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시아

0913 팀발표 후기

작성자
건화
작성일
2018-09-15 19:57
조회
106
팀 발표에서 중요한 것은 두 가지인 것 같습니다. 하나는 전체 발표를 하나의 흐름으로 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와중에 공부한 내용들로부터 이끌어낸 우리의 질문을 놓치지 않는 것. 철학팀은 일관된 흐름으로 정리하는 일을 해냈고, 저희 역사팀은 그마저도 못했습니다. 처음에 저희는 호메이니와 이슬람 혁명을 파보려고 했는데 어느새 이란 역사가 걸려 들어오고, 페르시아 전쟁사가 따라붙더니, 현대사까지 가세해서 어느새 대략 2,500년에 달하는 이란사를 통째로 다루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려운 과제 앞에서 저희의 궁금증이나 질문들을 물고 늘어지기보다는 발표의 구색을 맞추는 데 급급했죠. 그러다보니 오히려 구색마저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발표가 되어버렸습니다. 발표하는 이와 발표를 듣는 이 모두를 힘 빠지게 만드는 발표가 되어버렸네요. 역사팀은 본인 발표하는 부분만 알고 다른 팀원들이 발표하는 내용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는 것 같다는 채운샘의 지적이 뼈아팠습니다. 다음 발표의 반면교사로 삼기 위해서 저희가 들었던 코멘트들을 정리해보겠습니다. ‘발표, 이렇게만 안 하면 된다’라는 느낌으로^^;

저를 가장 뜨끔하게 했던 것은, ‘그동안 공부한 내용은 어디갔냐!’라는 코멘트였습니다. 분명 전체 세미나를 하며 여러 텍스트들을 읽고 또 채운샘 강의를 들으면서 이슬람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었고, 또 이해하는 만큼 모르겠고 궁금한 것들이 생겼는데 저희 팀의 발표는 마치 그런 과정이 전혀 없었던 것처럼, 매우 수동적으로 주제에 접근했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어차피 나는 이 내용에 대해 잘 모르고, 내 질문을 던지기엔 정리해야 할 정보들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마치 대학에서 조별과제 하듯이(안 해봤지만^^) 상식적인 내용들과 텍스트에 나와 있는 정보들을 나열하기에 급급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 어떤 관점도 안 생기고 정보들도 하나로 꿰어지지 않았던 것이겠죠. 이 코멘트를 듣고서야 ‘아 우리가 짧게나마 공부했던 것들을 부정하는 방식으로 발표를 준비하고 있었구나’라고 느꼈습니다. 막막하더라도 토론하고 생각하고 질문하는 과정이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채운샘이 말씀하신 것처럼, 발표에 대해 학점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고, 성과로 드러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물론 상금은 걸려 있었지만...) 모여서 토론하고 조금이라도 머리를 굴리고 틀릴지라도 질문을 구성해보는 과정을 제외하면 남는 것이 하나도 없는데, 말 그대로 남는 것이 없는 발표를 해버렸습니다.

각각의 발표에 대한 코멘트로 넘어가보겠습니다. 우선 큰지누나의 이란의 도시들과 함께 살펴보는 이란의 역사. 이에 대해서는 소개한 지역들이 어떤 기준으로 선정되었는지 알 수 없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각 왕조를 중심으로 도시를 설정하거나 중요한 사건들을 중심으로 설정하거나 기타 등등, 어떤 기준과 중심이 있어야 하는데 무작위적으로 선정된 것 같다는 지적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각각의 도시가 어떤 점에서 역사적 의미를 갖는지 충분히 설명해주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시간을 갖고 조원들 간의 토론을 통해 기준을 정하고 도시나 유적 등등을 선정했어야 했는데, 발표자에게 전적으로 위임한 것도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팀워크의 부재!

다음으로 저는 아케메네스 왕조와 페르시아 전쟁에 대한 발표를 했습니다. 저는 발표를 거의 한 권의 책에 의존해서 준비를 하다보니 그 저자의 주관적인 견해에 휘둘렸던 것 같습니다. 《페르시아 전쟁》의 저자 톰 홀랜드는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전쟁을 동방VS서방이라는 대립구도의 기원으로 파악하는데, 이러한 관점에 별 근거가 없다는 지적이었습니다. 동양/서양이라는 구도는 그러한 이분법에 익숙한 근대인들이 페르시아 전쟁에 투사한 것입니다. 당시 타자를 구분하는 경계는 ‘동양/서양’이 아니라 ‘중심/주변’의 이미지로 형성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스인들은 스스로를 중심으로 파악하고 타자인 페르시아를 주변으로 분류했다는 것이죠. 그런 점에서 페르시아 전쟁사를 기술한 그리스인 헤로도토스가 어떻게 타자로서의 페르시아를 바라보고 있는지 질문해보는 것도 재밌었을 것이라는 코멘트도 있었습니다. 단순히 있었던 일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인이 최초로 타자를 마주했을 때, 그들은 어떤 태도를 취했는가, 라는 질문을 던져볼 수 있었으리라는 것이죠. 이러한 관점으로 이란 혁명과 이란의 현대사까지를 연결해서 하나의 질문을 던질 수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서방세계는 이슬람(이란 혹은 중동)을 어떤 방식으로 타자화해왔는가, 라는 질문. 그리고 이러한 질문에는 서양의 관점을 경유하지 않고는 이슬람을 마주하기가 어려운 우리 자신의 관점에 대한 질문 또한 자연스레 따라오게 될 것입니다.

추가로 동양과 서양이라는 구분 자체에 대해서도 질문해볼 필요가 있다는 코멘트도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동양’, ‘서양’이란 무엇일까요? 서양은 유럽인가요? 미국인가요? 동양은 극동아시아를 말하나요? 아니면 아시아 대륙 전체를 일컫는 말인가요? 동양과 서양을 무엇으로 보고 있는가 하는 문제에도 어떤 의식적이고 무의식적인 전제들이 잔뜩 도사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가령 이즈쓰 도시히코는 ‘동양 철학’이라는 범주 안에 이슬람 철학까지를 포함시키고 있죠. 이러한 범주화는 그의 텍스트를 읽는 우리로 하여금 ‘동양’이라는 개념을 새삼 돌이켜보게 했습니다. 단순히 페르시아 전쟁을 동양/서양의 근대적 구분에 가둘 것이 아니라 제가 어떤 방식으로 서양을 또 동양을 바라보고 있는지 질문해보았더라면 재밌었을 것 같습니다.

이란-이슬람 혁명과 호메이니에 관한 규창이의 발표에 대해서는 사건의 나열에 급급하다는 코멘트가 있었습니다. 가령 전통의 고수와 외래 문화의 수용이라는 낡은 대립의 구도를 차용하고 있는데, 상반된 것처럼 보이는 두 태도는 정말 대립일까, 라는 질문이 있었죠. 사실 서구식 근대화가 진행된 모든 곳에서는 민족 전통에 대한 강조와 재조명이 동시에 이루어졌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구도에 의존하기보다는 ‘호메이니가 지키고자 했던 이슬람과 레자 샤가 벗어나고자 했던 이슬람은 같은 이슬람인가?’와 같은 질문을 던져보는 것이 유익했으리라는 지적이 있었죠. 호메이니는 ‘이슬람’이라는 말로 무엇을 지키려고 한 것일까? 혹은 ‘서구문화’를 거부할 때 그는 무엇과 싸우고 있었던 것인가? 이런 질문들. 텍스트가 신선한 질문들을 제공해주지 않더라도, 정보를 나열할 뿐인 책을 읽더라도 지금 우리에게 와 닿는 질문을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하고, 그것이 공부하는 우리의 역량이라는 코멘트가 기억에 남습니다.

마지막으로 정옥샘은 이슬람 혁명과 9·11 이후 이란에 관해서 발표를 하셨습니다. 이에 대해서도 비슷한 코멘트들이 있었습니다. 이슬람 혁명 이후 이란의 역사는 매우 복잡하고 딱히 정리되어 있는 자료도 없습니다. 중동 내에서의 알력도 있고, 미국과의 관계도 있고, 이란 내부에서의 변화도 있을 것입니다. 거기에 9·11이라는 상징적인 사건이 야기한 인식의 변화 같은 것들도 작용하고 있죠. 중요한 사건들만 정리하기도 고생스러우셨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그렇지만, 복잡하기 때문에 더더욱 우리의 관점과 질문을 붙들고 갔어야 했다는 코멘트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지금 이슬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돌아보는 것으로 그 복잡한 역사와 접속할 수 있는 입구를 만들었다면 좋았을 것이라는 지적이었죠.

저는 발표 마치고 이것을 일종의 에세이처럼 생각하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낯선 주제를 다루더라도 결국 저의 문제를 가지고 제가 생각한 것들로 발표를 구성하지 않으면 저도 듣는 분들도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후기를 가장한 반성문은 이쯤에서 마무리하겠습니다.
전체 1

  • 2018-09-17 10:17
    공부한 걸 어떻게 전달해줄까... 참 당연한 지점인데 이걸 놓쳤네요. 저번에 이어서 듣느라 고생들 하셨습니다. 하하;;
    엉뚱하더라도 나름대로 우리가 소화한 이란의 역사를 보여드렸으면 정말 좋았겠네요. (항상) 이번 발표는 다음 발표의 밑거름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