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티(불교&티베트)

<불교 of 티베트> 7회 세미나 후기

작성자
민호
작성일
2020-06-14 17:05
조회
129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던 것 같았던 불티세미나가 어느새 마지막 한 주가 되었네요. 티베트에 대해서나 불교에 대해서나 일자무식이었던 저로서는 배우는 내용이 신선하면서도 어렵고 또 재미있었습니다. 전혀 알지도 못했고 알아야할 필요성도 몰랐던, ‘티베트’ 또는 ‘티베트 불교’라는 커다란 세계의 존재를 더듬더듬 확인하고 있는 느낌입니다. 이번 주 저희는 <티베트 린포체의 세상을 보는 지혜>하는 책을 읽고 세미나를 했습니다. 아마 세미나를 하기 전이었으면 그저 ‘힐링 명상 서적’ 정도로 여겨 눈여겨보지도 않았을 테지만, 배웠던 내용들과 연결되고 또 그럴수록 호기심이 생기다보니 한 구절 한 구절이 빛나는 것처럼 읽혔습니다. 무척 심오한 이야기가 친절하게, 그러나 단순하지는 않게 적혀 있었습니다. 세미나 때 선생님들께서 이 책이 불교의 핵심적인 개념과 전문적 용어를 현대적인 언어로 아주 쉽게 전달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습니다. 익숙한 개념과 이야기들, 생물학적이고 물리학적인 원리 차원에서의 과학적 설명이 곁들여지니, 그간 알게 모르게 가지고 있던 불교지식에 대한 ‘어렵고 무겁다’는 생각과 거부감이 들지 않고 스스륵 따라갈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심오하고도 친절한 책을 쓴 사람은 누구일까요? 이 책의 저자 욘케이 밍규르 린포체는 달라이 라마 이후 티베트 불교의 새로운 세대를 대표하는 스승입니다. ‘린포체’란 티베트어로 ‘존귀한 이’라는 의미로 뛰어난 스승의 이름 뒤에 붙이는 호칭입니다. 달라이 라마와 마찬가지로 밍규르 린포체도 윤회하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매우 흥미롭게도 그는 17세기 고승 밍규르 린포체의 7대 환생이자 20세기 지도자 캉규르 린포체의 환생자입니다. 두 명의 위대한 스승이 하나의 육체로 동시에 환생한 것입니다. 역시 위대한 스승은 그 출생부터 비범했던 걸까요? 그러나 ‘역시 태생이 달라, 천재야’라고 말하기에는 그의 공부량과 수행의 시간이 너무 압도적이었습니다. 저는 이것이 좀 놀라웠는데요, 마치 환생자라고 하면 전생에 쌓은 지혜와 수행을 고스란히 가지고 와 보다 높은 베이스(혹은 초기자금) 위에 있는 줄로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습니다. 달라이 라마가 잘 보여주듯 위대한 환생자 라마승은 어려서부터 엄청난 수행의 과정을 다시 쌓아갑니다. 그러니까 환생이란 것의 힘이 있다면 그것은 마치 세습처럼 지혜 자체를 되물려주는 것이 아니라, 다시 그 지혜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하는 인연 혹은 그 수행을 겪을 수 있는 근기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게다가 밍규르 린포체는 환생자임에도 불구하고 아주 어렸을 때부터 청소년기까지 일종의 공황장애 또는 신경쇠약을 겪었다고 합니다. 이유모를 극심한 두려움과 불안이 지속되었던 것이죠. 밍규르 린포체는 거의 7년에 걸쳐 이어진 안거수행 동안에 이 두려움의 실체 없음을 깨닫고 무한히 넓고 무한히 열린 순수 의식으로서의 마음의 본성을 경험했다고 합니다. 우리의 모든 지각이나 이해, 두려움과 같은 감정을 파생시키는 근원은 바로 마음입니다. 그는 수행의 본질은 다른 무엇이 아니라 마음의 본성을 발견하는 것임을 강조합니다.

“불교 수행의 본질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생각과 행동을 바꾸려는 노력이라기보다는, 당신의 삶을 제한하고 있는 환경에 대해 당신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든 자신이 이미 다 갖추고 있고 완전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일입니다. 자신의 마음에 본래부터 내재된 가능성을 자각하는 일입니다.”(20쪽)

이렇게 시작하면서 밍규르 린포체는 마음과 그 마음의 본성에 대해 여러 개념과 비유와 우화를 활용하여 차근차근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그는 수행의 과정에서 서양의 첨단의 뇌과학과 물리학, 양자역학, 생물학 지식 접하게 되는데, 이것이 불교의 개념들과 시너지를 일으켜 마음의 작용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고 말합니다. 이후 책의 전반부에서는 과학의 개념을 경유하면서 무엇에 마음을 비유할 수 있으며, 마음이 왜 동요되는지, 마음이 어떤 힘이 있는지를 풀어내고 있습니다.

마음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은 아직까지 명료한 답을 얻지 못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늘 마음의 한 현상인 기억, 인지, 상념, 감정 등을 경험하지만 마음 자체는 정의할 수 없고 개념화할 수 없습니다. 마음은 사물이나 실체가 아니기 때문에 “끊임없이 전개되는 일어나는 사건”(46쪽)이라는 표현으로 묘사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늘상 겪는 잡념이나 감정을 마음이라 하지 못할 이유가 있을까요? 그것들은 물론 마음입니다. 그러나 마음의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지 그것들을 마음의 본성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들은 지나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러한 모든 작용을 포함하는 것으로서의 마음을 이야기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불교에서는 마음의 본성을 바다, 물, 허공, 우주 등으로 비유합니다. 흐리거나 맑은 날씨에 의해 그 색과 탁도가 다르게 보이는 바다, 부유물이 들뜨거나 가라앉곤 하는 물, 사물이 형성되고 운동하고 해체되는 장으로서의 허공, 별들이 탄생 소멸하는 우주 등. 마음은 그 자체로 거기 표현된 무엇이라고 정의할 수 없는 동시에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할 수도 없는 미묘한 장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모든 비유들의 공통점은 마음의 본성, 즉 자연스러운 마음이란 침전물이나 불순물들에 의해 오염되더라도 다시 회복되거나 걸러질 수 있는 본래의 맑은 영역이라는 것입니다. “만약 물이 본래 맑지 않다면, 아무리 많은 필터를 사용한다 해도 맑아지지 않을 것입니다.”(79쪽) 이러한 맑음으로서의 자연스러운 마음을 우리는 명상과 같은 수련을 통해 경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열심히 배우고 있는 명상에서의 그 짧은 ‘알아차림’도 그 경험이라 할 수 있을까요?

거의 모든 챕터에서 반복적으로 나오는 말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의 마음의 활동들은 특정 조건의 경험들 속에서 형성된 것이므로 다른 경험의 시도로부터 그 활동들을 바꿀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가령 이것과 저것은 다르다는 분별과, 사물이 존재한다라고 하는 지각, 다른 존재들과 구별되는 나라는 의식은 생존본능과 관계되어 오래도록 반복된 습관입니다. 다른 말로하면, “뉴런에게 있어 오랫동안 헌신적으로 지속해온 관계”(177쪽)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건들을 경험할 때 그 사물에 부여하는 맥락이나, 관점, 선판단 등이 그것입니다. 그러나 습관화되었다고 해서 그러한 작용이 사실이라는 것은 아닙니다. 더구나 그것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준다는 것은 더욱 아닙니다. 오히려 그러한 방식으로 고착된 기억과 사고방식은 사물에 특성을 부여하고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능력을 저해합니다. 그것은 “무지(치), 집착(탐), 혐오(진)”로 이어집니다. 우리의 고통과 불행은 모두 마음의 작용이라는 것이지요. 마음의 메커니즘이 설명되는 바로 이 지점에서 밍규르 린포체는 다른 가능성, 행복의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과거 수년간 조건화에 의해 형성된 해묵은 지각 작용들을 서서히 변화시키기 위해 특정한 마음 수련”(119쪽)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 자기 자신과 주위 세상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는 연습을 한다면 자신과 주위 세상에 대한 당신의 지각도 따라서 변화한다는 것”(129쪽)이죠. 심리학 용어로 ‘인지적 재구조화’라고 표현되는 이것은 “대뇌변연계에 새로운 경로”(156쪽)를 만드는 일입니다.

그러한 변화가 일어나, 자연스러운 마음을 유지하고 어떤 상황이고 행복의 상태에 머물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당장에 그 비법을 전수받고 싶습니다. 아주아주 기대가 됩니다. 어떤 명상을 해야 할까? 하지만 밍규르 린포체는 말합니다. “실제로 명상 수행의 본질은 명상에 대한 기대를 모두 내려놓는 일입니다.”(148쪽) 기대는 곧 지치게 만듭니다. 생각해보면 불교적 평화은 곧 깨달음인데 이것이 그렇게 쉽게, 당장에 될 리가 없습니다. 오늘 읽은 <쌍윳따니까야>에서도 “칼날이 몸에 와 닿은 것처럼 머리카락에 불이 붙은 것처럼” 수행하라는 말이 나옵니다. 또 몇 겁의 생을 다시 살아도 못 깨달을 수도 있다는 마음으로 수행하라는 말도 어디선가 들은 기억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이 영원한 평화와 만족의 기분을 진정으로 발견하고 싶다면 마음을 휴식하는 법을 배워야”(192쪽) 한다고 말하는 밍규르 린포체의 말은 속임수일까요? 그런 생각이 잠깐 들기도 했지만, 나 같은 초심자가 그런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짧은 명상 시간 동안에도 상념을 어쩌지 못하는 저로서는 밍규르 님포체가 제시하는 방법이 매우 적절했기 때문입니다. 기대 자체가 방해가 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시작 전부터 겁먹고 포기하는 것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오래 걸리고 어려운 것이 수행이겠지만, 어쨌든 그러한 수행을 겁먹지 않고 또 커다란 기대를 품지 않고 시작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점에서 저는 이 책에 감사할 이유가 충분한 것 같습니다.

 

** 공지사항 **

6월 21일 (일) 제8회 불티 세미나 공지입니다.

 

- 1교시 명상: 매일 하루 20분씩 명상합니다. 20분이 길게 느껴지시는 분들은 5분 또는 10분 단위로 나누어서 하루 2~3회 ‘짧게 자주’하셔도 됩니다. 이번 주엔 시각 (형태) 명상을 복습해 봅니다. 바라볼 대상을 선택하고 대상의 형태와 색깔에 가볍게 주의를 기울입니다. 애써 집중하거나 대상을 분석하지 않습니다. 열린 알아차림과 번갈아 합니다.

 

- 2교시 낭송: 다음 주는 <쌍윳따니까야> 3. 여러 이교도의 품 (233쪽)~ 1. 속박의 품(280쪽)까지 낭송할 예정입니다. 가능하신 분들은 주석과 함께 일독해 오세요.

 

- 3교시 토론: <티베트 린포체의 세상을 보는 지혜> 194쪽부터 끝까지 읽어 옵니다. 발제는 9. 박차원샘 10. 권영숙샘 11. 정미연샘 12. 김원희샘 13. 성민호샘 14. 김지영샘 15. 이림영옥샘 16. 임길례샘 17. 김수늬샘 18. 이현숙샘 입니다.

 

다음 주 간식은 정태미 샘과 임영주 샘께서 준비해 주시기로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
전체 2

  • 2020-06-15 13:49
    오!!!! 환생이란 것의 힘이 있다면 그것은 마치 세습처럼 지혜 자체를 되물려주는 것이 아니라, 다시 그 지혜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하는 인연 혹은 그 수행을 겪을 수 있는 근기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불목한 민호님도 환생의 힘 있는거 같아요! 후기 보시 자동태크시키는 우리 도반들, 그리고 잔소리로 계속 공부하게하는 쌤들이 있으니까요! 그레도 '용쓰기'는 않는 걸로!

    내 마음의 본성이 무한히 순수하다는 깨달음을 부드럽고 친절하게 열어주시는 밍규르 린포체님께 감사하며 읽고 명상합니다.! 뉴런의 수다가 좀 줄어든거 같긴해요!

  • 2020-06-15 22:42
    불티의 촉망받는 젊은 청년 민호샘께서 달라이 라마 존자님에 이어 밍규르 린포체님의 엄청난 공부량과 수행 시간에 감탄을 하시는 모습이 무척 보기 좋습니다. ㅎㅎ
    키키샘 말씀처럼 우리 민호샘께선 인연 조건과 근기가 탄탄하시니 이제 다만 칼날이 몸에 와 닿은 것처럼 머리카락에 불이 붙은 것처럼 공부를 하시는 걸로... 민호샘 홧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