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역 세미나

성역 네번째 시간(3.12) 공지

작성자
건화
작성일
2021-03-08 10:48
조회
119
어찌된 일인지, 지난 토요일 부천을 다녀오면서 제 노트를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지난 시간 토론과 채운샘 강의를 필기한 것들이 모두 사라지고 말았네요. 지난시간에는 《성의 역사》 1권 중 2장의 후반부와 3장의 초반을 읽고 수업을 진행했었죠! 제 기억에 따르면, 채운샘은 ‘권력은 생산한다’라는 것이 2장의 핵심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푸코는 과거 성이 사법적 맥락 속에서 담론화되었으나 18세기 말부터는 의학, 과학, 인류학, 사회과학 등등 다양한 담론들이 성을 침투하기 시작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근친혼과 남색, 불륜과 시체강간은 (그 경중에 차이가 있을지언정) 동일한 선상에서 인식되었습니다. 모두 ‘성에 관한 법의 위반’으로 간주되었던 것이죠. 이와 더불어 ‘성도착’이라는 대상이 출현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욕망의 과도함으로 간주되던 ‘남색가’는 이제 오직 그 자신의 성생활에 의해서만 규정되는 ‘동성애자’로 인식되기 시작합니다. 그의 과거와 내력과 유년기, 성격, 생활양식, 생체의 구조와 생리, 체형 등이 세세하게 조사되죠. ‘방탕자’가 해체된 자리에 ‘성도착자’가 등장합니다. 그는 법에 의해서는 아니지만 늘 쫓기고 구금당하는 신세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은, ‘성에 대한 인식의 변화’ 같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전에는 엄격하던 것이 시대가 흐름에 따라 관용적으로 변했다거나, 과학적 앎의 발달에 따라 성을 보다 객관적으로 이해하게 되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요점은 억압이냐 관용이냐가 아니라 여기서 행사되고 있는 권력의 형태가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성’은 없습니다. 성이 먼저 있고 그것을 이러저러하게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과 쾌락, 담론과 비담론적 실천들, 인도하려는 힘과 그러한 방식으로 인도당하지 않으려는 움직임들, 장치들과 욕망들이 그물망처럼 관계 맺으며 그로부터 성이 출현하게 됩니다.

이번에 푸코는 그것을 쾌락과 권력의 관계에 대한 설명을 통해 잘 보여주었죠. “한편으로는 질문하고 감시하고 숨어서 노리고 엿보고 뒤지고 만지고 밝혀내는 권력을 행사하는 즐거움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러한 권력에서 벗어나거나 이러한 권력을 피하거나 속이거나 왜곡할 필요가 있다는 점 때문에 생겨나는 만족이”(56쪽) 있습니다. 그 어떤 억압적인 권력과의 관계에서도 쾌락은 근절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권력과의 관계 속에서 그것은 특정한 방식으로 발생하고 또 흘러갑니다. 특히 푸코가 문제 삼고 있는 부르주아 시대에 권력과 쾌락은 서로가 서로를 강화하는 관계를 형성합니다. 인도하고자 하는 힘은 (단순히 처벌하거나 내버려두는 것이 아니라) 도착적 성의 내밀한 비밀(권력에 의해 그렇게 간주된)을 부단히 파고들고자 하며 도착적 쾌락은 그에 반응하여 스스로를 규정하고, 또 그러한 규정을 빠져나가고, 권력을 비웃고 조롱하며 스스로의 만족감을 생산합니다.

‘권력은 생산한다’라는 테제는 무엇을 보게 해줄까요? 저는 그것이 ‘전제’를 묻게 해준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령 성이라고 한다면 자유라거나 다양성이라거나 소수자, 해방, 정상과 비정상, 프라이버시, 성폭력, 금기 등등의 낱말들이 떠오릅니다. 이런 익숙한 낱말들, 영역들, 관점들 속에서 성에 관해 말할 때 우리는 우리가 당연히 여기는 것들이 우리의 행위와 인식을 규정하는 방식에 대해 무지하게 됩니다. 성이 여전히 개인의 내밀한 비밀이며 정상과 비정상의 문제인 한, 해방을 말하건 관리의 필요성을 역설하건 개인의 차원을 벗어난 성의 윤리와 쾌락의 사용에 대해 우리는 결코 상상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규정하는 조건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단순한 인과를 부여하고 실체화하는 사고방식 속에서, ‘적’과 싸우거나 ‘이상’에 순응하게 됩니다. 자신이 복잡한 관계들의 망 속에서 특정한 방식으로 생산되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스스로를 규정하는 조건을 신중하게 검토할 때에만, 우리는 자신의 삶의 스타일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푸코가 권력의 생산에 관심을 기울였던 것도, (전혀 통치되거나 생산되거나 규정되지 않기를 꿈꾸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스스로를 생산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성의 역사》 1권 4장의 1번(‘쟁점’)까지 읽고 메모를 해오시면 됩니다. 간식은 혜원누나가 맡아주었습니다.
전체 1

  • 2021-03-08 12:43
    시대마다 변화된 성을 알고 나니 옳고 그름을 따지는 방식으로 사고하게 되더라구요. 건화샘이 쓴 것처럼 '성에 대한 인식 변화'에 촛점이 맞춰져서 중요한 것을 자꾸 놓치네요. 성을 둘러싼 권력의 메커니즘, 그 메커니즘에서 권력-지식-진리의 관계, 요런 것들을 붙잡고 요번주도 열심히 읽도록 하죠. 후기 잘 읽었습니다^^

    부천에서도 그렇게 찾았건만 노트는 그냥 사라져버렸네요.. 기억을 더듬어 쓰느라 애썼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