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탁마 NY

절탁 NY 2학기 에세이 후기 및 3학기 1주차(7.31) 공지

작성자
민호
작성일
2021-07-16 12:05
조회
130
 

에세이로 달궈졌던 몇 주가 지나고 나니 무더위가 시작되었네요! 지난 토요일 저희는 절탁NY 2학기 에세이 발표를 했습니다. 9시에 시작해서 9시 넘어 끝났으니 시계를 한 바퀴 돌렸다고도 할 수 있네요. 더 놀라운 사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날의 발표자 열두 분 중 다섯 분만이 코멘트를 받았으니까요...!! 너무 시간이 늦어버린 나머지 나머지 일곱 분은 3학기 첫 시간(7.31)에 코멘트를 듣기로 했습니다. 물론 그날은 불가피한 사정으로 에세이 발표에 참여하지 못한 샘들의 발표시간이기도 하구요. 무척 바쁘겠는데요. 그래서 첫 주는 따로 과제가 없습니다! 먼저 코멘트 받으신 분들(지안샘, 루이샘, 승현샘, 경희샘, 현주샘, 그리고 순이샘)은 방학 동안 수정해보시고 저희보다 앞서가 주세요ㅎㅎ. 여기서는 에세이 발표의 그 뜨거움을 살짝 스케치하고 다음 시간 공지를 해볼게요.

이번 에세이 발표는 형식상 새로운 시도였습니다. 워낙 대인원이기도 하고 열 페이지의 분량이 어마어마하기도 해서, 발표를 크게 세 파트로 나눠보았습니다. 신속하게 읽고, 나누어서 코멘트 하고, 코멘트 듣기라는 세 파트였는데요. 나름 시간 계획을 세웠었는데 역시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더군요. 열 페이지의 무게를 무시했던 탓이에요.

두세 시쯤이면 읽을 수 있을 줄 알았지만, 다 읽고 보니 여섯 시가 되어있었답니다^^. 한 분 읽는데 사십 분 이상 걸린다는 것을 생각했어야 했어요! 에어컨을 틀어도 푹푹 찌는 날씨, 마지막까지 에세이에 힘을 쏟느라 찌뿌둥해진 심신, 길고 긴 시간 등이 겹치니 조금 쳐졌던 것도 맞구요. 사실 저는 아침이 올 때까지 쓰다가 왔는데요(자업자득이죠), 그래서인지 혼미해지는 정신을 붙들어보려고 일어서도 보고 돌아다녀도 보고 혈자리도 눌러보곤 하며 읽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샘들도 자리를 바꾸고 서기도 하면서 그 긴 시간을 함께 읽고 계시더군요. 오후부터는 반 이상은 책상을 벗어나 계신 것도 같았습니다. 순간 뭔지 모를 의리 같은 것이 느껴졌다고 해야 할까요...? 멀리서 오셔서 이렇게 아침부터 해질 무렵까지 서로의 글을 밑줄을 그어가며 읽고 있는 풍경이 뭔가 감동이었습니다. 혹시 ‘자기 자신을 되는 대로 방치하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 있을 의무’가 이런 건가 하는 생각도 잠깐 해보았구요.

저녁을 먹고 세 조로 나누어 한 시간 동안 코멘트를 했습니다. 조는 당일 아침 제비로 뽑았어요. 저희 조는 먼저 자신이 이 글로 어떤 것을 전달하려 했고 어떤 문제를 생각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스스로 보기에 어떤 부분이 미흡한지 이야기해보고, 다음으로 조원들이 코멘트를 해주는 방식으로 진행했습니다. (저는 결론을 시작으로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앞에 길게 늘어놓은 허영심이며 도덕주의며 원한 같은 이야기들은 결국 ‘자신에 대한 믿음 없음’으로 진단이 되었으니, 여기서부터 자신을 믿는다는 게 뭔지, 믿음이 생기면 문제가 해결이 되는지, 결과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하고 어떻게 연결되고 싶은지 찾아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채운샘의 코멘트는 일곱 시가 다 되어서야 시작되었습니다. 고통을 주제로 잡은 첫 번째 글에서는, 삶에 고통이라는 상태가 있다는 전제를 되물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 기억이 납니다. 이미 나쁜 것이자 싫은 것이라고 여겨지는 고통을 어떻게 잘 극복 것인가의 문제 이전에, 나는 무엇을 고통으로 해석하는지, 죽음, 과로, 병은 정말 고통이 맞는지, 그 사실 앞의 우리의 어떤 표상과 기대가 고통을 낳는 것은 아닌지가 생각해볼 지점이었습니다.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훈계의 문제를 주제로 잡으신 두 번째 글에 대해서는 키워드와 전개를 명료하게 하면 좋을 것 같다는 코멘트가 있었습니다. 먼저 아이들을 혼내는 데에서의 나의 신념은 무엇이고, 그 신념에 부여된 옳음은 누구의 옳음이고 어디서 온 것인지 질문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강요가 왜 아이들에게 폭력일 수 있으며 나아가서는 나 자신에게도 폭력일 수 있음이 정리되고, 그 다음에 아이들에게 배운다는 것이 무엇인지가 질문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착취’라는 상호작용도 거기서 나오면 좋겠구요! 세 번째 글은, 자유의지가 허구이고 능동적인 것이 아님을 밝혔으니 능동적이란 걸 뭐라고 다시 생각하게 되었는지 그 뒷이야기가 더 나와서 앞에 제기된 독립의 이미지가 바뀌는 지점이 드러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병이 주제였던 네번 째 글은 병과 더불어 지내는 동안 취하게 되었던 ‘질주’의 정체는 무엇이었는지가 풀려야 한다는 코멘트가 있었습니다. 거기에서 언뜻 보이는 묘한 복수심 같은 감정의 찌꺼기를 살펴보고, 무엇이 병과 긍정적으로 관계를 맺는 것인가 하는 질문을 밀고 가면 좋을 것 같습니다. 확신과 동일화의 의지를 주제로 삼으신 다섯 번째 글은 너무 서둘러 자기 상태를 재단하고 정답으로 돌진하기보다는, 답에 못 이르더라도 더 미세하고 집요하게 동일화의 의지라는 것이 왜 문제이고 자신과 타인들에게 해로운 것인지 한 측면에서 다른 측면을 돌아가며 점검해보시면 좋겠다는 코멘트를 받으셨습니다.

네 이렇게 에세이 발표의 1부가 마무리되었는데요ㅎㅎ. 예상치 못하게 상황이 달라져서 방학이 길어졌습니다. 마침 무더위도 피크에 이른듯하니 그 기간 동안 집에서 원기도 보충하시고 즐기시고 3학기부터 또 즐겁게 공부해보아요~! 참, 1부의 후기는 순이샘께서 맡아주셨으니, 올라오면 읽고 댓글 남겨주세요~.

 

[공지]

-2학기에 사정상 발표를 못 하신 분들의 에세이 발표가 있습니다. 코멘트를 받으신 분들은 수정해오시면 됩니다.

-3학기 “왜소한 너무나 왜소한 근대인” 인트로 강의가 있어요. 여유가 있으시면 루쉰의 <외침>의 광인일기, 쿵이지, 약(그린비 루쉰전집 기준 62쪽까지)을 읽어오셔도 좋습니다. 물론 <인간적인 1권>의 1장(~60)정도 읽어오시면 너무 좋구요!

-과제는 따로 없습니다!

 

 

 

 

 

 

 
전체 1

  • 2021-07-17 02:40
    특히 줌으로 접속한 샘들 정말 고생 많으셨고, 지방에서 오셔서 막차 시간까지 함께 한 샘들, 끝까지 자리를 지킨 샘들 모두 고생 많으셨습니다. 작년 최종 에세이를 포기하고 도망친 저로서는 이렇게 끝까지 함께 한다는 것의 의미가 남다를 수밖에 없는 에세이 발표였습니다. 혼자 하는 공부가 아니라 함께 하는 공부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서로의 글을 통해 서로의 문제를 같이 고민하고 자신의 문제도 되돌아본 힘겹지만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저희 엄마는 이 에세이 발표가 뭔지 잘 모르셔서 제가 잘 끝났다고 하니까 ‘축하한다, 장하다!’고 말씀하셔서 제가 막 웃었거든요. 그런데 그런 것도 같아요. 니체팀 모두에게 ‘축하해요, 장해요!’라고 말하고 싶어지네요 ㅎㅎ 이제부터 시작일지 모르지만, 우리 함께 잘 넘어가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