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5주차 철학팀 후기

작성자
혜연
작성일
2019-11-30 11:11
조회
114

이번 시간에는 크로포트킨의 <만물은 서로 돕는다> 5-8장에 해당되는 내용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저희 조에서는 길드가 발생하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를 시작으로 미개사회에서 중세사회로 넘어가게 된 변곡점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구요. 종횡무진 세계사 책이 그 당시 중세사회에 대해 중앙집권화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거시적인 정치.경제적인 문제들을 다루었다면, 크로포트킨은 그 당시의 미시적인 움직임을 이야기함으로써 재밌는 디테일을 볼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 당시의 민회가 결정하는 정의의 성격을 오늘날과 비교하면서 살펴보기도 하였는데, 중세시대의 민회와 현대 시민이 누리는 평등한 한 사람의 권리는 다를 수 있다는 것과, 하지만 근대에 들어와 국가의 의해 만들어진 민회는 오늘날의 평등권과 같은 성격이지만 사실은 그 제도가 인간의 창의성을 망치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크로포트킨의 또 다른 저서 ‘빵의 쟁취’에 나온 이야기(일을 빨리 끝냈을 때 그냥 쉬거나 다른 사람의 일을 도와주는 방식에 대한)로 인간이 더 많은 일을 할수록 좋다는 경제논리에 우리가 너무나 익숙해져 있고 길들여져 있다는 것을 자각하게 했습니다. 호모 이코노믹스 담론에 따르면 인간은 여러 선택지 중에 자기에게 가장 이익이 되는 것을 가장 적은 에너지를 투자해서 가장 높은 이익을 얻는 것을 항상 택하고 인간 행위는 항상 그런 식으로 이루어진다는 경제 논리가 있는데, 크로포트킨은 이에 반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농촌에서 무리를 지어 밭을 맬 때 자기가 맡은 고랑을 일찍 끝낸 사람은 부진한 옆 사람의 것을 함께 작업해줌으로써 다음 작업지로 함께 이동했다는 상호부조의 이야기도 들으면서 우리 사회에도 이렇게 아름다운 상호부조의 사례가 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국가의 개입이 없어도 사람들은 서로 부조하면서 생을 이어가며 살아간다는 것을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고, 현대의 삶도 제도의 힘이 덜 미치는 곳일수록 상호부조의 정신이 더 남아있는데 이 또한 크로포트킨의 지적과 맞아떨어지는 지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스피노자는 ‘인간이 기쁠 때는 경제적 안락과 외부의 침입이 없는 안전 상태는 아니라, 누구와 함께 뭔가를 할 때이며 제도를 좋게 만드는 것이 해결책은 아니다’라고 했답니다. 개인의 창의성과 역량을 살리지 못하는 국가제도에 포섭되지 않으면서 다양한 욕망을 지닌 개별 주체들을 결집시키는 방법은 무엇일까에 대한 논의에 이르러서는 저항하고 벗어나는 방법이외에 ‘함께 하는 것’의 의미에 대한 생각을 교환했습니다. ‘시위가 끝난 뒤에, 회복된 도로 위에서 삶의 일상성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가 앞으로의 고민인 것 같습니다.


민호샘 조에서는 책에서 시민과 농민의 구분되지 않는다. 번역의 문제인지 작가가 혼용한 것인지 헷갈렸다고 합니다. 먼저 상호부조가 잘 이루어지는 길드가 발생할 수 있었던 중세시대의 조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요, 우선은 봉건제도가 있었고, 중앙집권체제가 아닌 분권적인 형태의 조건이었는데, 우리가 함께 공부하고 있는 ‘종횡무진 세계사’와 중세 부분이 겹쳐져서 다른 관점을 살펴 볼 수 있어서 재밌었다고 합니다. 남경태 작가는 중세가 중앙집권적인 힘의 결여로 국가가 추동력을 갖지 못했다고 했는데 크로포트킨은 오히려 그것이 없어서 자율성과 자치권을 발휘할 수 있는 좋은 조건이었다고 말한 것을 두고, 역사가의 시각과 크로포트킨의 시각이 다름을 알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구텐베르크 조약에서 ‘즐겁게 노동해야한다’는 조항을 보고 현재 우리의 삶과 비교되었고, 그 당시에는 48시간을 위해 투쟁했는데, 현재의 우리는 52시간 달성하는 것이 이리도 어려운 것일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구요. 시대적 조건차이는 있더라도 부러운 부분이었답니다.


또 다른 조건으로는 내.외부의 침략에 대해 스스로 방어해야하는 조건 속에 있었다는 건데요. 내부에서는 영주의 수탈로부터 스스로를 지켜내야 했고 외부적으로는 노르만이나 게르만족들의 침범이 지속적으로 있었기에 성을 쌓아 공동체의 힘을 모을 필요가 있었던 점을 들었습니다. 실제로 국가의 통합을 이룬 것은 황제가 아니라 도시연맹들의 연합이었다는 겁니다.


예술과 건축에서의 눈부신 발전을 이룰 수 있게 된 것도 노예노동이나 임금 노동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훨씬 더 능동적인 형태로 자신들의 사상을 담은 예술품을 탄생시켰다는 겁니다. 이로서 암흑기라고 알고 있었던 중세에 대한 편견을 해소시킨 부분이 있었고, 당시의 권력구조에 대한 기록이 좀 부족했을 뿐이지 더 자율적이고 자치적인 삶이 가능했던 시기였다고 생각하게 되었답니다. 장인들이 물건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대상이 명확해서 함부로 만들 수가 없었으며 노동의 대가도 제대로 인정받는 분위기여서 이 또한 현대와 비교되었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선민샘께서 정리말씀을 해주셨는데요. 글을 쓸 때 크로포트킨은 인간을 어떤 존재로 보는가로 생각의 가닥을 잡아가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중세 길드는 다른 욕망과, 재주와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시스템을 구성하는 것이고 또 서로 다른 길드들이 연합하고 도시 안에서 망을 형성하는 것인데 개별적 욕망을 가진 주체들의 힘을 어떻게 결집하는 것이 좋을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것도 권유하셨습니다. 풀뿌리 민주주의나 지방자치 등의 시스템과 연결지어서 말입니다. 인용문을 넣는 것과 씨앗문장을 만들어서 풀어나가는 팁도 남겨 주셨습니다. 또 고딕성당의 건축과정에 대한 말씀으로, ‘고딕성당은 초점화되지 않은 건축물이다. 신을 향해서 쌓여져 가는데 수 백년의 기간을 거쳐 참여한 다양한 길드들의 욕망이 투사된 것이다. 따라서 각도가 조금만 달라져도 다르게 보인다. 그런 다양한 욕망들이 성당이라는 하나의 공간을 위해서 공존할 수 있었다는 것이 중세의 특징이고 길드의 장엄함 아니었을까’하는 겁니다.


‘다양한 길드가 참여해서 짓다보니 어느덧 성당이란 위대한 건축물에 다가가 있었다’가 상호부조의 정신으로 연합하여 살다보니 어느 덧 살만한 세상에 와 있더라로 응용되어졌으면 하는 바램이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전체 3

  • 2019-11-30 19:17
    정옥샘 조와 저희 조 모두 길드의 발생과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변곡점을 보려고 한 건 비슷했는데, '만서돕'과 '종서사'를 미시와 거시적인 관점에서 보거나, 중세의 민회와 근대 민회의 차이가 역량을 증대해가는가 아닌가 등의 이야기는 새로웠고 재미있었습니다~

  • 2019-12-01 01:02
    오호! '만서돕'과 '종서사'가 이번주에 아주 잘 어우러졌구만요. @.@
    저는 크로포트킨이 감동하는 러시아 농민의 삶이 무엇이었을까? <크로포트킨 자서전>의 몇 구절이 계속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그들의 자존심, 그들의 생활력, 그들의 철학.
    만물이 서로 돕고 살 수 있으려면? 우리는 참으로 다른 욕망을 가진 존재이다, 에서 시작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음. . .

  • 2019-12-01 12:46
    크로포트킨이 근대인에게서도 상호부조의 사례들을 찾아냈듯이 그의 시대로부터 150년이 지난 지금, 우리에게서 상호부조의 움직임들은 뭐가 있을까요? 문득 궁금해지네요. 나중에 더 시간이 흘러 '21세기의 아름다운 상호부조'라는 분석이 나오게 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