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소생 2주차 철학팀 후기

작성자
민호
작성일
2019-11-15 11:42
조회
90

이번 시간에는 <크로포트킨 자서전>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19세기의 대표적인 아나키스트 혁명가이면서 이론가이자 지리학자였던 크로포트킨의 자서전은 ‘세계 5대 자서전’ 중 하나라고 할 정도로 엄청난 자서전이라고 하는데요. 저는 자서전을 읽어본 적이 거의 없지만, 만일 저라면 제가 얼마나 특별하며 멋진 놈인지 저의 ‘이미지’를 만드는데 치중했을 것 같은데, 크로포트킨의 자서전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 책은 자신이 체험한 것을 쓰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를 둘러싼 동시대의 사회적 사건들, 인물들, 조직들과 그 조직이 가진 사상들이 어떤 시도를 하고 있는지 다면적으로 그리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50대 후반, 다른 사람의 권유로 쓰기 시작한 이 자서전에서 크로포트킨이 자기 자신의 역사로 담으려 했던 시대와 자신의 관점은 무엇이었을까요?

우선 저희는 크로포트킨의 스케치 속에서 그가 어떤 순간들을 자신의 인생의 변곡점 혹은 인식의 전환의 순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작품 초반 유년시절을 그리는 부분은 지주인 아버지와 농노들의 관계가 비중 있게 나오고 있습니다. 크로포트킨은 함께 어울리고 놀았던 농노들이 귀족인 자신과 다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강제와 폭력 아래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현실에 대한 부당함과 모순을 처음으로 느끼게 되는 순간을 바로 이 시기로 보는 것 같습니다. 하인, 농민, 노동자들이 자신과 마찬가지로 삶에서 즐거운 일을 하고 배우고 싶어 한다는 것과 그것을 제한하고 있는 농노제와 같은 제도나 권력, 자본의 부당함을 그 시기부터 보고 있었다는 것이지요.

두 번째는 근위학교 졸업 후에 시베리아에서 근무하겠다는 결심을 할 때였습니다. 궁정에서 단기간 근무하면서 그곳의 허위와 무기력을 보고 싶지 않았던 크로포트킨은 교장과, 동료들,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떠나겠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그곳이 그가 군인으로서 자신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으면서도 동시에 그가 가장 원했던 학문을 계속 할 수 있는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크로포트킨은 시베리아에서 자신의 지적 호기심을 채웠고 무엇보다 그곳의 원주민들, 죄수들, 폴란드 혁명의 주도자들을 만나 이야기도 하고 그들과 함께 지도의 완성되지 않은 부분을 찾는 탐사 여행을 하기도 합니다. 이때 크로포트킨이 느낀 것은 두 가지인 것 같습니다. 제도나 법과 같은 체제가 없어도 사람들은 서로 도우며 살아간다는 것과, 그렇게 할 때 사람이 사는 데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그가 지리학협회의 사무관직을 거절했을 때입니다. 군 퇴역 후에 지리학협회의 회원으로 활약하다가 사무국원이 되어 핀란드의 지질을 조사하던 중 학문 추구의 욕망과는 다른 사상, 다른 희망이 자신에게 있음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핀란드 고유의 이륜마차인 카리아를 타고 지질학자에게는 아무런 관심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평원을 횡단하는 동안, 어깨에 해머를 지고 자갈채취장을 걸어가는 농민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의심할 여지없이 흥미로운 지질학적 작업을 하는 동안에도 하나의 관념, 나의 내적자아를 더욱 강하게 사로잡는 생각이 있었다.”(252) 크로포트킨은 그들에게 지질학 지식과 토지 경작에 적합한 기계를 알려준다는 것이 의미가 없음을 이해했습니다. 토지 개량에 성공할수록 소작료와 세금은 점점 오를 것이고 이들은 당장 먹을 빵조차 없었습니다. “그들은 나에게 더불어 생활하기를 요구하고 있다. 자유로운 토지의 주인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길 바라고 있다.”(252) 이 순간이 자신이 일구는 땅, 아니면 적어도 자신의 노동의 주인이 된다는 문제가 우선되어야만 기술과 지식을 알려준다는 것도 가능할 거라는 사실, 그러한 기회를 만드는 것이 자신이 착수해야할 삶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순간인 것 같습니다.

양쪽 조 모두 크로포트킨이 인간을 보는 관점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자서전 전체에서 크로포트킨은 ‘누구는 어떤 사람이다’라고 규정하지 않습니다. 아버지에 대해서나, 황제에 대해서나 그들의 이중적인 성격이 드러나는 상황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농민들과 노동자들에 대해서도 단지 그들이 피억압자이거나 동정의 대상이기 때문에 선하다고 보고 있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그들이 삶에서 가진 의욕과 주체성에 주목한 것 같습니다. 인간을 그 자체로 결여 없는 존재로 보고 있는 크로포트킨은 인간이라면 알고 싶어 하고 앎을 나누고 싶어 하는 의욕이 있으며, “독립적인 주체로서 사고하고 표현하”(290)려는 욕망이 있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 같습니다. 그는 이러한 인간의 욕망을 저지하는 것에 대해 맞서야 한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것이 농노제이건, 자본가이건, 국가이건, 당이건 말입니다. 중앙집권과 같이 하나로 집결되는 힘에 대한 거부와 공동생활 내부의 자율성에 대한 강조. 만일 혁명이 노동과 배움과 같은 생활에 주도권을 갖지 못하게 하는 시스템이나 제도의 지배라면 혁명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크로포트킨이 사회주의가 아니라 아나키즘을 선택한 계기에도 ‘어떻게 개개의 자율성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하는 문제에 대한 고민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이상으로 후기를 마치겠습니다.

과제는 내가 생각하는 크로포트킨의 아나키즘은 무엇인지에 대해 한 두 문단 분량의 짧은 정리 글을 써보는 것입니다. 인용문을 해석해보셔도 좋고 질문을 구성하고 나름의 답을 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수요일까지 숙제방에 올려주시구요.

다음 주에는 <만물은 서로 돕는다> 4장까지 읽어 오시면 됩니다. 발제자는 1, 2강 윤순샘과 호정샘, 3, 4강 발제자는 저와 건화 형입니다.

그럼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전체 2

  • 2019-11-15 15:02
    가장 자율적인 삶이란, 친구들 속에서, 역사의 한 가운데에서, 자연의 저 영원한 평면 위에서!
    성자와 같은 그의 삶을 만나고파, 마음은 지금 모스크바입니다.

  • 2019-11-20 12:28
    자서전에서 크로포트킨은 각각의 변곡점에 경직되고 억압된 제도와 제도로 포섭될 수 없는 삶을 동시에 담아 내려 했던거네요. 거기서 모순을 느끼고, 배우며 계속해서 '완성되지 않는 부분을 찾는 탐사 여행'을 해나가기. (!) 미지의 자서전 후반을 얼른 읽을러 ㄱ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