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 한강

[인간세] 1 (사진 추가)

작성자
박규창
작성일
2018-03-21 11:54
조회
77
〈인간세〉에서도 심재(心齋) 이야기가 드디어 끝났습니다. 분량이 어마어마해서 정작 전체 내용이 잘 들어오더군요. 그래서 우쌤은 강의를 듣고 내용을 복습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하셨습니다만........ 그래도 쉽지 않네요. ㅎㅎ;;

복습할 때의 주의할 점은 일단 편명에 맞춰서 이야기를 파악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쌤은 모든 편이 하나의 통일된 이야기로 꿰기는 어려울 것이라 하셨습니다. 차(且)가 자주 쓰인 것은 구어체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특히 반복되는 것은 나중에 삽입된 구절로 의심해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소요유〉의 이야기가 〈응제왕〉과 연결되기도 하는데, 우쌤이 여러 번 얘기하셨지만 죽간을 보관하는 과정에서 섞이고 빠졌을 것이라 하셨습니다. 그냥 이렇게 저렇게 읽을 수 있다는 즐거움을 가지고 접근하면 될 것 같습니다.

〈인간세〉에서 그려지는 공자와 안회의 모습은 《논어》에서 그려진 공자와 안회의 모습과 엄청 다릅니다. 공자는 유세가와 같은 말을 여러 번 하고, 안회는 무도한 나라에 들어가서 굳이 정치를 하고자 합니다. 그런데 〈인간세〉의 공자와 안회의 관계가 〈대종사〉로 가면 역전됩니다. 여기서는 안회가 오히려 공자를 가르치는 듯한 모습이어서 두 편의 같이 읽어도 재밌을 것 같습니다.

 

仲尼曰:! 若殆往而刑耳! 夫道不欲雜, 雜則多, 多則擾, 擾則憂, 憂而不救. 古之至人, 先存諸己而後存諸人. 所存於己者未定, 何暇至於暴人之所行!

 

공자가 말했다. “! 너는 아마도 가면 죽을 것이다! 무릇 도()는 뒤섞이고자 하지 않는다. 뒤섞이면 생각이 여러 갈래로 나뉘고, 생각이 여러 갈래로 나뉘면 마음이 소란스럽게 되고, 마음이 소란스럽게 되면 자신감을 잃게 되니, 자신감을 잃고 남을 구제하지 못하게 된다. 옛날의 지인(至人)은 먼저 자신에게 도()가 보존된 이후에 다른 사람에게 도()를 보존하게 했다. 자신에게 보존된 것이 안착되지 않으면 어느 겨를에 포악한 사람의 행동에 이를 수 있겠는가?”

 

부잡(不雜)은 ‘섞이지 않는 것’으로 뒤에 심재(心齋)와 연결됩니다.

다(多)는 생각의 갈래가 많아지는 것입니다.

요(擾)는 마음이 소란스럽게 되는 것입니다.

우(憂)는 ‘걱정스럽다’. 여기서는 ‘자신감을 잃다’는 뜻입니다.

구(救)는 ‘구제하다’, ‘도움을 주다’의 뜻입니다.

정(定)은 ‘안정되다’, ‘안착되다’의 뜻입니다. 도(道)가 내 마음에 안착된다는 뉘앙스를 표현한 것입니다.

지(至)는 3가지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영향을 미치다’의 뜻이고, 두 번째는 ‘고치다’ 개(改)와 통용되어 ‘바꾸다’의 뜻이고, 세 번째는 ‘이르다’의 뜻으로, 아직 도(道)가 안착되지 않았는데 군주의 면전에 이를 수 없다는 뜻입니다.

 

且若亦知夫德之所蕩而知之所爲出乎哉? 德蕩乎名,知出乎爭. 名也者,相軋也.,知者也,爭之器也. 二者凶器,非所以盡行也.

 

또 너는 또한 덕()이 동요되고 지식이 어디서 나오는지를 아는가? ()은 명성에 흔들리고, 지식은 논쟁으로부터 나온다. 명성이라는 것은 서로 다투는 것이고, 지식이라는 것은 다투는 도구다. 이 두 가지는 흉기(凶器)이니, 극진히 행할 바가 아니다.

 

약(若)은 ‘너’ 여(汝)의 뜻입니다.

탕(蕩)은 ‘흔들리다’의 뜻인데, 여기서는 ‘동요되다’의 뜻입니다.

지지위출호(知之所爲出)에서 지(知)는 ‘좁은 식견’, ‘알음알이’의 뜻입니다.

명(名)은 당시에 부(富)도 포함된 개념이라고 합니다.

알(軋)은 ‘삐걱거리다’라는 뜻으로 여기서는 ‘경쟁하다’의 뜻입니다.

 

且德厚信矼, 未達人氣, 名聞不爭,未達人心. 而强以仁義繩墨之言衒暴人之前者, 是以人惡育其美也, 命之曰菑人. 菑人者, 人必反菑之, 若殆爲人菑夫!
且苟爲悅賢而惡不肖, 惡用而求有以異? 若唯無詔, 王公必將乘人而鬪其捷. 而目將熒之, 而色將平之, 口將營之, 容將形之, 心且成之. 是以火救火, 以水救水, 名之曰益多. 順始無窮, 若殆以不信厚言, 必死於暴人之前矣!

 

[네가] 덕이 두텁고 믿음이 성실해도 아직 다른 사람의 기분에 통달한 것은 아니며, 명성 때문에 다투지 않아도 다른 사람의 마음에 통달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너는 억지로 인의(仁義)로써 포악한 사람 앞에서 바른 말을 기술하니, 이것은 다른 사람의 단점으로써 너의 아름다움을 드러낸 것이니, 이름하여 재앙을 가져오는 사람이라고 한다. 재앙을 가져오는 사람은 다른 사람 또한 반드시 그에게 재앙을 되돌려줄 것이니, 너는 아마도 다른 사람에게 재앙을 가져오는 사람일 것이다!

[위나라 군주가] 진실로 어진 이를 좋아하고 어리석은 사람을 싫어한다면 어찌 너를 써서 다른 정치를 하겠는가? 너는 오직 신중히 말해야 한다. 왕공은 반드시 다른 사람의 말을 타고 이기려고 다툰다. 그리하여 너의 눈은 장차 휘둥그레지고, 얼굴빛은 장차 태연함을 가장하고, 입은 급급하게 대꾸하며, 자세는 장차 가까스로 버틸 것이며, 마음은 또 군주의 의도를 이뤄줄 것이다. 이것은 불로써 불을 구하는 것이고, 물로써 물을 구하는 것이니, 이름하여 악을 더하는 것이라고 한다. 군주의 원래 의도에 따르면 끝이 없을 것이니, 너는 아마도 상대방이 믿지 않는데도 말을 많이 할 것이니, 반드시 포악한 사람 앞에서 죽을 것이다!

강(矼)은 보통 ‘징검다리’라는 뜻으로 “강”으로 읽지만, 여기서는 ‘확실하다’, ‘성실하다’라는 뜻의 “공”으로 읽습니다.

달(達)은 ‘도달하다’라는 뜻인데, 여기서는 ‘다른 사람의 기분과 마음에 도달하다’라는 뜻이니까 의역해서 ‘이해하다’라는 뜻입니다.

인기(人氣)에서 기(氣)는 ‘그때그때의 상황’, ‘상대방의 기분’을 뜻합니다.

우쌤은 시이(是以)구절에서 시(是)와 이(以) 따로 떼어서 읽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치(菑)는 ‘묵은 밖’의 뜻이지만, 여기서는 ‘재앙’ 재(災)와 통용되어 “재”로 읽습니다.

이(異)는 ‘다른 정치’를 뜻입니다.

조(詔)는 임금이 아랫사람에게 말할 때 쓰는 글자입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안회가 임금에게 말할 때 쓰였습니다. 무조(無詔)는 말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신중하게 말하라’는 뜻입니다.

승(乘)은 ‘타다’의 뜻인데, 여기서는 군주가 다른 사람의 말에서 허접을 잡아내어 그것을 탄다는 뜻입니다.

형(熒)은 ‘흔들리다’라는 뜻인데, 도깨비불처럼 흔들거리는 불꽃을 기록할 때 쓰는 글자. 여기서는 눈이 휘둥그레진다는 뜻입니다.

평(平)은 여러 뜻이 있지만, 여기서는 ‘억지로 태연한 척하다’의 뜻입니다.

영(營)은 ‘경영하다’의 뜻인데, 여기서는 ‘상대의 압박에 짓눌려 급급하게 대꾸하다’의 뜻합니다.

형(形)은 여러 뜻이 있지만, 여기서는 ‘가까스로 자세를 잡다’의 뜻입니다.

성(成)은 위나라 군주의 마음을 ‘이뤄주다’를 의미합니다.

이화구화 이수구수(以火救火, 以水救水)는 같은 것으로 같은 것을 구하니까 ‘동조하다’의 뜻입니다.

시(始)는 ‘군주의 원래 의도’를 뜻입니다.

且昔者桀殺關龍逢,紂殺王子比干,是皆修其身以下傴拊人之民,以下拂其上者也,故其君因其修以擠之. 是好名者也. 昔者堯攻叢..胥敖 禹攻有扈,國爲虛厲,身爲刑戮,其用兵不止,其求實無已. 是皆求名實者也. 而獨不聞之乎? 名實者,聖人之所不能勝也,而況若乎! 雖然,若必有以也,嘗以語我來!

 

또 옛날 걸왕은 관용봉을 죽였고, 주왕은 왕자 비간을 죽였으니 이것은 모두 자신을 수양함으로써 신하가 되어 다른 사람의 백성을 어루만진 것이고, 신하가 됨으로써 윗사람을 제거한 것이다. 그러므로 군주는 그 수양으로 인하여 그들을 배척한 것이다. 이것이 명예를 좋아하는 자들이다. 옛날 요 임금은 총지족과 서오족을 공격했고, 우 임금은 유호(有扈)를 공격하여 나라를 폐허로 만들고 그 자신은 형벌로 처형됐으니, 그 용병을 멈추지 않으니 실익을 구하는 것을 그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모두 명성과 실익을 구한 것인데, 너는 유독 그것을 듣지 못했느냐? 명성과 실익은 성인도 능히 감당할 수 없는 바인데, 하물며 너이겠는가! 비록 그렇다 한들 너는 반드시 계책을 가지고 있을 것이니, 시험 삼아 나에게 말해보아라!”

하(下)는 ‘신하가 되다’라는 뜻입니다.

구부(傴拊)는 ‘허리를 구부려 어루만지다’의 뜻입니다. 보통 백성을 보살펴준다는 뜻으로 임금에게 많이 사용되는데, 여기서는 관용봉과 비간이 백성을 어루만져서 군주의 권위를 해치는 맥락으로 사용됐습니다.

허려(虛厲)는 ‘황무지’라는 뜻입니다. 허(虛)는 허(墟)와 통용되어 ‘빈 터’, ‘황무지’의 뜻으로 사용됐습니다.

실(實)은 부(富)와 비슷하게 ‘재물’의 의미로 사용됐습니다.

顔回曰:端而虛, 勉而一 則可乎?

 

안회가 말했다. “[몸을] 단정하게 하고 마음을 비우고 힘써 노력하고 주장을 일관되게 유지하면 가능하겠습니까?”

단(端)은 ‘단정하다’는 뜻입니다.

일(一)은 ‘주장을 일관되게 유지하다’라는 뜻입니다.

:! 惡可! 夫以陽爲充孔揚,采色不定,常人之所不違,因案人之所感,以求容與其心. 名之曰日漸之德不成,而況大德乎! 將執而不化,外合而內不訾,其庸詎可乎!

 

공자가 말했다. “! 어찌 가능하겠는가! [네가 만나는 위나라 군주는] 양기가 가득하여 겉으로 크게 드러나며, 감정이 얼굴로 드러나는 것이 안정되지 못하며, 사람들이 [자신을] 거스르지 않는 것을 일상으로 하며, 사람들이 느끼는 것을 억누름으로써 자기 마음이 용납되기를 구한다. 이를 이름하여 매일 조금씩 이루어지는 덕()도 이루어지지 않는다.’라고 하는데, 하물며 대덕(大德)에 있어서랴! 장차 자기 생각을 고집하여 감화되지 않으니, 밖으로는 부합해도 안으로는 헤아리지 않으니 어찌 가능하겠는가!”

 

양(陽)은 양기(陽氣)인데, 주석을 참고하면 “위나라 군주는 항양지성(亢陽之性)이 안으로 꽉 차서 그것이 밖으로 드러나는 게 매우 심하다는 것을 말한다.”고 했습니다.

양(揚)은 ‘겉으로 드러나다’라는 뜻입니다.

채색(采色)은 ‘감정이 얼굴로 드러난 것’입니다. 보통 어떤 사람이 주는 분위기를 설명할 때 많이 쓰이는데 여기서는 ‘성격’ 정도의 뜻입니다. 채(采)는 풍채(風采)할 때의 ‘채’이고, 색(色)은 ‘얼굴빛’을 뜻합니다.

안(案)은 보통 ‘책상’, ‘책상에 기대다’라는 뜻으로 사용되지만, 여기서는 ‘억누르다’의 뜻으로 사용됐습니다.

용여(容與)는 용납(容納)과 같은 뜻입니다.

일점지덕(日漸之德)은 직역하면 ‘매일 조금씩 젖어드는 덕’인데, 의역해서 ‘매일 조금씩 이루어지는 덕’이라고 했습니다.

자(訾)는 보통 ‘헐뜯다’의 뜻으로 사용되지만, 여기서는 ‘헤아리다’, ‘이해하다’와 같은 뜻으로 사용됐습니다. 앞에서 나온 ‘인기(人氣)와 인심(人心)에 달(達)하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용(庸)과 거(詎)는 둘 다 ‘어찌’의 뜻입니다.

 

然則我內直而外曲, 成而上比., 內直者, 與天爲徒, 與天爲徒者, 知天子之與己皆天之所子, 而獨以己言蘄乎而人善之, 跽乎而人不善之邪? 若然者, 人謂之童子, 是之謂與天爲徒. 外曲者, 與人爲徒也. 擎跽曲拳, 人臣之禮也, 人皆爲之, 吾敢不爲邪! 爲人之所爲者, 人亦無疵焉, 是之謂與人爲徒. 成而上比者, 與古爲徒. 其言雖敎, 讁之實也, 古之有也, 非吾有也. 若然者, 雖直而不病, 是之謂與古爲徒. 若是則可乎?

 

그렇다면 저는 안으로는 곧게 하고 밖으로는 [외부에 맞게] 굽히고, 뜻을 이룰 때는 옛사람을 불러들이겠습니다. 안으로 곧게 한다는 것은 하늘과 더불어 같은 무리가 되는 것입니다. 하늘과 더불어 같은 무리가 되는 것은 천자(天子)와 자신이 함께 하늘의 아들이 됨을 알 것인데, 유독 자기의 말을 다른 사람이 좋게 여겨주기를 바라며, 자기의 말을 다른 사람이 좋지 않게 여겨주기를 바라겠습니까? 이런 사람은 사람들이 일러 어린아이라 하니, 이것을 일러 하늘과 더불어 같은 무리가 된다고 합니다. [외부에 맞게] 굽히는 것은 사람들과 더불어 같은 무리가 되는 것입니다. ()을 들거나 무릎을 꿇고 깊게 절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신하의 예()이고, 사람들이 모두 하는 것이니 저라고 감히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사람들이 하는 것을 행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 또한 비난하지 않을 것이니, 이것을 일러 사람들과 더불어 같은 무리가 되는 것이라 합니다. 뜻을 이룰 때는 옛사람을 불러들이는 것은 옛사람과 더불어 같은 무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 말이 비록 가르침이어도 꾸짖는 실질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옛사람이 한 말이지, 제가 한 말이 아닙니다. 이러한 사람은 비록 꼿꼿하더라도 해를 입지 않으니 이것을 일러 옛사람과 더불어 같은 무리가 되는 것이라 합니다. 만약 이렇게 한다면 가능하겠습니까?”

여기서는 안회의 계획의 핵심 키워드가 내직(內直), 외곡(外曲), 성이상비(成而上比) 3가지로 정리됩니다. 내직(內直)은 안으로 뜻을 지키는 것입니다. 외곡(外曲)은 외부에 맞게 부드러운 태도를 취하는 것입니다. 본문에 나온 예(禮)를 취하는 것을 말합니다. 성이상비(成而上比)는 장자의 화법 중 중언(重言)처럼 옛사람의 말을 빌려오는 것입니다. 성(成)의 의미에 따라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는데, 하나는 ‘지금에 맞는 말’이고, 다른 하나는 ‘이치에 맞는 말’입니다.

기(蘄)는 보통 ‘풀 이름’ 혹은 ‘구하다’, ‘바라다’의 뜻으로 사용되지만, 여기서는 ‘기대하다’의 뜻입니다.

경(擎), 기(跽), 곡권(曲拳)은 모두 예절의 형식을 말합니다. 경(擎)은 임금 앞에서 홀(笏)을 드는 것이고, 기(跽)는 무릎을 꿇는 것이고, 곡권(曲拳)은 고개를 깊이 숙여 절하는 것입니다.

 

仲尼曰:! 惡可! 大多政法而不諜,雖固亦無罪. 雖然,止是耳矣,夫胡可以及化! 猶師心者也.

 

공자가 말했다. “! 어찌 가능하겠는가! 바로잡는 방법이 많고 [그를] 따르더라도 함께 하지는 않을 것이니 비록 진실로 죄는 없을 것이나. 그러나 여기에 그칠 뿐이니, 어찌 상대방을 감화시키는 것에 미칠 수 있겠는가! 여전히 자신의 마음을 스승 삼는 사람이다.”

정(政)은 정(正)과 통용되어 ‘바로잡다’의 뜻입니다.

법(法)은 보통 ‘본받다’의 뜻으로 사용되지만, 여기서는 ‘따르다’의 뜻으로 사용됐습니다.

첩(諜)은 ‘살피다’의 뜻으로 간첩(間諜)과 같은 글자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여기서는 ‘맥락이 연결되다’라는 뜻인데 의역하면 상대방의 마음에 동조하는 것입니다. 불첩(不諜)이니까 ‘위나라 군주에게 동조하지 않는다’입니다.

사심(師心)은 ‘자기 마음을 스승으로 삼다’입니다. 심(心)은 안회의 마음을 뜻합니다.

顔回曰:吾无以進矣, 敢問其方.

仲尼曰:, 吾將語若! 有心而爲之, 其易邪? 易之者, 皞天不宜.

 

안회가 말했다. “저는 더 나은 방법이 없습니다. 감히 방법을 묻습니다.”

공자가 말했다. “재계해라. 내가 너에게 말해줄 것이다!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것을 이루려 하니 그것이 쉽겠는가? 그것을 쉽게 하는 사람은 모든 것을 굽어 살피는 하늘 또한 마땅치 않게 여긴다.”

진(進)은 ‘더 나은 방법’입니다.

심(心)은 안회가 위나라의 정치를 바꾸고자 하는 마음을 말합니다.

호(皞)는 ‘밝다’는 뜻이고, 호천(皞天)은 ‘모든 것을 아는 하늘’, ‘굽어 살피는 하늘’을 뜻합니다. 호천불의(皞天不宜)가 하나의 관용적 표현으로 많이 쓰인다고 합니다.

顔回曰:回之家貧, 唯不飮酒不茹葷者數月矣. 如此, 則可以爲齋乎?

:是祭祀之齋, 非心齋也.

回曰:敢問心齋.

 

안회가 말했다. “저의 집이 가난하여 전혀 술을 마시지 않고 향이 나는 음식을 먹지 못한 지가 몇 달이 됐습니다. 이와 같으면 재계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이것은 제사에서의 재계이지, 마음을 재계하는 것이 아니다.”

안회가 물었다. “감히 마음을 재계하는 것을 묻습니다.”

여(茹)는 ‘먹다’는 뜻이고, 훈(茹葷)은 양파와 마늘처럼 향이 강한 훈채(葷菜)음식을 말합니다.

 

仲尼曰:若一志, 无聽之以耳而聽之以心, 无聽之以心而聽之以氣! 耳止於聽, 心止於符. 氣也者, 虛而待物者也. 唯道集虛. 虛者, 心齋也.

 

공자가 말했다. “너는 마음의 방향을 전일하게 유지해야 하니, [감각적인] 귀로 듣지 말고 마음으로 들으며, [혼침(昏沈)] 마음으로 듣지 말고 기()로 들어야 할 것이다! 귀는 소리에 그치고, 마음은 마음의 상태를 인식하는 데 그친다. ()라는 것은 [나의 마음을] 비우고 사물을 기다리는 것이다. 오직 도()는 비어있는 곳에 응집한다. [나의 마음을] 비우는 것이 마음을 재계하는 것이다.

지(志)를 풀어서 얘기하면 심지소지(心之所之)입니다. 일지(一志)는 자신의 마음이 어디로 가는지 방향성을 전일하게 하라는 뜻입니다.

기(氣)로 듣는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우쌤은 귀로 듣지 않는 것에서 기(氣)로 듣는 일련의 과정이 수행과정에서 느껴지는 체험이라고 하셨습니다. 청(聽)은 의식적으로 그것을 느끼고자 하는 노력을 말합니다. 귀로 듣는다는 것은 감각에 의존하는 것입니다. 무청지이심이청지이기(无聽之以心而聽之以氣)에서 나오는 심(心)은 혼침(昏沈)한 정신을 말합니다.

부(符)는 부절(符節)인데, ‘맞추다’의 뜻입니다. 여기서는 ‘마음의 상태를 맞추다’, ‘마음을 인식하다’의 뜻으로 사용됐습니다.

기야자 허이대물자야(氣也者, 虛而待物者也.)와 같이 개념을 얘기하고 그것을 설명하는 것은 전국시대 텍스트의 공통점입니다. 여기서 우쌤은 허이대물자(虛而待物者)를 마음을 사물을 비추기만 할 뿐 고집하지 않는 거울과 같은 상태로 만드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顔回曰:回之未始得使, 實有回也., 得使之也, 未始有回也., 可謂虛乎?

 

안회가 말했다. “제가 일찍이 [마음을 재계해야 한다는 말을] 듣지 못했을 때는 진실로 안회가 있었는데, 그 말을 듣고는 일찍이 안회였던 적이 없었으니, [마음을] 비웠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시(始)는 ‘일찍이’라는 뜻입니다.

 

夫子曰:盡矣. 吾語若! 若能入遊其樊而无感其名, 入則鳴, 不入則止. 无門无毒, 一宅而寓於不得已, 則幾矣.
絶迹易, 无行地難. 爲人使易以僞, 爲天使難以僞. 聞以有翼飛者矣. 未聞以无翼飛者也., 聞以有知知者矣, 未聞以无知知者也. 瞻彼闋者, 虛室生白, 吉祥止止. 夫且不止, 是之謂坐馳. 夫徇耳目內通而外於心知, 鬼神將來舍, 而況人乎! 是萬物之化也, 禹舜之所紐也, 伏羲几蘧之所行終, 而況散焉者乎!

 

공자가 말했다. “극진하도다. 내 너에게 말해주겠다! 네가 능히 속세에 들어가 유유자적하면서도 명성에 흔들리지 않으면, [너의 말이 상대방에게] 들어가면 말하고, 들어가지 않으면 그칠 것이다. [미리] 한계를 세우고 의도하지 않고, 마음을 일관되게 하여 어찌할 수 없음에 맡기면 괜찮을 것이다.

속세를 떠나는 것은 쉽지만 땅을 걷지 않기란 어렵다. 다른 사람의 부림을 받는 것은 거짓을 저지르기 쉬우나 하늘의 부림을 받는 것은 거짓을 저지르기 어렵다. 날개가 있어 난다는 것은 들어봤지만 날개 없이 난다는 것은 듣지 못했고, 알고 있는 것을 통해 안다는 것은 들어봤어도 알지 못하는 것을 통해 안다는 얘기도 듣지 못했다. 저 빈 곳을 보면, 비어있는 방에 빛이 생겨나니 길상(吉祥)은 의식이 멈춘 곳에서 응집한다. 무릇 응집하지 못하면 이를 일컬어 앉아있어도 마음이 이리저리 내달린다고 한다. 무릇 귀와 눈의 작용을 따라 안으로 통하게 하고 마음이 알고자 하는 것을 버리면, 귀신도 장차 와서 머물 것이니 하물며 사람이겠는가! 이것은 만물을 감화시키는 것이니, 우 임금과 순 임금이 간직했던 것이고, 복희씨와 궤거씨가 끝까지 행한 바이니 하물며 부족한 사람에 있어서랴!”

번(樊)은 ‘울타리’라는 뜻이지만, 여기서는 속세를 의미합니다.

명(鳴)은 ‘울음소리’, ‘울다’의 뜻으로 주로 새에게 사용되는 글자지만, 《장자》에서 사람들을 새에 비유한 것에 맞추기 위해 사용됐습니다.

독(毒)은 《도덕경》 51장의 ‘만물을 생장시키고 자라게 한다’는 구절의 정지독지(亭之毒之)로부터 가져왔습니다. 여기서는 의도를 가지고 자라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택(宅)은 ‘집’을 뜻하지만, 여기서는 마음(心)에 대한 비유로 사용됐습니다.

절적(絶迹)은 ‘자취를 끊다’는 뜻이지만, 의역하면 속세를 떠나는 것입니다.

문(聞)과 미문(未聞)의 대조가 두드러집니다. 《맹자》에서는 문(聞)을 당연한 얘기로, 미문(未聞)을 황당한 얘기로 구별한 반면에, 여기서는 문(聞)을 세속적 차원의 것, 너무 쉬운 것으로, 미문(未聞)을 도(道)의 차원, 행하기 어려운 것으로 구별했습니다.

결(闋)은 여러 뜻이 있지만 여기서는 공(空)의 뜻입니다.

우쌤은 허실생백 길상지지(虛室生白, 吉祥止止) 이 구절이 앞에 나온 귀로 듣는 것, 기(氣)로 듣는 것과 같이 수련 도중에 느껴지는 체험이라고 하셨습니다. 지지(止止)는 ‘의식이 멈춘 곳에서 응집(凝集)한다’입니다.

우쌤은 좌치(坐馳)를 ‘몸은 앉아서 수행하지만 의식이 막 흩어지는 상태’라고 하셨습니다.

우쌤은 부순이목내통이외어심지(夫徇耳目內通而外於心知) 구절이 심재(心齋)를 자세하게 풀어낸 구절이라고 하셨습니다.

외(外)는 ‘버리다’의 뜻입니다.

뉴(紐)는 ‘끈’이란 뜻 외에도 ‘가지다’, ‘보관하다’, ‘유지하다’의 뜻도 있습니다. 여기서는 ‘보관하다’의 뜻으로 사용됐습니다.

산(散)은 산인(散人)으로 ‘쓸모 없는 사람’을 뜻합니다.

 

장자를 공부하시는 쌤들의 열기를 놓치기가 아까워서 그날의 뜨거운 분위기를 옮겨봅니다. ㅎㅎ


우쌤 : "희라! 아! 약태왕이형이........"
우쌤의 옥성을 옮길 수 없는 게 아쉽네요. ㅠㅜ


뒷자리에 나란히 앉아계신 장벤져스! ㅋㅋㅋ
묵묵히 서로의 공부를 하시지만 항상 저렇게 자리를 지킨다고 합니다......!
저희 모르게 의기투합을 하고 계신 걸까요? ㅇ_ㅇ
나중에 멋진 활약이 있지 않을까 살짝 기대해봅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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