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티(불교&티베트)

불교 of 티베트 6회 세미나 후기

작성자
길례
작성일
2020-06-10 22:49
조회
121
<불교 of 티베트> 6회 세미나 후기

불교 경전을 접하고 법의 테두리를 빙빙 돌면서 공부한지도 몇 해가 된 것 같습니다. 처음 초기경전을 읽으면서 신선했던 것은 존재가 가지고 있는 근원적인 번뇌를 깨달음으로 소멸시킬 수 있다는 말이었어요. 경전을 읽을수록 주옥같은 말씀으로 번뇌를 소멸시키는 방법을 제시하지만, 몸과 마음은 여전히 관성에 머물러 있으면서 갈증을 유발하고 있었습니다. 여러 경전들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내용은 공부와 명상과 수행이 함께 가야 깨달음을 통한 번뇌의 소멸이 가까워진다는 것이었습니다. 번뇌의 소멸을 위해 行하여야 할 것이 많이 있지만, 지금 이 자리에 앉아서 도반님들과 함께 하는 것도 行위 실천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다면 그 많은 명상 중에 왜 티베트의 명상과 수행에 끌렸을까요? 샘께서 말씀하셨듯이 티베트 명상은 단계마다 체계적이고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번 주 강의에서 샘께서는 불교가 서쪽에서 동쪽으로 전파되면서 중국이나 티베트에서 어떻게 작용하였는지, 그 차이는 무엇인지를 설명하였습니다.

인도에서 불교가 동방으로 전해진 것은 4-5세기 무렵이라고 봅니다. 이 무렵 중국에서는 어떠한 정치적기반이 있었으며, 어떠한 인식의 기반위에 불교를 받아들었는지 살펴봅니다. 중국에서 불교가 전파된 시기는 위,진 시대였습니다. 이 시대는 정파적으로 너무나 갈등이 심해서 평화와 안정을 찾아볼 수가 없는 시대였습니다. 이렇게 혼란한 시기에 竹林七賢(죽림칠현)이라는 권력에서 밀려나 대나무 숲에서 공부하는 일곱 명의 현인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유교의 형식주의를 배척하고 노장의 無와 虛 사상에 기반을 둔 그 시대의 새로운 지식인으로 불리어졌습니다. 위.진 시대에는 유가나 법가 사상이 제국을 지배하고 있었지만, 왕권은 십년을 주기로 교체되는 혼란한 상태였습니다. 혼란의 지속은 많은 지식인과 기층민들에게 玄學 사상에 사로잡히게 하였습니다. 유가나 법가가 제국을 통치하는 방식이 국가주의적 사상을 기반으로 하였다면, 노장사상은 국가주의에 대한 저항이 짙게 깔려있었습니다.

이러한 사유의 흐름 속에서 불교가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스며들기 시작합니다. 이 시대 사람들의 정신적 바탕에는‘현’자가 노장을 대표하는 사상적 베이스로 있었습니다. 여기서 玄은 깊고 그윽하다는 뜻이 있으며, 정치적인 담론들을 탈속적인 가치들로 해석하게 됩니다. 이러한 사상적 바탕아래 불교가 서쪽에서 왔을 때 불교의‘空 사상을 받아들이기가 수월했던 것입니다. 중국에 불교가 전파되었다는 것이 달마라 온 것인지 아니면 진짜 실질적인 누군가가 온 것인지는 불분명합니다. 그러나 서쪽에서 동쪽으로 법이 왔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5세기 달마는 중국에 와서 무엇을 하였나요. 소림사에서 9년 동안 면벽 수행을 했습니다. 여기서 선종의 맥이 이어집니다. 달마에 의해서 시작된 중국의 선의 흐름은 혜가를 거치면서 당나라 때는 혜능(6대조인)에 의해 남종선과 북종선으로 나누어집니다. 두 선의 차이는 돈오가 중요한지 점수가 중요한지를 논쟁하면서 나누어집니다. 그 후 중국은 남종선의 주류를 이루면서 돈오를 깨달음의 척도로 삼으며 선종의 맥을 이어갑니다. 당나라가 망하고 송나라 때 왜 불교가 쇠퇴하고 유학이 유행 했을까요. 불교의 비판은 공부도 하지 않고 단박에 깨달았다는 무리들이 소문을 퍼트리면서 장안에 떠돌았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단박에 깨달았다고 호언하는 무리들의 밑에 들어가 깨달은 척하는 사람들의 장안에 넘쳐나면서 지식인들의 사이에 불교에 대한 불신이 일파만파로 퍼졌습니다.이것에 대한 반작용으로 송나라 때에는 엄격한 학습의주가 나타나면서 유학자들도 성리학에 없는 수행하는 부분은 불교에서 약간 취하게 됩니다. 이렇게 불교가 쇠퇴하고 있는 분위기에서 성리학은 지식인들의 마음을 파고들었습니다.

인도에서 티베트로 불교가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7세기 티베트가 거대한 제국을 건설하고 부터입니다. 그 왕이 송짼 감뽀입니다. 이때부터 대략 250년 까지 티베트 불교가 형성되는 시기입니다. 알롱 왕조는 계곡과 고원에 있어 알롱 왕조라 하는데 고원을 통일하고, 통일한 제국을 7세기 때 13살 송짼 감뽀왕에게 물려주게 됩니다. 뜻과 지혜가 크다는 의미의 송짼 감뽀는 첸리시(관세음보살)와 인연이 깊은 화신이라고 합니다.

송쩬 감뽀는 이러한 제국을 통치하면서 평화롭고 안전한 나라를 구축하기 위해 네팔이나 중국의 공주와 혼인을 합니다. 그 나라들로부터 불교가 들어왔으며 동시에 문화교류가 이루어집니다. 혼인을 통해 들어온 불상을 모시기 위해 티베트 최초로 불교사원 라모체와 조캉사원이 건립됩니다. 티베트 불교의 전파는 제국을 이룬 송짼 감뽀가 주변국과의 평화로운 조약을 준수하기 위해 혼인과 함께 들어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전파된 불경을 문자로 기록하기 위해 티베트어를 창조하게 됩니다. 티베트어는 산스크리트어에서 자음24개와 새로운 글자 6자로 자음30자 모음4자로 문자를 만들었습니다. 문자의 창조로 티베트 불교는 불교의 사상과 지혜를 민중들에게 널리 전파하게 됩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문자의 창조는 그 나라의 국가주의적 관점에서 창조되는 것과 대비되는 대목입니다.

티베트에서는 송짼 감뽀의 고손자 치송 데쩬 시대에 동쪽에서 누가 왔는가? 인도에서 대 스승인 구루 린포체 파드마삼바바가 왔습니다. 그가 초청된 것은 티베트 땅에 가득한 정령들을 잠재우기 위해서 왔으며, 치송 데젠과, 25명의 제자들에게 수준 높은 가르침과 비밀스러운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후에 파드마삼바바는 닝마파의 창시자가 됩니다.

치데 송짼의 두 아들이 랑 다마와 티랄빠짼이 왕위 다툼에서 물러난 랑 다마의 분노로부터 티베트의 쇠퇴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동생을 죽이고 승가와 불교를 파괴하였으며, 칙령을 선포하여 70년간 계를 받은 승려가 전무하다 싶을 정도였습니다. 결국 승려에 의해 랑 다마가 살해되면서 그 후 아들과 아내들의 황제 쟁탈전으로 제국은 분열되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티베트 제국의 쇠퇴가 오히려 불교의 2차 전파를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지요. 불법의 2차 전파 시대에는 티베트에서 크게 4개의 종파가 일어났습니다. 닝마파, 카규파,사캬파, 겔룩파입니다. 네 개의 종파가 티베트 사회를 지배하면서 내정 중심 종교국가의 기틀을 마련하게 됩니다.

닝마파의 창시자는 파드마삼바바이다. 가장 오래된 파이며, 1차 불법 전파기에서 생겨난 닝마파는 현재까지 엄격한 독신주의 전통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2차 불법 전파기에는 개혁 종교를 내세우면서 권위 있는 스승들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전통을 이여오고 있습니다. 티베트 불교에서 4대 종파의 역사와 형성시기 종파를 창시한 배경을 빼고 티베트 불교의 전파와 발전을 말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자료를 참고 하세요)

4개의 종파는 각 지역에 권력을 가진 지역 군주들의 후원을 받으며 성장하게 됩니다. 종파들의 역할은 교육기관이자 병원이며 정신적 지주로서 농노들로부터 공물과 사원의 운영비용을 받으며 점점 거대해지고 비만해지는 경향도 있게 됩니다. 그렇지만 제국의 분열은 지역을 중심으로 종파가 형성되면서 불교의 진리와 지혜가 더 널리 민중들에게 파고드는 효과를 낳기도 했습니다.

샘께서는 불교가 서쪽에서 동쪽으로 왔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나라마다 차이가 있다고 하십니다. 그 차이가 뭘까요? 같은 불경의 텍스트를 읽었는데도 중국 불교는 선종화가 되면서 학습이라는 문제를 도외시한 것이 아닌가? 화두를 잡고 단박에 깨우치는 것만 중시해서 대중의 마음을 얻지 못하였던 것이 아닌가? 라는 질문을 하셨습니다. 반면에 티베트 불교는 인도에서 발달한 논리학을 받아들이고 대승경전을 중심으로 학습하는 것을 중요시 하였으며, 공부가 어느 정도 무르익으면, 스승의 가르침으로 내려오는 밀교의 수행을 행으로서 실천하게 하는 체계적인 학습이 있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티베트 불교가 대중들에게 파고 들어갈 수 있는 여러 방식들을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미 이 시기에 삼예사원이라는 승원을 설립하여 나날다 대학과 같은 수업체계로 논리학과 수행을 체계화 하지 않았을까요. 삼예사원에서는 인도종파와 선을 가르치는 중국인과 탄트라 수행자들이 공존하면서 공부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미 인도의 나날다 대학과 같은 버전을 구축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전통으로 티베트 불교는 학습적으로나 수행적인 측면에서나 단계적이고 체계적인 시스템을 구축했을 가능이 커 보입니다.

치송 데쩬의 아들 무니 짼뽀는 제국 전역에 부의 재분배 문제를 평등하게 고치려고 시도하였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건 그렇다고 부자들을 죽이지는 않았다는 겁니다. 중국 공산당이 홍위병을 앞세워 빈익빈 부익부를 해체하고 평등하게 먹고 살자는 구호아래 부자들과 지식인들을 얼마나 많이 죽였는지 비유해서 달라이라마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샘께서도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貧益貧 富益富’ 즉 부의 재분배 문제가 해결된 적이 있는가 라는 질문을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니체의 원한이라는 감정이 어떻게 유럽인의 심리를 파고 들어왔는지 설명하였습니다. 원한은 ‘마음에 들지 않는 마음상태’와 맥을 같이한다는 설명이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그러니까 이 둘은 탐,진,치로 가득한 가장 무력한 상태라고 합니다. 이러한 마음 상태는 무기력한 것이 아니라 그 내면에는 분노로 가득 차 있다는 것입니다.

동,서양에서 4세기경에 새로운 중교가 전파되고 그로 인해 새로운 변화를 겪은 시기입니다. 니체는 기독교가 어떻게 로마제국에 스며들었으며, 그 심리적 메커니즘이 어떻게 작동하였는지를 설명합니다. 니체는 기독교 사상의 기저에 원한이라는 심리적 메커니즘이 자리하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기독교가 로마의 기층민들의 삶에 파고들어 그들에게 ‘원한’을 심어주므로 로마의 여론을 형성하였습니다. 이때부터 중세를 거처 근대까지 유럽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프랑스 혁명도 원인은 뭘까요 ‘원한’입니다. 마르크스 혁명도 원인은 똑같습니다. 그렇다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마음의 상태는 뭘까요

유럽의 사회주의 혁명도 따지고 보면 ‘왜 부자만 가져 우리들도 함께 가져야지’ 라고 말하는 것이지요. 말이 좋아서 평등한 사회이지,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평등한 사회가 구현되었던 적이 있을까요? 혁명이면에는 대대적인 학살이 이어지고 그 학살이 혁명이라는 이름아래 정당화되고 그 이념들을 이용하는 세력에게 정당성만 부여하는 악순환이 연속이 아닐까요? 함께 갖지 못한 심리는 원한이라는 구도로 사람들 마음에 스며들지만, 이것이야 말로 탐,진,치로 가득한 무기력한 마음이 아니고 무엇일까요? 여전히 사람들은 자기가 불행한 것은 ‘누군가가 대신 가지고 있기 때문이야’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심리적 메커니즘이 유럽인의 마음의 구조라고 니체는 말합니다. 그러면서 자주 새로운 시대의 인간 초인을 언급합니다. 지금 현재 우리가 공부하는 것과 연결하면 초인이 어떻게 작용 할까요?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도 많은 모순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모순들을 ‘원한’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여 해결할 수 있을까요 예를 들어 지금 미국의 사태도 백인들이 흑인의 삶의 방식은 나랑 달라 그래서 마음에 안 들어 여기서 원한이 싹트고, 인종차별이라는 형태로 표현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까지 원한으로 밖에 대응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살까요? 시기도 질투도 욕심도 산만하게 뭔가를 찾는 것도 원한의 감정을 유발합니다. 마음에 안 드는 마음이란 것이 원한 이예요. 내가 갖고 있지 않은 어떤 것을 볼 때마다 화가 일어나는 것 이것이 원한이며 그 뿌리들 뽑아내려는 것이 바로 수행이라고 볼 수 있어요. 마음을 수행을 통해 보지 않으면 하나의 원한의 또 다른 원한을 부르고, 정의롭게 살겠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누군가를 죽이는 원한으로 나타납니다.

니체는 2000년 동안 유럽인들의 마음의 구조, 그 이면에는 원한과 죄의식이라는 심리적 메커니즘이 자리 잡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인간(초인)이 와서 원한과 죄의식으로부터 자유로운 새로운 인간을 창조하길 바랐는지도 모릅니다. 원한은 자기 자신을 자책하는 것과 함께 옵니다. 만약에 완벽하게 자기 자신을 긍정한다면 가난하든, 질병에 걸리든, 세상이 어떻게 변화하든 상관이 없습니다.

달라이라마가 말했듯이 “부자들을 죽이지 않는 방식으로도”자기의 삶을 긍정할 수 있는 삶이란 무엇일까요? 살아가면서 우리가 겪게 되는 많은 사건과 사고들을 어떻게 겪어내야 할까요? 어쩌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어떠한 환경에서도 내 마음을 평화롭게 지키는 것이 아닐까요?

토론과 명상

토론에서 법무아 인무아를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토론이 있었습니다. “모든 법이 무아라고 할 때, 이때의 법이란 善法만이 아니고 존재하는 모든 것을 가리킵니다. 我가 없다고 할 때 법무아와 인무아의 두 가지가 있는데 사법인(제행무상, 일체개고, 제법무아, 열반적정)에서의 무아는 법무아가 아니고 인무아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법무아는 불교 학파 중 유식학파와 중관학파에서는 받아들이지만 설일체유부나, 경량부에서는 받아들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교재40)

질문은 我가 없다는 것을 가볍게 받아들이면 위험하지 않을까? 我가 없다는 것은 과정에서 없다는 것이지 지금 당장 아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법무아에 대한 의문도 제기 되었습니다. 여기에 대한 다른 견해는 무아나 무상이라는 것이‘느끼고 감각하고 말하는 내가 없는 것이 아니라’ 절대적이고 무제한적인 자아가 없다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감각의 관점에서 보면 고정적으로 머물러 있는 것은 없습니다. 항상 변화하고 어떤 원인과 조건에 따라 수시로 다르게 반응하는 것만 있을 뿐입니다.

사실 불교의 문제도 무아와 참나, 참된 주인을 찾으라고 하는 경우도 있는데 각각 다르게 해석되고 있는 부분입니다. 그러니까 끊임없이 자기 구원과 자기 수행을 말하는데 아가 없다면 자기구원은 누가 하는가? 라는 질문도 생길 수 있습니다.

법무아가 문제되는 것 같은데요 불교에서는 인무아는 의견이 모아지는데 법무아는 하나의 논지를 가지고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 질문은 아직까지 불교에서 뜨거움 물음으로 남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무아 이면서 어떻게 인욕을 하고, 환생을 할 수 있을까요’ 라는 의문들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이해해가는 과정이 다르마를 이해해가는 과정이겠지요?

이번 주 명상은 호흡으로 시작했습니다. 반장님의 평화롭고 고요한 음성을 따라 들숨과 날숨을 알아차리면서 마음을 코끝에 두고 따라 했습니다. 이 명상은 부처님께서도 장소에 구애 없이 항상 편안하게 하셨다고 아나빠나샤띠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호흡을 관찰하면서 16가지 마음 챙김으로 신, 구, 의, 법을 관찰합니다. 잡아함경에서는 염처수행이이라고도 합니다. 명상을 한다는 것은 의도를 내고, 알아차림(인식)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의도를 내면서 몸을 고정시키지만 아직도 마음은 몸을 떠나 생각의 날개를 달고 날아다니는 중입니다.

★★★ 공지사항 ★★★

6월14일(일) 제7회 불티 세미나 공지입니다.

-1교시 명상 : 매일 하루 15분씩 명상을 해봅니다. 들숨과 날숨에 주의를 기울이면서 천천히 일곱까지 호음을 세는 호흡 명상을 복습해 봅니다.

-2교시 낭송 : 다음 시간에는 쌍윳따니까야 2-1. 태양의 품(209쪽)~ 2-3.여러 이교도의 품(258)까지 낭송할 예정입니다. 가능하시면 의미를 새기며 일독해 오세요

-3교시 토론 : ≪티베트 린포체의 세상을 보는 지혜≫ (밍규르 린포체,문학의 숲) 193쪽까지 읽고 세미나에서 나누고 싶은 내용을 생각해 옵니다.

각 자의 발제를 맡으신 분들은 3분가량 짧게 내용을 나눌 수 있도록 준비해 오시면 됩니다.

-목차, 1장 이림영옥. 2.임길례 3.김수늬 4.정태미 5.성민호 6.이현정 7.이현숙 8.정미연

- 다음 주 간식은 성준기샘과 김원희샘께서 준비해주시기로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전체 4

  • 2020-06-11 09:10
    우리 혜가쌤, 다른 시공간에 있는 것 같았는데, 결국 우리는 같은 말씀 속에 있었군요! ㅎㅎㅎ 후기 쓰신 걸 보니 혜가의 잘린 팔이 다시 살아난 듯 합니다. 티벳이든 대승이든 우리는 불국토에 모여앉은 부처의 분신들에 틀림없죠~^^ 그나저나 언제 한 번 눈맞춤을 해야할 텐데 말입니다~ ㅎㅎㅎ

  • 2020-06-11 11:07
    우리 바쁘신 길례샘께서 오랜만에 글을 쓰신다고 큰 마음을 내신 게 느껴집니다. 덕분에 다시 한번 티베트 역사 속의 왕들과 스승들과 불법의 전파를 생생하게 공부하네요~ ^^

    짧은 토론에서도 진지한 질문을 길어 올려 숙고를 이어가시니 그것이 공부로 다르마의 길을 가는 게 아닌가 합니다. 담 주 토론도 기대됩니다~ ^^

  • 2020-06-11 20:16
    ㅎㅎㅎ 불교팀 분들이 모두 “우리 길례샘”이라고 하는 걸 보니 샘이 불교팀에 남기고 간 빈자리가 큰가 봅니다^^ 티베트 불교 잘 배워오셔서 저희에게도 한수 가르쳐주세요~ 그나저나 언제 눈팅해야하는데...^^

  • 2020-06-12 20:04
    공부와 수행은 함께 가야한다고 '우리' 길례쌤께서 말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