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 한강

[변무] 1~5

작성자
혜원
작성일
2018-10-12 15:43
조회
65
 

 

8편 변무(駢拇)

 

변무 제1

 

騈拇 枝指 出乎性哉 而侈於德 附贅縣疣 出乎形哉 而侈於性 多方乎仁義而用之者 列於五藏哉 而非道德之正也 是故 騈於足者 連無用之肉也 枝於手者 樹無用之指也 [多方]騈枝於五藏之情者 淫僻於仁義之行 而多方於聰明之用也

군더더기 살과 육손은 본성에서 나왔지만 보통 사람들이 타고나는 것에 비하면 군더더기다. 붙어 있는 크고 작은 혹은 신체에서 나온 것이지만 본성에 비하면 군더더기다. 여러모로 인의를 쓰는 자는 오장과 나란하도다. 하지만 도덕 본연의 모습은 아니다. 그러므로 발가락의 군더더기 살이 붙어 있는 것은 쓸모없는 살이요 육손은 쓸모없는 손가락이 심어져 있는 것이다. 여러 방법으로 오장의 본래 모습에 붙이면 인의의 행위에 치우쳐서 귀밝음과 눈ㅁ밝음을 온갖 방식으로 쓰게 된다.

 

-騈拇: 붙어있는 어지. 물갈퀴 모양의 손.

-枝指: 붙어있는 손가락. 육손을 말한다.

-侈: 보통 사람들보다 많은 수. 군더더기. 剩과 같음.

-多方: 다방면으로 쓴다. 方은 術과 같음.

 

 

是故 騈於明者 亂五色 淫文章 靑黃黼黻之煌煌 非乎 而離朱是已 多於聰者 亂五聲 淫六律 金石絲竹黃鐘大呂之聲 非乎 而師曠是已

枝於仁者 擢德塞性 以收名聲 使天下 簧鼓 以奉不及之法 非乎 而曾史 是已 騈於辯者 纍瓦 結繩 竄句 遊心於堅白同異之間 而敝跬譽無用之言 非乎 而楊墨 是已 故 此 皆多騈旁枝之道 非天下之至正也

이 때문에 쓸데없이 눈이 밝은 자는 오색에 더 현혹되고, 무늬의 화려함에 탐닉하게 되니 청색, 황색의 화려하고 휘황찬란함이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이주가 바로 그런 자다. 듣는 능력이 과한 사람은 오성에 현혹되고 육률에 탐닉하니 금관, 석조, 현악기, 대나무 악기 소리와 사광과 대려와 같은 음률이 바로 그런 것 아니겠는가. 사광이 바로 그런 이다.

쓸데없이 인의를 추구한 자는 덕을 뽑고 본성을 막아서 명성을 거두려 하니 천하 사람들로 하여금 시끄럽게 떠들어대면서 미칠 수 없는 법을 지키게 하지 않던가? 증삼과 사추가 바로 그런 이다. 쓸데없이 변론하는 자는 기와를 쌓아올리고 매듭을 만들고 문구를 어지럽게 꾸며서 견백이 같은지 다른지를 따지며 놀고 있으니 하찮은 명예와 쓸모없는 명예로 피폐해지니 양주와 묵적이 그런 이다. 그러므로 이런 것들은 모두 쓸데없는 군더더기를 조작하고 억지로 기워 붙이는 행위이므로 천하의 지극한 도가 아니다.

 

-而離朱: 如離朱와 같음. 離朱는 <맹자>에 나오는 이루와 같음. 눈 밝은 사람의 총칭.

-簧鼓: 생황과 축을 울림. 떠들썩하게 부추김.

-曾史: 외편에 자주 나오는 증삼과 사추. 고집스러운 사람들의 대명사.

-結繩 竄句: 기와를 쌓아올림(쓸데없는 논리), 매듭을 만듦(괜히 중요 표시를 함). 즉 중요한 게 아닌데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모습.

-跬譽: 한 걸음 정도 차이 나는 하찮은 명예.

 

 

변무 제2

 

彼正正者 不失其性命之情 故 合者不爲騈 而枝者不爲跂 長者 不爲有餘 短者 不爲不足 是故 鳧脛雖短 續之則憂 鶴脛雖長 斷之則悲 故 性長 非所斷 性短 非所續 無所去憂也 意仁義 其非人情乎 彼仁人 何其多憂也

지극한 바름을 추구하는 사람은 그 타고난 명의 실정을 잃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어진 것을 군더더기라 하지 않고 하나 더 난 것을 여분의 손가락으로 여기지 않는다. 긴 것을 남는 것으로 여기지 않고 짧은 것을 부족하다 여기지 않는다. 그러므로 오리의 다리는 비록 짧지만 이어주면 근심할 것이고, 학의 다리가 비록 길지만 잘라내면 슬퍼한다. 따라서 본성이 길어서 잘라야 하는 것이 아니며 본성이 짧아서 이어줘야 하는 것이 아니며 근심거리고 여겨 없앨 것이 아니다. 아마도 인의는 인정이 아닐 것이다. 인의를 실천하는 사람은 어찌 그리 의심이 많은가?

 

-正正: 1. 至正. 지극한 옳음. 2. 正正 지극한 바름을 바로잡다.

-意: 아마도.

 

且夫騈於拇者 決之則泣 枝於手者 齕之則啼 二者 或有餘於數 或不足於數 其於憂 一也 今世之仁人 蒿目 而憂世之患 不仁之人 決性命之情 而饕貴富 故 意仁義 其非人情乎 自三代以下者 天下 何其囂囂也

또한 발가락의 군살은 찢으면 아파 울고 갈라진 손가락을 자르면 아파서 호곡한다. 이 두 가지는 어떤 것은 원래 수보다 많고 어떤 것은 원래 수보다 부족하지만 근심거리임은 마찬가지다. 지금 세상의 인한 사람은 눈을 혹사시키며 세상의 근심을 근심하고 불인한 자들은 타고난 성명의 실정을 잘라내 부귀를 탐낸다. 따라서 아마도 인의는 인정이 아닐 것이다. 하은주 삼대 이후에는 천하가 어찌 그리 시끄러운가?

 

-蒿目: 눈을 혹사시킴.

-饕: 탐하다. cf. 饕餮. 아귀.

 

 

변무 제3

 

且夫待鉤繩規矩而正者 是 削其性者也 待繩約膠漆而固者 是 侵其德者也 屈折禮樂 呴兪仁義 以慰天下之心者 此 失其常然也

天下 有常然 常然者 曲者 不以鉤 直者 不以繩 圓者 不以規 方者 不以矩 附離 不以膠漆 約束 不以纆索 故 天下 誘然皆生而不知其所以生 同焉皆得而不知其所以得 故 古今 不二 不可虧也 則仁義 又奚連連 如膠漆纆索 而遊乎道德之間爲哉 使天下 惑也

 

갈고리와 먹줄과 그림쇠와 곱자에 의지해 바로잡으려는 것은 본성을 깎아내는 것이고, 끈으로 묶고 아교칠을 해 견고하게 만드는 것은 그 덕을 해치는 것이며 구부리고 꺾어 예악을 행하고 인의라면 교언영색하며 따라 천하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려는 것은 항상 그러한 본성을 잃는 것이다.

천하에는 항상 그러한 것이 있다. 항상 그러한 것이란 굽은 것은 굽히는 도구가 필요 없고 곧은 것은 먹줄이 필요 없고 원은 그림쇠가 필요 없고 모난 것은 곱자가 필요 없고 붙은 것은 아교칠을 한 것이 아니며 묶인 것은 끈으로 동여맨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천하는 유혹이라도 당한 듯이 생겨나 알지 못하는 사이에 생겨나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얻으면서도 그 얻은 까닭을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옛날과 지금은 다르지 않고 어그러질 수 없다. 그런데 인의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또한 어찌 아교칠을 하고 끈으로 동여매듯 기워 붙여 도덕의 세계에 노닐려 하며 천하가 의혹에 빠지게 하는가.

 

-鉤繩規矩: 굽은, 곧은, 원, 모난 모형틀.

-呴兪: 교언영색하며 따지는 일.

-誘然: 유혹이라도 당한듯이 자연스럽게.

 

 

변무 제4장

 

夫小惑 易方 大惑 易性 何以知其然邪 自虞氏 招仁義 以撓天下也 天下 莫不奔命於仁義 是 非以仁義 易其性與 故 嘗試論之 自三代以下者 天下 莫不以物 易其性矣 小人則以身 殉利 士則以身 殉名 大夫則以身 殉家 聖人則以身 殉天下 故 此數子者 事業 不同 名聲 異號 其於傷性 以身 爲殉 一也

臧與穀二人 相與牧羊 而俱亡其羊 問臧奚事 則挾筴讀書 問穀奚事 則博塞以遊 二人者 事業 不同 其於亡羊 均也 伯夷 死名於首陽之下 盜跖 死利於東陵之上 二人者 所死 不同 其於殘生傷性 均也 奚必伯夷之是而盜跖之非乎 天下 盡殉也 彼其所殉 仁義也 則俗 謂之君子 其所殉 貨財也 則俗 謂之小人 其殉 一也 則有君子焉 有小人焉 若其殘生損性 則盜跖 亦伯夷已 又惡取君子小人於其間哉

작은 의혹은 방향을 바꾸고 큰 의혹은 본성을 바꾼다. 어째서 그러한가? 우씨가 인의를 내세워 천하를 어지럽힌 이래 천하에 인의를 추구하여 목숨을 바치지 않은 이가 없으니 이것이 인의로써 그 본성을 바꾼 게 아니겠는가. 선비는 이름 때문에 몸을 바치고 대부는 집안 때문에 몸을 바치고 성인은 천하 때문에 몸을 바친다. 그러므로 그 숫자와 한 일은 같지 않고 명성이 호칭을 달리하지만 자기 본성을 해쳐서 몸을 죽게 한 자라는 점에서 같다.

장과 곡 두 사람이 양을 치다가 두 사람 다 양을 잃어버렸다. 장에게 무슨 일을 하고 있었냐고 물으니 채찍을 끼고 글을 읽었다고 한다. 곡에게 무슨 일을 했냐고 물으니 주사위 놀이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두 사람은 한 일은 다르나 양을 잃었다는 점에서 같다. 백이와 숙제는 명예 때문에 수양산 아래에서 죽었고 도척은 이익 때문에 동릉 위에서 죽었다. 두 사람의 죽음은 같지 않지만 그 본성을 해쳤다는 점에서는 같다. 어찌 반드시 백이가 옳고 도척이 옳지 않을까. 천하가 모두 목숨을 바친다. 그런데 그가 인의 때문에 죽었다면 세속 사람들은 군자라고 일컫고 그가 따라 죽은 것이 재물이면 세속 사람들은 소인이라고 일컫는다. 그 죽음은 같은 것인데 군자가 있고 소인이 있으니 만약 그 생명을 해치고 본성을 손상시키는 것에 이르러서는 도척과 백이는 같을 뿐이니 또한 어찌 군자와 소인을 이 가운데서 찾을까.

 

-奔命: 목숨을 버림.

-臧: 남자 종을 뜻하는 이름.

-穀: 곡식 곡, 어린아이라는 뜻의 이름.

 

 

변무 제5

 

且夫屬其性乎仁義者 雖通如曾史 非吾所謂臧也 屬其性於五味 雖通如兪兒 非吾所謂臧也 屬其性乎五聲 雖通如師曠 非吾所謂聰也 屬其性乎五色 雖通如離朱 非吾所謂明也 吾所謂臧者 非仁義之謂也 臧於其德而已矣 吾所謂臧者 非所謂仁義之謂也 任其性命之情而已矣 吾所謂聰者 非謂其聞彼也 自聞而已矣 吾所謂明者 非謂其見彼也 自見而已矣 夫不自見而見彼 不自得而得彼者 是 得人之得而不自得其得者也 適人之適而不自適其適者也 夫適人之適而不自適其適 雖盜跖與伯夷 是 同爲淫僻也 余 愧乎道德 是以 上不敢爲仁義之操 而下不敢爲淫僻之行也

또한 그 본성을 인의에 종속시키는 자는 비록 증삼과 사추처럼 인의에 통달한 자라도 내가 말하는 선한 자가 아니며 자신의 본성을 五味에 종속시키는 자는 비록 유아처럼 통달한 자라도 내가 말하는 선한 자가 아니며, 그 본성을 오성에 종속시킨 자는 비록 사광과 같은 통달한자라도 내가 말하는 귀밝은 자가 아니며, 그 본성을 오색에 종속시킨 자는 비록 이주처럼 통달했다고 한들 내가 말하는 눈 밝은 자가 아니다. 내가 말하는 선한 자란 인의를 일컬는 것이 아니며 덕을 훌륭하다고 하는 것일 뿐이다. 내가 말하는 훌륭함은 인의를 일컫는 게 아니며 성명의 실정을 맡는 것일 뿐이다. 내가 말하는 귀밝음은 대상의 소리를 잘 듣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잘 듣는 것일 뿐이다. 내가 말하는 눈밝음은 대상을 잘 보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보는 것일 뿐이다. 스스로를 보지 못하고 대상을 보며 스스로 얻지 못하고 대상을 얻으면 이것은 다른 사람이 얻은 것을 얻고 자신이 얻을 것은 얻지 못하는 것이며 다른 사람의 즐거움을 자신의 즐거움으로 여겨 자신의 즐거움을 즐기지 못하는 자다. 다른 사람의 즐거움을 즐겁게 여기고 자신의 즐거움을 즐기지 못하는 자는 비록 도척과 백이라고 탐닉하고 편벽되었다는 점에서 같다. 나는 도덕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그러므로 위로는 감히 인의를 잡지도 않고 아래로는 감히 탐닉하고 치우치는 행위를 하지도 못한다.

 

-屬: 종속시키다.

-臧: 善과 같음.

-通: 대단한 수준을 말함.

-道德: 常然과 같음.

-淫僻: 탐닉하고 치우침. 타인의 기준에 따르는 것.

 

 

 

장자 외편 읽기 시작했습니다. 내편에 비해 간단하고 복잡하지 않은 문장으로 거침없이 인위와 본성에 대해 말하는 외편. 이번 변무 편은 물갈퀴와 육손이 본성이라고 했다가 본성이 아니라고 했다가 하며 헷갈리게 하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가 관건이었던 것 같습니다.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으려는 장자의 글쓰기 방식인지, 아니면 죽간이 잘못 삽입된 것인지?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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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0-12 15:58
    죽간에 1표 주고 싶은 느낌적 느낌이라니..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