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티(불교&티베트)

<불교 of 티베트> 4회 세미나 후기

작성자
민호
작성일
2020-05-24 16:40
조회
102
이번 주 저희가 읽은 텍스트는 <티베트의 자유를 위하여>라는 달라이 라마의 연설문 모음이었습니다. 8개의 짧은 연설문으로 이뤄진 작고 얇은 책이었는데, 저희가 받은 감동은 결코 작지 않았습니다.

평범한 용어의 무게

연설문 전체에 사용되는 용어와 표현된 문장은 간결하고 담담해서 다소 평범하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저희가 놀랐던 것은, 바로 그 평범함 자체 때문이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평범할 수 있는지, 어떻게 중국인들이 저지른 말도 못할 정도의 만행을 알고도 그렇게 보통의 단어를 고를 수 있는지 무척 의아했습니다. “중국과 티베트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해법에 도달”하자고 하는 그 평범한 평화적 제안이 어떤 맥락에서 나오고 있는가를 생각해보면, 그러한 표현을 사용한다는 것 자체가 (병찬샘의 표현대로) 기가 막히는 일이었습니다. 저는 중국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를 알아보셨던 윤지샘의 말씀해주신 내용의 충격이 잘 가시지 않습니다. 가장 사람을 많이 죽인 독재자는 히틀러가 아니었습니다. 마오쩌뚱과 중국공산당은 그보다 몇 배나 더 되는 사람을 죽게 만들었습니다.  <달라이라마 자서전>에 나오기도 하지만 중국공산당이 티베트인들에게 벌인 학살은 말이 멎을 정도였습니다. 그것은 티베트의 불심을 역이용해서 더 고통을 주는 방식으로 행해졌습니다. 대중 앞에서 비구와 비구니를 성적으로 파괴하기도 하고, 아이들이 부모의 죽이고 춤추도록 했으며, 도르래를 사용해 불상이 승려를 압살하게 만들었습니다. 600만 명이던 티베트인들 중 130만 명이 학살되었습니다. 달라이라마가 이 사실을 몰랐을 리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연설문의 어느 부분에서도 분노를 찾아볼 수 없고, 촉발시키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분노하는 티베트인들에게 당부를 합니다.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낄지라도 우리가 길러온 높고 고귀한 가치에 상처를 입히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됩니다.”(15쪽)

특히 놀라운 문장은 이것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3.1절과 같은 티베트 봉기 기념일인 2008년 3월 10일에 있었던 시위와 중국의 폭력적 진압 사건에 대해 달라이라마는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항의와 시위의 과정에서 생명을 잃은 중국인들은 물론이요 모든 티베트인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8쪽) 처음에는 평범한 위로문이라고 생각했지만, 자세히 보면 ‘물론’이라는 표현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중국인들입니다. 이 기도에서 민족의 원수이기도 한 중국인을 ‘물론’의 자리에 두고 있다는 사실. 더구나 이 연설은 티베트인들에게 보내지는 것이라는 점을 기억하면 더욱 놀랍습니다.

불심과 아이러니

왜 전 세계에서 가장 영적이고 평화적인 민족이 이렇게 처참한 고통을 당해야 할까. 저희는 이것이 아이러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곤경 속에서 시종일관 비폭력을 강조하는 지도자를 우리라면 어떻게 여길까 하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아마 우리는 그러한 지도자를 견딜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티베트인들은 어떤 경우에도 폭력을 쓰지 않기를, 부디 같은 업을 짓지 않기를 요구하는 달라이라마의 호소에 응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일본에 대해 갖고 있는 반사적인 적개심과 얼마나 다른 것일까요? 분노로 사람을 결집시키는 것은 오히려 더 쉬운 일이 아닐까요? 티베트인들 역시 시위와 저항을 하지만 그 방법은 언제나 비폭력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대응은 무력을 사용한 억압이었고, 수많은 부상자와 연행자가 속출해왔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극적인 대비 자체가 동시에 전 세계의 사람들에게 티베트를 지지하고 돕도록 하는 마음을 키우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중국인들이 가하는 폭압이 바깥으로는 불심을 키우고 있는 또 아이러니인 셈입니다. 달라이라마는 이렇게 말합니다. “폭력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결코 자유를 향한 기본적인 인간의 욕망을 억누를 수는 없습니다.”(149쪽)

중국 정부의 통찰력 부족

달라이라마와 티베트 민족은 중국에 큰 요구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1974년 이후로 달라이라마와 티베트 망명정부는 티베트의 독립이 아니라 중국 내에서 티베트를 자치구로 만들어달라는 요구를 해오고 있습니다. ‘중도적인 접근 방식’이라고 표현하는 이러한 요구는 외교와 국방을 중국이 맡고 티베트 내에서는 티베트의 문화와 종교, 자연 경관을 스스로 향유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입니다. 달라이라마는 ‘중국 형제 자매 여러분께 호소합니다’라는 연설에서 자신은 티베트의 분리를 추구하는 것도 중국 인민을 이간시키는 것도 원치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는 문제의 진짜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여러 번 말씀 드렸습니다만 저의 주된 관심사는 티베트 고유의 문화, 언어와 정체성을 안전하게 지키는 것입니다.”(27쪽) 이는 곧 그 세 가지 중 어느 것도 보장되지 않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15만 명에 달했던 승려의 수는 1400명으로 줄었고, 사원의 대부분이 파괴되고 약탈당했으며, 산아제한과 중국인 이주로 티베트인들 역시 줄고 있습니다. 게다가 중국은 티베트를 핵폐기물의 쓰레기장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대규모 우라늄광산을 개발하고 방사능을 방치할 뿐 아니라, 외국의 핵폐기물을 돈을 받고 수입해 티베트 땅에 버리고 있습니다. 아마 중국이 티베트에게 자치권조차 못 주는 이유는, 수많은 소수민족들의 연달은 독립요구가 두려울 뿐 아니라 이와 같은 경제적 문제와 패권유지를 위한 군사 전략적 이해관계가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달라이라마는 결코 중국인들의 부도덕성이나 나쁜 본성을 탓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악함이 아니라 “중국 정부의 통찰력 부족”(42쪽)으로 인하여 많은 것이 파괴되고 있다고 말합니다. 아시아의 지붕인 티베트 고원은 주요한 강의 발원지인데 그곳을 오염시키는 것, 티베트의 언어, 종교, 정체성이라는 인류의 소중한 문화적 유산 중 하나를 제거하려 하는 것 등은 (결코 그들이 나빠서가 아니라) 통찰력 부족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 외에도 9.11을 염두에 둔 듯한 종교와 폭력의 문제,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염두에 둔 듯한 당부, 과학기술과 물질적 발전이 놓치고 있는 정신적 가치의 문제, 불교와 민주주의의 문제 등 많은 이야기가 무척 온화한 표현으로 담겨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종교 혹은 영적인 마음이 윤리적이고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구절이 특히 인상 깊었습니다. 그 구절을 인용하며 후기를 마치겠습니다.

“사실 종교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그들이 속한 사회로부터 자신을 단절시키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들은 그들의 공동체 내에서 구성원들과 함께 조화를 이루며 계속 살아야 합니다. 자신의 공동체로부터 벗어나서 당신은 다른 사람들을 이롭게 할 수 없습니다. (...) 그 점에서 명심해야 할 중요한 두 가지가 있습니다. 자기 반성과 자기 수정입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주의 깊게 살피면서,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끊임없이 점검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잘못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때 우리는 즉시 스스로를 고쳐야 합니다.”(133쪽)

** 공지사항 **

5월 31일 (일) 제5회 불티세미나 공지입니다.

- 1교시 명상: 이번 주는 매일 하루 10분씩 명상을 해봅니다. 몸 전체 또는 몸의 한 부분의 느낌을 알아차려보는 몸명상과 특정 대상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열린 알아차림 명상을 복습합니다.

- 2교시 특강: 다음 주부터 2주간 (5/31과 6/7) 티베트 역사에 대한 채운샘의 깜짝 특강이 있을 예정입니다. 낭송책은 두고 가볍게 오시면 됩니다. ^^

- 3교시 토론: <티베트 불교문화> (룬둡소빠, 지영사) 처음~86쪽까지 읽고 세미나에서 나누고 싶은 내용을 생각해 오세요.

다음 주 간식은 이현정샘과 박차원샘께서 준비해주시기로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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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5-24 18:00
    오, 스피디하고도 자세한 후기! 시종일관 진지하게 토론에 귀기울이며 참여하시는 민호샘께서 훌륭한 후기 보시를 하셨네요. 감사~ ^^

    적은 '물론'(!) 모든 존재를 자비의 방사안에 품는 달라이라마 존자님 앞에서 매 시간 감동을 먹습니다. 달라이라마 존자님 덕분에 티베트 불교와 역사, 문화... 모든 것이 궁금해지네요. 다음 시간을 기대하며...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