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 한강

[대종사] 1

작성자
박규창
작성일
2018-05-29 16:11
조회
72
〈대종사(大宗師)〉라는 편명도 여러 해석이 있지만, 이번에는 ‘위대한 스승(道)’으로 해석으로 했습니다. 《도덕경(道德經)》은 천도(天道)를 본받은 존재로 성인(聖人)을 얘기하는데, 〈대종사〉에서도 비슷하게 진인(眞人)이 등장합니다. 《장자(莊子)》에는 진인이나 성인 말고도 지인(至人), 신인(神人)이 등장하는데, 유독 진인이 도사님들의 표본으로 자주 사용되고 〈대종사〉도 도사님들의 교과서(?)로 많이 채택된다고 합니다. 대표적인 게 이번 시간에 나온 종식(踵息 : 숨이 발뒤꿈치까지 이르는 것)인데, 깨알같이 나오는 도가 수련법을 틈틈이 따라해 볼까요? 《장자》를 이해하기 어렵다면 수련을 통해 도사에 도전해봐야겠습니다...!

 

知天之所爲, 知人之所爲者, 至矣. 知天之所爲者, 天而生也., 知人之所爲者, 以其知之所知, 以養其知之所不知, 終其天年而不中道夭者, 是知之盛也.

 

자연이 작동하는 것을 알고, 사람이 해야 할 바를 아는 사람이 지극한 사람이다. 자연이 작동하는 것을 아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태어난 그대로 살아가고, 사람이 해야 할 바를 아는 사람은 그 앎이 알고 있는 것으로 앎이 알지 못하는 것을 기름으로써 하늘이 내려준 수명을 마쳐서 도중에 요절하지 않는 사람이니, 이것이 앎의 성대함이다.

 

천이생(天而生)은 ‘태어난 그대로 살아가는 것’으로 천도(天道)에 맞춰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우쌤은 보다 익숙한 말로 표현한다면 생이지지(生而知之) 혹은 안이행지(安而行之)라고 하셨습니다.

이기지지소지, 이양기지소부지(以其知之所知, 以養其知之所不知)에서 양(養)은 ‘확충해나가다’의 뜻입니다. 조선 유학자들은 이 부분을 격물치지(格物致知)로 보기도 했습니다.

 

雖然, 有患. 夫知有所待而後當, 其所待者特未定也. 庸詎知吾所謂天之非人乎? 所謂人之非天乎?

 

비록 그렇다고 하나 걱정이 있다. 무릇 앎은 대상이 있는 뒤에야 합당하고, 그 대상이란 것은 유독 정해진 것이 아니다. 어찌 내가 이른바 천도(天道)라고 한 것이 인도(人道)가 아님을 알겠는가? , 어찌 [내가] 이른바 인도(人道)라고 한 것이 천도(天道)가 아님을 [알겠는가]?

 

대(待)는 ‘기다리다’가 아닌 ‘대상’, ‘객체’라는 뜻입니다.

기소대자특미정야(其所待者特未定也)는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대상이 고정된 것이 아님을 말한 문장입니다.

 

且有眞人而後有眞知. 何謂眞人? 古之眞人, 不逆寡, 不雄成, 不謨士. 若然者, 過而弗悔, 當而不自得也., 若然者, 登高不慄, 入水不濡, 入火不熱. 是知之能登假於道者也若此.

 

진인(眞人)이 있은 이후에 참다운 앎이 있다. 무엇을 일러 진인(眞人)이라 하는가? 옛날의 진인(眞人)은 남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삶을 거절하지 않았으며, 이루지 못하는 것이 없어도 자랑하지 않았으며, 의도를 가지고 일을 도모하지 않았다. 이와 같은 사람은 천시(天時)가 이미 지나도 후회하지 않으며, 합당하게 일을 처리해도 스스로 자랑하지 않는다. 이와 같은 사람은 높은 곳에 올라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물에 들어가도 젖지 않고, 불에 들어가도 뜨거워하지 않는다. 이는 앎이 도()에 이른 것이 이와 같은 것이다.

 

우쌤은 차유진인이후유진지(且有眞人而後有眞知)을 〈대종사〉의 표제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잠시 형성된 지식’보다 진인이라는 실천대상이 먼저 존재함을 뜻합니다.

과(寡)는 보통 ‘적다’라는 뜻으로 사용되는데, 여기서는 ‘소수적 삶’, ‘타인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삶’의 뜻으로 사용됐습니다.

웅(雄)은 ‘자랑하다’라는 뜻으로 벌(伐)과 같습니다.

성(成)은 단지 어떤 일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진인이 의도를 가지지 않고 모든 일을 해내는 것(無爲而無不爲)을 말합니다.

모(謨)는 ‘도모하다’라는 뜻인데, 긴 계획을 세우는 인위적인 것을 말합니다.

사(士)는 사(事)와 통용되어 ‘일’, ‘사건’의 뜻으로 사용됐습니다.

〈대종사〉에서 유독 고지진인(古之眞人), 약연자(若然者)가 많이 사용됐는데 우쌤은 시간이 지나면서 도중에 덧붙여진 증거라고 설명해주셨습니다.

과(過)는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지나치다’, ‘잘못을 저지르다’라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고, 다른 하나는 ‘일을 완수할 수 있는 천시(天時)가 지났음’으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부자득(不自得)은 ‘자랑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불벌(不伐)과 같습니다.

假 이 글자는 ‘틈’의 뜻으로 쓰일 때는 “가”로 읽지만, 여기서는 ‘이르다’의 뜻으로 사용됐고 “격”으로 읽습니다.

 

古之眞人, 其寢不夢, 其覺無憂, 其食不甘, 其息深深. 眞人之息以踵, 衆人之息以喉. 屈服者, 其嗌言若哇. 其耆欲深者, 其天機淺.

 

옛날의 진인(眞人)은 잠을 자도 꿈을 꾸지 않고, 깨어나서는 걱정거리가 없으며, 먹는 것도 달게 느끼지 않고, 호흡은 매우 깊었다. 진인(眞人)의 호흡은 발뒤꿈치에까지 이르는데, 대부분의 사람의 호흡은 목구멍에 미칠 뿐이다. 남에게 굴복하는 사람은 그 목구멍에서 나오는 말이 앵앵거리는 소리와 같다. 욕망을 추구하는 사람은 가지고 태어난 생명력이 얕아진다.

 

覺 이 글자는 ‘깨닫다’의 뜻으로 “각”으로 읽을 수도 있지만, 이번에는 몽(夢)과 대비해서 ‘잠에서 깨어나다’라는 뜻으로 해석하여 “교”로 읽었습니다.

감(甘)은 ‘달다’라는 뜻이지만 자극 그 자체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후(喉)는 ‘목구멍’이라는 뜻입니다.

기욕(耆欲)은 욕망을 추구하는 것을 말합니다.

 

古之眞人, 不知說生, 不知惡死., 其出不訢, 其入不距., 儵然而往, 儵然而來而已矣. 不忘其所始, 不求其所終., 受而喜之, 忘而復之, 是之謂不以心損道, 不以人助天. 是之謂眞人.

 

옛날의 진인(眞人)은 생()을 기뻐할 줄도 모르고, 죽음을 싫어할 줄도 모르니, 태어나는 것을 기뻐하지도 않고, 죽음을 거부하지도 않는다. 아무 이유 없이 갔다가 아무 이유 없이 돌아올 뿐이다. 그 시작된 곳을 잊지 않지만 마치는 곳을 구하지 않으며, 생을 받으면 기뻐하다가도 죽으면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니 이를 일러 마음이 도()를 손상시키지 않고, 인위로 하늘을 조장하지 않는 것이라 한다. 이를 일컬어 진인(眞人)이라고 한다

 

출(出)과 입(入)은 각각 ‘세상으로 태어나는 것’과 ‘원래 있던 곳으로 들어가는 것(죽는 것)’을 뜻합니다.

흔(訢)은 ‘기뻐하다’, 거(距)는 ‘거부하다’, ‘싫어하다’라는 뜻입니다.

숙(儵)은 주로 ‘빠르다’라는 뜻으로 사용되는데 여기서는, 주석을 참고하면, 무계모(無係貌), ‘얽매임이 없는 모양’이라는 뜻으로 사용됐습니다. 우쌤은 이것을 ‘아무 이유 없이’라고 얘기해주셨습니다.

망이복지(忘而復之)에서 망(忘)은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죽다’라는 뜻이고, 두 번째는 ‘[속세의 미련을] 잊다’라는 뜻입니다. 복지(復之)는 《도덕경》 40장의 반자도지동(反者道之動)에서 ‘돌아가다’라는 뜻의 반(反)과 같습니다. 《도덕경》 식으로 말하면, 뿌리(根)로 돌아가는 도의 움직임을 보여주는 글자입니다.

 

若然者, 其心志, 其容寂, 其顙頯. 凄然似秋, 煖然似春, 喜怒通四時, 與物有宜而莫知其極.

 

이와 같은 사람은 마음이 머무르는 바가 평안하고, 모습은 차분하고, 이마는 넓다. 서늘한 것이 마치 가을과 같고, 따뜻한 것이 봄과 같으며, 기쁨과 즐거움이 사계절과 통하고, 사물과 어울리는 것은 마땅하니 그 끝을 알지 못한다.

 

지(志)는 주로 ‘뜻’으로 사용되지만 여기서는 ‘마음이 편안한 상태’로 사용됐습니다.

적(寂)은 ‘고요하다’는 뜻으로 정(靜)과 같습니다.

상규(顙頯)에서 상(顙)은 ‘이마’를, 규(頯)는 ‘넓다’를 뜻합니다. 주석을 참고하면, 대박지모(大朴之貌)라고 돼있는데 넓은 이마가 덕성을 나타내는 모습 중 하나라고 합니다. 대표적으로 달마조사의 초상화에서 보실 수 있는 툭 튀어나온 이마입니다.

처(淒)는 ‘서늘하다’라는 뜻입니다.

煖 이 글자는 ‘덥다’라는 뜻으로 쓰일 때는 “란”으로 읽는데, 여기서는 ‘따뜻하다’라는 뜻으로 사용되어 “헌”으로 읽습니다.

희노통사시(喜怒通四時)는 감정의 과장이나 꾸밈없이 일어나고 흘러가는 거울같은 마음의 상태를 말합니다.

극(極)은 ‘수준’으로 해석되기도 하고, ‘끝’으로 해석될 수도 있습니다. ‘끝’으로 해석하면, “진인은 항상 천도에 부합되어 살기 때문에 그렇지 않은 때를 알 수 없다”로 번역됩니다.

 

故聖人之用兵也, 亡國而不失人心., 利澤施乎萬世, 不爲愛人. 故樂通物, 非聖人也., 有親, 非仁也., 天時, 非賢也., 利害不通, 非君子也., 行名失己, 非士也., 亡身不眞, 非役人也. 若狐不偕, .務光, 伯夷, 叔齊, 箕子, 胥餘, 紀他, 申徒狄, 是役人之役, 適人之適, 而不自適其適者也.

 

그러므로 성인(聖人)이 군대를 사용하면 나라를 멸망시켜도 [그 나라의] 백성들의 마음을 잃지 않고, 이로움과 은혜가 만세에 미치며, 사람에게 사사로운 사랑을 베풀지 않는다. 그러므로 사물에 흔들리면 성인(聖人)이 아니고, 사사로운 친함이 있으면 어진() 사람이 아니고, 하늘을 예측하려 하면 현인(賢人)이 아니고, 이해(利害)[나누어 하나로] 통하지 않으면 군자(君子)가 아니고, 부귀영화를 추구하여 자신을 잃으면 사()가 아니고, 몸을 잃을 때에 참된 본성을 지키지 않으면 남을 부리는 사람이 아니다. 호불해(狐不偕), 무광(務光), 백이(伯夷), 숙제(叔齊), 기자(箕子), 서여(胥餘), 기타(紀他), 신도적(申徒狄)과 같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일에 부려지고, 다른 사람의 즐거움을 즐거워하니 스스로 그 즐거움을 누리는 사람이 아니다.

 

고성인지용병야, 망국이불실인심., 이택시호만세, 불위애인.(故聖人之用兵也, 亡國而不失人心., 利澤施乎萬世, 不爲愛人.) 이 부분은 갑자기 성인이 등장하는 것도 그렇고 군대를 쓰는 얘기가 맥락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착간으로 취급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그랬듯이 손대지 않고 있는 그대로 해석하기로 했습니다. 우쌤은 군사를 쓰고, 은혜를 베푸는 것이 천도를 본받은 성인의 모습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기보다 지나친 것을 바로잡고 모자란 것을 채워주는 조절 기능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락통물(樂通物)은 ‘사물에 따라 바뀌는 즐거움’입니다. 통(通)은 사물에 흔들리는 것을 말합니다.

친(親)은 ‘사사로운 사랑’, ‘아낌’입니다.

천시(天時)는 ‘일이 되어가는 것을 예측함’을 말합니다.

역인(役人)은 ‘다른 사람을 부리다’라는 뜻으로 ‘주체적 삶’을 뜻합니다.

적(適)은 락(樂), 유(遊)의 뜻으로 사용됐습니다.

 

古之眞人, 其狀義而不朋, 若不足而不承., 與乎其觚而不堅也, 張乎其虛而不華也., 邴邴乎其似喜也! 崔乎其不得已也! 滀乎進我色也, 與乎止我德也. 厲乎其似世也! 謷乎其未可制也., 連乎其似好閉也, 悗乎忘其言也.

以刑爲體, 以禮爲翼, 以知爲時, 以德爲循. 以刑爲體者, 綽乎其殺也., 以禮爲翼者, 所以行於世也., 以知爲時者, 不得已於事也., 以德爲循者, 言其與有足者至於丘也., 而人眞以爲勤行者也. 故其好之也一, 其弗好之也一. 其一也一, 其不一也一. 其一與天爲徒, 其不一與人爲徒. 天與人不相勝也, 是之謂眞人.

 

옛날의 진인(眞人)은 그 모습이 [사물과 더불어] 마땅하되 사사로이 무리 짓지 않고, 부족한 것 같으면서도 권위를 빌리지 않으며, 뛰어난 경지에서 노니는 듯해도 [잘났다고] 고집 부리지 않고, 비어있는 곳에서 자신을 확장시켜도 화려하게 꾸미지 않으며, 환하게 기뻐하는 것이 기쁜 일이 있는 듯하구나! 어쩔 수 없어서 움직이는 듯하구나! 윤기 있음이 내 얼굴에도 영향을 주는 듯하고, 여유로움이 내 덕을 차분하게 만드는 듯하며, 까다롭지만 [겉으로는] 세상 사람과 비슷한 듯하구나! 크게 존재하나 가늠할 수 없으며, 말이 없어 감추기를 좋아하는 듯하고, 무심한 모습이 말을 잊은 듯하다.

형벌을 정치의 본체로 삼고, ()를 도우는 수단으로 삼고, 앎을 때에 맞춰 움직일 판단으로 삼고, ()을 따름의 원칙으로 삼는다. 형벌을 정치의 본체로 삼는다는 것은 관대함으로 죽이며, ()를 도움의 수단으로 삼는다는 것은 세상에 행해지기 위한 방법이며, 앎을 때에 맞춰 움직일 판단으로 삼는 것은 일에 있어서 어쩔 수 없기 때문이며, ()을 따름의 원칙으로 삼는 것은 잘 걷는 사람과 함께 언덕에 이른 것을 사람들은 참으로 열심히 걸은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므로 그 좋아하는 것을 한가지로 여기고, 좋아하지 않는 것도 한가지로 여긴다. 그 한가지도 한가지이며, 그 한가지가 아닌 것도 한가지다. 그 한가지는 하늘과 더불어 무리가 되고, 그 한가지가 아닌 것은 사람과 더불어 무리가 된다. 하늘과 사람이 서로 견줄 수 없는 것이니, 이를 일러 진인(眞人)이라고 한다.

 

이 부분은 진인에 대한 설명이 특히 많은데, “~와 같다”, “~인 듯하다” 같은 용법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불붕(不朋)은 사사로이 마음을 쓰지 않는 것, 무친(無親)을 말합니다.

승(承)은 권위를 빌리는 것입니다.

여호기고이불견야(與乎其觚而不堅也)에서 여(與)는 유(遊)의 뜻이고, 호(乎)는 ‘~에’라는 뜻으로 어조사 어(於)와 같습니다. 고(觚)는 ‘홀로 높은 수준의 정신적 경지’를 뜻합니다.

장(張)은 ‘[자신을] 확장하다’라는 뜻입니다.

병(邴)은 ‘기뻐하는 모양’입니다.

주석을 참고하면, 최(崔)는 ‘움직이다’(動)라는 뜻으로 사용됐습니다.

려(厲)는 ‘사사롭지 않기에 엄격한 모습’을 뜻합니다.

오(謷)는 ‘자유롭고 큰 존재의 모습’을 뜻합니다.

제(制)는 ‘가늠하다’라는 뜻입니다.

悗 이 글자는 ‘의혹하다’의 뜻일 때는 “만”으로 읽지만, ‘잊다’의 뜻일 때는 “문”으로 읽습니다. 여기서는 ‘잊다’라는 뜻으로 해석했습니다.

익(翼)은 ‘날개’라는 뜻으로 자주 사용되지만, 여기서는 ‘돕다’, ‘보조수단’이라는 뜻으로 사용됐습니다.

유족자(有足者)는 ‘발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잘 걷는 사람’, ‘빨리 걷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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