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탁마 S

1학기 8주차 후기

작성자
이정수
작성일
2021-04-11 11:11
조회
315
1. 서양의 철학이 존재의 근원(=아르케)을 묻는 것으로부터 사유를 시작한다면, 중국의 유학이나 불교는 ‘자기 발밑의 번뇌’, 즉 우리가 지금 무엇을 겪고 있는가 하는 것으로부터 사유를 시작한다. 서양의 고대 사유는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을 인격화하고, 우주를 관장하는 신의 관점에서 세계를 바라본다. 반면, 동양의 사유는 인격화되지 않은 ‘스스로 그러한’ 자연을 모델로 삼고, 번뇌의 원인을 무언가를 번뇌라고 규정짓는 ‘나’에게서 찾는다. 동양의 사유에 따르면 생로병사 없는 세상을 꿈꾸는 我, 탐욕 없는 세상을 꿈꾸는 私를 해체하면 세계는 있는 그대로의 실상으로 드러난다. 여기서 해체의 원리는 모든 만물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이해하는 데로부터 나온다.

이런 점에서 스피노자의 사유는 동양적 사유와 통하는 바가 있다. 스피노자는 17세기의 과학적 발견에 근거해, 불멸의 영혼은 존재하지 않고 신은 철학적으로만 존재할 뿐이라고 추론했다. 하지만 그의 견해는 유대 공동체 내에서 용인되지 않았고, 공동체는 그를 파문, 추방했다. 스피노자의 철학적 사유 역시, 왜 유대교의 힘은 자신을 구속하는지, 왜 자신은 유대교의 계율을 따라야 하는지와 같은 발밑의 고민과 번뇌로부터 시작된 것은 아닐까? 스피노자도 역시 신으로부터 출발하지만, 그의 신은 양태와 분리되는 신이 아니다. 오히려 스피노자는 양태의 관점에서 신을 요청한다. 양태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양태들과의 무한한 인과 연쇄 속에서만 특정한 양태로 존재한다. 스피노자에게는 양태들의 변화무쌍한 원리 전체가 바로 신이다.

창조주인 신의 관점에서 세계를 보면 번뇌의 원인에 대한 답을 구할 수 없고, 다시 신에게로 돌아갈 뿐이다. 하지만 양태의 차원에서 출발하면, 실존적 번뇌의 원인을 부적합한 관념이라든가 정념 등으로 사유해볼 수 있다. 양태는 부적합한 인식과 정념으로부터 벗어남으로써 자아를 긍정하고 지복에 이를 수 있으며, 이 과정은 자의식의 해체과정과 다르지 않다. 자아의 해체가 자아를 긍정으로 이끈다. 개체는 자연 안에서 일어나는 개체화의 결과이므로 변화의 가능성도 자연 안에 있다. 모든 것은 자기의 문제일 때만 자기해방이 가능하다. 문제가 나한테 있기 때문에 내가 나를 해방할 수 있는 것이다.

2. 데카르트 이전의 자연학은, 물체가 질료와 형상의 결합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점으로 환원될 수 있다. 여기서 형상이란 질료에 내재되어 있는 목적, 기능이다. 이에 대해 데카르트는 형상 개념을 버리고 물체를 넓이, 높이, 길이를 갖는 연장으로 보았으며, 물체의 성질을 기하학적 차원으로 설명했다. 또한 아리스토텔레스는 물체의 변화를 처음부터 형상성 속에 부여되어 있는 것으로 보았으나, 데카르트는 변화를 입자들이 자리를 바꾸는 운동의 개념으로 파악했다. 데카르트에 따르면 물체는 방해물이 없다면 관성에 따라 계속 운동한다. 하지만 데카르트의 경우도 물체는 불활성의 덩어리일 뿐 최초의 운동은 신으로부터 부여되어야 했다.

3. 반면, 스피노자에게 정신과 물체는 나누어지지 않으며, 신은 물질세계로 자신을 표현하기도 한다. 물질세계는 다양한 사물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끊임없이 산출되는, 자연 법칙에 따르는 세계이므로 물질세계에 영혼 또는 정신을 집어넣을 필요가 없게 된다. 물체 자체가 운동과 정지를 내재하고 있으며, 개별 물체는 연장을 표현할 뿐 아니라 ‘운동과 정지’의 관계 속에서 자기와 전체 자연 법칙을 표현하기도 한다. 세계는 운동과 정지의 일정한 비율 아래서 모든 것이 모든 것과 연결되어 끊임없이 운동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개체는 개체화의 원리에 따라 여전히 상대적 안정성, 즉 개체성을 유지한다. 스피노자는 『윤리학』의 자연학 소론에서 단순한 물체의 개념을 통해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을 해체하고, 합성된 물체의 개념을 통해 데카르트의 자연학을 비판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파르메니데스의 ‘지속적 정지’와 헤라클레이토스의 ‘지속적 운동’을 동시에 비판하면서, 모든 물체는 때로는 운동하고, 때로는 정지한다고 했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운동이란 형상이 현실화되는 과정이며, 이 운동에는 신이 부여한 목적이 있고, 따라서 늘 ‘끝’을 갖는다. 하지만 데카르트는 물체의 운동에 관성 개념을 도입하면서, 신은 운동의 최초의 촉발자일 뿐이며 물체들은 외부의 방해가 없다면 계속 운동한다고 주장했다. 스피노자는 더 나아간다. 모든 물체는 운동과 정지의 양태를 띤다. 모든 물체는 다른 물체에 의해 변용되면서 다른 물체를 변용하는 상호 운동과 정지의 관계 속에 있다. 개체는 개체화의 원리에 따라 끊임없는 변용과 변이의 과정 속에서도 자신의 운동과 정지의 일정한 비율을 보존, 유지한다.

일정한 비율을 이루면서 상호작용하는 사회공동체도 하나의 개체이며, 나와 환경이 일정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같이 간다면 나와 환경도 하나의 개체라 할 수 있다. 개인과 사회, 또는 개인과 환경은 대립하지 않는다.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한다는 것은 우리가 어떻게 서로 운동하고 정지하는 새로운 비율을 발명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모든 것은 무언가에 의해 구성되는 결과이자, 무언가를 구성하는 원인이다. 모든 것은 어떤 것의 전체이자 어떤 것의 부분이다. ‘나’라는 개체는 다른 개체들과의 상호운동 속에서 표현되고 있는 존재이므로, 상호운동의 지점이 달라지면 내가 표현되는 방식이나 나의 비율이 달라질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4. 라이프니츠는 신의 관점에서 세계를 보려 했다. 중세의 세계관에서는 신과 악이 양립할 수 없었다. 악을 긍정하면 신을 부정해야 하고 신 존재를 긍정하면 악을 부정해야 했다. 하지만 라이프니츠의 신은 모든 것을 다 알고 모든 것이 함축되어 있는 세계를 만들었으므로 신과 악이 양립할 수 있었다. 신의 관점에서는 이 세상의 악조차도 나쁜 것이 아닌 것이다. 매우 낙관적인 세계관이라 할 수 있다. 스피노자와 달리 라이프니츠는 여전히 신의 관점에 머물며 양태로 내려오려 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어떻게든 데카르트의 이원론을 넘어서고자 했으며, 이를 위해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상 개념을 다시 가져온다.

라이프니츠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상 개념의 내용을, 존재하는 것들이 변화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힘, 계속 보존되는 힘’으로 변형한다. 데카르트의 모델이 기계적이라면 라이프니츠의 모델은 생물학적이다. 라이프니츠는 후기로 오면서 자신의 실체 개념을 ‘자기 안에 에너지를 가지고 변화하는 생명체’로 정의한다. 라이프니츠에 따르면 생명체란 영혼을 지니고 있는 몸이다. 세계는 살아있는 힘, 에너지로서의 영혼, 모나드로 구성되어 있으며, 무기물도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는 의미에서 살아있다. 여기서 살아있다는 것은 에너지가 유동적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며, 이 에너지는 신의 지성이 미리 예정한 질서에 따라 움직인다. 모나드는 근원적 생명력으로서 물체에 내재한 에너지라 할 수 있다. 모나드는 다른 것과 구별되는 독특한 본질을 갖는 것으로, 이 세계의 본질은 모나드들의 총체인데 그 본질 안에 다시 각자의 고유한 본질을 갖는 모나드들이 또 들어 있는 모습이다. 라이프니츠에게는 데카르트적 의미의 물체는 실재하지 않고 살아있는 영혼만이 실재한다. 라이프니츠의 일원론은 데카르트적 의미의 물체에서 연장적 성질을 제외하고 거기에 영혼을 결합한 형태일까?
전체 3

  • 2021-04-12 14:36
    사유 자체를 놓고 보면 스피노자와 동양이 통하는 지점이 있지만, 서구의 토대 속에서 스피노자적 사고가 탄생한 게 신기합니다. 어쩌면 토론 때 나온 가설처럼, 16~17세기에 스피노자적 사고와 데카르트적 사고가 공존했는데, 데카르트적 사고가 우세해진 걸 수도 있겠죠. 그런데 여기서도 결국 데카르트적 사고가 남은 것은 그만큼 스피노자적 사고가 서구인들의 사고방식과 결이 다르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최근 주역에서 고대 그리스의 사유를 보면, 인격화된 세계, 계약의 모델 등등이 보인단 말이죠. 그런 점에서 들뢰즈가 <차이와 반복>에서 철학의 계보를 정리한 게 생각나기도 하고... 여튼, 여러모로 문제적 인물이네요!

  • 2021-04-13 09:46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한다는 것은 우리가 어떻게 서로 운동하고 정지하는 새로운 비율을 발명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라고 하신 말씀이 남네요. 샘께서는 (한국사회에서? 일상이나 주변환경에서?) 어떤 새로운 운동과 정지의 비율을 모색하고 계신지 정말 궁금합니다(언제 규창이랑 해서 막걸리 한 잔... 하며 듣고 싶네요 ㅎㅎ).

    • 2021-04-13 11:02
      막걸리 한 잔... 좋지요. 한 번 어울려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