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티(불교&티베트)

<불티 of 티벳> 시즌2 일곱번째 후기

작성자
인영
작성일
2020-09-09 23:07
조회
88
<불티 of 티벳> 시즌2 일곱 번째 후기

지난주에 이어서 라이브톡을 이용해 규문에 오시지 못한 분들과 함께 명상에 참여하는 것으로 세미나를 시작했습니다. 미각을 이용한 명상법은 다음번으로 미루고 오늘은 신체감각을 이용한 명상을 배웠습니다. 이 신체감각 명상은 MRI 기계가 몸을 스캔하듯이 각자의 몸을 머리부터 발아래로 차분히 알아차려보는 명상법입니다. 윤지샘의 길잡이에 따라 알아차림이 몸을 타고 흐르는 과정을 따라가 봅니다. 먼저 몸 전체가 여기 있음, 몸과 마음이 함께 있음을 알아차려보고, 그 상태를 이마로 가져가 이마에 마음을 머물며 그 부위의 미세한 느낌을 헤아려 봅니다. 그 다음은 눈, 코, 입, 귀, 그리고 얼굴 전체를 마음으로 편안하게 바라봅니다. 다시 이어서 목, 어깨, 양팔, 손, 가슴, 아랫배, 등 전체, 엉덩이, 고관절, 허벅지, 무릎, 종아리, 발까지 천천히 마음의 눈으로 그 신체 부위를 살핍니다. 명료하게 마음을 두고 다시 흘러가는 과정 중에 자신의 신체 어디에 긴장이 있고, 답답함이 있고, 또 한쪽으로 치우침이 있는지 살피게 됩니다. 마무리로 몸 전체로 마음과 몸이 함께 만나 자리에 앉아있음을 느껴봅니다. 오늘은 산란하게 돌아다니는 마음을 신체에 머물게 하여 의식의 초점을 두는 ‘알아차림’을 배웠습니다. 특히 잠들기 전 누워서 하루를 정돈하기 위해서, 또 반대로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에 너무 가라앉은 상태에서는 발부터 머리 쪽 위로 시행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헤매는 마음이 어딘가에 강하게 붙들리지 않기 위한 ‘알아차림’을 매일 짧게라도 연습해보는 것이 숙제입니다.

먼저 [티벳 사자의 서] 부록 기원문(457쪽~479쪽)을 함께 돌아가면 낭독하였습니다. 마스크를 착용하고 소리 내 읽는 것이 익숙하 지 않아 호흡을 고르고 좀 더 차분히 읽는 연습이 필요하겠다는 생각도 들고, 세미나 동안 마스크를 쓰고 대화하기 때문에 멀리 있는 상대의 말에 더욱 집중하는 것도 필요하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코로나19로 단축수업을 하고, 여러 샘들이 공부하는 공간으로 직접 오시지 못하는 상황에 대해 몇 말씀하신 게 기억에 남습니다. 수업의 경우 라이브톡으로 참여하니 집중하기가 좀 어려웠고, 또 직접 참여하는 현장성이 중요하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코로나19로 일상은 많은 혼란과 시행착오를 겪고 있고, 그 가운데 우리는 나름의 항상성을 찾고자 합니다. 우리가 평소 해오던 습관의 흐름이 깨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에게 명상은 일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명상이라는 것은 어떤 완전한 조건을 충족시킨 상태에서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해보라는 것이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예를 들면 저는 부정적인 감정이 들 때마다 ‘옴 마니 파드메 훔’을 속삭이기로 정했고 미운 마음이 들 때 순간 혼자 되뇌며 그 마음을 슥 떨쳐보는 방편으로 삼았습니다. 명상이라는 수행은 어느 상황에서도 할 수 있다는 것, 그러니 공부도 수행의 하나로 온오프라인으로 참여하든 혼자 해보든 놓지 않는 것이 혼란한 이 시국 속에서도 나름의 항상성을 가지는 첫걸음이지 않을까 매우 뻔한 생각을 또 한 번 해보았습니다.

“삶은 죽음으로부터 나온다”[티벳 사자의 서, 23쪽]
오늘 저희가 읽은 부분은 [티벳 사자의 서] 영문판 편집자 에반스 웬츠의 1판부터 4판까지의 서문과 해설입니다. 에반스 웬츠는 이 책을 다음과 같이 소개합니다. ‘죽음의 순간과 사후세계 안내서로, 과학적이고 명상적인 방법으로 인간 존재를 탐구하는 책’, 즉 인간의 긍극적인 질문인 ‘나는 누구이며 무엇인가? 왜 나는 이곳에 육신을 갖고 태어났는가? 나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탄생을 왜 있으며 죽음은 왜 있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간직하고 있다’[티벳 사자의 서,24쪽] 이 책의 원제는 ‘바르도 퇴돌’로 ‘바르도’는 낮과 밤사이, 곧 황혼녘의 중간 상태를 이르며, 죽음에서 환생까지 인간이 머무는 이 기간은 49일입니다. 그리고 ‘퇴돌’은 ‘듣는 것으로 영원히 자유에 이르기’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 책을 죽음을 앞 둔 이들에게 읽어줌으로써 사자가 경험하게 될 사후세계와 그에 길잡이가 되어 영원한 평화에 이룰 수 있는 문구들이자, 죽음의 실제 과정이 일어나는 동안에 깊은 통찰력과 깨달음으로 대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죽음의 기술 지침서입니다.

첫 번째 바르도(치카이 바르도)는 ‘죽음의 순간에 일어나는 바르도’로 최초의 투명한 빛이 사자 앞에 나타나지만 사자는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자신의 카르마 때문에 그것을 흐릿하게 인식합니다. 이 첫 번째 바르도가 끝났을 때 사자는 자신에게 죽음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깨닫고, 두 번째 바르도(초에니 바르도) ‘존재의 근원을 체험하는 바르도’를 경험하기 시작합니다. 사자는 이 단계에서 자신이 죽었음에도 육체를 갖고 있을 때 행한 행위들이 카르마의 환영으로 출몰합니다. 생전의 생각과 행동들이 파노라마 영상이 되어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 단계에서 육체를 가지고 있다는 착각에 빠질 가능서이 큰데 이것을 미망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실제가 아님을 깨닫는 순간 사자는 육체를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을 갖고 그리하여 그의 몸을 찾게 되고 환생의 길을 찾게 됩니다. 그래서 세 번째 바르도(시드파 바르도) ‘환생의 길을 찾는 바르도’의 상태로 흘러 들어갑니다. 이 바르도는 의식체가 인간계나 다른 세계, 천상의 극락세계에 환생함으로써 막을 내립니다. 이 모든 과정에서 사자는 깨어 있는 의식 상태를 유지하는데 인간은 생각하는 대로 됩니다. 생각이 현상이고, 선하든 악하든 생각이 모든 행위의 모태이며, 누구나 뿌린 대로 거두게 됩니다. [티벳 사자의 서, 88쪽] 이 지상에서 축적한 행위들(카르마)에 사후세계의 변화가 달려 있습니다. 카르마는 육체를 갖고 있을 때만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죽음을 맞이할 때 자신의 생각을 올바르게 통제할 수 있어야 하며 그렇지 못할 때는 인도자가 필요합니다. 불교와 힌두교와 기독교에서 공통되게 인간의 사후는 지상에서의 생각에 의해 결정된다는 경전 문구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티벳 사자의 서, 40쪽] 이 부분에서 현세에서 인간의 생각과 마음이 얼마나 무섭고 무거운 것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고, 무엇으로부터 성냄과 집착으로 재생산하고 있는 저의 부정적인 마음에서 벗어나기 위한 지혜를 이 책을 통해 깨닫기를 바라봅니다.

그래서 [티벳 사자의 서]에서는 인간이 분명한 의식을 지닌 채 마음을 평정을 이룬 상태에서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육체의 고통과 질병을 정신적으로 초월할 수 있는 바르게 훈련된 지성을 갖고 있어야만 한다고 강조합니다. 이와 같은 죽음의 기술을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현대 의학이 약물을 통해 죽음의 과정을 연장하는 것에 대해 에반스 웬츠는 비판합니다. 제가 교구에서 받은 호스피스 자원봉사 수업 중 호스피스병원 장 수녀님은 마약성 진통제를 신의 선물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 진통제의 효과가 얼마나 좋은지 병원에서 치료를 포기한 말기암 환자분도 갑자기 기운이 생생해져 다시 항암치료 받으러 가겠다고 할 만큼이라고 합니다. 여기서는 그 죽음에 이르는 고통이 문제가 됩니다. 또 고통에 대한 두려움과 가족들이 느끼는 마음들... 고통을 제거하느냐 훈련된 지성이 그것을 초월할 수 있느냐... 부모나 자식의 고통을 보면서 진통제나 수면제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나, 무의미한 연명치료인 말기암 항암치료, CPR, 인공호흡기삽관과 같은 것을 선택해야 하는 순간을 생각해 보면 바로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거기다 가족 모두의 동의라는 것이 필요합니다. 나의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라면 사전연명치료거부를 병원에 가서 서명해 둘 수 있겠지만 저 또한 언젠가 해야지 하고 3년이 지났습니다. 이 또한 제도권 안에서 죽음을 사유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지난 주 장례식에 다녀온 한 샘은 화장시에 사자의 틀니 처리 방식도 가족끼리 의견이 분분하니 본인이 살아있을 때 아주 세세하게 죽음을 준비하는 기록이 필요하다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저는 아직 그 고통의 문제가 정리되지 않았습니다. 사지 절단 사고를 겪은 이들이 없는 사지에서 느끼는 뇌가 만들어내는 고통이 있듯이 죽음에 이르는 인간의 고통도 환영과 가상임을 진심으로 깨닫기까지는 수행의 길이 아직 아득하다고 할까요?

그렇다면 이제 ‘죽음을 배우는 것이, 삶을 배울 수 있는 것이다’라는 말을 마음에 새기고 이 책과 함께 대자유에 이르는 길을 떠나봅시다. 다음 시간은 [티벳 사자의 서,159~258쪽, 제1부 치카이 바르도] 까지 읽어오시면 됩니다.
전체 2

  • 2020-09-09 23:47
    우리는 보통 죽음을 터부시하고 죽음에 대한 사유를 회피하는데, <티벳 사자의 서>에서는 죽음이 일어나는 순간과 사후세계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과학적이고 명상적으로 보여준다니 읽을 수록 정말 놀라운 것 같습니다. 죽음이 기술이자 깨달음의 큰 기회라는 것도요. 잘 정리된 후기 감사합니다, 인영샘. ^^
    그나저나 '옴마니파드메훔'이 일상에서 잘 새겨지시기를요! _()_

  • 2020-09-12 15:13
    죽음과 죽음의 과정을 고통으로만 여기고 회피하거나 타인에게 내맡기는 게 아니라, 죽음을 고통으로 해석하는 데서부터 시작해 그것에 대해 배워 나갈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습니다. 거기서 부터 삶이 시작된다! 이 말도 어렵고 제 상식으로 설명할 수 없지만, 그렇기 때문에 제대로 된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수선한 와중에 정성껏 간식을 준비해주시고 후기도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