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시아

소생 프로젝트 역사팀 후기 (08/30)

작성자
건화
작성일
2018-09-04 18:26
조회
52
이번 팀 세미나는 곧 있을 발표 준비를 위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시간은 텍스트나 주제에 대한 토론보다는 발표 준비를 어떤 방향으로 해야 할지, 발표 때 무엇을 이야기해야 할지에 대해서 논의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이야기 나온 것들을 정리해보겠습니다.

1. 이란-이슬람혁명

저희 역사팀은 이번 발표에서 이란의 현대사에 초점을 맞추려고 합니다. 그리고 이란 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건은 바로 1979년에 일어난 이란 혁명이죠. 이란 혁명의 어떤 점에 주목해야 할지 이야기를 나눴는데, 우선 이란 혁명이 ‘이슬람’ 혁명이었다는 점을 강조하자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이란 혁명의 정식 명칭은 이란-이슬람혁명인데, 어떤 점 때문에 이 혁명이 ‘이슬람’ 혁명일 수 있었는지를 조명하자는 것이었죠. 그렇게 할 때 근대의 다른 혁명들과 이란 혁명이 어떤 점에서 다르고 또 어떤 점에서 닮아 있는지를 이야기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그것을 보여주기 위해 ① 이란의 민중들이 원한 ‘통치’는 무엇이었을까? ② ‘호메이니’라는 성직자의 지도력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라는 질문을 제기하고 거기에 대답해보는 것도 좋겠다는 얘기도 나왔습니다.

이란의 민중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거부하고 싶은지만 알고 무엇을 원하는지는 모른다며 그들을 비판한 프랑스 지식인들에 반발한 푸코가 테헤란의 시민들에게 ‘당신은 무엇을 원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시민들은 한결같이 ‘이슬람의 통치’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이때 ‘이슬람의 통치’란 무엇일까요? 이슬람의 통치를 요청하는 것과 민주주의(를 위시한 근대화된 국가 시스템)를 요청하는 것은 어떤 다른 욕망의 배치를 보여주고 있는 것일까요? 어려운 질문들이 제기되었습니다.

또 지도자로서의 호메이니는 어떤 인물인가, 라는 질문에 대해서도 논의가 되었습니다. 이란 혁명 이후 물러난 레자 샤와 호메이니를 비교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레자 샤는 한국으로 치면 박정희 같은 인물인데, 친미 정책을 펼치며 경제적-제도적으로 개혁을 감행한 지도자였습니다. 이에 반해 호메이니에게서 이란 민중들이 발견한 것은 그의 정치적 능력이나 경제정책 따위가 아니라 영성이었죠(새삼 우리는 무엇을 보고 대통령을 뽑는지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손지 누나가 정리해온 자료를 바탕으로 이란 혁명이 ‘독재 VS 민주’가 아니라 ‘탈이슬람 VS 재이슬람’의 싸움이었음을 강조하는 것도 좋겠다는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이란 혁명은 진보나 발전 개혁이 아니라 ‘복고’(이슬람으로 되돌아가기)였다는 것. 이것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요? 우선은 복고가 곧 반동이라는 전제를 의심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2. 시아파/ 수니파

규창이가 준비해온 토픽은 시아파와 수니파의 대립이었습니다. 준비해온 자료에 따르면 시아파와 수니파 갈등의 중심은 ‘지하드’입니다. 이들은 서로가 서로를 알라의 적이라고 선언하며 지하드라는 개념을 동원하고 있다고 합니다. 연구자들은 이슬람의 지하드를 세 시기로 구분하기도 하는데, ① 무함마드 시절의 지하드는 움마 공동체의 생존과 관련된 차원이었고 ② 무함마드 사후에는 수니파와 시아파가 내부적 분열이 일어나면서 무엇을 이슬람으로 볼 것인가를 되묻게 되는 시기이며, 현재까지 이러한 투쟁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③ 그리고 세 번째는... 좀 이상하지만, 최근에는 비폭력적 지하드가 행해지고 있다고 합니다. 금융 지하드, 경제 지하드라고 하는데요, 무력을 행사하지 않고 경제적 압력으로 뜻을 전달하는... 방식의 지하드라고 합니다. 지하드에 관한 또 다른 연구에 따르면 실제로 꾸란 안에서 지하드라는 말은 4번밖에 나오지 않으며, 원래는 테러의 의미로 쓰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현재 통용되는 지하드 개념은 십자군 전쟁 이후 서구에서 갖게 된 협소한 인식이라고 합니다. 어째 시아파와 수니파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지하드 얘기만 하다 끝났네요(;;).

3. 원리주의와 테러

원리주의와 테러리즘의 문제에 대해서는 정옥샘께서 《9.11의 희생양》이라는 책을 읽고 정리해주셨습니다. 저자의 관점은 원리주의에 부여된 이미지들이 사실은 조작된 공포와 불안의 산물이라는 것입니다. 아마도 저자는 9.11을 중요한 전환점으로 간주하는 것 같은데, 그에 따르면 9.11 이전 국가주의는 여러 견제 시스템들에 둘러싸여 있었으나, 9.11 이후에는 ‘국가의 안전’이라는 도그마 앞에 그러한 시스템들이 모두 무화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저자는 9.11 이전에도 이슬람은 서방 국가들의 내부적 통치를 정당화하고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희생(=타자화)되어 왔음을 지적합니다. 서양 국가주의의, 한 마리의 양을 죽임으로써 나머지 양떼들에 대한 통치를 보다 견고히 하는 내부 논리 속에서, 십자군 전쟁 이후로 이슬람은 희생당한 양의 역할을 해왔다는 것이죠. 그런데 9.11 이후에는 ‘외부/내부’의 경계가 무화되고 이제 더 이상 배제(희생)당하는 양과 포획(통치)당하는 양 사이의 구분이 무의미해졌다고 합니다. 흥미로운 내용이었는데, 솔직히 명확하게 이해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다음 팀 모임 때 좀 더 이해해볼 수 있기를 기대하겠습니다.

보시는 것처럼 저희는 엄청나게 해매고 있습니다... 남은 시간 열심히 준비해서 정리된 발표를 들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전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