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과 글쓰기

07.04 주역과 글쓰기 후기

작성자
류수
작성일
2021-07-04 19:53
조회
116

#0 질문 하는 삶


이번 주 주역팀의 공통 과제는 역학원리강화를 읽고 도덕에 관한 질문을 하나씩 만들어 오기! 각자 가지고 온 질문을 꺼내서 내보았다. 그러나 질문다운 질문은 없었다. 우리는 왜 질문을 만들지 못할까? 공부는 내가 당연하게 생각한 것들을 이러저러한 책을 통하든 세미나를 통해 더 이상 당연하게 여기지기 않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던 것들을 의심하는 순간이다. 삶에서 균열을 내는 그 지점이 질문으로 나온다. 한 권의 책을 읽어도 마음의 동요가 일어나 질문이 생겨야지만 책을 읽은 것이다. 만권의 책을 읽더라도 마음의 동요가 없다면 단 한권의 책도 읽지 못한 것이다. 책을 통해 다른 시선으로 현상을 바라보게 되고, 삶의 지축이 흔들리며, 그 지점에서 새로운 질문을 만들어 내서 삶의 지평을 바꾸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매번 반목하는 시선으로 책을 읽어야 한다.


#1 걸어야 생기는 길


근대의 대표적인 도덕의 표상은 선과 악이다. 선과 악이라는 이미지는 그리스도라는 기독교에서 대표적으로 만들어 졌다. 그리스도는 우리가 다르게 살 수 있다는 것을 삶으로 보여주었다. 그리스도의 가장 다른 삶의 자세는 그가 죽음을 받아들이는 태도이다. 자신의 제자가 배반하고, 자신을 팔아도 어떠한 억울함이 있더라도 원망하지 않고 죽음을 받아들인다. 그리스도의 삶, 그 자체가 다르게 살 수 있음을 보여주는 복음이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는 다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처럼 다르게 살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따르던 많은 사람들은 그리스도가 살던 33년의 과정 그 자체인, 다른 삶을 살 수 있다는 기쁨으로 받아들이지 못하였다. 결과론적으로 처참히 죽어가던 그리스도의 죽음 그 자체만으로 해석하였다. 자신이 믿고 따르던 그리스도가 33년 밖에 살지 못하였고 처참히 죽었다는 두려움이 과정의 기쁨을 넘어선 것이다. 33년 동안이나 삶으로 보여준 다르게 살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삶의 지복 보다는 그의 비참한 죽음에 더욱 초점을 맞추게 된다. 그러면서 그리스도의 죽음을 특별화 한다. 그리스도는 모두를 위해 죽었고, 모두의 죄를 둘러쓰고 죽었으며, 그는 신의 아들이라고 포장하였다.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죽인 사람들과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들을 악으로 규정하였다. 그렇게 생긴 선과 악의 개념이 근대에 내려오면서 도덕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척도, 기준으로 변모하게 되었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그리스도처럼 매 순간 다르게 사는 것과 같이, 도덕은 믿는 것을 행하는 그 자체일 것이다. 그리스도 이전에 서양의 도덕은 매 순간마다 자기를 훈련하여 자신의 도덕을 발명하는 것도 이와 일맥상통하는 이야기이다.


동양에서의 도덕은 자연의 원리이고, 자연의 원리라는 것은 변화의 원리이다. 선악의 기준을 자연에서 가져온다. 자연은 항상 때의 문제이다. 꽃이 필 때는 피고, 질 때는 져야하는 타이밍이다. 사람의 도덕이라는 것은 이러한 자연의 흐름, 자연의 리듬, 자연의 패턴을 본받는 것이다. 주역에서 천지의 도는 중천건의 자강불식과 중지곤의 인이 있다. 자강불식을 매 순간 쉬지 않고 강건하게 운동하는 것이다. 인이라는 것은 그러한 운동성이 몸에 박힐 때 까지 행하는 것이다. 그것은 내 안에서 하고 싶다는 욕망이 당연히 해야 하는 당위가 되는 단계이다. 그러나 이는 외부에서 오는 척도가 아닌 내 윤리를 스스로 구성해가고 발명해 가는 것이다. 대인이라는 것은 종착점의 어떠한 삶이 아니라 매 순간 자신을 새로이 구성해 가는 과정을 사는 사람이다. 우리는 선악의 결과를 생각하면서 과정과 결과를 생각한다. 그러나 과정과 결과가 따로 있지 않다. 걸어야지만 길이 만들어지는 것과 같다. 도는 행해야지만 들어나고 행으로 도가 들어나게 된다.


# 그래도 한 번 더


우리는 매 순간 살아가지만 또 매 순간 죽어간다. 삶 속에 죽음이 있고 죽음 속에 삶이 있다. 생 속에 멸이 내재하고 있는 것이다. 태어나는 순간 죽는 것이고, 죽는 순간 또 다른 것의 생명이 시작된다. 그러면 어차피 죽을 것을 왜 살까? 이는 우리를 끊임없는 허무주의로 나아가게 한다. 그러면 우리는 이러한 허무주의가 아닌 발명할 수 있는 윤리가 있을까? 그것은 이런 예측 불가능한 삶에 우리를 내던지는 것이다. 어떠한 사심이나 의도함 없이 우리는 내던져 한 번 더 겪어보는 것이다.


“대인은 하늘과 땅의 그 덕을 합치하고, 해와 달의 그 밝음을 합치하여, 사계절과 그 순서를 합치하고, 귀신과 그 길흉을 합치하여, 하늘보다 앞서하더라도 하늘을 어기지 않으며, 하늘보다 뒤에 하더라도 하늘의 때를 받는다”


- 중천건 문언전 발췌 -


주역에서는 한 번 더 자신을 삶에 내던지기 위한 도덕을 위와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하늘과 땅의 그 덕을 합치하는 것은 하늘의 끊임없는 운동성과 땅의 그 운동성을 순하게 따르는 인을 이야기한다. 해와 달의 그 밝음을 합치하는 것은 해와 달이 어느 한 곳만을 비추는 것이 아닌 온세상 천지를 비추듯이 사물에 대한 인식력을 기르는 것을 이야기한다. 사계절의 순서를 아는 것은 예측 불가능한 질서더라도 거시적인 관점에서 순서와 질서를 알아서 이와 같이 행하는 것이다.


# 쌓아서 기름


풍천소축 괘는 하늘 위에 바람이 부는 것과 같이 비가 올듯 말듯한 이미지이다. 하늘에서 바람이 분다는 것을 구름을 몰고 온다는 것이다. 풍천 소축괘는 작게 쌓는 것을 이야기하는데, 여기서 쌓는 것은 재물이 아닌 내면의 덕성이다. 소축괘는 1개의 음(육사)가 나머지 5개의 양을 제어하는 상이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의 음이 내면의 덕성을 쌓아서 나머지 5 양을 기르는 것이다. 그래서 대상전에서 크게 쌓는 일은 나라를 다스리는 일이지만 작게 쌓는 일은 문장과 예술을 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외적으로 커질 수 없는 상황을 내실을 다져야 한다고 할 수 있다. 군자인 지식이이 내면의 덕을 쌓아서 어떻게 백성을 내면의 덕으로 감화할 수 있을지 생각해봐야한다.


# 줄탁동시


믿음이라는 것은 “~을 믿는 것”과 같이 대상을 믿는 것으로 표상된다. 그러나 믿음은 항상 관계성을 내포하고 있다. 관계에서 믿는 다는 것은 무엇일까? 풍택중부괘의 특징은 가운데가 비어있다는 것이다. 근대인들은 내면(자의식)으로 꽉 차있다. 무엇하나 들어갈 수 없다. 자의식이 진실은 아니다. 내가 진실하다는 것은 생각이 아니라 내가 말하고 행동하는 것으로 펼쳐지는 것이다. 자기 진실성. 진실의 주체가 될 수 있을까? 예로 디오게네스가 있다. 자신이 생각한 대로 행동하는 사람이다. 풍택중부는 새가 알을 품고 부화하는 것이다. 어미가 쪼아 줘야하지만 동시에 새끼도 알의 껍데기를 부셔야 한다. 상호간의 믿음이 있어야 한다.


풍택중부는 못 위에 바람이 부는 현상이다. 바람은 비가시적인 것이고 물은 가시적인 것이다. 바람이 불어 그에 따라 물이 일렁이른 것이다. 비가시적인 힘이 가시화 되는 것이다. 물결이라는 것은 결국 물과 바람의 “만남”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무엇으로 만나고 있나? 우리에게 만남이라는 것은 친밀함이다. 친밀함이라는 것은 자신을 비우지 않고 서로간의 교집합만이 있으면 된다. 그러나 진실성이라는 것이 자신의 내면이 비워져 있어야 한다. 비워져 있어야지만 “마주침”이 있다. 마주침이 A와 B가 만나 더 이상 A가 A가 아닌 지대에 있어야 하고, B가 B가 아닌 지대에 있어야 합니다. 알이 부화하는 순간 엄마와 아이가 동시에 탄생하는 것과 같게지요.


자신의 신뢰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오직 올바름에 의해서만 할 수 있습니다. 앞선 디오게네스가 위대한 철학라고 칭송받는 것은 그의 행동의 일관성 때문일 것입니다. 바르다는 것은 결국 자신의 사심, 욕심에서 비롯하여 일을 행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누가 알까요? 스스로가 알 것입니다. 자신의 조금의 사심이 있음을 변명하기 위해 많은 변명을 하게 됩니다. 군자는 아무리 억울해도 변명하지 않는 것과 참 다르겠지요.

전체 2

  • 2021-07-05 19:10
    깨달음의 길은 혼자서 가는 외로운 길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는데 '줄탁동시'에서 박 깨지는 소리가 들리네요. ^^!
    저를 포함한 팀주역이 구덩이에 빠져서 중구난방, 안팎으로 쪼아대는 아우성이 없었으면 2년 가까이 주역 공부의 길 위에 있지 못하였겠다는 것을 수정쌤 후기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계속 파이팅입니다.~~

  • 2021-07-05 21:32
    초스피드 빠른 후기 감탄입니다~ 주지스님의 진노와 진심어린 열강을 이렇게 잘 정리해주시니..그때의 분위기와 기분이 사악~ 느껴지며...질문하는 삶이 무엇일까? 라는 화두를 다시금 붙잡게 됩니다~ 지금 제차원에서는 대략난감이지만..팀주역의 줄탁동시를 새기며~ 나아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