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과 글쓰기

5월 9일 1주차 후기

작성자
은정
작성일
2021-05-15 22:43
조회
82
5.9 주역 2학기 1주차 후기

2학기의 첫 시간 후기 올립니다.  저는 우주변화의 원리와 융의 책을 읽으면서 한글이 더딘 저희반 아이가 생각났습니다.  글자는 읽었는데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책을 읽으며 막막한 느낌이었어요. 도대체 주역과 우주변화의 원리, 융의 원형과 무의식은 어떻게 연결될지 궁금합니다.

물질과 정신

이번 학기의 목표에 대해 채운 선생님께서 먼저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번학기의 큰 질문은 물질은 뭐고 정신은 뭐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물질이라고 부르는 게 뭘까요? 물질이라는 게 물질 그 자체로 완성된 형태가 존재하는 것은 없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엄마 뱃속에 잉태될 때 지금 사람의 형태가 아니라 수정란으로 잉태됩니다. 그게 점점점 진화를 거듭하면서 사람 꼴로 만들어 지는 거겠지요. 처음 잉태된 물질은 뭘까요? 그렇다면 인간은 어디서부터 인간인 것인가요? 그것도 잘 알 수 없습니다. 이 지구상에 수많은 물질이 있는데 물질이라는 것은 뭐냐는 겁니다. 물질이라고 하는 것도 아주 단순한 물질도 그 물질이 되기까지에 에너지와 그 에너지에 작용하는 법칙이 있어야 물질로 만들어 집니다. 우리가 뱃속에 지금 모습으로 잉태되는 것이 아니거니와 물질이 애초에 고정된 형으로 form으로써 딱 있는 게 아닙니다.

모든 것은 에너지라고 볼 수 있어요. 기는 에너지인데, ‘그 에너지가 어떤 운동 속에서 뭔가 덩어리지는 것을 만들어 내는가?’가 질문이 됩니다. 모든 물질이라는 것은 기가 뭉치고 응집된 것입니다. 정신도 기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말하는 것을 듣거나 다른 사람의 눈빛을 보거나 하면 기를 느낍니다. 정신이라고 하는 것은 관념이 아닌거지요. 정신과 물질을 우주변화가 만들어내는 형태인 것입니다. 그 형태가 애초부터 형태를 가진 것이 아니라 형태 없는 것으로부터 형태성을 가지고 나타납니다. 그 원리가 무엇인지를 이번학기에 배울 예정입니다. 그 원리를 이해하지 않으면 우리가 몸과 정신을 실체화합니다. 우리가 몸과 마음을 그리고 물질과 정신이라고 하는 것을 실체화 하면서 그것에 문제가 생길 때 문제의 해결책을 손쉽게 도려내고 잘라내려고 합니다. 병도 내가 있는데 나하고 분리된 나쁜 무엇인가 있다고 여깁니다. 그러면 그 병을 치유할 수 없고, 도려내야 합니다.

우주변화의 원리를 읽으면서 이 ‘우주의 작동의 작동이라는 게 변과 화인데 변과 화가 도대체 뭐냐?’ ‘이게 어떤 매커니즘 속에서 운동하면서 물질적인 상태를 만들어내기도 하고 정신을 만들어 내기도 하느냐?’ 이것을 이해함으로써 우리 자신을 다르게 이해할 수 있다고 합니다. 지금의 사회는 불편한 것을 소거하려고 합니다. 아픔은 소거하고 두루두루 다 잘 지내려고 노력합니다. 이런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동등하게 행복과 권리를 누릴 수 있을까요? 모두가 부자가 될 수 있을까요? 숲의 나무가 똑같이 않듯이, 자연이 허무하게 죽어버리는 나무가 있고 몇 백년을 사는 나무가 있듯이, 인간사도 그런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생각하는 것이 궁극적인 지점에서 변과 화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채운 선생님께서는 저희들에게 2학기는 우주변화의 변화를 읽고 8괘를 어떤 구도 속에서 추상해 낸 것인지, 그 원리를 이해하는 것이 목표라고 하셨습니다. 8괘를 알려면 음양의 운동을 알아야 하구요.  1학기 때 주역을 배웠을 때 8괘는 자연현상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의 심성과도 짝이 지어져있습니다. 택괘가 연못을 의미하기도 하지면 정서적으로 기쁨을 나타내듯이요. 그 원리들이 물질적인 형태로든 정신적인 형태도로 나타난다고 합니다. 물질이든 정신이든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변화의 원리에 의해 형태화 되었을 때 우리들이 물질이니, 정신이니 이름을 붙이는 것입니다. 그것들이 출현하는 매커니즘을 배우는 것이 2학기의 공부입니다.

화천대유괘

대유괘의 상을 생각하면 하늘 높이 불 즉 밝은 것이 있으면서 넓게 비춰주는 그림이 그려집니다. 이미지 자체가 풍요로운 괘입니다. 대유는 물건을 많이 가졌다기보다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니까 사물들이 다 풍요롭게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선생님께서는 니체의 이야기로 더 설명을 해주셨는데요. 니체는 정오의 시간을 좋아한다고 합니다. 그림자가 가장 짧기 때문에 우리가 그 그림자를 그 사물이라고 오인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니체에 표현에 따르면 사물들이 어떤 위계도 없이 각자의 고유한 형태를 자신있게 주장하는 시간이 정오의 시간입니다. 이 세상에는 더러운 것도, 깨끗한 것도 모든 것이 공존할 수 있는 시간이 정오의 시간이고 이게 대유의 시간입니다. 밝은 하늘 아래 사람들이 모여들고 모든 것들이 다 공존을 하는 때입니다. 하괘의 건괘는 강건한 것들이 아래에 있어 위로 움직입니다. 상괘인 리괘는 밝은 문명을 의미합니다. 문명이 있다는 것 자체가 사람들이 좋은 사회를 이루고 산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풍요로울 때 인간이 지켜야 할 경계해야 하는 것은 자기꺼라고 주장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 풍요로움은 자기가 잘 해서 되는 것이 때의 덕입니다. 이미 이것으로 충분한데 사람들은 더 충분하고 좋은 것을 탐하려고 합니다. 풍요로운 것에 만족하지 않고 풍요로움이 또 다른 풍요로움의 결함으로 느껴져서 탐심을 놓지 못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대유괘에서는 풍요로운 세상에는 더 탐하지 말라는 것을 우리에게 이야기 합니다.

효사를 살펴보면 대유괘에서는 다 양인데 군주의 자리인 오효가 음효입니다. 군주가 자기를 비우고 탐하지 않아서 좋다고 해석합니다. 다만 오효가 위엄이 있어야 한다고 했는데 위엄이라는 것이 무엇일까요? 해설에 보면 오효가 자칫 놓치기 쉬운 게 있습니다. 자기를 비우고 음유하게 하면 음유함이 지나치게 돼서 음유함만 견지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위엄입니다. 왕의 자리의 위엄은 -원리원칙이다. 위엄이라고 하는 것은 흔들리지 않는 굳건함입니다. 일희일비하고 여기저기 휩쓸리는 사람은 위엄이 없습니다. 군주는 마음을 비우고 자신의 원리원칙에 따라서 아랫사람을 대해야 합니다. 그래야 아랫사람이 군주를 엎신여기지 않습니다.

또 대유괘에 독특한 것은 상구입니다. 보통 괘상이 좋은 의미의 효사의 상구는 안 좋은 의미가 많습니다만 대유괘는 상구도 긍정적으로 해석됩니다. 소유하고 잘 나가는 시기인데 상구는 어떤 자리도 자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맨 위의 자리는 누리고 향유하는 자리가 아니고, 지위도 없습니다. 풍요로운 이 세상을 자기 것으로 소유하려고 하는 마음이 안 생기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해석됩니다.

화택규

앞의 화천대유괘는 하늘도 올라가고 화도 올라가는 통일성이 있습니다. 반면 화택규는 위는 불이고 아래는 연못이라 서로 반목합니다. 규는 소소한 분쟁, 분열을 의미합니다. 소소한 의견의 대립이나 같이 뭔가 하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 서로가 불편한 때입니다. 규괘의 때, 우리의 행동은 거칠게 밀어붙이면 안 됩니다. 그러면 오히려 갈등이 커집니다. 이럴 때는 점진적으로 조율해야 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규괘의 대립은 일치가 불가능한 대립이 아닙니다. 도리어 뭔가가 어긋나고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은 오히려 기회일 수 있습니다. 그걸 통해서 통합으로 나갈 수 있는 기회라고 여길 수 있는 거지요.

상전에 군자가 규괘를 보고 동하고 이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동이라는 것은 전체가 흐트러지는 상황은 아니기에 기본적으로 이 사람들을 아울러서 가야 한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아울러서 가면서도 거기에서 세부적인 것들을 하나로 통일시키면 안 된다는 겁니다. 우리가 누군가와 갈등을 할 때 가져야 하는 마음은 모두의 본성은 같다는 것입니다. 성인은 본성에 있어서 모든 사람들이 같다는 것을 봅니다. 우리는 본성적으로 동일한 존재이며 그러니까 누구도 자신의 치우친 기질을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인간에 대한 신뢰를 가져야 한다는 거겠지요. 성인은 인간의 본성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믿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다름들에 대해서 자기의 다름을 지키든 타인의 다름을 허용하든 다름을 없애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숙제로 대유괘와 규괘를 읽으면서 저는 그 괘가 좋냐, 나쁘냐를 판단을 하면서 읽었습니다. ‘규괘는 참 심난하구나’ 하면서요. 갈등이 없는 상황을 좋은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갈등을 나 아닌 누군가의 잘못 때문이라고 원인을 특정 짓고, 그 사람이 고치면 평화가 올 거라고 생각했습니다.수업을 들으면서 모든 괘는 그 괘가 좋냐 나쁘냐가 아니라 좋든 나쁘든 그 상황속에서 우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고민하는게 필요한 것 같습니다. 어떤 때가 오든 그 상황에서 지혜롭게 살아갈 수 있다면 모든 괘가 나에게 좋은 괘가 될 것 같습니다.

후기 늦게 올려서 죄송합니다. 다들 내일 뵈어요~
전체 1

  • 2021-05-21 12:25
    아니 이런 꼼꼼한 후기가 있었네요. 읽으면서 은정샘답다고 생각했어요 ㅎㅎ
    기(氣), 또는 정보 등으로 인간을 이해한다는 것이 주체가 아닌 변화의 과정으로서, 인간을 보려는 시도들이었던 것 같은데, 막상 닥친 사건 앞에선 깜빡 잊어버리게 되죠.
    괘를 읽으면서도 운동보다는 잣대를 먼저 대게 만들기도 하구요. 지혜롭게 상황을 맞기, 군자되기, 그리 되도록 달달 외우며, 주역을 따라가 보아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