하고(지은), 봉건적 주종관계(종은)로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타지에서 고생고생하다가 오냐오냐해주는 누군가가 있는 안식처로 돌아간다는 설정은 너무 시시하기도 하고, 더욱이 기요는 도련님을 만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죽지 않았는가. 후기를 쓰면서 떠오른 기요에 대한 생각을 풀어보면...

기요를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어쩌면 우리들이 기요식의‘무조건적 호의’를 받아본 적도, 준적도 없기 때문이어서일지 모른다. 대상의 ‘어떠함’과 상관없는 호의. 도련님은 그런 기요에 대해서 “호의적인 눈은 무서운 것이다”라고 했었다. 호의적인 눈이 무서운 이유는 그것이 사람을(도련님 자신을) 움직이는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잘한다 잘한다를 변함없이 하면 당사자는 설령 자신이 잘하고 있지 않음을 알고 있다하더라도 잘하고 있다고 착각하거나 급기야는 잘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그런데 기요의 호의적인 시선이라는 것은 실상 대상에게 그렇게 관심을 갖고 있는 듯 보이지 않는다. 대상의 어떤 행위에 구애됨 없이 호의를 보내니 말이다. 이 시선은 대상을 보지만 동시에 대상을 안 본다. 그러면서도 대상을 움직이게 한다. 기요의 시선은 한 발짝 떨어져서 보는 사생문작가의 시선과 유사하다. 낯선 시골에 와서 나름 호되게 신고식을 치른 도련님은 기요에 대한 즉 세상을 보는 이 시선에 대한 갈망이 있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 물론 그 동요하지 않는 시선은 공사다망한 현실 앞에서 언제나 실패할 것이다. 기요가 죽었듯이.

 

* (수경샘)은 <도련님>의 구조가 천상의 세계에 살다가 죄를 지어 지상세계에 떨어진 존재가 착한 일을 하고 다시 천상으로 올라간다는 동양의 익숙한 이야기들과 비슷하다고 했다. <도련님>은 이 구조를 취하는 듯하면서 마지막에 기요의 죽음으로 마무리된다. 해피엔딩이 아니라 엔딩을 무수한 가능성으로 열어두는 구조, <도련님>의 이런 면이 근대소설적 구조와 닮았다면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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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상>을 보면서...

-소설과 사생문은 다른 것인가. 소세키를 일본근대문학의 출발점이라고 할 때, 그것은 사생문작가로서의 소세키를 말하는 것인가, 아니면 서양식 소설작가로서의 소세키를 말하는 것인가(지니). 보통 서양식 근대 소설이라 하면 제재와 테마가 분명하고 이야기가 있는 것이니 형식면에 있어서는 사생문과는 다른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게 볼 때 소세키를 근대문학의 무엇이라고 말하는 것은 서양식근대소설을 쓰는 소세키를 말하는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소설이라는 장르가 모든 문학장르를 다 섭렵하여 구성될 수 있으니(수경)...

 

- <회상>은 병상일기다. 소세키는 병상에 있는 자신과 떨어져서 병상에 있는 자신을 바라보는 위치에서 <회상>을 썼다. 이때 작가의 위치라는 것, 그것은 아마도 사생문작가의 태도라는 것과 연결될 듯싶은데 이때 ‘쓴다’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수경). 소세키에게 소설은 그의 신경증을 완화시킬 수 있었다고 하는데, 소세키가 이전에 글을 안 쓴 사람도 아니고 소설을 쓴다는 것이 무엇이기에 그의 신경증을 완화시킬 수 있다는 것인가(지니).

 

- 일상과 차단된 공간에 자신을 둘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지은), 거리감을 갖는다는 면에서 그럴 수도 있지만 전적으로 그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 것 아닌가(수경).

 

* 읽고 쓰기 일반에 대한 질문

: <취미의 유전>을 소설과 소설 아닌 것에 대한 이야기 구조로 읽은 수경샘을 글을 읽고, 어떻게 읽고, 어떻게 써야하는 지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다.

 

-개인적으로 수경샘은 ‘수상한 곳’을 물고 늘어진다고 했다. 내가 알겠는 것을 가지고 글을 쓰는 것이 보통인데, 내가 그 책을 봤다고 할 수 있으려면 작품 속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 혐오하는 것 말고(그것은 자기동일시 외 아무것도 아니다) 자신에게 낯설게 다가오는 것을 가지고 얘기해야 한다. 작가가 의도한 바일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내가 낯설게 본 그 부분을 의미화 시킬 수 있을 때‘내가’ 그 책을 봤다고 말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우리는 글을 읽으면서 거기서 자기와 동일한 경험과 생각을 읽어낼 수 있다. 그러나 어떤 공통점을 찾는 것 그리고 그것으로 그치고 마는 읽기와 쓰기가 우리에게 무슨 도움이 될까. 소설은 풍자의 형식으로 무엇을 까발릴 수도 있다. 그것을 알아낸다는 것 또한 무슨 의미가 있을까. 소세키 작품이 당대를 넘어서 지금까지 읽히고 있는 이유는 다양한 관점에서 읽힐 수 있는 텍스트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들...

지금 우리가 여러 작품들을 읽고 있듯이, 소세키의 작품 그리고 당대의 작품, 또 그 전후의 작품들에 대한 독서경험이 일단 많아야 할 것이다. 자기의 느낌에 대해 자기 논리를 세우려면 글쓰기에 들이는 절대적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는 왜 <이백십일>을 피했을까. <이백십일>에 대해 쓴 사람이 없었기에

-뭔지 제일 모르겠는 글이었다(수경)

-과거로부터 내려오는 강담(?) 같은 형식의 글 아닐까? 그런 형식을 소설화시키는 작업(지니)

-연극대본 같다(규창), 그러면 낭독으로 하면 무척 재미있겠다(수경)

 

* <취미의 유전>에서 화자의 ‘상쾌한 눈물’이 세 번쯤 나오는데 이건 소세키가 제국주의를 옹호했다는 증거처럼 보인다(종은)

-서구 제국주의에 맞서 일본적인 어떤 것을 찾는 소세키를 보면 제국주의에 반대한 것 같은데, 일본제국주의가 조선을 침탈했다는 것에 대해서는 별 얘기가 없는 걸 보면 제국주의에 반대했나 싶기도 하고, 제국주의에 대해선 아무 관심이 없었던 것 같기도 하고 혼란스러운 면이 있기는 하다(지니).

-문맥상 ‘상쾌한 눈물’은 ‘대조’라는 문제와 연결지어진 것인데 거기서 제국주의에 대한 옹호를 읽기는 어려운 것 같다. 그렇게 읽을 수도 있다. 소세키에 대해 제국주의를 옹호했다는 비판의 글들도 있으니까. 그런 책들을 보고 공부하자(수경)

 
전체 3

  • 2016-09-27 21:43
    <도련님>... 다양한 엔딩을 열어두었다는 데 방점이 있기보다는, 도련님이 근대소설적 구조라고 말할 수 있는 지점을 이렇게 저렇게 생각해보고 싶었던 건데, 그러다보니 옛날이야기에 나오는 구조(스토리 말고 구조!)랑 비슷하면서도 마지막에 확 갈리는 지점이 눈에 띄어 재미있었네요. / 종은쌤은... 러일전쟁 이야기와 상쾌한 눈물이라는 단어만으로 소세키의 제국주의를 말할 수 없으니, 그런 의문이 들었다면 참고 텍스트를 찾아 읽으며 공부를 조금 더 해보시면 좋겠다는 그런 생각.

  • 2016-09-29 17:24
    작품을 읽는다는 것이 단순히 독서 감상을 얘기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이상을 말해야 하는데, 자꾸 감상에서만 그치는 저를 발견합니다. 수경쌤이 분명하게 얘기해주시는 데도 불구하고 좀처럼 나아지지가 않네요. @.@ 어쩐지 작품을 읽을수록 점점 쓰기가 어려워지는 느낌입니다........

    • 2016-09-30 11:09
      점점 어려워어지고 있다니, 아주 바람직한 현상이로다+_+ 바로 달라지고 나아지면 그게 더 수상한 법, 다함께 재미나게 성실하게 끈기 있게 읽고 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