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티(불교&티베트)

<불교 of 티베트> 두 번째 시간 후기

작성자
지영
작성일
2020-08-02 16:28
조회
85
두 번 째 시간 후기를 세 번 째 시간 끝나고서야 올리게 되서 죄송합니다.

두 번 째 시간에는 <티벳트 해탈의 서>의 첫째 권 ‘파드마삼바바의 생애와 가르침’을 읽고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가장 의견이 분분했던 것은 그의 생애에 관해 어떻게 받아들였냐 하는 것이었는데요, 마치 그리스 신화나 건국 신화 같다는 분도 계셨고요, 거대한 신전이나 인간을 초월하는 신들이 등장하는 그리스 신화에 비해 소박한 판타지 같다는 분도 있으셨어요. 또 아직은 우리가 인도의 문화·상징·은유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파드마삼바바의 보살심과 자비심을 강조하는 것 같다는 의견과 파드마삼바바가 역사적 인물이긴 하지만 그의 추종자와 신봉자들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허구적이고 황당무계한 이야기라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또 재미있게 토론했던 내용은 파드마삼바바가 묘지에서 수행하는 것이었는데요, 지금도 수행자 중에 탐욕에 사로잡혀 있을 때 시체를 보면 수행하는 부정관不定觀을 한다는 이야기와, 이런 수행을 계속하면 미인이 와도 그저 뼈조각이나 피고름자루가 움직이는 것으로 여긴다는 이야기를 하면 미추·호오 등의 이분법에서 벗어나는 수행을 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이야기 등이 이어졌습니다. 한편으로 미인을 아름답다고 여기는 게 문제인가 꼭 뼈조각으로 여겨야 하는가 라는 질문도 재미있었는데요, 아름다움을 취해 이것이 변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집착하는 데서 고苦가 생기기 때문에 문제가 되고 이를 각성하기 위해 묘지에 간 것이 아닌가, 그것은 결국 알아차림을 수행하기 위한 것이라는 논의가 있었습니다.

 

이 중에 저는 파드마삼바바가 생애에 관한 이야기가 흥미로웠습니다. 저도 처음엔 그를 초월적인 신처럼 여겼는데요, 붓다가 입멸하기 전 자신보다 훨씬 더 뛰어난 존재인 파드마삼바바가 태어날 것이라는 예언을 했다거나 그가 바로 인간의 육신으로 현현한 극락세계의 아미타불로 인간의 태가 아니라 연꽃에서 태어나 연화생蓮華生으로 불린다는 전생과 탄생 이야기 등은 상식으로 설명이 안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거꾸로 생각해보면 지금 우리에게 스마트폰을 하고 비행기나 우주선을 타고 다니는 일상적인 모습을 조선 시대 사람에게 묘사한다면 그들도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손바닥만한 상자가 빛을 내며 온갖 문자와 그림이 나타나고 소리가 들리고, 강철 덩어리가 하늘과 우주를 날아다닌다는 이야기는 그들의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겠지요. 우리의 상식이나 틀에 껴맞추지 않고 봐야 한다는 건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세미나 때 잠깐 언급되었던 것은 불교는 깨달음의 차원인 진제와 세속의 차원인 속제, 두 가지 관점에서 세계를 본다는 것이 흥미로웠는데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지는 못했습니다. 제 수준에서 파격적인 파드마삼바바의 행동과 그를 둘러싼 대부분의 상식적인 사람들의 반응이 이를 대비해서 보여주는 것 같다는 정도로 이해했는데요, 특히 파드마삼바바가 살인을 하고 추방당했을 때 처음에는 묘지에서 수행하다가 곳곳에서 여러 스승에게 배운다거나, 수행하는 과정에서 누명을 쓰고 형벌을 받을 때 연꽃 속에서 명상하는 채로 발견되는 모습들이 전자의 관점과 연결되는 것 같았습니다. 보통 억울한 일을 당하면 분노하거나 복수를 하거나 체념을 하는데 비해 파드마삼바바는 세속적인 감정에 휘둘리는 게 아니라 삼매에 들어 그 상황을 전혀 다르게 이해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어떻게 다르게 해석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다가, 예전에 불교 시간에 읽은 <붓다가 깨달은 연기법>이라는 책에서 부처님의 일대기에 관한 해석이 생각났습니다. 부처님의 생애에도 신비한 전설 같은 이야기들이 많은데요. 저자가 그중 싯다르타가 태어났을 때 한 예언가의 이야기를 예로 들어 짤막하게 이야기 한 부분이 흥미로웠습니다. 싯다르타가 왕위를 계승하면 세상을 통일한 전륜성왕이 될 것이고 출가하면 진리를 깨달아 부처님이 될 거라 예언했다는 이야기에 대해 저자는 그런 이야기가 사실인지 아닌지, 후대에 만들어진 전설인지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말했는데요, “사실의 여부를 떠나서, 이 예언이 당시의 사회적 상황과 싯다르타의 정신적 방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15쪽)다고 말합니다. 전륜성왕이라는 방향성은 부처님 당시 전쟁 없는 평화로운 시대를 향한 국민들의 갈망이자 이에 응해 스스로 위대한 제왕이 되고자 했던 싯다르타의 바램을 보여준다고요. 실제로 당시 부처님은 출가 전 여러 부족국가의 중 하나였던 카필라국의 왕자였고, 약소 부족국가들은 강대국인 코살라국의 위협 속에 불안 속에 살았다고 합니다.

이런 점에서 파드마삼바바의 출가 전의 상황을 다시 보면, 열심히 공부해 학식도 풍부했고 씨름과 운동에도 당할 자가 없다는 묘사나, 약혼자가 있던 아름다운 여인을 부인으로 맞고 또 그녀와 함께 500명의 부인을 두었다는 묘사 등을 곧이 곧대로 볼 게 아니라, 그 묘사가 당시의 이상적인 왕과 행복에 대한 상相이자 그에 대한 열망을 보여준다고 해석해 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파드마삼바바는 “세상의 모든 것이 환영이어서 완전한 만족을 선사하지 못함을 알”(214)고 모든 것을 두고 떠납니다. 재미있는 건 이후 추방당한 연화생에게 왕이 모든 소망을 이루어주는 여의주를 주려 하는 장면이었는데요, 파드마는 이렇게 말하며 거절합니다. “내가 바라보는 모든 것이 나의 여의주”(218)라고요. 실체 없는 환영에 의존하지 않고 본래 부처임을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는 대승 사상과 이어지는 게 아닐까 멋대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상 후기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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