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과 글쓰기

6.13 주역과 글쓰기 공지

작성자
혜원
작성일
2021-06-10 16:13
조회
143
융의 글 [동시성에 관하여]는 신기한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는 보통 사태를 결과로 이해하고, 그 다음에 원인을 찾아 인과로 설명합니다. 하지만 융에 따르면 세상에는 인과로 설명 불가할 것들이 있습니다. 가령 양자물리학에서 말하는 것들이 그렇고, 심리적 사건이 그렇죠. 융은 인간이 모든 것을 인과로 설명할 수 있다는 합리성에 대한 재고를 권합니다. 우리는 앎이라는 걸 의식적으로 조작하려고 하지만, 항상 그것을 빠져나가고 넘어가는 것들이 있습니다. 이를 융은 '동시성'이라고 합니다. 이를테면 이러한 심리적 사건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딱정벌레에 대한 꿈을 꾸었는데, 마침 누군가와 대화할 때 딱정벌레를 볼 때 인간은 이 동떨어지고 인과로 설명할 수 없는 사건에 대해 어떤 동시성을 느끼는 것입니다. 이러한 동일성은 개체 밑바닥에는 개체로 나눠지지 않는 어떤 차원을 고려할 때 좀 더 유의미하게 다가옵니다. 융은 이를 '전일성'이라고 하고, 이때의 개체를 '자아(ego)'와 구분해 '자기(self)'로 규정합니다.

동양의 의식은 서양의 합리적 인과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동시적 사건이 벌어지는 원형적 세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령 <역경>은 점서의 일종이지만, 점을 친다는 것은 인과가 아닌 정신적 상태와 괘의 동시성 가운데 있는 개체로서의 자기를 볼 수 있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겠죠. 이런 점에서 점을 친다는 것은 단순히 미래를 알고 싶다는 염원을 넘어, 인간이 우주에서의 자기 위치를 인식하는 좀 더 심오한 차원의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인간을 인간의 자기의식으로 환원하는 것은 너무나 인간에 대한 몰이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번 강의에서는 동양의 성(性)이 선악으로 말할 수 없는, 일종의 전일성일 수 있겠다는 이야기가 인상깊었습니다. 자아의식에 갇히지 않고 전일적 개체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이 이미 인간에게는 선천적으로 내재되어 있다는 것. 이런 동양사상을 바탕으로 <주역>의 괘를 읽다보면, 이것을 너무 인과적으로 읽고 있지는 않은지, 혹은 개별적으로만 보고 있지 않은지 반성하게 됩니다. 음양을 배울 때면 늘 듣지만 언제나 어려운, 양 안에 음이, 음 안에 양이 있다는 것을 계속 놓지 않고 <주역>을 읽어야 하겠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역학원리강화> 5~9장

프린트로 나눠드린 [생의 전환기], [역경 서문]

<주역> 뇌화풍, 중뢰진 읽어오시면 됩니다.


간식은 호진샘, 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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