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내어 읽는 니체

소니 《즐거운 학문》4부 공지

작성자
건화
작성일
2018-02-03 16:09
조회
68
이번 주에 읽은 〈즐거운 학문〉 3부는 뭐랄까, 니체가 정색(?)하고 쓴 것 같은 챕터였습니다. ‘세계’, ‘인식’, ‘도덕’, ‘종교’ 등 거대한 주제들을 많이 다루었죠. 그 때문에 토론도 살짝 무겁고 진지하게 흘러갔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본문의 내용을 이해하는 일에 치중하다보니 정작 니체가 세계가 어떻고 인식이 어떻고 하는 거창한 얘기들을 왜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이야기할 시간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번 토론에서 많이 얘기되지는 않았지만, 120절에서 약간의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영혼의 건강 ― 도덕에 관해 회자되는 의료적 비유로서 다음과 같은 표현이 있다(…). “덕은 영혼의 건강이다.” 이 말이 올바로 사용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다음과 같이 고쳐져야 한다. “너의 덕은 네 영혼의 건강이다.” 왜냐하면 건강 그 자체는 존재하지 않으며, 어떤 것을 그처럼 정의하려는 모든 시도는 비참한 실패를 맛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너의 육체의 건강에 의미 있는 것을 규정하는 일은 너의 목표, 너의 지평, 너의 힘, 너의 추진력, 너의 오류, 한마디로 너의 영혼의 이상과 환상에 달려 있다. 무수히 많은 종류의 육체적 건강이 있다. (…) 하지만 결국 우리가 병 없이 제대로 살 수 있을 것인가, 우리의 덕의 발전을 위해 병이 없어도 될 것인가, 인식과 자기인식을 향한 우리의 갈증은 건강한 영혼만큼이나 병든 영혼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중요한 물음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게 될 것이다.(니체, 《즐거운 학문》 120절)

니체에 따르면 ‘덕 그 자체’나 ‘건강 그 자체’ 따위는 없습니다. ‘너의 덕’, ‘너의 건강’이 있을 뿐입니다. 보편적 건강이 아닌 n개의 건강들. 그런데 니체가 111절(논리적인 것의 유래)에서 말하는 것처럼, 인간의 논리적 사유와 추론은 사물들의 미세한 차이들과 운동들을 무시함으로써 “원래 그 자체로서 동일한 것은 없”는 자연으로부터 ‘동일성’을 추출하고 ‘실체의 개념’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즉 인간적 지각은 동일성과 보편성을 만들어내고 그렇게 만들어낸 실체의 개념 위에서 작동하는 것이죠.

그러나 니체에 따르면 동일성으로 이루어진 우리의 논리적 세계조차도 실은 “전적으로 비논리적이고 부당한 충동들의 진행과정 및 투쟁”과 일치합니다. 논리적 사유의 과정에는 비논리적 욕망과 충동이 이미 개입해 있다는 것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인간적인 지각 안에 머물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단지 그 투쟁의 결과만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미 자연의 운동에 동참하고 있으면서도 거기로부터 우리 자신이 부여한 인간적 인과만을, 다시 말해 투쟁의 결과만을 사후적으로 인식하는 것이죠.

이 때문에 우리는 대개 주어진 하나의 관점에 갇혀 그것을 ‘세계 자체’라고 믿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우리의 인간적 관점에는 선 그 자체, 건강 그 자체, 행복 그 자체 따위의 초월적 가치평가들이 세트로 함께 주어지겠죠. 그러나 우리의 신체는 이미 매번의 부단한 차이화의 과정을 통해서만 존재하기 때문에, 단일한 건강의 상태에 멈춰있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인간적 관점 속에서 건강/병의 이분법으로 문제를 바라볼 때 우리는 능동적으로 매번의 건강을 발명하기보다는 ‘건강’의 보편적 이미지에 스스로를 일치시키고자 노력하거나 자신의 신체 상태를 보편적 건강에 비추어 결여로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육체적 건강만이 아니라 정신적 건강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의 설명이 가능할 것입니다. 아니, 사실은 육체적 건강과 정신적 건강은 서로 구분할 수 없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적 오류들에 대한 니체의 비판은 ‘건강’이라는 문제와 직결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너무나 인간적인 오류들을 세계 그 자체로 믿어버리는 순간, 능동적으로 ‘나의 건강’, ‘나의 도덕’을 구성해내는 일은 불가능해질 것이고 우리는 주어진 가치들에 수동적으로 복종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니체의 비판 작업은 인식의 불가능성을 말하는 불가지론도 아니고 인간적 이성의 오류 바깥에 어떤 ‘물 자체’가 따로 있다는 식의 주장도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니체는 능동적으로 각자의 인식과 윤리, 건강을 구성하기 위해 이미 현실화되어 있는 고정된 관점의 해체가 필요함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이러한 맥락에서 니체가 말하는 ‘병’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니체는 “커다란 고통이야말로 정신의 최종적인 해방자”라고 말했죠. 병은 우리에게 자기 자신으로부터의 해방을 강제하는 마주침입니다. 병이라는 타자가 있기에 우리는 우리의 ‘익숙함’ 갇히지 않을 수 있고, 우리의 자유를 구성할 수 있는 게 아닐까요. '나의 덕', '나의 건강'을 발명하는 일은 '나'를 파괴하는 힘인 병과 더불어서만 가능하다는 것.

월요일에는 《즐거운 학문》 4부를 읽고 만납니다. 간식은 경아샘과 소정샘이 맡아주셨습니다. 각자 좋았던 구절과 그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 나누기로 했죠. 모두들 준비해주셔야 한다는 거 잊으시면 안 됩니다~~ 그럼 월요일에 뵐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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