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문 회의록

매니저 회의록 4차 (“분기별 발표” 1차 준비)

작성자
혜림
작성일
2020-02-13 09:56
조회
54
매니저 회의록 4차 (“분기별 발표” 1차 준비)

『고기로 태어나서』의 <닭고기의 경우> 편을 읽었다. 이 책으로 4월에 있을 분기별 발표(청년 네트워크 세미나)에서 어떤 문제를 제기할 수 있을지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책에 대한 인상
효율성과 생산력을 중시하게 되었을 때 인간이 얼마나 잔인하게 생명을 다루게 되는지를 이 책이 노골적으로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평아리들은 태어나자마자 사료가 되고, 사료를 축내는 병아리들은 죽고, 전자레인지 크기의 케이지에 닭 4마리가 지내는 것이 너무 당연한 일처럼 여겨진다. 업보를 믿는 저자를 제외하고는. 농장 운영하는 사람들은 오직 사료 값을 적게 들여서 최대의 생산량을 내려는 목적밖에 없다. 저자도 병아리를 죽이는 일을 반복적으로 하다 보면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감각해진다. 이 책을 읽은 공통적 소회는 우리가 깨끗하게 포장된 고기들을 찾는 이면에 이렇게 잔혹한 생산의 과정들이 수반되는지 몰랐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모두가 체험한 것을 바탕으로 보여주는 저자의 문제의식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단순히 자신이 체험한 농장에서의 일들을 비인간적이고 잔인하다고 평가내리거나 모두 고기를 먹지 말아야 촉구하는 글이 아니라서. 솔직하게 느꼈던 바를 전달해주는 과정에서 우리의 감각을 건드려 주는 부분이 있었다.

#무엇을 중심으로 이 책을 읽을 것인가?
이 책이 우리가 맛있게 먹고 있는 고기에 대한 알고 싶지 않은 (더러운) 진실을 다루기는 하지만 이 부분만을 다룬다면 시사 고발(?) 세미나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다. 그렇다면 어떤 관점에서 이 책을 볼 수 있을까? 저자는 서문에서 “우리와 고기 사이에 어떠한 환상도 남아 있지 않게 하는 것”이 이 책을 쓴 실현 가능한 목적이라고 말한다. 이 환상이란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 수 있을까? 이 환상을 갖고 이야기를 해보자는 얘기가 나왔다. 고기를 먹고 안 먹고의 문제는 우리의 감각이 어떤 방식으로 달라지느냐에 있다. 고기를 더 윤리적으로(?) 먹자 혹은 로컬푸드로 먹자라는 차원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우리가 겪고 있는 문제 상황에서 출발하지 않으면 여전히 우리와 고기 사이의 환상은 사라지지 않을 것.
일단 우리는 고기를 왜 먹는지 근본적인 질문부터 해보자고 했다. 우리는 당연히 고기가 맛있어서 먹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의외로 이야기를 나눠보니, 나가서 뭘 먹으려고 하면 고기밖에 먹을 것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연구실에서는 매 끼니를 직접 해 먹지만 실제로 회사를 다닐 때를 생각해보면 고깃집이 아니면 다른 음식점을 찾기 힘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회식 자리에서 다 같이 먹기 최적화된 장소는 고깃집이다. 가장 간편하고 손쉽게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어디를 가나 고깃집이 많으니 그곳을 선택했을 것이고 역으로 음식 먹는 편이를 추구하다 보니 고깃집은 더 늘어났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우리의 소비 패턴은 표준화되어가고 어디를 가나 비슷한 종류의 음식점이 들어서고 있다.
이런 음식 문화의 표준화에는 분명 우리의 욕망이 반영되어 있을 것이다. 음식을 먹을 때 좀 더 깨끗하고, 맛있고, 싼 먹거리를 찾는 욕망과 양계장에서 더 싸게, 더 많은 고기를 키워내려고 하는 욕망이 닮아있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래서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이 책을 더 읽어보기로 했다. 표준화된 편이성을 추구함으로 인해서 이 이면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것이 단순히 잔인한 일이라고 평가내리는 것이 아니라 잔인해 보이는 일들이 우리의 욕망과 연계된, 필연적인 일인 것인지.

#이 책과 함께 보고 싶은 영화
바르다의 <이삭 줍는 사람들과 나>라는 영화와 함께 보면 좋겠다는 의견이 나왔다. 상품 가치가 없어서 쓰레기라고 불리는 것을 주어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한다. 우리가 평가 절하하고 있는 것들을 다르게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고기로 태어나서>와 같이 읽으면 좋을 것 같다.

“감독은 시장에서 버려진 음식을 줍는 사람들을 보며 밀레의 〈이삭 줍는 사람들〉이라는 그림을 떠올린다. 그리고 프랑스의 시골과 도시를 여행하듯 돌아다니며 무언가를 주워서 사는 사람들에 대한 영화를 만들기로 한다. 그녀의 카메라에 포착된 사람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쓰레기’로 분류된 것들을 주워 생계를 해결하거나 예술작품을 만든다. 그들은 수확이 끝난 밭에 나뒹구는 감자들을 채집하거나 열매를 따거나 쓰레기통을 뒤진다. 그들이 건진 음식물이나 물건들은 여전히 쓸모가 있고 싱싱하다. 이들의 삶의 방식은 단순히 끼니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사회에 대한 저항이기도 하다. 감독은 가난하지만 필요한 만큼만 취하며 사는 사람들을 보며 노년의 감독으로서 자기 자신을 돌아본다. 그는 무언가를 줍는 사람들의 행위가 자신이 영화를 만드는 과정과 닮아 있다는 생각을 하며 이 영화를 완성해간다.” <네이버 영화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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