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탁마 NY

절탁 NY 2학기 8주차(6.26) 공지

작성자
민호
작성일
2021-06-21 21:53
조회
184
 

벌써 2학기도 단 두 번의 시간만을 남겨두고 있네요! 매주 정신없이 많은 페이지를 읽고 과제를 두세 개씩 써왔지만, 그래도 벌써 <안티크리스트>를 다 읽고, <악령>도 마지막 범위를 남겨두고 있습니다. 괜히 스스로 대견하달까... 어떻게 해왔는지 그 퀄리티는 보장 못하더라도요ㅎㅎ. 그럼 7주차 수업 풍경을 잠깐 스케치하고 8주차 공지를 드릴게요.

1교시에는 <안티크리스트> 마지막 토론이 있었어요. 저희조에서는 두 가지 이야기가 나왔어요. 먼저 현주샘의 과제에서, 단지 확신에서 회의로 간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무엇도 믿지 않고 단지 의심하기만 하는 건가? 하는 질문이 나왔습니다. 물론 현주샘은 ‘확신은 감옥’이라는 말과 위대한 정신은 충분히 넓게 굽어 본다는 말을 가지고 과제를 푸셨습니다. 그런데 저희는 니체의 그 다음 말을 가지고 머리를 맞댔습니다. “위대한 열정은 확신들을 사용하고 남김없이 사용해버리기도 하지만, 확신에 굴복하지는 않는다.”(297쪽) 확신들을 사용한다라... 심지어 확신은 감옥이란 말이 무색하게 “많은 것이 단지 확신을 수단으로 해서만 달성된다”고도 말합니다. 감옥이던 것이 많은 것을 달성하게 하는 수단이 된다니, 어쩐지 니체에게서 양면적 성격으로 포착되곤 하는 개념인 병, 고통, 습관, 근대성 등이 떠오릅니다. 확신은 어떻게 우리에게 일종의 재료 혹은 도구로 사용될 수 있을까요?

비근한 예로 저희는 언어를 떠올렸습니다. 언어는 사물을 지시하는 일종의 기호들로 확신과 약속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언어를 방편이라고 심플하게 표현하는데요. 그것은 일종의 우리 사고 깊숙이에서 현상을 분별해 고정시키고 표상화시키는 역할을 하지만 심오한 가르침을 전달하는 수단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말과 글로 배우지만 그 의미 작용에 묶이기도 쉽습니다. 다음 스텝에서는 그 언어가 임시적 가설물임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지요. 니체의 텍스트는 언어를 고정시켜 생각하는 우리에게 유연성을 요구합니다. 그래서 일대일 지시 관계를 고장내는 온갖 역설과 패러디와 비유와 궤변과 이중성이 난무하지요. 쉼표, 대쉬 등의 기호들과 아포리즘이라는 형식도 그 일환입니다.

확신의 예로 언어 외에도 여러 ‘-주의’ 등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선언하든 아니든 일련의 신념 다발들을 가지고 삽니다. 성에 대해서, 돈에 대해서, 에너지에 대해서, 교육에 대해서, 평등에 대해서 나름의 시대적이고 개인적인 판단 다발들을 가지고 있지요. 역사적으로도 수많은 ‘주의’들이 있어 왔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확신들을 수단화한다는 것은, 아마도 그것들이 어떻게 생겨나서 어떤 변화를 겪다가 사라졌는지 그 과정과 효과를 배우는 일일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자신이 어떤 주의와 확신들의 흐름 속에 있는지 이해하는 일일 것입니다. 니체에 따르면 모든 확신은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확신이 아니었던 시기 이후에, 확신인지 아닌지가 불분명했던 시기를 거친 다음에 그것은 확신이 된다.”(299쪽) 태아적 형태를 본다는 것. 그런 확신들과 더불어 자신의 품행이 어떻게 인도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을 때, 어떻게 다르게 인도될 수 있는지의 방향도 모색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서 두 번째 논의, 은옥샘이 질문하신 ‘자신을 목적으로 하는 삶이란 무엇일까’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질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니체 말대로 믿음 혹은 확신을 갖고 있는 것은 탈아이자 자기 소외일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그럴 때는 그것이 자기 이미지이든 남의 모습이든 믿음으로 지어진 어떤 표상을 위해 살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 표상은 언제나 자기 바깥의 것이지요. 주의를 기울여야 할 부분은 니체가 말하는 ‘자신’인 듯합니다. 니체가 ‘자기 자신이 되어라’라고 말하거나 ‘자신에 대한 존경’이라고 이야기할 때 자신은 무엇일까요? 자신을 목적으로 한다고 할 때의 자신은 무엇일까요? 적어도 지금 내가 아는 내 모습은 아닐 듯합니다. 보통 저희는 나라고 말할 때 잘해봐야 나의 몸, 나의 취향, 나의 감정, s의 재산과 스펙, 나의 기억 등 나에 대한 표상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그것은 몇몇 평가와 일부 경험으로 엮은 엉성하고 편협한 껍질일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을 목적으로 한다고 할 때의 그 자신이 무엇일 수 있을지, 저희는 그것의 외연을 훨씬 더 넓게 생각해야 한다는데 합의를 보았습니다. 이미 내가 복잡다단한 힘들이고 힘들의 관계 안에 있는 것인데, 그것이 조잡한 믿음 조각들 안에 갇히는 소유되는 무언가일 리가 없는 것이죠. 더 고민해봐야 할 지점인 것 같습니다.

2교시 <악령>에서는 너무 머리가 아프다거나 인간의 밑바닥을 봤다는 말들이 나왔었는데요. 여기서도 두 가지 이야기가 기억납니다. 하나는 세상에 치사하지 않은 대의 같은 것은 없다는 말이었습니다. 모든 이념투쟁 아래에는 가장 치사한 감정들이 숨어 있는 것 같습니다. 가령, 예상치 못한 시점에 화재가 나고 너무 많은 피해가 생겼을 때, 당황한 5인조 앞에서 뾰뜨르 스쩨빠노비치는 샤또프를 밀고자로 지목합니다. 정황상 샤또프가 밀고를 고민하는 것도 맞았지만 뾰뜨르의 그처럼 명확한 선동에는 해묵은 원한이 남아 있습니다. “또한 그가 샤또프를 개인적으로 증오했다는 것도 잘 알려져 있었다. 언젠가 그들 사이에 언쟁이 있었는데, 뾰뜨르 스쩨빠노비치는 모욕당한 것을 결코 잊는 법이 없었다. 나는 이것이 가장 중요한 이유였을 것이라고 확신한다.”(160쪽) 이것을 보면서 사실 어떤 위대해 보이는 사상이나 논리에도 우리의 가장 내밀한 신체적 정서적 운동들이 반영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니체가 사도바울이나 루터에게서 본 것, 그리고 수많은 철학자들에게서 발견하는 그들의 기질들도 이런 것들이 아니었을까요? 도스토예프스키가 드러내는 인간의 치졸함과 민낯은 언제나 흥미로운 것 같습니다. 역시 위대한 심리학자.

두 번째로는 샤또프의 아내 마리의 출산 장면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희는 한 인간이 태어난다는 일의 강력함에 공감했습니다. 아이의 탄생은, 비록 샤또프의 아들도 아니긴 했지만, 모두를 의심하고 모두에게 의심받는 인간이자 당장 짐을 싸고 떠나버리려던 샤또프를 백팔십도 돌변시켰습니다. “샤또프의 경악, 부탁할 때의 그 절망에 찬 어조, 도움을 청하는 애원의 목소리”(216쪽)은 그를 불신하고 인간 쓰레기로 생각하던 산파의 마음을 감동시킵니다. 아내 앞에서 안절부절 못하는 그 모습이 왠지 바보 같지만 뭔가 찡하게 합니다. 그뿐 아니라 독특한 자살 이론으로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끼릴로프같은 인간 역시 샤또프의 사정을 듣고서 돈이든 음식이든 자기 집 노파든 다 내어주려고 합니다. 이 장면을 보면서 출산이라는 사건이 마치 당시 온갖 공상과 이론으로 들뜬 인간을 지상으로 끌어내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장 아이와 산모를 살려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있는 것 없는 것을 모아야 하지요. 신념과 인간은 다른 것입니다. 뭔가 <죄와 벌>의 ‘변증법 대신에 삶이 도래했다’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렘쁘께의 말로부터 화재와 허무주의(네차예프주의)의 무엇도 세우지 않는 파괴성이 닮았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또 뾰뜨르의 동력은 뭘까 고민하면서 ‘지배’를 의미하는 베르호벤스끼라는 이름과 관련시켜서 누군가를 조종하고 군림하는 사제적 힘인가 하는 이야기도 해보았습니다.

3교시에는 에세이 토론을 했습니다. 6시가 다 되도록 길게 해서 여덟 명 조원 모두 코멘트가 돌아갔는데요. 조원들의 힘을 받아 남은 주간 동안 힘닿는 데까지 써보면 좋겠습니다! 파이팅!

 

[과제 & 공지]

 
  1. <악령> 끝까지 읽고 니체의 도덕, 힘의지와 결부시켜서 생각해 보고 싶은 구절 5개 골라오기

  2. [내가 만난 니체] 에세이 피드백 반영해서 쓰기

  3. 다음 주 간식 : 주영샘, 민호

*<안티크리스트>강의가 있으니 책 가져오기.

 

 

 

 
전체 1

  • 2021-06-22 13:08
    작년에 처음 읽을 때의 [안티크리스트]와 올해의 [안티크리스트]는 다르게 읽히더라구요. 혼자라면 정말 힘들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광기 그자체로 저에게는 공포소설인 [악령]도 함께 읽으니 이제 마지막 고지네요. 조원들 모두 서로의 에세이를 읽고 함께 머리 맞대고 늦은 시간까지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서로를 조금씩 알아가고 함께 서로의 문제를 고민해보고, 더불어 각자 자신을 돌아보는 남은 3주가 되길! 또 건강하게 잘 보내길 응원합니다. 모두 힘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