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세키와 글쓰기

10.8 청소 공지

작성자
혜원
작성일
2016-10-03 23:15
조회
404
청소 세미나를 시작하고 처음으로 그동안 썼던 과제를 합평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풀베개> 과제를 다 같이 읽는 시간이었는데요. 소설을 읽어내고 그 안에서 세계를 끄집어내는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이 공통적으로 지적된 내용이었습니다. 스토리를 따라 글을 쓰다가는 인상만 스케치하다가 끝나버리기 십상인데 그런 과제들이 계속해서 이어져 왔었다고. ㅠ0ㅠ 앞으로 쓸 과제에는 ‘분석’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소설은 아무리 자질구레한 이야기라고 거기에 세계를 담고 있기에 소설이라고 합니다. 이 소설이라는 ‘세계’는 무엇이고, 이 이야기를 읽는 나는 무엇인지. 작가 소세키의 ‘세계’는 무엇이었을까 등등. 이런 질문을 던지며 내가 이 소설과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 접속의 지점을 더듬어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스토리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이야기는 끝나 있고 나는 소설과 만날 수 없습니다. 소세키의 소설에서 보고자 하는 것이 어떤 맥락에 놓여 있는지 살피고 그 키워드를 다시 재규정할 수 있어야 ‘분석’이 되는 것입니다. 표피적으로 텍스트를 읽지 말고 그 텍스트의 모순, 그 텍스트에서 만날 외부성이 무엇인지 계속해서 찾아 거기에 머물러 생각하고 글을 써야한다는 거죠. 너무 조급하게 줄거리만 따라가다 보면 소설에서 그 시대를 읽어내는 것은 요원한 일이 된다는 것. 걸리는 장면이나 구절이 있으면 왜 이렇게 썼는지 충분히 머물러 분석하고 그 생각하는 과정이 드러내며 소박해도 좋으니 나름의 결론을 낸 과제를 써 옵시다~
합평을 하면서 늘 들어는 보았지만 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던 ‘사생문’에 대한 강의도 들었습니다. 사생문은 서양 사실주의 회화에서 영향을 받아 마사오카 시키가 도입한 문학 양식을 말합니다. 결국 사생이라는 것은 회화의 논리에서 온 것인데요. 일본인들은 처음 서양 회화가 도입되었을 때 굉장히 놀랐다고 해요. 주인공을 중심으로 세세하게 그리고 나면 나머지는 생략해버리는 일본화와 달리 서양회화는 주제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 같은 풀 한포기까지 세세하게 묘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생문은 이런 회화에서 영향을 받아 주인공과 상관없는 요소라도 세세하게 묘사한 것을 말합니다.
당시 시메이, 돗포로 대표되는 일본 근대 소설계는 내면묘사를 중시하는 자연주의가 유행하고 있었습니다. 내면 묘사를 위해서는 필요 없는 것을 치워야 합니다. 의성어, 의태어, 길고 쓸데없는 묘사, 자연배경은 인간 내면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면 생략해도 좋다는 것이 자연주의 소설입니다. 예컨대 ‘따르릉 자명종이 시끄럽게 울렸다.’ 같은 글은 자연주의 관점에서 보면 쓸데없는 묘사가 붙은 글인 셈입니다. 그저 ‘자명종이 울렸다.’로 적으면 된다는 것. 하지만 소세키의 글은 우리가 보았듯 전혀 그러지 않죠. 의성어, 의태어가 나오고, <풀베개> 같은 것은 자꾸 헛길로 새며 사람들의 심리를 따라가는 것이 자꾸만 등장합니다.
소세키의 사생문적 태도는 이런 것입니다. 어떤 인간의 일도 자연 속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계속해서 상기시키는 것입니다. 인간이 던져진 지평은 그 인간이 어떤 정서를 보이든 상관없이 늘 붙어 있다는 것. 그건 불필요하거나 생략할 대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는 아이가 있으면 그 옆에 울지 않는 어른을 보여주는 것. 하이쿠는 어떤 장면을 하나 보여줍니다. 예컨대 개구리가 연못에 뛰어 들어갑니다. 이건 의미심장하고 중요해서 하이쿠로 옮겨지는 것이 아닙니다. 의미 없어 보이는 장면이 세계를 담고 있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 쓰는 것입니다. 의성어, 의태어, 기다란 묘사 따위로 인물의 감정에 몰입하는 것은 아무리 슬픈 사건이라도 세계는 그 사건만으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것이 소세키의 사생문적 태도입니다. 이런 태도는 <고양이>에 특히 두드러졌습니다. 4회 이후 장편으로 전환된 이 소설은 소세키가 계속해서 소설이 무엇인지 질문하며 써나가는 글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풀베개> 역시 사생문이란 무엇인지 자연주의를 의식하여 쓴 글입니다. <풀베개>에 등장하는 ‘비인정’이라는 말은 이후 자연이라는 말로 대체되는데, ‘비인정’은 화자가 미리 거리를 두는 그런 태도가 아닙니다. 인간을 중심으로 한 세계의 배치, 즉 인정의 세계가 이루어지는 것을 계속해서 거부하는 것이 비인정입니다.
자연주의는 삶이 곧 문학이라고 했는데 소세키는 소설이 허구임을 늘 잊지 않고 강조합니다. 그리고 <몽십야>를 집필했다고 합니다. 내러티브가 성립되지 않아도, 소설은 그 자체로 성립할 수 있다는 소세키 나름의 자연주의에 대한 저항인 셈입니다. 인간을 중심으로 한 세계를 배치하고 인간이 그 세계에 대항하여 이기든 지든 하는 것은 서양 근대 소설의 핵심입니다. 사생문은 그런 인정을 거부하며 다시 질문하는 것입니다. 세계란 인정의 방식으로만 성립이 가능한가? 드러나지 않는 다른 세계 또한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풀베개>에 인정의 세계가 드러나지 않는 건 아닙니다. 결국 기차가 등장합니다. 문명과 인간이 득실거리는 세계를 “남의 똥구멍 모양이나 따지는 탐정의 세계”라고 한껏 비판했지만 오직 비인정의 세계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고 계속해서 시인하고 있습니다. 세계란 우는 아이와, 그 아이와는 전혀 감정적 교감을 하지 않는 세계가 함께 있다는 것. 그것이 사생문적 태도이며, 서양의 것도 일본의 것도 아닌 ‘하이쿠적 소설’이라는 충돌하는 개념을 맞붙이면서까지 소세키가 보고자 하는 세계라고 할 수 있다는 것.
소세키가 살던 근대 일본은 여러 가지가 착종된 시대였습니다. ‘있는 그대로’ 묘사한다는 서양의 자연주의가 일본에 들어와 인간이 세계와 관계 맺는 것을 있는 그대로 묘사한다는 요상한 맥락의 일본식 자연주의가 탄생합니다. 그리고 이런 흐름은 사소설을 짓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있는 그대로’ 라는 리얼리즘은 어쩐일인지 일본의 자연주의 문학가들이 비판한 시키와 소세키의 사생문으로 이어집니다. 그런데 이것도 서양의 사실주의와는 달라서, 마치 유화로 그린 투시도법을 도입하여 먹으로 원근법을 표현하는 몽롱법이 되었다는 것처럼 문학에서도 사실주의에 대한 일본식의 변주가 일어나게 됩니다.
여기까지 강의를 듣고 나니 때가 오고야 말았습니다. 소세키만으로는 이 요상하게 돌아가는 시대가 뭘 하고 있는지 알 수 없게 된 것이죠. 그러니까 좀 더 읽어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조를 나눌 건데요. 일단 토론조를 다시 나눕니다.

수경조: 재원, 혜원, 규창, 락쿤쌤, 종은쌤
옥상조: 건화, 감자, 이응쌤, 지니쌤

그리고 팀과제를 할 조를 나눕니다. 조별과제...잘 해옵시다...
읽을 책은 <무사시노(외)>, <모리 오가이 단편집>, <소설신수>입니다.

돗포: 건화, 규창, 감자, 이응쌤
오가이: 옥상쌤, 재원언니, 락쿤쌤, 지니쌤
소설신수: 수경썜, 혜원, 종은쌤

다음 시간에는 <태풍> 공통과제와 함께 조별로 읽은 책에 대한 팀과제를 가져옵니다~
간식은 규창, 지니쌤

다음시간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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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10-04 13:50
    전 <태풍> 읽으면서 진짜 신기했던 게 나무니 행인이니 기차니 하는, 일견 쓸데없어 보이는 것들에 대해 줄줄이 이어지는 말들이었어요. 이럴 때면 어김없이 현재시제가 사용된다는 게 공통적이었고요. 지난 주에 들은 이야기 각자 잘 정리하셔서 담 시간에 재미나게 이야기해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소설신수는 왜 안 오지 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