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탁마 S

2학기 4주차 후기(<군주론>마키아벨리)

작성자
윤순
작성일
2021-05-29 13:30
조회
113
흔히 ‘마키아벨리즘’이라 칭하는 군주의 전략전술론 차원이 아닌 우리가 어떻게 다양한 차원에서 마키아벨리의 서적을 읽어낼 수 있는가에 관해 채운샘의 강의가 있었습니다.

  첫째, 우리가 어떻게 역사를 토대(공부해서)로 글을 쓸 수 있을까를 고민할 때, 『군주론』은 훌륭한 표본이 될 수 있습니다. 『군주론』은 마키아벨리 본인이 살았던 이탈리아 상황에 초점을 두고, 이를 토대로 역사에서의 사례를 적용하면서 기술됩니다. 이 같은 기술에서 역사는 현실적 의미로 떠오릅니다. 역사는 우리로 하여금 지금 자신이 살고 있는 어떤 지점을 생각하도록 작용합니다. 역사를 이렇게 탐구할 때, 현실과 분리된 역사는 없게 됩니다.

  둘째, 『군주론』의 군주국 유형 분석, 군주국가의 역량, 군주에 대한 조언 등 사이에서 즉 행간에서 우리는 마키아벨리가 힘을 관계론적으로 사유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개체의 역량은 선험적으로 주어져 있는 게 아니라, 관계 속에서 커지기도 하고, 작아지기도 합니다. 역량이 선험적인 게 아니라면, 그것이 어떻게 커지거나 작아질까요? 역량은 양적으로 측정될 수 있는 게 아니라, 어떤 관계가 형성되어있는가에 따라 달라집니다. 누구와 함께 하는가, 어떻게 배치되는가 등 관계에서만 역량의 증감이 일어납니다. 관계론적으로 역량(힘)을 사유한다는 것은 개체적 차원에서도 집단적 차원에서도 중요합니다. 공동체에 훌륭한 원칙이 있는 것만으로 그 공동체가 안정되게 유지되거나 발전할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알 것입니다. 누가 리더가 되느냐에 따라 집단의 나머지 관계가 달라지고, 리더의 역량도 달라집니다. 따라서 이 역동적으로 달라지는 역량의 증감을 포착하고 활용하지 못하면 군주는 국가를 안정되게 유지하지 못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마키아벨리에게 군주의 역량, 덕(virut)은 유연성 자체입니다.

군주의 역량은 국가역량의 부분입니다. 자신의 역량의 증대를 위해 군주에게는 군주, 귀족, 인민의 관계에서 힘들을 읽어내어 귀족과 인민의 세력을 이용하는(함께 하는) 일이 중요해집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가 자신의 힘을 과신하지 않고 다른 것들과 의존적 관계에서 역량을 발휘하도록 역사적 사례를 들어 지속적으로 군주에게 조언하고 있습니다. 푸코 역시 ‘권력은 소유하는 게 아니라, 권력 관계 속에서 작동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모든 힘은 상호적으로 발생하기에 힘의 양을 일방적으로 측정할 수 없습니다. 권력(힘)은 관계 속에서만 생성됩니다. 따라서 어떻게 관계를 구성하느냐는 어떻게 역량을 증대할 것인가의 전제가 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우리의 역량이 커질까요? 어떻게 관계 자체를 실험해야 할까요? 여기에서 채운샘은 장자의 ‘조삼모사’의 예를 들어 주셨습니다. 모두 7개의 열매를 원숭이에게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를 주는 것과, 아침에 네 개, 저녁에 세 개를 주는 것이 같은 것일까요? 합은 같지만 어느 시점에 힘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같은 열매 7개(힘)라도 그 효과는 달라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원숭이가 화를 낸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같은 양이라도 배치에 따라 관계에서의 역량이 달라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키아벨리 역시 이러한 상황, 조건, 기호 등이 군주의 역량과 분리되어 있지 않다고 합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를 위해 귀족과 인민의 힘 관계 즉 세력 관계를 역사적 사례를 통해 분석합니다. 이러한 역동성 속에서 군주가 어떻게 토대를 구축할 것인가? 마키아벨리의 역량의 관계론적 접근은 군주국뿐 아니라 근대 국가에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즉 통치의 문제에서 군주제(군주국가)만이 아니라, 민주제(민주국가)에서도 적용 가능합니다. 스피노자도 마키아벨리의 관계론적 역량을 『정치론』에서 중요한 지점으로 탐구합니다.

  셋째, 마키아벨리는 정치에서 당위나 의도를 믿지 않았고, 현실 속에서 작동하는 힘을 믿었다는 것을 우리는 다음과 같은 군주론의 문장에서 알 수 있습니다.

  윤리적 공상과 엄연한 현실 : “인간이 어떻게 살고 있는가”는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와는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행해지는 것을 행하지 않고, 마땅히 행해야 할 것을 행해야 한다고 고집하는 군주는 권력을 유지하기보다는 잃기가 십상입니다. (『군주론』 109쪽)

  인간 정념의 메커니즘에서 이성은 힘을 쓸 수 없다는 입장에서 마키아벨리와 스피노자는 함께 하고 있습니다. 마키아벨리는 윤리적으로 완전한 군주라 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국가 통치와 유지가 불가능함을 경고합니다. 군주가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졌더라도 그것보다는 군주의 힘이 실제로 발휘되었는지가 중요합니다. 그는 좋은 당위를 가진 자가 현실 속에서는 무능하다는 것을 밝힙니다.

  넷째, 탈국가적 흐름. 그렇다면 지금의 ‘국가’도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적용될 수 있을까요? 『군주론』은 자신의 나라를 유지하고 통치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마키아벨리가 주목하는 것은 내세를 잘 다스리고, 외세를 잘 막아내는 것입니다. 군주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 전략전술, 관계론적 역량을 발휘하면 됩니다. 하지만 현재 국가들의 상황은 국경을 어떻게 볼 것인가의 문제가 현재 팬데믹 상황, 기후 문제, 난민 문제 등에서 대두되고 있습니다. 『군주론』과 근대 국가에서는 다루지 않고 있는 한 국가가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지금 벌어지고 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이 상황의 종결은 한 국가만의 과제가 아닙니다. 국경을 수시로 드나드는 오늘날의 정치, 경제적 환경에서 한 국가가 전염병을 종결했다고 전염병이 통제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세계 전체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되는 문제들이 대두되고 있는 상황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 와중에 반대 급부로 난민, 브렉시트, 백신 문제등 국가 이기주의가 나타나기도 합니다.

국가는 중심화 하는 작용을 합니다. 국가는 다양한 조직들을 공명하도록 만드는 공명통입니다. 따라서 국가가 지배하지는 않더라도 없어서는 우리가 삶을 상상할 수 없다는 면에서 국가는 절대적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국가는 무엇을 중심으로 중심화하고 공명하도록 만드는가를 아는 것은 중요합니다. 또한 탈중심화하는 힘들이 강하면 강할수록 힘 관계 속에서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 역시 중요합니다. 현대의 국가들은 지도자에 의해 국가가 좌우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중심화하는 것이 국가의 작용이지만, 국가의 변화를 추동하기 위해 국가 안에서도 탈중심화하는 힘이 활발히 작동해야 합니다. 팬데믹, 기후, 난민 등의 문제들은 국가 차원에서는 해결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국가 차원에서가 아닌 세계 전체 차원에서의 접근이 중요하고, 여러 국가들이 시도하고 있기도 합니다. UN, EU 등 국가들은 동맹과 협약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시도에서도 강대국의 입김이 크고, 그들의 이익이 대변되는 경향을 막을 수 없습니다.

채운샘은 위의 시도들과 다른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는 티벳 정부의 탈국가주의의 예를 들어 주셨습니다. 달라이라마는 티벳이 국가이기를 주장하지 않습니다. 더 이상 티벳 독립을 주장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지지하는 게릴라들에게 무기를 내려놓도록 했습니다. 더 이상 티벳에는 국가를 지키고 유지하는 군대가 없습니다. 그리고 달라이라마가 하신 일은 1960년대부터 인도 남부에 티벳 사원을 짓고, 티벳 불교와 영어를 아이들에게 가르쳤습니다. 여기에서 배출된 린포체들이 세계 각국에서 티벳 불교를 전파하고 있습니다. 불교는 티벳의 문화이고, 세계 각국에 퍼져있는 린포체들에 의해 티벳 문화는 확장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은 무기를 가지고 국경을 확장하는 방식이 아닌 즉 지배하고 식민화하는 방식이 아닌 불교를 가지고 국경을 넘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자신의 영토가 있는 것도 아닌데, 다른 국가들로부터 동정 받지 않고 존중받는 방식으로 살아갑니다. 티벳의 방식이야 말로 무력이나 동정 없이 국경을 지우는 흐름에 들어맞는 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전체 1

  • 2021-05-29 15:34
    새로운 <군주론> 혹은 <정치론>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었는데요. 지금까지 영토 및 공동체를 수호하는 집단이 군대라면, 앞으로의 시대에서는 대중지성이 그 역할을 대신하게 될 것 같습니다. 이미 영토 개념도 점점 희박해지고 있는 마당에 자국의 영토와 공동체를 등치할 수 없을 테고, 정보 테크놀로지가 우리 일상을 완전히 새롭게 재조직하는 지금 시대에서 군대는 더 이상 수호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티벳은 군대가 없지만, 린포체들이 티벳 공동체를 활성화시키고 있죠. 새로운 양상에 접어든 것 같단 말이죠... 라투르가 마키아벨리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데, 그의 '사물 의회'가 새로운 <정치론>일까요? 점점 생각할 거리가 많아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