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세키와 글쓰기

<태풍>후기-란다조

작성자
란다
작성일
2016-10-11 22:56
조회
353

소세키, <태풍>,  란다조 후기


우리 조에서 주로 토론한 것은, 도야 선생과 다카야나기의 길(삶)이 의미하는 바에 대해서다. 이 양자 말고도 나카노의 경우를 집어넣어 삼자비교(^^)도 했지만. 어쨌던 도야선생과 다카야나기의 문제는 집단과 개인의 문제를 말해준다. 이 둘은 ‘외톨이’라는 데서 공통점을 갖는데, 도야가 자발적으로 집단에서의 배제됨을 선택해서 외톨이가 되었다면, 젊은 다카야나기는 집단에 소속되기를 욕망하고 그 속에 동화되고자 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배제되어 ‘외톨이’가 된다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여기서 집단에의 동화와 배제를 진희샘은, ‘부여받은 이름’대로 사느냐로 이야기했다. 다시 말해 ‘남편’으로, ‘강사’로, ‘문학사’로서 정의된 이름에 자신을 맞춰서 산다면, 그 이름에 ‘구애’되는 것이다. 그런데 도야는 어떤 이름에도 동화되지 않았기에 모든 이름으로 살 수 있었고, 그것은 스스로 원해서 외톨이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다카야나기의 경우는 문학자라는 ‘이름’에 관심이 있고, 그것에 집착하는 자다. 하지만 ‘빵’조차 없는 그가 자유를 얻기란 힘든 일이었다.


어쨌든 외톨이가 된 이유는 이렇게 둘의 성향/성격으로 이야기되기도 했지만, 이들의 세대 차이가 낳은 것이기도 하다. 도야선생의 경우는 흡사 메이지유신의 주역처럼, 자기 이상을 갖고 활동하다가 그것이 거부당한 상태라면, 그렇다고 하지만 도야에게는 인맥이나 학맥이 여전하여 먹고 사는 것보다는 여전히 자신의 이상을 추구하는 것이 주된 자다. 물론 다른 소세키의 작품에서처럼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한 것은 그의 부인과의 이야기나 에피소드에서 드러난다.


다카야나기의 경우는, 그가 말한 ‘죄인의 자식’이 이라는 점이 낙인처럼 그의 정신을 지배하는 것처럼 보인다. 즉 도야처럼 열심히 공부해서 학위를 딴다고 해서 ‘개천에서 용 난 케이스’는 절대 될 수 없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졸업장으로, 훌륭한 작품으로 부와 명예를 얻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둘 사이의 간격에서 다카야나기는 어떤 출구도 발견할 수 없다.


다카야나기 앞에는 두 갈래의 길이 놓여있다. 하나는 친구 나카노의 길, 그러나 그쪽으로는 ‘출신성분의 차이(?)’로, 절대 원한다고 해서 갈 수 있는 길은 아니다. 아니, 가고자 한다면 자기를 버려야지만 가능한 길이다. 그가 싫어마지 않는 실업자가 되어야지만, 세상의 조류에 아무 토도 달지 않고 수동적 인간이 되는 한, 가능한 길이다. 자기로서는 욕망하는 길이지만, 죽음의 길이기도 하다. 다른 하나는 도야의 길이다. 구애받는 것에서 해탈하는 길. 돈보다는 인품의 길이다. 그러나 이 길은 하루 한끼의 ‘빵’조차도 제공해주지 못하는 길이다. 역시 죽음의 길이다.


이 두 갈래의 길이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지만, 다카야나기는 그 갈림길에 섰다. 건화는 다카야나기가 갈림길에 선 것이 양쪽 길에도 속하지 않는 채로 ‘전례가 없는 삶을 시작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하고 전망했고, 감자는 나카노와 도야 사이에서 이리저리 흔들린 끝에 다카야나기가 스스로 ‘구애된 것’ 즉 이름과 돈과 같은 ‘형식들/겉모습들’에서 벗어나고 있다고 봤다. 란다는 벗어났다기보다 청년들을 구애되게 만들고 그들을 갈림길에서 방황하게 만드는 현실 자체를 보여주고 있을 뿐이라고 보았다.


이렇게 특히나 다카야나기에 대한 평가(?)가 다르기에 마지막에 보였던 문제적 장면, 우리 조에서는 그 장면을 <100엔으로 인격을 산 장면>이라고 불렀는데, 그 장면에 대한 해석이 다 달랐다. 100엔이 액면 그대로의 100엔으로 교환되거나 유통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관계에서는 호의의 이름으로, 마음으로, 존경으로 작동한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거꾸로 호의든 마음이든 존경이든 그것이 금전화되어서 유통된다는 것, 그런 사회에 다카야나기등이 놓여 있기에 방황하고 갈등한다고도 할 수 있다. 그래서 마지막 장면을 어떻게 보는지가 조원마다 다 달랐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100엔은 나카노가 다카야나기에게 보여준 호의로, 이 호의가 다카야나기를 통해서 도야선생에게 흘러간 것으로 본다거나, 다카야나기와 나카노 사이의 미끄러짐이 여기서 마침내 친구의 호의로 인지되면서 다카야나기 나름의 교환방식으로 도야의 세계와 연결되었다는 식으로 본다거나, <인격론>조차도 100엔으로 교환되고마는 상황을 아이러니하게 보여준다는 것으로 보는 등의 논의가 있었다.

전체 1

  • 2016-10-12 18:34
    토론은 재밌게 했지만 정리된 걸 보니 작품 바깥에서(혹은 완전히 작품 안쪽에서) 인물이나 사건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만 얘기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