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내어 읽는 니체

4월 9일 《차라투스트라》 두 번째 시간 공지

작성자
건화
작성일
2018-04-05 11:52
조회
95
이름을 불러 친숙해지기에는 너무나도 높은 곳에 너의 덕은 자리 해야 하리라. 그리고 네가 그 덕에 관해 말을 해야만 한다면, 말을 더듬게 되더라도 부끄러워하지 말라./ 이렇게 말하라, 더듬더듬 말하라. “이것은 나의 선, 나 이것을 사랑한다. 전적으로 내 마음에 들며, 나 이러한 선만을 원한다./ 나는 그것을 어떤 신의 율법으로서 원하지 않으며 사람의 규약이나 없어 안 될 것으로서도 원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이 나를 이 세계 저편이나 천국이란 곳으로 오도하는 길잡이가 되어서도 안 되겠다./ 내가 사랑하는 덕은 이 땅에서의 덕이다. 거기에는 재주는 적고, 만민의 이성이란 것도 최소한으로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이 새는 내 곁에 둥지를 틀었다. 그 일로 나 그를 사랑하며 진심으로 반긴다. 그는 지금 내 곁에서 황금빛 알을 품고 있다.”/ 너는 이렇게 더듬더듬 말해야 하며, 너의 덕을 찬미해야 한다.(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환희와 열정에 대하여〉)

이번 시간에 함께 읽은 부분에서 저는 이 구절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니체는 여기서 공유될 수 있는 덕, 이름을 지닌 덕을 갖지 말라고 말합니다. 이름을 지닌 덕이란 사회적으로 승인된, 모두가 그것을 알아볼 수 있는 덕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것을 받아들임에 있어 누구도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사회적 코드로부터 그 근거를 부여받는 덕. 이러한 덕을 지닌다는 것은 그 자신이 주어진, 승인된 가치들에 전적으로 복종하고 있음을 뜻합니다.

니체는 자신의 덕에 대하여 ‘더듬더듬’ 말하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자신의 덕에 대해 ‘유창하게’ 말할 때, 그것은 ‘보편성’을 자임하는 사회적이고 관습적인 가치들과 전제들로부터 근거를 끌어들이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우리의 덕을 ‘신의 율법’이나 ‘사람의 규약’, ‘없어서는 안 될 것’으로 변질시키고 있는 것이겠죠.

니체가 말하고자 하는 고귀함은 ‘반시대성’을 그 속성으로 갖는 것 같습니다. 니체가 정의하는 고귀함은 “광기에 가까운 희귀하고 유일한 척도를 사용하는 것, 다른 사람들에게는 차갑게 느껴지는 것에서 열정을 느끼는 것, 아직까지 그것을 잴 수 있는 저울이 없는 가치들을 간파하는 것 ……”(즐거운 학문)입니다. 그러니까 니체는 하나의 덕에 대해서 그것이 얼마나 선한 것인지, 유용한 것인지를 묻는 대신, 그것이 복종의 결과인지 능동적인 가치 창조의 결과인지를 물었던 것이죠.

이런 측면은 장자와도 통하는 것 같습니다. 장자 내편 〈덕충부〉에는 ‘덕이 완전한 사람’이 나오는데, 재밌게도 덕이 완전한 사람 애태타는 곧 ‘덕이 특정한 형태를 지니지 않은 자(德不形者)’입니다. 그는 어떤 출중한 능력을 지니지도 않았으며 특별히 도덕적인 인물도 아니지만, 사람들은 그를 떠나지 못하고 왕은 그에게 국정을 맡기고자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태타는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을 남겨두고 홀연히 떠납니다. ‘역량’이라는 측면에서 덕을 이해해보자면, 이런 것이야말로 덕이 있는 자의 모습이 아닐까요. 어떤 주어진 가치에도, 자신을 숭배하는 사람들에도 의존하지 않을 수 있는 힘. 니체가 말하는, ‘자신의 덕’을 갖는 다는 것도 이와 비슷한 게 아닐까 생각됩니다.

* 다음 주에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1부 끝까지(133페이지 까지)읽고 오시면 됩니다. 월요일에 말씀드린 것처럼, 책을 읽으면서 마음에 드신 구절이나 장을 정하고 그 구절/장에 대한 ‘자신의 해석’을 만들어 오는 것이 과제입니다. 간식은 수늬샘께서 맡아주셨습니다.
전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