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기너스

비기너스 시즌 3 일곱번째 시간(2.25) 공지

작성자
건화
작성일
2020-02-21 02:14
조회
78
이번 주에는 일리치의 <그림자 노동>을 끝까지 읽었습니다. 저희 조에서는 주로 5장 ‘그림자 노동’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그림자 노동’이라는 일리치의 문제 설정 자체가 인상적이었습니다. 그것은 임금 노동과 공식 경제의 보완물로서의 무급 노동에 대한 그의 관심 자체가 굉장히 현대적(?)이고 그렇기 때문에 지금 우리에게 정말 많은 영감을 준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는, 특히 지금의 젊은 세대들은 자신들을 ‘노동자’라고 감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다양한 경로를 통해 노동자의 권리에 대해 듣고 자랐고 노동인권에 관한 말들에 익숙한 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게 제가 늘 답답했던 것은 ‘노동자’라는 규정 자체가 제게 억압으로 느껴진다는 점, 또 아무리 노동인권에 대해 들어도 그것들이 어쩐지 멀게만 느껴진다는 점 때문이었습니다. 푸코를 공부하며 보았듯 이미 완전고용은 불가능한 목표일뿐만 아니라 신자유주의 통치성은 그러한 개념을 폐기한 지 오래입니다. 지금은 한 직장에서 같은 일을 하며 평생 살아간다는 것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그러한 삶의 방식이 우리의 욕망과 신체성에 맞지도 않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중요하다는 말을 들어도 기존의 노동인권 담론들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이겠죠.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어떻게 노동의 문제와 관계하고 있으며 또 어떤 지점에서 노동의 문제를 제기할 수 있을까요? 저는 그 실마리를 그림자 노동에 대한 일리치의 문제제기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림자 노동에 대해 말할 때 일리치가 고민하고 있는 지점은 결국 우리가 우리 삶의 전 영역에서 자율성을 상실해가고 있는 지금의 현실이 아닐까 싶습니다. “여자들이 하는 대부분의 가사 노동, 장보기, 학생들의 벼락치기 시험공부, 직장 통근”(이반 일리치, <그림자 노동>, 176쪽)은 일리치가 제시하는 전형적인 그림자 노동의 예들입니다. 이러한 활동들의 특징은 공식경제 바깥에 있으면서도 시장과 경제 논리에 종속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이를 좀 더 적극적으로 해석해보면, 우리는 일하고 있지 않을 때에도, 놀거나 공부하거나 집안일을 할 때에도 호모 에코노미쿠스이며 자본에 의한 착취를 재생산하고 있다는 뜻이 될 것입니다. 이때 착취란 자본가에게 노동력을 수탈당하는 차원의 착취가 아니라, 그 어떤 활동도 자신의 고유한 역량의 강화로 귀결되지 않으며 오로지 서비스와 상품에 의존하는 예속적 삶의 방식만을 재생산하게 된다는 의미의 착취입니다.

아무튼, 저는 일리치의 그림자 노동이 지금 우리가 노동과 어떻게 관계를 맺을 것인지를 적극적으로 고민하도록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떻게 단지 좀 더 자유롭거나 좀 덜 착취적인 노동환경을 꿈꾸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경제적 논리에 종속되지 않고 임금 노동의 보완물로 귀결되지 않는 자신만의 고유한 ‘활동’을 조직할 것인가, 라는 어려운 문제를 일리치가 우리에게 제기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것이 고유한 삶의 영역을 만들어내는 문제와도 맞닿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관계의 문제와도 연관됩니다. 똑같은 무급 활동일지라도 토박이 활동은 자율적인 영역과 그 안에서의 평등한 관계들을 확장해내는 반면 그림자 노동은 고립과 의존을 동시에 만들어내죠. 결국 그림자 노동과 임금 노동이 만들어내는 존재의 의존성을 넘어가는 길은 다른 활동, 다른 관계, 다른 공간을 조직하는 것일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지금 우리가 하는 세미나가 단지 일상의 이질적인 한 요소 정도에 국한되지 않고 새로운 무급 활동과 새로운 관계 맺음을 실험하는 장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다음주에는 <생명관리정치의 탄생> 9, 10강을 읽고 오시면 됩니다. 발제는 경혜샘과 진아샘께서 맡아주셨어요.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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