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몽스쿨

憲問 32장 ~ 41장

작성자
김지현
작성일
2018-05-01 10:37
조회
59
▣ 제32장(第三十二章)

子曰  不患人之不己知  患其不能也

患 : 근심 환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남이 나를 알아주지 못함을 걱정하지 말고, 자신의 능하지 못함을 걱정해야 한다.”

凡章 指同而文不異者 一言而重出也 文小異者 屢言而各出也 此章 凡四見而文皆有異 則聖人於此一事 蓋屢言之 其丁寧之意 亦可見矣

: 가리키다. 손가락질하다. 지시하다.

丁寧 : 재삼 간절히 당부함. 또는 충고함.

모든 장(章)에 가리키는 뜻이 같고 문장도 다르지 않은 것은 한 번 말씀한 것이 다시 나온 것이다. 문장이 조금 다른 것은 여러 번 말씀하여 각각 나온 것이다. 이 장(章)은 네 번 나오는데 문장이 모두 다르다.

1)學而 篇 : 不患人之不己知 患不知人也

2)里仁 篇 : 不患莫己知 求爲可知也

3)衛靈公 篇 : 君子 病無能焉 不病人之不己知也

성인(聖人)이 이 한 가지 일에 대해 여러 번 말씀하신 것이니, 그 정녕(丁寧)하신 뜻을 또한 볼 수 있다.

▣ 제33장(第三十三章)

子曰 不逆詐 不億不信 抑亦先覺者 是賢乎

: / 미리 ~하다

: 속일 사

: / 헤아릴 억. 촌탁 함.

: 누를 억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남이 나를 속일까 미리 짐작 하지 말고, 남이 나를 믿어주지 않을까 억측(臆測)하지 않는다. 그러나 또한 먼저 깨닫는 자가 어진 것이다.”

逆 未至而迎之也 億 未見而意之也 詐 謂人欺己 不信 謂人疑己 抑 反語辭 言雖不逆不億 而於人之情僞 自然先覺 乃爲賢也

: 맞이할 영. 헤아리다 추산하다 영

역(逆)은 아직 이르지 않은 것을 미리 헤아리는 것이요, 억(億)은 아직 보이지 않는 것을 억측하는(意)것이다. 사(詐)는 남이 자신을 속이는 것을 말하고, 불신(不信)은 남이 자신을 의심하는 것을 말한다. 억(抑)은 반어사(反語辭)이다. 비록 미리 헤아리지 않고 억측(臆測)하지 않으나, 남의 정위(情僞)에 대하여 자연히 먼저 깨달아야 현명한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楊氏曰 君子一於誠而已 然 未有誠而不明者 故 雖不逆詐, 不億不信 而常先覺也 若夫 不逆不億 而卒爲小人所罔焉 斯亦不足觀也已

罔 : 넘볼 망. 속일 망

양씨(楊氏)가 말하였다. “군자(君子)는 한결같이 성실할 뿐인데, 성실하고도 밝지 않은 경우는 없다. 그러므로 군자는 남이 나를 속일까봐 미리 헤아리지도 않고, 남이 나를 믿지 않을까봐 억측하지 않더라도 항상 먼저 깨닫는 것이다. 만일 미리 생각하지 않고 억측하지 않다가 끝내 소인(小人)에게 속임을 당하면 이는 볼 것도 없는 것이다.”

▣ 제34장(第三十四章)

微生畝 謂孔子曰 丘 何爲是栖栖者與 無乃爲佞乎

: 깃들일 서. 연연해하다

栖栖 : ‘해가 지고 새가 나무에 깃들이다.’라는 뜻이지만, 새가 깃들이고 동요해서 침착하지 못한 행동을 형용하는 말.

無乃 ~ : ~하지 아니한가.

미생묘(微生畝)가 공자(孔子)께 말하였다. “구(丘)는 어찌하여 이리도 연연해하는가. 말만 번지르르하게 구사하는 것 아닌가.

微生 姓 畝 名也 畝 名呼 夫子而辭甚倨 蓋有齒德而隱者 栖栖 依依也 爲佞 言其務爲口給以悅人也

: 심할 심. 중후할 심

: 거만할 거.

: 넉넉할 급, 구변 좋을 급

미생(微生)은 성(姓)이고 묘(畝)는 이름이다. 미생묘(微生畝)가 (공자의) 이름을 부르면서 말이 매우 거만하니, 아마도 연치(年齒)와 덕(德)이 있으면서 은자인 듯하다. 서서(栖栖)는 의의(依依)하는 것이다. 말을 잘한다는 것은 입으로 공급하는 것으로써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이다.

孔子 曰 非敢爲佞也 疾固也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내 감히 말재주를 구사하려는 것이 아니라, 고루한 것을 싫어하는 것입니다.”

疾 惡也 固 執一而不通也 聖人之於達尊 禮恭而言直 如此 其警之亦深矣

질(疾)은 미워하는 것이요, 고(固)는 한 가지를 고집하여 통하지 못하는 것이다. 성인(聖人)이 達尊(보편적으로 높이는 것)에 대하여 예절이 공손하고 말씀이 곧음이 이와 같으셨으니, 그 경계한 것이 또한 깊다.

▣ 제35장(第三十五章)

子曰 驥 不稱其力 稱其德也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기마(驥馬)는 그 힘을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그 덕(德)을 칭찬하는 것이다.”

驥 善馬之名 德 謂調良也 尹氏曰 驥雖有力 其稱在德 人有才而無德 則亦奚足尙哉

調 : . 길들일 조.

: 좋을 량 (후천적으로 연마된 차원)

기(驥)는 좋은 말의 명칭이다. 덕(德)은 좋은 것을 기르는 것(본성을 계발하고 다듬는 것)을 말한다. 윤씨(尹氏)가 말하였다. “기마(驥馬)는 비록 타고난 것이 있지만 그를 칭송하는 것은 덕(德)에 있는 것이니, 사람이 재주만 있고 덕(德)이 없으면 어찌 족히 숭상할 수 있겠는가?”

▣ 제36장(第三十六章)

或 曰 以德報怨 何如

혹자가 말하였다. “덕(德)로써 원한을 갚는 것이 어떻습니까?”

或人所稱 今見老子書 德 謂恩惠也

혹자가 말한 것은 지금 노자(老子)책에 보인다. 덕(德)은 은혜를 말한다.

子曰 何以報德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덕은 무엇으로 갚을 것인가?”

言於其所怨 旣以德報之矣 則人之有德於我者 又將何以報之乎

원한으로 여기는 자에게 이미 덕(德)으로써 갚았다면 나에게 덕(德)이 있는 자에게는 또 장차 어떻게 갚을 것인가를 말씀한 것이다.

以直報怨 以德報德

마땅한 원칙으로 원한을 갚고, 덕(德)으로써 덕(德)에 갚아야 한다.

於其所怨者 愛憎取舍 一以至公而無私 所謂直也 於其所德者 則必以德報之 不可忘也

원한으로 여기는 자에게 사랑과 미움, 취하고 버림을 일관되게 지극히 공평하고 사사로움이 없는 것으로써 하는 것이 마땅한(直) 것이다. 고맙게 여기는 자에게는 반드시 덕(德)으로써 보답하고 잊지 말아야 한다.

或人之言 可謂厚矣 然 以聖人之言 觀之 則見其出於有意之私 而怨德之報皆不得其平也 必如夫子之言然後 二者之報 各得其所 然 怨有不讐而德無不報 則又未嘗不厚也 此章之言 明白簡約 而其指意曲折反覆 如造化之 簡易 易知而微妙無窮 學者所宜詳玩也

혹자의 말은 후덕(厚德)하다고 이를 만하다. 그러나 성인(聖人)의 말씀을 가지고 살펴보면 사사로운 의도에서 나온 원한과 덕에 대한 보답이 대개 공평함을 얻지 못함을 볼 수 있으니, 반드시 부자(夫子)의 말씀과 같이 한 뒤에야 두 가지의 보답(怨과 德의 보답)이 각각 그 마땅함을 얻는다. 그러나 원한을 원수로 삼지 않고, 덕은 갚지 않음이 없으니 일찍이 후덕하지 않음이 없다. 이 장(章)의 말씀은 명백하고 간략하면서도 그 가리키는 뜻은 굽이굽이 끊어졌고 반복되어서 마치 만물이 만들어지는 조화의 간이(簡易)가 알기는 쉽지만 미묘한 진리가 무궁한 것과 같으니(쉽게 알 수 없으니), 배우는 자들이 마땅히 상세하게 잘 생각해봐야 한다.

▣ 제37장(第三十七章)

子曰 莫我知也夫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나를 알아주는 이가 없구나!”

夫子自歎 以發子貢之問也

부자(夫子)께서 스스로 탄식하여 자공(子貢)의 질문을 유도하신 것이다.

子貢曰 何爲其莫知子也 子曰 不怨天 不尤人 下學而上達 知我者 其天乎

자공(子貢)이 말하였다. “어찌하여 선생님을 알아주는 이가 없는 것입니까?” 하자,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남을 탓할 것도 없다. 비근한 것에 대한 익힘을 통해서 형이상학적인 깨달음을 얻었으니 나를 알아주는 이는 아마도 하늘일 것이다.”

不得於天而不怨天 不合於人而不尤人 但知下學而自然上達 此但自言其反己自修 循序漸進耳 無以甚異於人而致其知也 然 深味其語意 則見其中自有人不及知而天獨知之之妙 蓋在孔門 唯子貢之智幾足以及此 故 特語以發之 惜乎 其猶有所未達也

: 가깝다.

하늘에서 얻지 못했지만 하늘을 원망하지 않으며, 사람에게 합하지 못하여도 사람을 탓하지 않고, 다만 하학하면 자연히 상달한다는 것을 알 뿐이다. 이는 단지 스스로에게 말해서 자신을 살피고 스스로를 수양하여 자연스럽게 순서를 따라서 점차적으로 나아간 것이다. 남보다 심히 다르게 하여 그 앎에 이른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나 그 말씀의 뜻을 깊이 음미해보면, 사람으로는 그 앎에 미치지 못하고 하늘만이 오로지 그 미묘함을 알 수 있음을 보여준다(見). 공자(孔子)의 문하(門下)에서 오직 자공(子貢)의 지혜만이 거의 여기에 미침이 족하기 때문에 특별히 말로 표현하였다. 애석하구나! 오히려 자공(子貢)도 통달하지 못한 바가 있었으니.

程子曰 不怨天, 不尤人 在理當如此 又曰 下學上達 意在言表 又曰 學者須守下學上達之語 乃學之要 蓋凡下學人事 便是上達天理 然 習而不察 則亦不能以上達矣

: 모름지기 수

: 이에 내.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하늘을 원망하지 않으며 사람을 탓하지 않는 것은 이치의 마땅함이 있음이 이와 같다.” 또 말씀하였다. “하학(下學)•상달(上達)은 뜻이 말 바깥에 있다.” 또 말씀하였다. “배우는 자들은 모름지기 하학(下學)•상달(上達)의 말씀을 지켜야 할 것이니, 이것이 바로 학문(學問)의 요점이다. 대개 아래로 인간(人間)의 일을 배우면 곧 이 위로 천리(天理)를 통달하게 된다. 그러나 익히기만 하고 살피지 않으면 또한 위로 통달할 수 없는 것이다.”

▣ 제38장(第三十八章)

公伯寮 愬子路於季孫 子服景伯 以告曰 夫子 固有惑志於公伯寮 吾力 猶能肆諸市朝

: , 헐뜯어 말하다.

: , 참으로 진실로

: , 죄인을 죽여 효시하다.

: 之於

공백료(公伯寮)가 자로(子路)를 계손(季孫)에게 참소하니, 자복경백(子服景伯)이 공자(孔子)께 아뢰기를 “부자(계손季孫)께서 진실로 공백료(公伯寮)의 말에 마음을 의혹하고 계시니, 내 힘이 그래도 공백료(公伯寮)의 시신을 거리에 널어놓을 수 있습니다.”

公伯寮 魯人 子服 氏 景 諡 伯 字 魯大夫子服何也 夫子 指季孫 言其有疑於寮之言也 肆 陳尸 言欲誅寮

: , 시호 시

: , 늘어놓을 진

: , 베다. 죽이다.

공백료(公伯寮)는 노(魯)나라 사람이다. 자복(子服)은 성(姓)이고 경(景)은 시호이며 백(伯)은 자(字)이니, 노(魯)나라 대부(大夫) 자복하(子服何)이다. 부자(夫子)는 계손(季孫)을 가리키니, 그가 공백료(公伯寮)의 말에 의혹을 두었다는 말이다. 사(肆)는 시신을 늘어놓은 것이니, 공백료(公伯寮)를 주살하고자 함을 말한다.

子曰 道之將行也與 命也 道之將廢也與 命也 公伯寮 其如命何

: , 폐하다.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도(道)가 장차 행해지는 것도 명(命)이며 도(道)가 장차 폐해지는 것도 명(命)이니, 공백료(公伯寮)가 그 명(命)에 어떻게 하겠는가?”

謝氏曰 雖寮之愬 行 亦命也 其實 寮無如之何 愚謂 言此以曉景伯 安子路而警伯寮耳 聖人 於利害之際 則不待決於命而後泰然也

: 새벽효, 깨달을 효

: 경계할 경. 타이를 경

: . 기다릴 대

: . 결단하다. 시비나 선악을 파악하다.

: 사이 제. 벽과 벽의 이음매

사씨(謝氏)가 말하였다. “비록 공백료(公伯寮)의 참소가 행해진다 하더라도 이 또한 명(命)이니, 실상은 공백료(公伯寮)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내 생각건대, 이를 말씀하시여 경백(景伯)을 깨우쳐주고 자로(子路)를 안심(安心)시키고 공백료(公伯寮)를 깨우쳐 주셨을 뿐이다. 성인(聖人)이 이해(利害)의 사이에 있어서 명(命)이 결정되기를 기다린 뒤에야 태연(泰然)해지는 것은 아니다.

▣ 제39장(第三十九章)

子曰 賢者 避世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현자(賢者)는 세상을 피하고

天下無道而隱 若伯夷太公 是也

천하(天下)에 도(道)가 없으면 은둔하는 것이니, 백이(伯夷)와 태공(太公) 같은 분이 바로 그들이다.

其次 壁地

그 다음은 나랏일(현세)를 피하고

去亂國, 適治邦

: 가다 적.

어지러운 나라를 떠나 다스려지는 나라로 가는 것이다.

其次 辟色

그 다음은 군주의 안색(色)을 피하고,

禮貌衰而去

예모(禮貌)가 쇠하면 떠나는 것이다.

其次 辟言

그 다음은 군주가 하는 말을 피한다.

有違言而後去也

: 어길 위, 위반하다.

말을 했는데 어긋나는 것이 있다면 떠나는 것이다.

程子曰 四者 雖以大小次第言之 然 非有優劣也 所遇不同耳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이 네 가지는 비록 크고 작은 차례로써 그것을 말씀하였으나, 그러나 우열(優劣)이 있는 것은 아니요, 각자 당한 바가 같지 않을 따름이다.

▣ 제40장(第四十章)

子曰 作者七人矣

: 지을 작. 일어날 작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일어나 은둔한 자가 일곱 사람이다.”

李氏曰 作 起也 言起而隱去者 今七人矣 不可知其誰何 必求其人以實之 則鑿矣

: 밝히다. 증명하다. 조사하여 밝히다.

: 멋대로 억측하다. 끝까지 캐다. 억지로 끌어다 붙이다.

이씨(李氏)가 말하였다. “작(作)은 일어나는 것이니, 일어나 은둔하려고 떠나간 자가 지금 일곱 사람임을 말씀한 것이다. 그 누구인지는 알 수 없으니, 굳이 그 사람들을 찾아서 밝히려 한다면 천착(穿鑿)하는 짓이다.”

▣ 제41장(第四十一章)

子路 宿於石門 晨門曰 奚自 子路曰 自孔氏 曰 是 知其不可而爲之者與

石門 : 나라 고장 이름

晨門 : 새벽문지기

奚自 : 어디서 왔습니까?

: ! 감탄사.

자로(子路)가 석문(石門)에서 유숙하였었는데, 신문(晨門)이 묻기를 “어디에서 왔는가?” 하자, 자로(子路)가 “공씨(孔氏)에게서 왔오.”라고 대답하니, “아! 불가능(不可能)한 줄을 알면서도 하는 자 말인가.” 하였다.

石門 地名 晨門 掌晨啓門 蓋賢人隱於抱關者也 自 從也 問其何所從來也

: 주관하다.

석문(石門)은 지명(地名)이다. 신문(晨門)은 새벽에 성문을 열어주는 것을 맡은 자이니, 아마도 현자(賢者)로서 관문을 지키는 일을 하는 은둔한 자인 듯하다. 자(自)는 부터이니, 어느 곳으로부터 왔는가를 물은 것이다.

胡氏曰 晨門 知世之不可而不爲 故 以是譏孔子 然 不知聖人之視天下 無不可爲之時也

:나무라다. 원망하다. 싫어하다. 조롱하다.

호씨(胡氏)가 말하였다. “신문(晨門)은 세상의 불가능함을 알고 하지 않은 자이다. 그러므로 이 말로써 공자(孔子)를 조롱한 것이다. 그러나 성인(聖人)이 천하(天下)를 보는 것에는 일을 하지 못할 때가 없다는 것을 알지 못한 것이다.”

저는 36장에서 怨을 덮어놓고 德으로 감싸주어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마땅함(直)으로 대하라고 하신 부분이 좀 의외였습니다.

작게는 서운한 감정 또는 원한에 대해서 용서한다는 게 무엇인지 몰랐거든요.

용서가 묵은 감정을 깨끗이 걷어내는 것이라면  저같은 보통사람(사실은 뒤끝이 남다르게 강한) 은 불가능한 영역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과 겪은 사건을 없었던 것 처럼 여기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다른 분야에서 비록 내가 싫어하는 사람일지라도  원칙대로 대하는  것은 해봄직하지 않나요. (이 내공도 만만치는 않지만)

공자님 말씀은 무겁고 어려운 것 같지만 늘 일상에서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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