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 한강

장자 후기 [소요유] 2

작성자
박규창
작성일
2018-02-11 19:07
조회
119
오늘의 키워드로 우쌤은 안명(安命)·순명(順命)과 무소용(無所用)을 얘기해주셨습니다. 작위적으로 무엇을 이루려하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명(命)에 따르는 것. 그러면 매일을 봄날처럼 살 수 있는데, 그건 또한 무소용(無所用)을 발명하는 것과 연결됩니다. 두 가지 키워드를 연결할 수 있어야 하는데, 아직 한자 따라가기에도 바쁘네요. ^^;;

堯讓天下於許由,:日月出矣, 而爝火不息, 其於光也, 不亦難乎! 時雨降矣, 而猶浸灌, 其於澤也, 不亦勞乎! 夫子立而天下治, 而我猶尸之, 吾自視缺然. 請致天下.

 

()가 허유(許由)에게 천하를 선양하며 말했다.

해와 달이 나왔는데도 횃불을 끄지 않으면, 그 빛을 [밝히기에] 또한 어렵지 않겠습니까! 때마침 비가 내리는데도 여전히 물을 대는 것은, 그 땅을 [윤택하게 만드는 데 있어서] 또한 수고로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선생님께서 제위에 오르시면 천하가 다스려질 것인데, 내가 여전히 천하를 다스리고 있으니, 내가 스스로 보아도 부족한 것 같습니다. 청컨대 천하를 드리고자 합니다.”

 

양(讓)은 ‘선양하다’라는 뜻입니다. 동양에서는 요 임금이 순 임금에게, 순 임금이 우 임금에게 제위를 물려주는 아름다운 선양 스토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쌤은 이들의 선양을 그저 아름다운 이야기로만 봐서는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다른 판본을 참고하면, 당시에 요 임금과 허유는 정치적 라이벌 관계였을 수도 있다고 합니다. 이에 따르면, 지금 요 임금은 허유에게 제위를 (말로만) 선양함으로써 과연 그가 천하를 다스리고자 하는 생각이 있었는지 떠본 것이죠.

일월(日月)과 시우(時雨), 작화(爝火)와 침관(浸灌)을 같이 묶어서 보면 내용이 더 잘 보입니다. 앞에 것은 자연의 작용이고, 뒤에 것은 인간의 기술, 행위입니다. 요 임금은 허유가 나라를 다스리면 자연스럽게 나라가 다스려질 수 있는데, 그보다 못한 자기가 나라를 다스리고 있음을 이러한 비유로써 얘기하고 있습니다.

시(尸)는 보통 ‘시체’란 뜻으로 친숙하지만, 여기서는 ‘다스리다’, ‘주인 노릇하다’로 주(主)나 치(治)와 의미가 통합니다. 우쌤은 시동(尸童)이란 표현도 설명해주셨습니다. 뜻은 ‘제사를 주관하는 아이’인데, 이 아이가 직접 제사를 주관한 건 아니고 조상이 내려와서 감응하는 매개체 역할을 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許由曰:子治天下, 天下旣已治也. 而我猶代子, 吾將爲名乎? 名者實之賓也. 吾將爲賓乎? 鷦鷯巢於深林, 不過一枝., 偃鼠飮河, 不過滿腹. 歸休乎君,予无所用天下爲! 庖人雖不治庖, 尸祝不越樽俎而代之矣.

 

허유가 말했다.

그대가 천하를 다스려서, 천하가 이미 다스려졌다. 그런데도 내가 오히려 그대를 대신한다면, 나보고 장차 명예를 추구하라는 것인가? 명예란 것은 실질의 손님이다. 그런데도 나보고 장차 손님이 되라는 것인가? 뱁새가 깊은 숲속에 집을 짓는다한들 가지 하나를 차지한 것에 지나지 않고, 두더지가 황하(黃河)의 물을 마신다한들 자기 배를 채우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군주는 돌아가 쉬시오, 나에게 천하를 다스리는 것은 쓸모 있지 않으니! 요리 하는 사람(庖人)이 비록 부엌을 관리하지 못해도, 제사 지내는 사람이 술 단지나 제기를 넘어가서 요리하는 사람(庖人)을 대신하지는 않는다.”

 

명(名)은 앞에 나온 성인무명(聖人无名)과 같이 ‘명예’라는 뜻으로 사용됐습니다. 유가는 명(名)에 맞게 행동하는 게 중요하지(名實相符) 명(名)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장자는 명(名)은 잠시 왔다 떠나는 손님과 같은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우쌤은 명(名)을 사유하는 유가와 장자의 차이를 염두에 두며 장자를 읽어보라고 하셨습니다.

무소용(無所用)은 안명(安命) 혹은 순명(順命)하기 위해 발명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포(庖)는 ‘부엌’이란 뜻으로, 우쌤은 포인(庖人)을 ‘chef’로 번역해주셨습니다.

셰프가 제삿밥을 제때 내오지 못한다고 해서 제사를 진행하는 사람이 직접 요리하지 않듯이, 허유도 요 임금의 정치가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직접 정치를 하지는 않겠다는 내용입니다.

 

肩吾問於連叔曰:吾聞言於接輿, 大而無當, 往而不返. 吾驚怖其言, 猶河漢而無極也., 大有逕庭, 不近人情焉.

 

견오(肩吾)가 연숙(連叔)에게 물었다.

나는 접여(接輿)로부터 말을 들었는데, 크기만 하고 마땅한 것은 없었으며, 가서는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이 말에 놀랐는데 마치 은하수가 끝이 없는 것과 같으니, 너무나도 동떨어지고, 사람들의 상식에서 먼 것 같다.”

 

견(肩)은 ‘어깨’라는 뜻이고, 오(吾)는 ‘나’라는 뜻입니다. 직역하면, ‘나와 어깨를 견주는 사람’인데, 우쌤은 ‘고만고만한 사람’으로 풀어주셨습니다.

접여(接輿)는 뒤에 응제왕에도 나오고, 논어에도 나오는 나름 출현빈도가 높은 사람입니다. 이름을 풀면, ‘수레(輿)를 접했다(接)’가 됩니다. 어떤 사람이 공자가 탄 수레에 접근해서 노래를 부른 것에서 그 이름을 붙인 것이라고 합니다.

楚狂接輿 歌而過孔子曰 鳳兮鳳兮 何德之衰 往者不可諫 來者猶可追 已而已而 今之從政者殆而 孔子下 欲與之言 趨而辟之 不得與之言

초나라 광인 접여가 공자의 수레 앞을 지나가며 노래하였다.
“봉황이여, 봉황이여! 어찌 덕이 쇠하였는가. 지나간 것은 간할 수 없거니와 오는 것은 오히려 따를 수 있으니, 그만둘지어다, 그만둘지어다. 오늘날 정사에 종사하는 자들은 위태롭다.”
공자께서 수레에서 내려 그와 더불어 말씀하려고 하였는데, 빨리 걸어 피하니 함께 말씀하시지 못하였다. - 《논어》 〈미자〉편 5장

접여는 광(狂)을 붙여서 ‘광접여’라고 많이 부릅니다. 여기서 광(狂)은 ‘미쳤다’는 뜻이 아니라 은자(隱者)를 부르는 다른 말이라고 합니다.

대이무당, 왕이불반(大而無當, 往而不返)를 다른 말로 바꾸면, 황당무계(荒唐無稽)입니다.

경포(驚怖)는 ‘놀랍고 두렵다’는 뜻입니다.

하한(河漢)은 황하와 한수를 지칭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옛날에는 황하와 한수가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 끝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이 둘로 은하수를 비유했다고 합니다.

대(大)는 ‘너무나도’라는 뜻입니다.

경(逕)은 ‘좁은 길’, 정(庭)은 ‘넓은 길’, ‘넓은 뜰’이란 뜻입니다. 좁은 오솔길과 넓은 뜰이 제대로 이어지지 않는 것에서 경정(逕庭)은 ‘이어지지 않는다’, ‘맥락이 통하지 않다’라는 뜻입니다.

우쌤은 정(情)이 내편에서도 가장 번역하기 어려운 글자 중 하나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는 ‘상식’으로 풀어주셨습니다.

 

連叔曰:其言謂何哉?

 

연숙(連叔)이 말했다.

그 말은 무엇을 이른 것인가?”

 

:藐姑射之山, 有神人居焉, 肌膚若氷雪, 綽約若處子., 不食五穀, 吸風飮露., 乘雲氣, 御飛龍,而遊乎四海之外. 其神凝, 使物不疵癘而年穀熟.吾以是狂而不信也.

 

견오(肩吾)가 말했다.

“‘저 멀리 아득한 고야(姑射)산에 신인(神人)들이 살고 있는데, 피부가 마치 얼음과 눈처럼 희고, 참한 모습이 마치 젊은 여자와 같다. 곡식을 [일체] 먹지 않고, 바람을 들이키고 이슬을 마시며, 비룡(飛龍)을 몰아 사해(四海)의 밖에서 노닌다. [신인(神人)들의] 정신능력이 엉기면 만물로 하여금 상처가 나지 않고 병들지 않게 하며 매년 곡식이 익는다.’고 했다. 나는 이 이야기가 미친 소리 같아서 믿을 수가 없다.”

 

막고야지산(藐姑射之山)은 두 가지로 번역될 수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막고야(藐姑射)를 통째로 산의 이름으로 읽는 것입니다. 다른 것은 막(藐)을 고야(姑射)를 수식하는 말로 보는 것입니다. 막(藐)은 ‘아득하다’라는 뜻으로, 이렇게 하면 ‘아득한 고야(姑射)산’, ‘보일락말락하는 고야(姑射)산’이 됩니다.

우쌤은 신인(神人)의 조건 중 하나가 벽곡(辟穀)해서 흡풍음로(吸風飮露)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곡식을 끊는다는 것은 지기(地氣)를 끊는 것이고, 흡풍음로(吸風飮露)는 천기(天氣)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신(神)은 ‘신기(神氣)’ 혹은 ‘신인(神人)들의 정신능력’으로 번역되는데, 이번에는 두 번째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광(狂)은 광(誑)과 통용되어 ‘속이는 말’, ‘사기치는 말’이란 뜻으로 사용됐습니다.

 

連叔曰:! 瞽者无以與文章之觀, 聾者无以與乎鐘鼓之聲. 豈唯形骸有聾盲哉? 夫知亦有之. 是其言也, 猶時女也. 之人也,之德也, 將旁礴萬物以爲一, 世蘄乎亂, 孰弊弊焉以天下爲事! 之人也, 物莫之傷, 大浸稽天而不溺, 大旱金石流土山焦而不熱. 是其塵垢粃糠, 將猶陶鑄堯舜者也, 孰肯以物爲事. 宋人資章甫而適諸越, 越人斷髮文身, 无所用之. 堯治天下之民, 平海內之政, 往見四子邈姑射之山, 汾水之陽, 窅然喪其天下焉.

 

연숙이 말했다.

그렇겠구나! 장님은 화려함을 볼 수 없고, 귀머거리는 함께 종과 북의 소리를 들을 수 없다. 어찌 육신에만 귀머거리와 맹인이 있겠는가? 앎에도 또한 그것이 있다. 이 말은 바로 너를 두고 한 말이다. 이러한 신인(神人), 신인들의 덕은 장차 만물을 포용하여 하나()로 인식할 수 있으니, 세상 사람들은 [신인들이] 어지러움을 다스려주기를 바라지만 누가 수고스럽게 천하를 다스리는 것을 [자신의] 일로 삼겠는가! 이러한 사람은 어떤 것으로도 그를 상하게 할 수 없으니, 큰 홍수가 일어나 하늘에 닿더라도 그를 익사시키지 못하며, 큰 가뭄이 들어 쇠와 돌이 녹아 흙산이 녹아 흐르고 토산이 탄다 해도 그를 뜨겁게 하지 못한다. 이러한 사람들은 먼지나 때, 쭉정이, 겨와 같은 것을 가지고서도 오히려 요() 임금과 순() 임금을 빚어낼 수 있다. 그러니 누가 기꺼이 천하를 자기 일로 삼겠는가.

송나라 사람이 큰 갓을 밑천삼아 월나라에 갔는데, 월나라 사람들은 머리를 자르고, 몸에 문신을 해서 [그 갓이] 쓸모 있는 바가 없었다. () 임금은 천하의 백성들을 다스려 사해(四海)의 정치를 안정시켰는데, 저 멀리 고야의 산에 가서 신인(神人) 네 사람을 보고는 분수의 북쪽에서 완전히 얼이 빠져 천하를 다스리는 것을 잊어버렸다.”

 

지(知)는 ‘인식능력’을 뜻합니다. 안명(安命)의 조건 중 하나가 우리의 인식능력을 뛰어넘는 것이 있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방박(旁礴)은 시에도 등장하는 단어 중 하나로 ‘혼합하다’, ‘널리 덮다’, ‘껴안다’라는 뜻입니다. 여기서는 ‘포용하다’의 뜻으로 사용됐습니다. 이태백처럼 스케일이 큰 시에 자주 나온다고 합니다. 제물론의 사유와 연결되는 단어입니다.

난(亂)은 보통 ‘어지럽다’라는 뜻으로 사용되지만, 한문에서는 어떤 글자들은 간혹 정반대의 뜻으로 사용되기도 한다고 합니다. 여기서는 ‘어지러움을 다스리다’라는 뜻으로 사용됐습니다.

대침(大浸)은 ‘홍수’, 대한(大旱)은 ‘큰 가뭄’이란 뜻입니다.

진구비강(塵垢粃糠)은 모두 때, 먼지 같이 보잘 것 없는 것들을 말합니다.

송인(宋人)은 바보, 어리석음의 대명사로 자주 등장하는데, 그 까닭은 송나라가 망국의 후예들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쌤은 유민들이 다뤄지는 방식에 대해서 설명해주셨는데, 우선 그 나라의 제사는 지낼 수 있게 보존해주지만, 딴 짓하지 못하도록 힘든 부역을 부과한다고 합니다. 송나라는 은나라의 유민들이 세운 나라인데, 그들이 멍청하게 그려진 것도 이때의 이미지가 반영된 결과라고 합니다.

장보(章甫)는 ‘큰 갓’이란 뜻인데, 후대에는 이게 유가의 관복을 가리키는 말이 됐다고 합니다. 송나라 사람이 갓을 들고 월나라로 갔다는 걸 좀 더 해석하면, 오랑캐의 땅에 중원의 문화를 전파하러 간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단발문신(斷髮文身)은 머리를 깎고, 몸에 문신을 새기는 것입니다. 중원의 문화가 통하지 않는 남방의 문화권입니다.

요연(窅然)은 5번 정도 등장하는데, ‘완전히 혼이 빠진 모습’입니다.

상(喪)은 여기서는 망(忘)과 같이 ‘잊다’라는 뜻으로 사용됐습니다.

 

惠子謂莊子曰:魏王貽我大瓠之種, 我樹之成而實五石, 以盛水漿, 其堅不能自擧也., 剖之以爲瓢,則瓠落無所容. 非不呺然大也, 吾爲其無用而掊之.

 

혜자가 장자에게 말했다.

위왕(魏王)이 나에게 큰 박의 종자를 주어서, 내가 그것을 심었더니 자라서는 그 열매가 오석(五石)이었다. [그 박에] 물과 마실 것을 가득 담았는데, 너무 무거워서 혼자 그것을 들 수 없었다. 그래서 그것의 가운데를 잘라 표주박을 만들었더니 넓기만 하고 평평하여 무엇도 담을 수 없었다. 넓고 크지 않은 것은 아니나, 나는 그것이 쓸모 없었기 때문에 부숴버렸다.”

《장자》에서 혜자와 장자는 때로는 우정을 나눈 친구이기도 하고, 때로는 자신의 학설을 가지고 논쟁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쌤은 이 둘의 관계를 어떻게 정리해야 될지 고민이라고 하셨습니다. 우선 혜시는 유세가이고, 위나라에서 재상 자리를 맡을 정도로 성공한 인물입니다. 근데 그 정도 지위에 오른 인물이라면, 그의 친구인 장자도 소문이 어느 정도 났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쌤은 장자에 나오는 혜자를 모두 장자의 친구인 혜시로 볼 수 있을지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여담으로 혜시의 저작은 따로 남아있지는 않지만, 우쌤은 혜시의 글 중 일부가 제물론에 섞여 들어갔을 수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오석(五石)에서 석(石)은 무게의 단위를 뜻합니다. 한 석(石)이 60kg라고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40kg였다고 합니다.

여기서 호(瓠)가 사용된 두 가지 용례가 있습니다. 하나는 ‘박’이라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넓고 얇다’는 뜻입니다. 앞에 것은 “호”로 읽지만, 뒤에 것은 락(落)과 같이 붙여서 “화락”으로 읽습니다.

부(剖)와 부(掊)가 비슷하지만 약간은 다른 뜻입니다. 앞에 나온 부(剖)는 ‘가운데를 자르다’는 뜻이고, 뒤에 나온 부(掊)는 ‘부수다’라는 뜻입니다.

효연(呺然)에서 효(呺)는 ‘넓다’는 뜻이지만, 봤을 때 막막한 느낌을 주는 느낌의 ‘넓다’입니다. 그래서 효연(呺然)은 크기는 크지만 어디에 쓰이는지 알 수 없는 크기를 뜻합니다.

 

莊子曰:夫子固拙於用大矣. 宋人有善爲不龜手之藥者, 世世以洴澼絖爲事. 客聞之, 請買其方以百金. 聚族而謀曰:我世世爲洴澼絖, 不過數金., 今一朝而鬻技百金,請與之.客得之, 以說吳王. 越有難, 吳王使之將, 冬與越人水戰, 大敗越人, 裂地而封之. 能不龜手, 一也., 或以封, 或不免於洴澼絖, 則所用之異也. 今子有五石之瓠, 何不慮以爲大樽而浮乎江湖, 而憂其瓠落無所用? 則夫子猶有蓬之心也夫!

 

장자가 말했다.

선생은 참으로 큰 것을 쓰는 데 졸렬하다. 송나라 사람 중에 손이 트지 않는 약을 잘 만드는 사람이 있었는데, 대대로 묵은 솜을 빠는 것을 가업으로 삼았다. [그런데 어느 날] 나그네가 그것을 듣더니, 백금(百金)으로 그 비방을 살 것을 청했다. 그러자 친족들이 모여서 논의했다. ‘우리는 대대로 묵은 솜 빠는 일을 가업으로 삼았는데, 몇 금()을 버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하루아침에 기술을 백금에 팔게 되었으니, 청컨대 그에게 팔도록 하자.’ 나그네가 그것을 얻고서는 오()나라 왕에게 유세했다. ()나라와 전쟁이 있자 오()나라 왕이 그로 하여금 장수를 삼아 겨울에 월나라 군사들과 수중전을 벌였는데, ()나라 사람들이 크게 패했다. [()나라 왕이] 땅을 나누어 그에게 영지를 봉해주었다. 손이 트지 않게 한 것은 같지만, 어떤 경우에는 그로써 영지가 봉해졌고, 어떤 경우에는 솜 빠는 일을 면하지 못 했으니 그 쓰이는 바가 다른 것이다. 지금 선생이 오석(五石)이나 되는 박을 가지고 있는데, 어찌 큰 술 단지로 삼아 강호에 떠다닐 생각을 하지 않고, 넓고 평평하여 무엇도 담을 수 없음을 걱정하는가? 선생은 아직도 쑥처럼 배배 꼬인 마음을 가지고 있구나!”

졸(拙)은 ‘졸렬하다’, ‘서툴다’의 뜻입니다. 그런데 이 글자가 고졸미(古拙美)라는 동양의 예술적 감각을 나타내는 단어로 쓰인다고 합니다. 완벽한 좌우대칭이 아닌 약간 찌그러진 듯한 모양, 서투른 듯한 모양에서 오히려 아름다움을 찾아낸다고 합니다.

龜 이 글자는 ‘땅 이름’으로 읽을 때는 “구”, ‘거북이’로 읽을 때는 “귀”, ‘균열되다’로 읽을 때는 “균”으로 읽습니다. 여기서는 ‘손이 트지 않는 약’이란 문장에서 “균”의 뜻으로 사용됐습니다.

병벽(洴澼)은 둘 다 ‘씻다’, ‘빨래하다’라는 뜻이지만, 한 단어로 보면 ‘빨래를 내릴 칠 때 나는 소리’입니다.

부자유유봉지심야부(夫子猶有蓬之心也夫)에서 유(猶)는 ‘여전히’, ‘아직도’의 뜻으로 사용됐습니다. 우쌤은 이 글자가 쓰임으로써 문장의 뉘앙스가 완전히 달라졌는데, 이 둘의 관계가 이전부터 오래됐다는 것을 암시한다고 하셨습니다.

번역본으로 읽는 장자와는 너무 달라서 아예 다른 이야기를 보는 것 같습니다. 번역본으로 볼 때도 개발새발로 읽긴 했지만 ㅎㅎ;; 원문으로 보니까 아예 달라서 정신 놓으면 또 아무것도 안 남겠네요. 아무래도 읽고 또 읽어야 할 것 같습니다.

참! 읽기에 어려움이 있으신 분들은 가능하면 한 시간 일찍 오세요. 저녁도 같이 먹고, 미리 더듬더듬이나마 같이 소리 내서 읽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텍스트가 어렵고 모를수록 같이 극복해요! 그럼 설 지나고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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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2-12 10:23
    원문으로 읽으니 번역문을 읽을 때 들어오지 않는 표현들이 많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막고야산이나 세탁업 같은 것은 번역문을 읽을 때는 한번도 신경쓰지 못했는데 0ㅁ0
    같은 텍스트를 번역해도 차이가 크다고 하신 우쌤의 말씀이 와닿습니다...이렇게도 맛보고 저렇게도 맛보는 장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