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과 글쓰기

5월 23일 3주차 후기

작성자
만화
작성일
2021-05-28 00:29
조회
114
火風鼎, 火水未濟 (5/23 후기-만화)

제 목 : 꿈보다 해몽

지천명의 시기에는 하늘이 나에게 내려준 소명을 아는 게 당연한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사주팔자, 별자리, 주역 등을 통해 알 수도 있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명리학에도 관심을 가져봤습니다만 내 생겨먹은 꼴의 의미를 찾아 그에 맞게 살다 후회 없이 떠나리라는 제 바람은 아무래도 남은 인생 다 쏟아 부어도 이루기 힘들 것 같습니다. 명리학도 주역도 별자리도 다 기호일진대 이 기호의 의미는 아무리 파헤쳐도 정답을 만날 수가 없나봅니다. 어찌나 의미의 스펙트럼이 다양한지... 그러니 내 꼴을 무엇을 통해 알아낼 수 있을까요...?

화풍정의 鼎은 인간의 문명으로부터 생겨난 인간의 피조물이 상으로 쓰였습니다. 우주의 이치를 드러내는 주역에 인간 피조물의 등장이 -한낱 솥단지에 인간사의 길흉과 세상 이치를 대입하는 것이- 가당한가 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 정이천은 말합니다. “분명히 인간의 작위이지만, 음식을 삶아서 조리하면 음식물을 완성할 수 있다. 형체를 제작하여 이러하다면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니, 이것은 인간의 작위가 아니라 자연에 내재된 가능성이 드러난 것이다.”(정이천, 『주역』991쪽) 이에 더해 우물을 상징하는 井괘도 그렇듯 ‘문명의 이기들은 분명 괘보다 먼저 있었지만 그 기물들에서 취한 것이 바로 괘의 모습이고, 괘는 다시 기물을 사용하여 뜻을 삼은 것’이라고 합니다.

예컨대 참빗을 만들어 쓰는 옛사람이 참빗을 보고 괘를 취하고, 빗을 사용하며 갖게 되는 의미, 이를테면 가지런히 하다, 단정히 하다, 벌레를 걸러내다, 뭐 이런 뜻을 괘의 의미로 삼을 것이란 말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 모든 유물질의 존재들과 현상들을 하나의 象으로 감각할 수 있어야 하며, 그 안에 내재된 괘를 취할 수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내가 늘 만드는 계란말이의 모양이 오늘따라 뚱뚱해진 것도, 멀쩡하던 칫솔이 하필 오늘 양치질 할 때 부러지는 것도, 오늘따라 휴대폰 교체광고전화가 유난히 많이 걸려 오는 것도 ‘자연에 내재된 가능성’이 드러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 일상(日常)을 일상(一象)으로 눈 여겨 봐야겠습니다.

요리에는 직화 요리가 있는가 하면 간접적으로 열을 가하는 요리가 있습니다. 화풍정의 괘는 나무를 때서 불을 지펴 바로 음식을 굽는 직화가 아닙니다. 정이라는 가마솥을 매개로 기름이나 물이 불과 바로 만나지 않지만 충분히 불의 열을 전달받아 만물이 변혁하고 융합하게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화풍정의 괘는 우리 주역수업과 닮아 보입니다. 나무를 때서 불을 일으키는 것처럼 주역은 뜨겁고 밝은 이치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 학인 같은 다양한 식재료들은 그 이치를 아직 잘 알지 못합니다만 나름 세상의 의미와 쓰임을 얻고자 합니다. 여기에 우리 채운 선생님 같은 가마솥은 스스로를 희생하여 불을 온몸으로 겪어 물을 데우고 식재료에 이치를 전달토록 합니다. 이 때에 우리반장 혜원샘 같은 물이 꼭 있어야 우리는 쉽게 열을 전달받아 변혁을 통해 훌륭한 요리로 거듭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난 시간 채운 선생님의 병가로 주역수업은 가마솥 없는 직화요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주역의 이치와 의미도 모른 채 토론정리를 하다가 장렬히 재가 되었습니다. 초육효에서 말합니다. “솥의 발이 뒤집어졌지만 나쁜 것을 쏟아내니 이롭다.”(같은책 996쪽) 채운 선생님의 이번 병가를 대입해 해석해 본다면 선생님은 때가 이르렀기에 치료를 하신 것이고 “부패한 것과 나쁜 것을 기울여 쏟아내서 깨끗하게 하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면 좋”(같은책 997쪽)을 것 같습니다. 부디 이번 병가가 선생님의 가마솥을 주역학인으로 가득 채우시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시길 바라 봅니다. 꿈보다해몽이라구요...?!?!
전체 4

  • 2021-05-28 10:08
    우물과 솥의 그 깊고 오랜 문명사적 의미에 대해 새삼 생각해보게 되네요. 그리고 일상(日常)을 일상(一象)으로 눈 여겨 봐야겠다는 말씀도 정신없이 지나가는 저의 시간 속으로 불쑥 파고들고요. 감사합니다!!! 솥채운, 물혜원은 덤~~~ㅋㅋㅋ

    • 2021-05-30 21:38
      황리선생님의 댓글에 제 글이 뭔가 의미를 얻은 것 같습니다 ^^ 솥채운, 물혜원... 주역반 어록에 남기겠습니다~!

  • 2021-05-28 15:20
    정괘를 통해 象과 실재가 하나의 다른 측면이라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어요. 이걸 샘이 일상(日常) 에 일상(一象) 이 담긴 것으로 풀어주시니 , 저의 태도를 한 번 더 살피게 되네요.
    재미지게 읽었습니다~~~

    • 2021-05-30 21:50
      정옥선생님께서 재미있게 봐주시니 조금 덜 창피해졌습니다...^^; 오늘도 선생님의 따끈한 뜸 덕분에 수업 끝까지 기운이 났습니다! 고맙습니다~~~^^ 몸살림! 기운살림! 사람살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