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탁마Q

절차탁마Q 3학기 1주차 - 후기

작성자
이미영
작성일
2017-07-28 18:45
조회
104
절차탁마Q 3학기는 7월의 마지막 주(26일)부터 9월 마지막 주(27일) 에세이 발표까지 니체를 만난다. 이 뜨거운 여름날 그의 사유를 통해 조금이라도 다른 신체로 변용되길 기대하며,  채운샘의 높고 깊은 강의와 도반들의 열정을 느끼며 함께 가고 싶다.  첫 수업부터 아주 중요한 의미의 개념들이 등장하여 사유로부터 자꾸 도망 다니는 나를 붙잡았다. 그러나 수업이 끝나면 파편처럼 흩어지는 개념들. 그 중 세 가지를 정리해 보았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니체의 책은 읽을 때마다 미끄러지는 책이다.  언어가 우리의 생각을 완벽하게 표현할 수는 없지만 이를 통해 우리는 생각을 규정지어 내보낸다.  언어는 생각을 비껴가는데 니체의 언어는 니체의 생각과 닮아 있으며 그의 글은 규정적이지 않다.  도무지 붙잡히지 않는 글이다.  그의 생각에 모든 언어는 비유와 상징으로 표현될 수밖에 없었다. 그의 비유와 상징은 언어의 원래의 의미를 비유와 상징으로 더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빌려다 쓰는 것이 아니다.  즉 진리를 표현하기 위해 동원하는 수단이 아니다. 모든 언어는 비유와 상징이다. 직설적으로 말을 하더라도 직접적으로 진리를 표현하는 언어 같은 것은 없다. 비유와 상징으로 썼다는 것은 결국 독자에게 해석의 자유를 준다는 것이다. 채운샘께서는 니체가 무슨 말을 했을까 라는 질문을 버려야 니체를 만날 수 있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니체를 우리 마음대로 읽으라고 하신다. 물론 마음대로 읽는다는 것이 어떤 기준 없이 무작정 읽으라는 뜻은 아닐 것이다. 어떤 식으로 니체의 언어에 익숙해 져야 하는지 노력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선 우리의 가이드를 자처하신 채움샘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런 배치 하에서 니체에 대한 해석은 가장 독창적일 수 있다. 니체를 새롭게 해석하고 가장 니체스럽게 읽을 수 있는 사람은 자기 사유를 하는 사람 일 것이다. 누군가의 사유를 따라 하는 자, 모방하는 자는 니체를 정말 읽기가 어렵다. 니체는 사유의 외부이며 서양의 형이상학적 전통에 대해 가장 반발한 자이다. 누군가의 삶은 그의 남겨놓은 글이나 작품을 통해 유출할 수 있을 뿐이다. 이번에는 그의 전기를 먼저 읽지 않고 책을 통해 니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보자.

병과 건강, 사유에 대하여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서문은 독일어의 라임을 잘 살리고 있으며, 글 자체가 성서의 이미지와 시적 형식을 가지고 있다. 니체는 훌륭한 문헌학자 이전에 음악에 대한 천재였다. 글을 음악적으로 쓰길 원했다. 그가 쓴 문장 부호들은 언어보다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그는 어떤 체계를 만들고 철학적 방법에 따라 그 체계를 계속 확장하고 부풀리면서 제기하는 문제와 뒤의 결론을 일관되게 이어지게 하는 종합적인 체계를 거부한다. 체계 속에 가두지 않는 글쓰기. 글쓰기 자체를 통해서도 철학의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그의 글은 파편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파편들을 독자가 어떻게 재구성하느냐에 따라서 매번 다르게 읽힐 수 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또한 파편들이며 나름의 체계를 가지고 썼다.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상승과 하강의 이미지가 음악의 형식 같다. 마치 악장처럼 구성되어 있는 것 같다. 각 악장마다 주제가 되는 모티브들이 계속 변주를 하는 것처럼, 이 책도 얘기가 반복되는 것도 있고, 동일한 부분들이 뒷부분에서는 다르게 변주된다. 니체가 만든 개념은 없으며, 그가 이것은 무엇이라고 드러내는 직접적인 개념도 없다. 하지만 그의 모든 책에서 끊임없이 변주되는 것이 있다면 초인, 영원회귀. 힘 의지이다. 이 개념들은 이전에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니체는 새로운 방식으로 사용했다. 차라투스트라의 근본 사상은 영원회귀이다.

니체는 신체적으로 최악이었을 때 자신의 철학을 펼쳤다. 그러므로 니체 철학의 중요한 모티브 중 하나가 병과 건강이다. 심하게 앓았던 자에게만 회복기가 찾아온다. 그는 병을 사유의 소재로 삼는데 그에게 질병은 세계에 대한 낯선 감각이었다. 아픔을 몸과 정신의 교란이라 생각한 그는 사유를 할 수 없을 만큼 큰 고통에서 빠져나오는 순간 그 병을 다른 거리를 두고 지켜볼 수 있었다. 건강은 아픈 사람이 아프지 않은 상태이거나, 아파 본적이 없는 건강한 사람의 상태가 아니다. 니체는 건강은 마치 선, 악처럼 뒤엉켜 있는 것이라고 사유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체는 병에서 건강으로, 건강에서 병으로 교체되며 겪는 것이다. 건강이라는 것은 아픈 사람이 그 아픔으로부터 떠나올 때 느껴지는 새로운 감각이다. 어떤 습이 고질화 되었을 때 병이 되듯이 기존의 생각들에 찌들어 있을 때가 사유의 질병 상태이다. 사유의 습이 고질화가 되면 자신의 습관에 대한 신념체계를 삶의 기준으로 삼으며 그에 따라 삶의 의미와 목표를 추구하게 된다. 그러나 삶이란 이것을 영원이 추구하게 나두지 않는다. 즉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여 소통하지 못할 때 병이되듯이 시대가 바뀌는데 기존의 신념체계를 고집한다면 병증의 상태로 드러난다. 이것을 니체는 니힐리즘이라고 한다. 니힐리즘이란 인간이 붙들고 있던 이전의 의미와 목표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을 때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 정신의 무능력상태이다. 이것으로부터 다르게 사유할 수 있는 자만이 자신이 어디에 붙들려 있는 지 볼 수 있다. 병을 앓았으나 나으면서 새로운 공기를 호흡하면서 건강해지듯이 사유 또한 완벽하게 진리에 도달하는 사유가 있을 수 없고 끊임없이 오고 가는 상태에 있다.

높이와 깊이에 대하여

푸코는 어떤 현상이나 보편적인 철학을 넘어 깊이 있게 사유한 철학자 세 사람을 뽑고 있는데 바로 맑스, 프로이트, 니체이다. 이들은 각자 나름의 철학 사상을 펼쳤다. 맑스는 모든 존재는 존재 자체로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 존재로 규정되도록 한 사회적 관계의 산물이라고 하였다. 우리의 관계는 개인적 관계가 아니라 사회적 관계의 총체로부터 만들어 진다. 이런 사회적 관계가 사적관계로 드러난다. 맑스는 상품의 표면으로부터 깊이를 사유했다. 프로이트는 우리의 의식은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때때로 떠오르는 환상, 망상, 인간의 본능을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불쑥 튀어나오는 이런 것들은 내안에 있으므로 자기의식의 주체라 할 수 있다. 그는 의식의 파편들은 출현시키는 무의식의 세계를 보았고, 의식의 파편을 통해서만 깊이의 존재를 사유했다. 니체는 우리가 표면에 있다고 생각하는 선, 악의 기원을 살펴봄으로써 애초부터 그러한 것은 선험적으로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가 보기에 선, 악의 기준은 어느 특정한 시대, 특정한 조건에서 주어진 결과였다.

이들 세 사람은 깊이로부터 표면이 전부라는 것을 발견했다. 심연으로 내려가 보니 표면이 보이는 그대로가 아니었다. 역으로 그 표면이야말로 보이지 않는 저 깊이를 말해준다는 것을 발견했다. 우리 의식의 단편들, 상품들, 표면이 드러나는 가치체계가 가장 깊은 것을 담고 있다. 진리란 표면과 무관하게 저기 어디 있는 것이 아니다. 깊이로부터 표면이 발생한다. 표면은 가장 높은 것과 관계하는데 형이상학에서는 진리가 가장 고귀하고 높은 것으로 이미지화 되며 높다는 것은 평지에 있는 것과 위계를 갖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니체에게 높다는 것은 표면으로부터 진리가 동떨어지고 숨겨져 있는 거리가 아니다. 그에게는 높이가 깊이이며 표면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거리이다. 표면은 이 지상, 현세이며 니체의 단어로는 대지(earth)이다. 대지란 삶의 조건, 삶의 지평 자체이다. 우리는 다른 공기를 가지고 있는 높은 곳에서만 이 대지를 잘 볼 수 있다. 깊이까지 파고 내려가면 그 깊이에 뭐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깊이가 우리의 표면을 가장 잘 볼 수 있게 해준다. 그러므로 높이와 깊이는 표면에 있다.
전체 2

  • 2017-07-28 20:36
    건강에 대해서 다르게 사유한 게 기억에 남네요. 날씬한 몸매, 탄탄한 근육이 아니라 자신의 고통, 습을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 있을 때를 건강이라고 한 게 뭔가 올듯말듯합니다.(이런 건 그냥 안 온거겠죠?) 신체와 정신이 분리된 것이 아님을 스피노자를 통해서 알았는데, 니체는 사유와 건강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지네요.

  • 2017-07-28 22:14
    채운샘 강의가 메아리치는 것만 같은 꼼꼼한 후기네요^^ 감사합니다~ 표면과 깊이 문제는 스피노자에 대해서도 비슷하게 얘기될 수 있는 부분이 있는 것 같네요. 혹시 니체를 통해 스피노자를 다르게 만날 기회가 있을지,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