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탁마 S

절차탁마S 1학기 9주차 공지 '자기 발밑의 번뇌'

작성자
박규창
작성일
2021-04-10 12:00
조회
112
다음 시간에는 에티카 2부 정리 25(63쪽), 〈모나드론〉 48번(274쪽)까지 읽어 오시면 됩니다. 라이프니츠를 정리하고 스피노자를 환기할 겸 이 둘이 사용하는 ‘지각’, ‘복합체’, ‘완전성’이란 개념들을 나름대로 정리해오시면 됩니다. 셋 중 하나만 해도 정리가 잘 안 될 것 같은데...(징징) 일단 해보는 거죠, 뭐! 정희쌤과 진아쌤께서도 이 주제로 과제를 하시면 됩니다. 간식은 현정쌤께 부탁드릴게요~

 

에티카를 읽을 때마다 고대 중국의 사유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스피노자는 “현자는 죽음을 생각하지 않으며, 그의 지혜는 삶에 대한 명상이다”라고 했죠.(에티카4:67) 여기서 삶은 고대 중국에서 말하는 생성소멸하는 자연의 리듬으로서의 삶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개체의 실존을 사유하되 그것에 집착하지 않고, 개체의 실존을 가능케하는 원리로부터 개체의 윤리를 도출해내는 것. 고대 중국에서 상호의존하는 세계의 원리로부터 아(我) 혹은 사(私)에 의해 분별하고 집착하는 것을 경계하고, 그로부터 우리가 따라야 할 지혜를 도출하는 것. 그래서 스피노자를 공부할 때는 고대 중국이 떠오르고, 고대 중국을 공부할 때는 스피노자가 떠오릅니다. 개념을 돌려막는 느낌이 없진 않지만, 나름대로 개념을 확장시킬 수 있을 것 같단 말이죠.

채운쌤은 스피노자와 고대 중국이 자기 발밑의 번뇌를 사유의 출발점으로 삼는 데서 겹친다고 하셨죠. 내가 겪는 문제들의 원인은 세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에 있습니다. 그런데 번뇌를 겪는 마음의 해방은 나와 함께 불편함을 겪었던 사람들의 마음을 함께 해방시키는 것과 분리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들이 얘기하는 마음의 평화는 우주적인 스케일 속에서 다뤄집니다. 가끔 에티카를 읽을 때마다 감동을 느끼는 지점도 여기인 것 같습니다. 뭐랄까, 나는 문제도 아닌 것들에 매달려있었다는 느낌이 종종 듭니다.

이번에 에티카 강독에서도 우리가 겪는 문제들은 결국 협소한 나를 벗어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를 들어, ‘배탈이 나서 못 갔다’고 말할 때는 ‘배달’이란 사건이 없었다면 나는 갈 수 있었다는 의지가 전제됩니다. 여기에는 나의 의지를 방해하는 사건이 있죠. 그러나 배탈이란 사건을 겪고 가지 않은 것 또한 나의 의지입니다. 의지는 사유와 행위의 출발점이 아니라 육체와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변용됩니다. 전에는 이렇게 생각하는 게 무슨 소용인가 싶었지만, 지금은 이런 생각들이 그 자체로 나를 힘들게 할 수밖에 없다는 게 조금은 알게 됩니다. ‘내가 만난 스피노자’가 아직 잘 그려지지 않았지만, 일단 스피노자에 대한 감동을 다시 느끼는 중입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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