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몽스쿨

[격몽복습] 안연 6~10

작성자
혜원
작성일
2017-12-22 11:38
조회
62
 

6장

 

子張問明 子曰 浸潤之譖 膚受之愬 不行焉 可謂明也已矣 浸潤之譖 膚受之愬 不行焉 可謂遠也已矣

자장이 명석함에 대해 물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스며드는 참소와 피부에 와 닿는 하소연이 그에게 행해지지 않으면 명석하다 할 수 있다. 스며드는 참소와 피부에 와 닿는 하소연이 그에게 행해지지 않는다면 보통 사람과 다르다고 할 수 있다.

 

浸潤 如水之浸灌滋潤 漸漬而不驟也 譖 毁人之行也 膚受 謂肌膚所受利害切身 如易所謂剝床以膚 切近災者也 愬 愬己之寃也 毁人者漸漬而不驟 則聽者不覺其入而信之深矣 愬寃者急迫而切身 則聽者不及致詳而發之暴矣 二者 難察而能察之 則可見其心之明而不蔽於近矣 此亦必因子張之失而告之 故 其辭繁而不殺 以致丁寧之意云

楊氏曰 驟而語之 與利害不切於身者不行焉 有不待明者能之也 故 浸潤之譖 膚受之愬不行然後 謂之明 而又謂之遠 遠則明之至也 書曰 視遠惟明

침윤은 물과 같이 젖어 갑작스럽지 않은 것이다. 참(譖)은 남의행실을 헐뜯는 것이다. 부수(膚受)는 피부로 받는 이해가 몸에 절실한 것이니, <주역>에서 이르는 ‘평상을 깎아 살에 미쳐 재앙이 매우 가깝다’는 것이다. 소(愬)는 자신의 억울함을 하소연 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헐뜯는 것은 서서히 하고 갑작스럽지 않으므로 듣는 사람이 거기에 들어가 깊이 믿는 것을 자각하지 못한다. 억울함을 하소연 하는 것은 급박하고 자신에게 절실하게 하면 듣는 사람이 미쳐 상세함을 살피지 못하고 사나워진다. 두 가지는 살피기 어려운 것인데, 능히 이것을 살핀다면 그 마음이 명석하여 가까운 것에 가려지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또한 자장의 단점에 따라 알려주신 것이므로, 그 말씀이 번잡하고 줄이지 않아 진실한 뜻을 지극히 한 것이다.

양씨가 말했다. ‘갑자기 말하는 것과 이해가 몸에 절실하지 않은 것이 행해지지 않는 것은 굳이 명석함을 기다리지 않아도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서서히 젖어드는 참소와 피부에 와 닿는 하소연이 행해지지 않은 뒤에야 명석하다. <서>에 이르기를 ’먼 것을 봄은 오직 명석함이다‘ 라고 하였다.

 

 

7장

 

子貢 問政 子曰 足食 足兵 民信之矣

자공이 정사에 대해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양식을 풍족하게 하고, 군사를 풍족하게 하고 백성들이 그를 믿게 하라.”

 

子貢曰 必不得已而去 於斯三者 何先 曰 去兵

자공이 말했다. “어쩔 수 없이 버려야 한다면 세 가지 중 어떤 것을 먼저 버릴까요?” “군사를 버려야 한다.”

 

子貢曰 必不得已而去 於斯二者 何先 曰 去食 自古皆有死 民無信不立

자공이 말했다. “어쩔 수 없이 버려야 한다면 두 가지 중 어떤 것을 먼저 버릴까요?” “양식을 버려야 한다. 백성들이 믿지 않으면 설 수 없다.”

 

民無食必死 然 死者 人之所必不免 無信則雖生而無以自立 不若死之爲安 故 寧死而不失信於民 使民亦寧死而不失信於我也

程子曰 孔門弟子善問 直窮到底 如此章者 非子貢 不能問 非聖人 不能答也 愚謂 以人情而言 則兵食足而後吾之信 可以孚於民 以民德而言 則信本人之所固有 非兵食所得而先也 是以 爲政者當身率其民 而以死守之 不以危急而可棄也

 

백성들은 양식이 없으면 반드시 죽는다. 그러나 죽음은 사람이 반드시 면할 수 없는 것이다. 사람이 신의가 없으면 비록 살더라도 자립할 수 없으니 죽음이 편안한 것만 못하다. 그러므로 차라리 죽어 백성들에게 신의를 잃지 않아 백성들로 하여금 또한 차라리 죽어서 나에게 신의를 잃지 않게 해야 한다.

정자 말씀하셨다. “공문(孔門)의 제자가 묻기를 잘하여 직접적으로 궁구하기를 이 장처럼 낮은 데까지 이르렀으니, 자공이 아니면 질문하지 못했을 것이요 성인이 아니면 답하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생각건대, 인정으로 말하면 군사와 양식이 풍족한 뒤에 나의 신의가 백성들에게 떠오를 수 있는 것이요, 백성의 덕으로 말하자면 신의는 본래 인간이 진실로 가지고 있는 것이니 군사와 양식이 앞설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위정자는 마땅히 몸소 그 백성들을 통솔하여 죽음으로써 지켜야 할 것이니 위급하다고 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8장

 

棘子成曰 君子 質而已矣 何以文爲

극자성이 말했다. 군자는 바탕일 뿐이니 무늬를 어디에 쓰겠는가.

 

子貢曰 惜乎 夫子之說이 君子也 駟不及舌

자공이 말했다. “애석하다, 그의 말이 군자를 말하나 말도 그 혀를 따라잡지 못할 정도로 경솔하구나.”

 

文猶質也 質猶文也 虎豹之鞟 猶犬羊之鞟

무늬는 바탕과 같으며 바탕은 무늬와 같으니 호랑이와 표범의 털 없는 가죽이 말과 양의 털 없는 가죽과 같은 것이다.

 

 

鞟 皮去毛者也 言文質等耳 不可相無 若必盡去其文而獨存其質 則君子小人 無以辨矣 夫棘子成 矯當時之弊 固失之過 而子貢 矯子成之弊 又無本末輕重之差 胥失之矣

곽(鞟)은 가죽에서 털을 제거한 것이다. 무늬와 바탕은 동등하니, 서로 없어서는 안 된다. 만약 그 무늬를 버리고 단지 바탕만 보존한다면 군자와 소인이 분별될 수 없음을 말한 것이다. 극자성은 당시의 폐단을 바로잡음에진실로 과하여 잘못되었고, 자공은 자성의 폐단을 바로잠음에 본말(本末)과 경중(輕重)의 차이가 없었으니 모두 잘못된 것이다.

 

 

9장

 

哀公 問於有若曰 無饑用不足 如之何

애공이 유약에게 물었다. “흉년이 들어 재용이 부족하니 어찌하겠는가.”

 

有若對曰 盍徹乎

유약이 대답하여 말했다. “어찌 철(徹)법을 쓰지 않습니까?”

 

曰 二 吾猶不足 如之何其徹也

“나는 십분의 이를 걷어도 부족한데 어찌 철법을 쓰겠는가.”

 

對曰 百姓足 君孰與不足 百姓不足 君孰與足

유약이 대답하여 말했다. “백성이 풍족하면 군주는 누구와 더불어 부족하며 백성이 부족하면 군주는 누구와 더불어 풍족하겠습니까?”

 

 

10장

 

子張 問崇德辨惑 子曰 主忠信 徙義 崇德也

자장이 덕을 높이고 의혹을 분별함을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충(忠)과 신(信)을 주로 하며 의(義)로 옮기는 것이 덕을 높이는 것이다.”

 

愛之 欲其生 惡之 欲其死 旣欲其生 又欲其死 是惑也

“그것을 사랑하면 그것이 살기를 바라고, 그것을 미워하면 그것이 죽기를 바라니, 이미 그 살기를 바라고 또 그 죽기를 바라는 것, 이것이 의혹이다.”

 

誠不以富 亦祇以異

“진실로 부유하지도 못하고 또한 단지 괴이함만 취한다.”

 

 

 

 

이번에 읽은 것 중에서 '浸潤之譖 膚受之愬'라는 말이 제일 인상적이네요. 저도 모르게 믿게 되는 참소와 저도 모르게 같이 사나워지는 절절한 하소연이라니 어쩜 이리 기가 막힌 표현을 ^^ 명석한(明) 판단력과 감정에 휘둘리는 것을 이렇게 잘 보여주는 말도 없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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