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기너스

비기너스 시즌3 네 번째 시간(2.4) 후기

작성자
근영
작성일
2020-02-07 16:47
조회
147
안녕하세요~ 비기너스 4주차 후기를 맡은 김근영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여파로 저희 모임도 많은 분들이 불참하셨습니다. ㅠㅠ
자신은 없지만, 못오신 분들도 이날의 토론내용을 잘 아실 수 있게 최대한 자세히 후기를 남겨볼게요 ^^;;

이 날 참석한 8분의 발제문을 모두 다루진 못했지만, 3분의 발제문을 중심으로 그림자노동에 대한 전반적인 얘기를 나눴습니다.

먼저, 김훈선생님께서 ‘유튜브’라는 좋은 주제를 던져주셔서 ‘유튜브활동’을 어떻게 볼 것인지에 대해 긴 토론을 이어갔습니다.
유튜브활동은 ‘그림자노동’일까요? 개인이 하는 수많은 무급 활동이 결국은 공식경제를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는 측면에서 ‘그림자노동’으로 보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개인이 스스로 능력을 쌓아서 유튜브 상품이 만들어지는데 기여한다고 볼 수 있는 거죠. 하지만 ‘그림자노동’인지 갸웃거리게 만드는 건 ‘유튜버’는 이제 엄연히 직업이라는 겁니다. 회사의 철저한 이익구조 계산에 의해 만들어진 플랫폼이고, 이 플랫폼에 돈을 벌기 위해 뛰어드는 것을 임금노동의 그늘에 남겨진 무급노동의 기여 수준으로만 보는 건 한계가 있습니다.


“유급 노동의 잉여는 고용주가 직접 징수하는 반면, 무급 노동이 만드는 부가가치는 임금 노동을 경유해서만 고용주에게 도달한다는 것뿐이다.”(p.44)


하지만 유튜브활동은 노동력과 임금을 교환하는 임금노동과 딱 맞지도 않습니다.
유튜브말고도 다른 그림자노동 예시도 나왔었어요. 생각나는 한가지는 식당에서 물을 self로 가져가게 하는 건, 밥값에 포함되어 있는데도 주인 입장에서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손님을 이용하는 것으로 손님의 그림자노동으로 볼 수 있다는 의견이었어요.

그럼 ‘자조(self-help)’와 ‘그림자노동’은 어떻게 다를까요? 공식경제만으로 모든 걸 채우려면 한계가 있기 때문에, 개인이 자격증을 따는 등 스스로 전문가가 되어 공식경제에 참여합니다. '자조'는 스스로 꿈을 실현하기 위해 능동적으로 활동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토박이활동’으로 오해할 수 있지만, 결국 ‘성장 지향적 노동’이고, ‘획일화되고 관리되는 활동’이라는 점에서 ‘토박이영역’과는 뚜렷하게 구분됩니다. ‘그림자노동’은 ‘자조’를 포함한 큰 범주라는 얘기를 했습니다. 가사일, 교육 등 공식경제가 돌아가게 하는 그늘에 있는 노동은 다 해당되는 거죠.

여기까지 논의해보니 개인의 활동을 명확히 구분하기가 어려워집니다. 같은 활동이라도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림자노동’과 ‘자조’, 또는 ‘토박이활동’으로 다르게 생각할 수 있으니까요. 설거지를 하더라도, 어떤 사람은 내가 스스로 찾아서 하는 활동, 즐거워서 하는 활동으로 여길 수 있지만, 어떤 사람은 그림자노동으로 하찮게 생각할 수 있으니까요. 성장지향적 관점으로 보느냐 아니냐에 따라 같은 활동인데도 아예 다르게 보게 되는 거죠. 유튜브도 마찬가지에요.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처럼 광고를 걸지 않아 수익은 발생시키지 않는 대신, 오프라인에서 참여하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이 온라인으로 접할 수 있도록 유튜브를 도구로 사용할 수도 있죠. 이건 ‘토박이활동’일까요, 아니면 직접 찾아가서 만나는 신체활동과 그 과정에서 접할 수 있는 여러 실패경험과 우연들을 차단했다는 점에서 ‘그림자노동’이나 ‘자조’일까요? 영화 팬들이 팬덤을 만들고 자신들이 스스로 영상을 제작해서 유튜브에 올리는 건 어떤 노동일까요? 영화 ‘심플 라이프’ 얘기도 나왔어요. 영화에는 주인집의 아이를 정성껏 길러내는 유모가 등장합니다. 이 유모는 임금보다도 아이에 대한 사랑으로 지극정성으로 길러내죠. 같은 임금이라면 이 유모는 다른 유모로 대체불가능한 사람인거죠. 그렇다면 유모는 ‘그림자노동’을 한 걸까요, ‘토박이활동’을 한 걸까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자급자족적으로 살고 싶지만 할 수 없는 부분도 얘기가 오갔습니다. 핸드폰을 쓰고 싶지 않지만, 공중전화가 없어져서 울며 겨자 먹기로 쓸 수밖에 없는 상황처럼 어떤 기술이 독점하고 있다면 자율적인 삶도 한계지어질 수밖에 없다는 거죠. 또 한 사람이 자율적인 삶을 살기 위해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도 있죠. 김훈 작가는 아직까지 컴퓨터가 아닌 펜으로 원고를 쓰는 몇 안 되는 작가 중 한명입니다. 하지만 결국 그 작가의 원고를 책으로 만들려면 누군가는 그 원고를 컴퓨터에 옮겨 타자를 치는 작업을 하게 되는 거죠. 실제로 영국의 한 시인도 펜으로 원고를 쓰면 아내가 타자기로 옮겨 쓰는 작업을 했는데, 그게 사람들한테는 아내가 ‘그림자노동’을 하는 것으로 보여 논란이 된 적이 있었다고 하네요. 아내는 자신이 마음을 내어 기꺼이 하는 일이라고 얘기했지만요. 한쪽에서는 그들을 유급노동과 무급노동을 하는 가족으로, 다른 한쪽에서는 토박이활동을 하는 공동체로 보는 거죠. 참 재밌죠? 관점에 따라 이렇게 다양한 결론이 내려질 수 있는 거죠. 하지만 이반 일리치가 우리에게 바라는 건, 스스로 즐거워서 하는 행위인지 아닌지를 묻는 낭만적(?)인 생각이 아니라, 지금 하는 그 행위가 근대 자본주의를 공고히 만드는데 기여하는지 아닌지를 잘 들여다보고 질문해야 한다는 게 아닐까 싶네요.

결국 호모 에코노미쿠스와 호모 아르티펙스를 구분하는 가장 중요한 관점은 소유와 행위로 구분되는 Z축으로 보입니다. ‘재화와 서비스의 관점에서 정의되는 필요’를 따라가느냐, ‘늘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내는 자급자족적 활동’을 하느냐인 거죠. 이반 일리치의 다른 책,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에서 에너지 의존도가 높아지면 환경 파괴 이전에 사회적 관계가 해체된다고 한 얘기하고도 맞닿아 있습니다. 인간의 신체성, 즉 존재 역량이 축소되는 거죠. 스스로 필요를 만들어내는 능력은 점점 사라져갑니다.

필요를 만들어내는 능력, 행위를 계속해서 구성해내는 힘은 토박이언어와도 연결됩니다. 토박이언어에는 그 사람의 삶이 묻어있습니다. 이반 일리치 말을 빌리자면, 뜻하는 대로 말하는 거죠. 하지만 표준화된 언어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습니다. 심지어 획일화된 방향으로 길러지고 관리될 수 있는 도구인거죠. 위계를 세울 수 있습니다. 아마존 열대우림에 사는 사람들은 실제로 말을 내뱉을 때 받는 느낌을 그대로 표현하느라 언어가 순간순간 바뀌기도 한다고 해요. 이누이트족 사람들은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가리키는 말이 50가지가 넘기도 하구요. 각자 사는 공간이 다르기 때문에 쓰는 언어도 다양할 수밖에 없는데, 표준말은 사람을 발붙이고 있는 땅과 떨어뜨려 버립니다. 식민화하기 쉬운 사람으로 만드는 거죠. 푸코가 얘기한 국가가 사람을 인구로서 관리하기 시작했다는 지점과도 맞닿아있습니다. 언어가 표준화된 이후에야 묵독이 나왔다는 얘기도 흥미로웠습니다. 묵독은 인간이 자연스럽게 하는 행위 중 하나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 전문가 의존적인 방식이라뇨. 언어가 표준화되지 않았다면 묵독은 불가능했을 텐데, 이것도 표준화의 성과에 들어간다니 정말 놀랄 일이네요. 앞으로 책은 지금 모임처럼 관계 속에서 읽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 번 더 해보게 됩니다. 소리 내서 읽는 것도요. 이미 전문가 의존적인 방식의 언어 때문에 전문가의 얘기를 인용하지 않고 우리 스스로 담론을 만들기도 참 힘들다는 얘기도 같이 나눴어요.

표준화된 언어가 사람을 땅과 떨어뜨려 놓은 것처럼, 유급노동인 ‘일’에 매진하는 현대인이 일상을 소외시키고 있다는 얘기도 나눴어요. 일은 반복해도 기술이 늘어날 뿐 자기 삶에 맥락화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맥락화하지 못한 부분은 모두 전문가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죠. 하지만 일상을 잘 꾸려 가면 자기 삶의 역량으로 되돌아오는 게 많죠. 지난 시간에 채운선생님께서 ‘자기 몸에 대해서 자기가 직접 알아보는 것도 대항품행’이라고 하신 대목과도 연결됩니다. 자신의 몸을 돌보는 사람은 몸을 살피기 위해 예민한 감각을 지니게 되지만 전문가에게 맡기는 사람은 자신의 몸을 살펴볼 생각을 못하죠. 몸에 대한 이해도도 확연히 다르고요. 자신의 몸에 어떤 것이 적중한지를 알려면 누구를 따라하는게 아니라 자신의 몸을 살펴서 스스로 알아가야 하기 때문에 토박이언어처럼 다양한 방법이 나올 수밖에 없는 거죠.

그렇다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무조건 관두는 것만이 답일까요? 송송이선생님의 살아있는 고민이 담긴 발제문을 바탕으로 더 깊게 얘기 나눌 수 있었어요. 시민단체에서 일하면 일을 통해 만족감이나 보람이 높지만, 이 활동 역시 상품지향적인 공식경제에 일조한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복잡해집니다. 기업의 사회공헌으로 후원받아서 진행하는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사회복지시설에 있는 아이들을 위해 하는 일들도 결국은 자본주의 시스템을 지키기 위한 일들인 거죠. 사업을 잘 만들어 진행하려면 전문가들의 의견도 필요하고 프로젝트를 진행했을 때 얻을 수 있는 효과성분석도 해야 하니까요. 그렇다면 이 구조 안에서 개인은 어떻게 일해야 할까요? 어떻게 토박이활동을 할 수 있을까요? 마을공동체가 아닌 일터에서도 토박이활동을 하는게 가능할까요? 참 어려운 문제,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생각해봐야할 지점 같네요.

이번 모임을 하면서 이반 일리치가 「그림자노동」을 썼을 때 바라본 세상과는 또 다른 세상 속에서 우리가 살고 있다는 걸 많이 느꼈습니다. 무급노동을 대체하는 유급노동의 심화, 유급노동조차도 대체하는 기계화, 공유/플랫폼사업처럼 비고용자도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이익구조 등등. 그 안에서 어떻게 토박이활동을 하며 살지는 이반 일리치라는 전문가에게 기대지 않고 우리 스스로 답을 찾아가야겠네요.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럼, 다음 시간에는 완전체로 만나요~^^
전체 3

  • 2020-02-08 00:13
    정말 정성이 뚝뚝 묻어나는 후기! 잘 읽었습니다. 지난 시간에 참여하지 못하신 분들이 읽어보시면 정말 좋을 것 같네요.
    후기를 읽으면서 어떻게 공부를 자기 맥락화로 이어지는 토박이 활동으로 만들어갈 수 있을지를 고민해보게 되네요. 단순히 어디에 고용되어 있지 않고, 누군가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라고 해서 곧바로 토박이 활동이 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전문가의 언어에 의존하지 않고 우리만의 담론을 만들고 또 그것을 바탕으로 경제논리로는 포착되지 않는 관계들을 실험해간다면 그것이 공부를 토박이 활동으로 만드는 일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 2020-02-08 08:48
    그림자 노동에 유투브활동이 해당될까 아닐까하는 토론을 하셨다니! 몇년 전에 식당의 물셀프가 그림자 노동이다, 가사노동이 그림자 노동이다라며 토론하던 생각이 나네요. 그때는 유투브활동은 생각해보지 못했었는데~지금은 왜 유트브활동이 그림자 노동이 아닐까라는 토론이 제게도 확 와 닿아 오는지? 그만큼 제 실생활에도 그림자 노동이 더 깊숙히 들어 앉아 있는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난 시간 재미있으셨겠네요. 참석하지 못하고 있는 일인으로써 아쉽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이렇게 실생활과 연결지어 이해하기 쉽게 찬찬히 써주신 글을 읽게되니 참 좋네요. 잘 읽었습니다.

    다음 발제는 7강 이소현샘. 8강 신현숙샘입니다.

  • 2020-02-09 22:00
    코로나 여파가 우리 세미나에까지 미칠지 상상도 못했어요. 비움쌤들이 대거 참석하시지 못해 허전한 가운데 진행된 세미나. 그래도 오붓한 분위기에서 밀도 높은 토론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근영쌤께서 정말 한 톨 놓치지 않고 후기에 담아주셨네요. 정성이 뚝둑 묻어나는 후기라는 건화쌤 말에 적극 공감합니다. 이번 세미나를 통해 제가 얻어온 질문은 그림자 노동과 자조를 어덯게 구분해 볼까? 또 하나는 언어를 표준화하는 것이 토박이 활동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정도 입니다.
    쌤들과 이야기 나누며 어렴풋한 답을 얻은 것 같지만 차근히 정리해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근영쌤 수고 많으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