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티(불교&티베트)

<불교 of 티베트> 5회 세미나 후기

작성자
현정
작성일
2020-06-01 22:15
조회
131
불티세미나가 벌써 반을 넘어섰군요. 시간에 대한 우리의 관념과 정서는 얼마나 가변적인지요. 티베트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돕고자 자비심을 내신 샘의 강의도 ‘시간’으로부터 시작되었지요. 샘의 강의를 들으며 제가 ‘시간’이라는 개념을 여전히 가슴 한 켠에 품고 살고 있다는 것을 상기하게 됩니다. 도겐 선사의 ‘有時’ ‘존재가 시간이다’라는 말이나 ‘현재를 구성하는 힘이 현재뿐만 아니라 과거까지 바꿀 수 있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의 저의 혼란함은 업과 윤회설, 연기론을 좀 더 이해하게 되면서 사라진 게 사실이지만, 시간이라는 관념은 여전히 저에겐 질문을 던져주는 개념이기도 하지요. 달라이 라마가 말씀하시는 ‘미래의 업’이라는 말도 기존의 단선적인 시간관을 가지고서는 이해하기 힘든 개념입니다. 자아뿐만 아니라 시간 자체도 실체화해서만 사고하는 우리로서는 과거 현재 미래로 이어지는 직선적인 시간관을 탈피해서 사고하는 것이 힘들기 때문입니다. 불교의 三世兩重因果說에 따르면 현재는 오로지 현재만의 시간이 아니라 과거와 미래와 함께 작동합니다. 현재는 과거의 업의 결과이면서 미래의 因입니다. 지금의 行을 결단함으로써 과거의 업을 중단시키면 과거는 더 이상 있다고 할 수 없다는 논리에 혼자 해방감을 느꼈던 적이 있던 저로서는 ‘미래의 업’이라는 표현이 새롭게 다가옵니다. 우리가 현재 겪고 있는 것을 미래의 업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지금의 실존을 다르게 구성할 수 있는 여지의 폭이 좀 더 넓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드네요. 현존의 우리의 어떤 행위가 원인이 되어서 과거를 만들어낼 뿐만 아니라 그 행위를 통해서 과거를 생산하기도 한다는 것, 그러므로 현재는 과거에 대해서 果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현재가 과거를 원인으로 출현시키는 因이기도 합니다. 연기법의 상호인과를 바탕으로 해서 이러한 시간의 동시성 속에서 사유한다면, 환생이나 화신에 대해서도 적극적이고 다양한 해석을 해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샘은 전에 코로나가 우리에게 보살이기도 하다고 하셨는데요. 지금이야말로 인간의 행위양식을 바꿀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고요. 여전히 진행 중인 코로나의 와중이지만 낯선 경험조차 일상이 되어갑니다. 저는 요즘 이 시기를 어떻게 다르게 겪고 있나 스스로에게 자문해보곤 하는데요. 근대적 가치, 자본주의적 가치체계를 내면화해서 살아가는 근대인인 우리로서는 기존의 가치체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이 전염병 앞에서 새로운 사유를 강요당합니다. ‘완전히 우발적이고 폭력적인 경험 속에서만 그 습관적인 사유의 길을 전환시킬 기회를 갖게 된다’는 들뢰즈의 말도 떠오릅니다. 무언가를 하지 못한다는 것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해야 한다라는 또는 할 수 있다라고 하는 새로운 시작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샘 말씀처럼 ‘미래의 업’이 지금 우리에게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살도록 촉구하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사실 우리 모두 더 이상 근대적 가치만으로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이미 감지해오고 있지 않았나요. 제가 공부의 길로 들어선 이유도 사실은 그 알 수 없는 공허감 때문이었습니다. 가진 게 많은데도 분명 감사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왜 나는 공허함을 느끼는가, 정신적 충만감을 느낄 수 없는 이유, 왜 자유롭지 못한가 하는 질문 등은 우리를 길 위에 나서게 합니다.

불교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늘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티베트 불교에 대해서는 무지했던 저에게 어느 날 마음이 일었던 것도 인연의 결과이겠지만, 티베트 불교는 알아갈수록 독특한 매력이 쌓여갑니다. 샘께서 불교의 발상지인 인도로부터 태평양까지 법의 전파로를 설명해주셨지만 가장 늦게 불교가 전파된 티베트가 원형에 가까운 불교를 가장 오래 보존하고 있고, 중국과의 갈등과 망명으로 이어지는 역사적 사건 속에서 오히려 전 세계에 불교를 알리고 전파하는 중심이 되었다는 사실도 참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말 어떤 사건도 단순한 하나의 인과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복잡한 인과와 인연 속에 있는 것인지를 알 수 있게 됩니다. 샘 말씀처럼 티베트 불교를 통해서 불교사 전체의 역사를 공부하고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확실히 시각적인 자료를 통해서 강의를 들으니까 티베트의 지리 역사 문화가 입체적으로 이해가 되었습니다. 전에 토론에서도 티베트의 특수한 지정학적 위치가 티베트 국민들의 정서나 문화 역사에 영향을 미쳤을 거라는 얘기를 했었는데요. 지도나 사진들을 보면서 우리가 형성하는 관념이나 정서, 기질 등이 지구학, 지질학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워낙 학교에서 지리를 재미없게 배워왔기에 그동안 지리나 지질학에 관심이 없었는데 샘의 강의 덕분에 급관심도 생기더군요.^^ 지리의 문제가 단순히 물질적 자연환경, 대상화되고 풍경화된 자연물이 아니라 우리의 영의 일부를 이룬다는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조금만 생각해보더라도 우리가 사는 지리적 환경 뿐 아니라 자연이 어찌 우리의 신체적 정신적 삶과 동떨어질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우리는 그동안 자연성, 그 영성의 세계에서 너무나 멀어져서 살아왔던 것이지요. D.H, 로렌스의 말처럼 ‘spirit of place, 장소의 靈’ 땅이나 강 자체가 정령이라는 사실은 티베트 고원의 사진들을 보며 현실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들뢰즈 가타리의 <천개의 고원>에서의 고원의 이미지가 구체화되는 느낌이랄까요. 3700미터 이상의 높은 산들이 서로 높낮이를 달리하면서 산도 아니고 대지도 아닌 그러면서도 하나의 대지를 형성하는 그 특별한 강렬도가 작동하는 엄청난 에너지가 흐르는 땅이라는 사실이 정말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상상만으로도 이러한데 직접 가서 보고 느끼면 어떠할까요? 산이기도 하고 평지이기도 한 그 드넓은 대지를 언젠가 꼭 걸어보고 싶다는 원이 생기네요. 저만 그랬던 것은 아니겠지요.^^ 샘의 설명처럼 티벳고원 자체가 히말라야 산맥과 함께 융기해서 생긴 땅으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세계의 지붕이라 불리는 사실과 장강, 주강, 황하, 갠지스 강 등 아시아의 문명이 발생한 주요 강들의 근원지도 역시 티베트 고원이라는 사실은 지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도 중요한 상징성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질학을 통해서도 易의 원리, 모든 것은 변화와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桑田碧海, 어떤 것도 고정된 것으로 있지 않고 변화하며 인과의 조건 속에서 생성 소멸함을 또다시 확인하게 됩니다.

중국의 역사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중화주의의 뿌리가 얼마나 깊은지도 알게 되면서, 끊임없는 침략과 찬탈의 역사 속에서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원리로서 그들이 합리화한 그 사상이 얼마나 허구에 기반하고 있는지도 발견하게 됩니다. 티베트가 자신들의 영토라고 주장하는 중국의 근거도 너무 옹색하다는 생각도 들고 상대적으로 티베트가 역사적으로 얼마나 강대한 제국이었는지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샘은 티베트 역사의 독창성을 종교를 빼놓고 역사서술을 할 수 없다는 점에서 찾으셨는데요. 달라이 라마를 중심으로 종교와 정치의 일치를 이루어 나간 역사를 우리의 근대적 역사 관점으로 설명해내기는 어렵습니다. 근대적 역사서술은 단일한 인과에 따른 단일한 시간선 그리고 단일한 민족과 국가를 전제해야만 성립한다는 점에서 불교사가 정치사이기도 한 티베트 역사는 근대적 역사서술의 틀을 넘어서는 독특함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티베트라는 국가의 실존 자체가 불법의 전파라는 인연장 속에 있는 것이고 정치의 문제가 늘 불법과 연동되어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불법에만 치우쳐서 정치의 현실에 대해서 알려고 하지 않았다는 티베트 역사의 비극에 대한 달라이 라마의 자기 비판은 새겨볼 지점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환생과 같은 역사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반적이지 않은 관점도 앞에서 말한 불교의 시간관이나 업의 차원, 양자역학 등 현대과학의 설명 등을 참조한다면 단지 미신이나 신비주의라고만 치부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원숭이를 시조로 한다는 신화도 재미있습니다. 관세음보살이 화한 존귀한 존재 첸리시 보살의 영적인 인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티베트 민족의 자부심과 오직 경제성장을 내세우는 민족의 자부심이 샘 말씀처럼 너무나 다르다는 생각에 웃음이 나기도 합니다. 우리 근대인들이 상실한 영적 능력, 우주와 교감하는 신체성의 상실의 문제는 계속 우리가 환기하고 고민해봐야 할 지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티베트의 역사도 간략하게 정리를 해주셨는데요, 이름이 헷갈리지만 불법의 수호 3대 법왕, 송짼 캄뽀, 치송 데짼, 티랄 빠짼은 잘 기억을 하면서 읽어나가야겠습니다. 스피노자와 동양사상의 정치를 공부하고 있는 저로서는 샘이 제기하신 통치의 원리, 인간은 무엇으로 통치되는가의 문제는 저의 주요 질문이기도 합니다. 무력과 법이라는 억압기제나 외부의 초월항을 도입하지 않고 통치를 사유한다는 것이 오늘날의 정치에서도 여전히 힘든 현실에서 법, 다르마를 통한 통치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티베트는 새로운 영감과 상상력을 자극해줌에 틀림없습니다. 단지 국가의 통치 문제만이 아니라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크고 작은 모든 공동체에서 실질적으로 부딪치는 문제가 바로 治의 문제일 수 있기 때문에 티베트가 보여주는 통치의 원리는 다른 사유의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앞으로 계속 사유해봐야 할 지점입니다.

샘의 풍요로운 강의에 감화되어 후기가 너무 길어진 것 같지만^^ 우리가 읽고 함께 토론한 <티베트 불교문화>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네요. 현재 다람살라에 있는 티베트 도서관에서 티베트어와 티베트 불교를 가르치기 위한 교재로 활용되고 있다는 이 책은 짧은 분량에 맞춰 엑기스처럼 주요 내용들을 간추려서 서술하고 있지만, 그 내용은 참 간결하면서도 명료하게 그리고 알기 쉽게 정리가 되어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만 불교의 논리나 개념을 아직 접해보지 못하셨던 분들에게는 어렵게 다가갈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습니다. 불교의 기본 교리인 사법인이나 ‘고고’ ‘괴고’ ‘행고’의 세 가지 고통에 대한 해석 등이 너무 간략히 설명되는 측면이 있으니까요. 티베트 불교 4대 분파나 샘도 정리해주신 티베트 불교의 초기 역사 등도 개략적으로 정리가 되어있고 승려들의 기초 교육 입문 과정과 현교 밀교의 학습 과정 등도 서술되어 있습니다. 소승 대승 그리고 금강승이라는 밀교가 있다는 것도 티베트 불교의 독특함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문·사·수에 대한 설명도 간략하지만 인상 깊었는데요. 저는 토론 시간에도 얘기했듯이, 부처님께서 금 전문가가 금을 얻었을 때 세세하게 검사하는 과정을 거치듯이 법을 들으면 끊임없이 의심하고 질문하고 숙고하고 확신을 얻은 후에 수행하라는 말씀이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사실 요즘 경탄이나 놀람의 정서가 아닌 방식으로 누군가를 존경하고 그에게 감화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고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대목이 좀 더 다르게 다가온 것 같기도 합니다. 달라이 라마의 자서전을 읽고 그 분에 대해서 알아갈수록, 어찌 이럴 수가, 정말 존경스러워요, 너무 감동적이어요 등등 이런 워딩이 아닌, 이런 감탄의 연발사가 아닌 어떤 다른 방식으로 누군가를 존경할 수 있을까 계속 생각해보게 되더군요. 경탄에서 출발한 정념은 누군가를 쉽게 숭배하고 우상시하며 결국 그것이 낳는 결과는 역사적으로 뿐만 아니라 쉽게 우리의 일상사에서도 목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부처님의 자신을 믿지 말고 법을 믿으며 그 법도 철저하게 질문하고 숙고하라는 말씀은 우리가 누군가를 어떻게 존경하고 사랑해야 하는지 보여주시는 힌트처럼도 저에게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명상... 이 낯설지만 끊임없이 이끌리는 세계에 대해서는 아직은 할 말이 많지 않습니다. 우리 반장님의 섬세하고 차분한 지도 아래 저는 천천히 친해져가고 있는 중입니다. <티베트 불교문화>에서도 사마타 수행법에 대해서 잘 정리가 되어있어 도움을 받았지만, 명상이 휴식이라는, 마음을 쉬게 하는 것이라는 반장님의 설명이 왠지 좋았습니다. 마음을 고요하게 한다는 표현이나 욘게이 밍규르 린포체님의 ‘즐거운 명상’이라는 정의도 명상을 이해하는 데 길잡이가 되어주는 것 같습니다. 이번 주에 했던 바디스캔 명상은 이마부터 발가락까지 신체부위마다 스캔하듯이 마음을 집중해보는 명상이었습니다. 늘 폭포수 경험을 하는 저로서는 마음과 생각은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가, 마음은 언제나 그 자리에 그냥 있었을 뿐이구나 등 명상 중에 참 많은 질문이 들면서 매번 폭포수 경험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아직은 몸과 마음 사이에서 헤매고 있는 듯합니다. 이렇게 아주 조금씩 서서히 열려가고 있는 것이겠지요.^^

전생의 선업^^ 어떤 인과로 우리는 이 티베트 불교를 인연으로 한 장에서 만났을까요. 참으로 소중하고 감사한 인연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자리를 마련해주신 스승님과 명상과 세미나를 이끌어주시는 윤지샘 그리고 모든 동학들에게 참으로 고마운 마음입니다._()_

** 공지사항 **

6월 7일(일) 제6회 불티세미나 공지입니다.

- 1교시 명상: 매일 하루 10분씩 명상을 합니다. 몸의 각 부분을 알아차림으로 스캔해 가는 바디스캔 명상을 복습해 보세요.

- 2교시 특강: 지난 주에 이어 티베트 역사에 대한 채운샘의 특강이 이어집니다. 지난 시간에 나누어 드린 프린트물 챙겨 오세요.

- 3교시 토론: <티베트 불교문화> (룬둡소빠, 지영사) 2부 끝까지 읽고 세미나에서 나누고 싶은 내용을 생각해 오세요.

다음 주 간식은 임길례샘과 정미연샘께서 준비해 주시기로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
전체 2

  • 2020-06-02 10:21
    샘 후기를 읽고보니 놀람과 경탄의 정서가 아닌 방식으로 배운다는 것, 금세공사처럼 '끊임없이 의심하고 질문하고 숙고하고 확신을 얻은 후에 수행하라는' 부처님이 말씀이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야 배우는 것이 자기 자신이 커지는 것으로 이어질 수 있겠구나 하구요. 생생함이 느껴지는 빠빵한 후기 감사히 잘읽었습니다!

  • 2020-06-02 13:49
    티베트 역사에 대한 깊고 풍부한 강의를 현정샘의 탄탄한 후기로 다시 한번 공부한 느낌이네요. 감사! ^^ 다르마에 의한 통치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티베트 불교와 역사의 크로스가 감탄과 탄식의 연속입니다... 다음 시간도 기대됩니다. ^^

    현정샘 말씀대로 <티베트 불교문화>가 쉽고 간결한 정리같으면서도, 심도있는 내용이 함께 들어 있어서 처음 불교를 접하시는 분들께는 어려울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일단 각자 이해 되시는대로 찬찬히 읽어보고 다음 토론 시간에 같이 이야기 나누어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