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내어 읽는 니체

소니 《즐거운 학문》5부 후반부 공지

작성자
건화
작성일
2018-02-14 17:30
조회
111
이번 주에는 《즐거운 학문》 5부 전반부를 읽고 세미나를 했습니다. 이번에 읽은 부분에서는 니체의 또 다른 모습을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한두 줄의 함축적인 아포리즘들보다는 몇 페이지에 이르는 체계적인 논증들이 5부의 주를 이루고 있었죠. 지금까지 읽었던 게 정리되는 것 같아서 좋다고 하신 분도 계셨고, 짧은 아포리즘들이 성향에(?) 더 맞는 것 같다고 말씀하신 분도 계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두 스타일 모두 나름의 재미가 있고 또 나름의 어려움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5부의 전반부가 “신은 죽었다”라는 말에 대한 해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이 죽었다는 것은 단순이 인간이 신의 지배에서 풀려났다거나, 이전까지 자신을 속박하고 있던 오래된 편견으로부터 해방되었음을 말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광인이 등장했던 125절과 5부의 첫 번째 절에서 니체가 반복해서 말하는 것은 인간이 아직 ‘신의 죽음’이라는 사건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죠. 니체는 신의 죽음에 놀라 소리를 지르고 다니는 광인을 비웃는 무신론자들, 당대의 교양인들이 신의 죽음을 진정으로 감당하지 못하고 있으며 감당하려 하지도 않고 있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5부의 많은 구절들은 우리 무신론자들, 학문의 인간들, 합리주의자들이 얼마나 ‘아직도 어느 정도로 신심이’ 깊은지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344절에서는 모든 ‘확신’을 배격하고 ‘객관’을 유지하는 듯한 학문이 사실은 진리에 대한 신앙 위에 세워져 있음을 보여주고, 347절에서는 신앙이란 사실 “버팀목과 지지대에 대한 요구”에 다름 아님을 보여줍니다. ‘신의 죽음’이라는 소식이 진정으로 전해지게 되는 것은, 인류가 신에 대한 믿음을 철회할 때가 아니라 우리가 ‘확실성의 요구’와 결별하고 “자기규정의 기쁨과 힘”을 갖게 될 때임을 말하고자 한 것 같습니다. 실존의 유일무이함을 회피하지 않고 스스로의 명령에 복종하며 살아가게 될 때, 우리는 우리의 삶에서 ‘신’의 자리에 해당하는 초월성을 지울 수 있지 않을까요.

다음주에는 《즐거운 학문》 5부의 남은 부분과 부록(〈포겔프라이 왕자의 노래〉)을 읽고 오시면 됩니다. 간식은 은남샘과 나영샘께서 맡아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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