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 한강

[인간세] 3~7

작성자
박규창
작성일
2018-04-02 06:09
조회
108
어느덧 인간세를 돌파했네요! 하지만 이야기도 다양하고, 방대하다보니 쉽게 전체적인 그림이 안 잡히는 것 같아요. 우쌤은 그럴 때마다 복습하면서 전반적인 이야기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읽으면서 각 편의 장들을 주제별로 정리하는 것도 장자를 재밌게 읽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하셨습니다. 한 주 방학하고 4월 14일에 뵐 때까지 한 번씩 읽어주세요~

 

3.

汝不知夫螳螂乎? 怒其臂以當車轍, 不知其不勝任也, 是其才之美者也. 戒之, 愼之! 績伐而美者以犯之, 幾矣.

 

너는 사마귀를 모르는가? 사납게 팔을 들어서 수레를 감당하려 하지만 감당할 수 없음을 알지 못하니, 이것이 재능이 뛰어난 사람들이다. 경계하고, 신중해라! 능력을 쌓고 자랑하고 너의 뛰어남으로써 남의 심기를 건들이니 위험할 것이다.

 

노(怒) ‘성내다’, ‘성냄’으로 쓰이지만, 여기서는 기운찬 모습으로 사용됐습니다.

차철(車轍) ‘수레’라는 하나의 단어입니다.

승(勝)은 ‘감당하다’는 뜻입니다.

적벌(績伐)은 ‘자신의 능력을 남에게 자랑하다’는 뜻입니다.

범(犯) ‘남의 심기를 건들이다’는 뜻입니다.

기(幾)는 이 문장 안에서도 여러 뜻이 있는데, 여기서는 ‘위태롭다’의 뜻입니다.

 

汝不知夫養虎者乎? 不敢以生物與之, 爲其殺之之怒也., 不敢以全物與之, 爲其決之之怒也., 時其飢飽,達其怒心. 虎之與人異類而媚養己者, 順也., 故其殺之者, 逆也.

 

너는 호랑이를 기르는 사람을 모르는가? 감히 살아있는 먹이를 주지 않는 것은 그것을 죽이려고 화를 내기 때문이고, 감히 온전한 생물을 주지 않는 것은 그것을 찢으려고 화를 내기 때문이니, 때에 맞게 굶주리게 하고 배부르게 해서 그 노여운 마음을 풀어준다. 호랑이가 사람과는 다른 부류이지만 [호랑이가] 자신을 [기르는 사람에게] 아양을 떠는 것은 [기르는 사람이 호랑이의 본성을] 따르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호랑이가 기르는 사람을] 죽이는 것은 [기르는 사람이 호랑이의 본성을] 거스르기 때문이다.

 

호(虎)는 권력자를 비유한 것으로 일반 사람들과 다른 세상에서 살아가는 이질적인 존재를 뜻합니다.

생물(生物)은 ‘살아있는 먹이’입니다. 예전에는 우리도 생선 같은 물건을 살 때, “거기 생물있어?”라고 했다고 합니다.

전물(全物)은 토막내지 않은 온전한 생물을 말합니다.

시(時)는 ‘때에 맞게’라는 뜻입니다.

달(達)은 ‘이해하다’의 뜻이지만, 좀 더 의역하면 다른 사람의 마음에 이르러서 그 마음을 풀어주는 것입니다.

미(媚)는 ‘아첨하다’, ‘아양을 떨다’라는 뜻입니다.

순(順)은 ‘호랑이의 본성을 따르는 것’이고, 역(逆)은 호랑이의 본성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夫愛馬者, 以筐盛矢, 以蜃盛溺. 適有蚊虻僕緣, 而拊之不時, 則缺衝毁首碎胸. 意有所至而愛有所亡, 可不愼邪!

 

무릇 말을 좋아하는 사람은 광주리에 말똥을 가득 담고, 큰 조개에 오줌을 가득 채운다. 어쩌다 말잔등에 모기나 등애가 붙어있어 갑자기 손으로 그것을 치면, 재갈을 끊고 [말을 좋아하는 사람의] 머리를 훼손시키고 가슴을 부술 것이다. 의도에 하고자 하는 바가 있으면 사랑이 [지켜야 할 선]이 없게 되니, 삼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광(筐)은 나물 담는 광주리입니다.

성(盛)은 ‘채우다’, ‘담다’의 뜻인데, 꽉 채우는 것을 말합니다.

시(矢)는 보통 ‘화살’ 혹은 ‘맹세하다’의 뜻으로 사용되는데 여기서는 ‘말의 똥’입니다.

신(蜃)은 ‘큰 조개’를 뜻하는데, 매우 값진 것이라고 합니다.

적(適)은 ‘때마침’, ‘어쩌다’의 뜻입니다.

문맹(蚊虻)에서 문(蚊)은 ‘모기’, 맹(虻)은 ‘등애’를 뜻합니다.

복연(僕緣)은 두 가지 뜻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1. 두 글자 다 ‘붙다’, ‘연결하다’로 해석하는 것이고, / 2. 연(緣)을 ‘말잔등’으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말잔등에 붙어있다”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부(拊)는 ‘손으로 치다’의 뜻입니다.

결(缺)은 결함의 결로 ‘깨트리다’라는 뜻입니다. 훼(毁)와 쇄(碎) 모두 비슷한 뜻으로 재갈 부시듯 사육사를 다치게 하는 글자입니다.

의(意)는 ‘의도’입니다.

망(亡)은 ‘지켜야 할 선이나 법도가 없음’을 말합니다.

신(慎)은 ‘신중하다’는 뜻인데, 앞에 나온 개념으로 바꾸면 심재(心齊)입니다.

 

4.

匠石之齊, 至於曲轅, 見櫟社樹. 其大蔽數千牛, 絜之百圍, 其高臨山, 十仞而後有枝, 其可以爲舟者旁十數. 觀者如市, 匠伯不顧, 遂行不輟.

 

목수 석()이 제나라로 가서 곡원(曲轅) 땅에 이르러서 사직단에 심어진 상수리나무를 보았다. 그 크기가 수천 마리의 소를 덮고, 둘레를 재면 백 명이 둘러쌀 만하고, 그 높이는 산에 맞먹을 만하고, 열 길을 올라가야 가지가 있는데, [그 가지로] 배 수십 개를 만들 수 있었다. 구경꾼들이 [모이는 것이] 시장과 같았지만, ()은 돌아보지 않고 가서는 걸어가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장(匠)은 ‘장인’을 뜻하는데, 여기서는 나무를 보는 사람이니까 목수를 말합니다.

석(石)은 사람 이름입니다. 주석을 참고하면, 장석의 자(字)는 장백(匠伯)입니다.

폐(蔽)는 ‘덮다’, ‘가리다’의 뜻입니다.

혈(絜)은 ‘재다’의 뜻입니다.

임(臨)은 ‘맞먹다’, ‘비견되다’의 뜻입니다.

방(旁)은 장석의 시선이 나무의 옆라인을 타고 점점 올라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글자입니다.

이 문장은 장석의 시선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염두에 두고 읽으면 더 재미있습니다. 먼저 대략적인 크기를 봅니다. 그 다음에 자세하게 보기 시작하는데, 처음에는 밑동의 크기와 높이를 봅니다. 더 세부적으로 볼 때는 아래에서부터 천천히 시선이 위로 올라갑니다. 그래서 가지를 보고, 그 가지의 크기를 본 것입니다.

시(市)는 시장에 사람이 많이 모이듯, 사람이 많은 것을 비유한 단어입니다.

철(輟)은 ‘멈추다’의 뜻입니다.

 

弟子厭觀之, 走及匠石, : 自吾執斧斤以隨夫子, 未嘗見材如此其美也. 先生不肯視, 行不輟, 何邪?

 

제자가 싫증날 때까지 그것을 보고 목수 석()에게 쫓아가서 말하기를, “제가 도끼를 집어들고 선생님을 쫓아다닌 이래로, 목재가 이와 같이 훌륭한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선생님은 기꺼이 보지도 않으시고, 걸어가는 것을 멈추지 않으시니, 어찌된 것입니까?”

 

: 已矣, 勿言之矣! 散木也, 以爲舟則沈, 以爲棺槨則速腐, 以爲器則速毁, 以爲門戶則液樠, 以爲柱則蠹. 是不材之木也, 無所可用, 故能若是之壽.

 

목수 석()이 말했다. “그만둬라, 그 나무에 대해 말하지 말아라! 쓸데없는 나무다. [이 나무로] 배를 만들면 가라앉고, ()과 곽()을 만들면 빨리 썩고, 그릇을 만들면 빨리 부서지고, 문을 만들면 진액이 흘러나오고, 기둥을 만들면 좀벌레가 생긴다. 이것은 목재로 쓸 수 없는 재료이니, 사용할 수 있는 바가 없다. 이 때문에 이와 같이 장수할 수 있는 것이다.

 

산목(散木)은 쓸모없는 나무입니다.

침(沈)은 ‘가라앉다’의 뜻입니다.

관(棺)과 곽(槨)은 시체를 담는 관인데, 중국에서는 관을 두 개로 썼다고 합니다. 관(棺)은 내부의 관이고, 곽(槨)은 외부의 관입니다. 그런데 보통 두 개를 쓰는 것은 잘 사는 사람, 귀족 이상의 사람들이 했었고, 대부분 곽 없이 관만 썼다고 합니다. 참고로 공자의 아들인 리(鯉)도 곽 없이 관만 써서 장례를 치뤘다고 합니다.

부(腐)는 ‘썩다’의 뜻입니다.

액만(液樠)은 나무의 진액이 흘러나오는 것을 표현한 단어입니다.

두(蠹)는 ‘좀벌레’를 뜻합니다.

수(壽)는 ‘장수’의 수로, ‘오래 살다’를 뜻합니다.

예시를 하나만 들어도 되는데, 굳이 상수리나무를 말하고 게다가 그 쓰임새를 이렇게 자세하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칠원리에서 산림을 관리했던 장자의 경험이 고스란히 묻어나오는 대목인 것 같습니다.

 

匠石歸, 櫟社見夢曰: 女將惡乎比予哉? 若將比予於文木邪? 夫柤梨橘柚, 果蓏之屬, 實熟則剥, 剥則辱., 大枝折, 小枝泄. 此以其能苦其生者也, 故不終其天年而中道夭, 自掊擊於世俗者也. 物莫不若是. 且予求無所可用久矣, 幾死, 乃今得之, 爲予大用. 使予也而有用, 且得有此大也邪? 且也若與予也皆物也, 奈何哉其相物也? 而幾死之散人, 又惡知散木!

 

목수 석()이 돌아갔는데 사직단에 심어진 상수리나무가 꿈에서 나와서 말했다. “너는 장차 어찌 나를 비교하려는가? 너는 장차 나를 아름다운 나무에 비교하려는가? 무릇 아가위나무, 배나무, 귤나무, 유자나무는 과일이나 열매 따위의 것들이니, 열매가 익으면 [가지가] 잡아 뜯기고, [가지가] 잡아 뜯기면 욕을 입게 되니, 큰 가지는 잘라지고, 작은 가지는 잡아 당겨진다. 이것이 능력이 그 생명을 괴롭히는 것이다. 따라서 하늘이 준 수명을 마치지 못하고 중도에 요절하니 스스로 세속 사람들에게 잘리고 맞는 것이다. [능력이 있으면] 만물이 이와 같지 않음이 없다. 또 나는 쓰일 수 있는 바가 없기를 구한지 오래되었는데, 거의 죽을 뻔했다가, 지금은 그것을 얻었으니, 나의 큰 쓰임이 된 것이다. 만약 내가 쓸모가 있었더라면, 또 이렇게 클 수 있었겠는가? 또 너와 내가 같은 사물이거늘 어찌 서로 사물로 여길 수 있겠는가? 너는 거의 죽어가는 쓸모없는 사람이니, 또 어찌 쓸모없는 나무를 알 수 있겠는가!

 

앞에서 나온 역사(櫟社)는 그냥 나무였습니다. 근데 여기서는 의인화가 되었습니다. 책을 보시면 밑줄이 쳐져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女)는 여(汝)와 통용되어 ‘너’라는 뜻입니다.

오(惡)는 ‘미워하다’가 아니라 ‘어찌’의 뜻입니다.

약(若)은 ‘너’라는 뜻입니다.

문목(文木)은 산목에 대비되어 화려한 나무, 유용한 나무를 뜻합니다. 그래서 흐드러지게 멋진 나무이면서 여러 가지 목재로 쓰일 수도 있고, 과실도 실하게 열리는 나무를 가리킵니다.

사리귤유(柤梨橘柚)는 각기 ‘아가위나무’, ‘배나무’, ‘귤나무’, ‘유자나무’를 뜻합니다.

박(剥)은 ‘껍질을 벗기다’의 뜻입니다. 좀 더 의미를 파고들면 ‘열매를 뜯다’, ‘가지를 잡아당기다’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설(泄)은 원래 ‘물이 새다’의 뜻이지만, 여기서는 예(抴)와 통용되어 ‘나뭇가지를 잡아당기다’의 뜻으로 사용됐습니다.

천년(天年)은 《장자》 안에서도 자주 나오는데, ‘하늘이 준 수명’을 뜻합니다.

부(掊)는 부관참시할 때 쓰는 글자로, ‘(가운데를) 자르다’의 뜻입니다. 격(擊)은 주먹으로 치는 것입니다.

무소가용(無所可用)이 곧 무용지용(無用之用)이고, 대용(大用)입니다.

산인(散人)은 쓸모없는 사람입니다. 뒤에 나오는 산목(散木)은 쓸모없는 나무가 아니고 무용지용(無用之用)을 체득한 나무를 말합니다.

 

匠石覺而診其夢. 弟子曰: 趣取無用, 則爲社何邪?

: ! 若無言! 彼亦直寄焉, 以爲不知己者詬厲也. 不爲社者, 且幾有翦乎! 且也彼其所保與衆異, 而以義喩之, 不亦遠 乎!

 

목수 석()이 깨어나서 그 꿈을 살펴봤다. 제자가 말했다. “뜻이 쓸모없어지기를 취했다면 사직단의 나무가 된 것은 어째서입니까?”

목수 석()이 말했다. “! 너는 말을 하지 말아라! 저것은 또한 단지 사직단에 깃들은 것이니,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 사람의 비난 정도로 여길 것이다. 사직단에 심어지지 않았어도 또 잘라짐이 있었겠는가! 또 저 나무는 내면에 간직한 바가 다른 사람들과 다르니 의로움으로써 그것과 비교하는 것이 또한 어긋나지 않겠는가!

 

취(趣)는 취향, 취미의 취입니다. ‘뜻’ 지(志)와 비슷한 뜻입니다.

밀(密)은 ‘빽빽하다’, ‘촘촘하다’의 뜻이지만, 여기서는 말을 하지 말고 입을 다물라는 뜻입니다.

직(直)은 ‘단지’의 뜻으로 사용됐습니다.

후려(詬厲)는 그 자체로 ‘비난’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옥편에는 “후”를 “억”으로 읽는 걸로 나옵니다.

의(義)는 유학의 가치를 상징하는 글자입니다.

전(翦)은 ‘자르다’의 뜻입니다.

유(喻)는 ‘깨우치다’의 뜻이지만, 여기서는 ‘비교하다’의 뜻으로 사용됐습니다.

 

5.

南伯子綦遊乎商之丘, 見大木焉有異, 結駟千乘, 隱將芘其所藾. 子綦曰: 此何木也哉? 此必有異材夫!仰而視其細枝, 則拳曲而不可以爲棟樑., 俯而視其大根, 則軸解而不可以爲棺槨., 咶其葉, 則口爛而爲傷., 嗅之, 則使人狂酲, 三日而不已.

 

남백자기가 상()땅의 언덕에서 노닐다가 특이함이 있는 큰 나무를 보았다. 말 네 필을 묶은 수레 천 대를 그 [나무의] 그늘에 장차 덮어서 가릴 수 있었다. 자기가 말했다. “이것은 무슨 나무인가? 이것은 반드시 특이한 재목이 있을 것이다! [고개를 들어] 우러러보고 그 잔가지들을 보았더니 [가지의 끝이] 주먹처럼 말려있어서 대들보로 만들 수 없었고, 고개를 숙여서 밑동을 보았더니 나무의 심지가 흩어져있어서 관곽(棺槨)으로 만들 수 없었다. 그 잎을 핥으니 입이 문드러진 것처럼 상처가 났고, 냄새를 맡으니 사람을 미친 듯 취하게 만든 것이 삼일 동안 그치지 않았다.

 

견대목언유리(見大木焉有異)는 유리(有異)를 견대목언(見大木焉)에 붙이기도 하고 따로 떨어트려서 읽기도 합니다. 붙여서 읽으면 “특이함이 있는 큰 나무를 보다”가 되고, 떨어트려서 읽으면 “큰 나무를 보았더니 특이함이 있었다”가 됩니다.

사(駟)는 말(馬)을 네 마리(四) 묶은 수레입니다.

비(芘)는 ‘덮다’는 뜻에서 비(庇)와 통용됩니다. 뢰(藾)도 비슷하게 ‘덮다’, ‘가리다’의 뜻입니다.

은장비기소뢰(隱將芘其所藾) 이 구절은 그대로 읽기도 하고. 은(隱)과 장(將)의 자리를 바꿔서 읽기도 합니다. 그대로 읽으면 “나무의 그늘이 장차 수레 천 승을 덮어서 가릴 수 있다”가 됩니다. 바꿔서 읽으면 “장차 나무 그늘로 덮어서 가릴 만하다”가 됩니다.

이재(異材)는 특이한 재목을 말합니다.

앙(仰)은 ‘우러르다’라는 뜻인데, 여기서 큰 나무를 보는 것이니까 ‘고개를 들어서 위를 우러러보다’로 풀었습니다.

세지(細枝)는 나무의 가지들을 말합니다.

권곡(拳曲)은 앞에서도 나왔지만 주먹처럼 끝이 말려있는 모습을 말합니다. 무용(無用)한 나무를 묘사할 때 쓰이는 공통된 표현입니다.

동량(棟樑)은 대들보를 말합니다.

축(軸)은 나무의 심지를 뜻합니다.

정(酲)은 ‘숙취’를 뜻합니다. 광(狂)과 함께 읽으면 숙취에 정신을 놓은 듯한 모습입니다.

 

子綦曰: 此果不材之木也, 以至於此其大也. 嗟乎神人, 以此不材!

 

자기가 말했다. “이것은 예상대로 목재로 쓸 수 없는 나무구나, [하지만] 이 때문에 이렇게 클 때까지 이르렀구나. , 신인(神人)들도 이처럼 쓸모가 없을 것이다!”

 

과(果)는 ‘과연’, ‘예상대로’의 뜻입니다.

차호(嗟乎)는 탄식하는 소리입니다.

소요유편에서 신인(神人)은 무공(無功)이라 한 것과 연결됩니다.

 

宋有荊氏者, 宜楸柏桑. 其拱把而上者, 求狙猴之杙者斬之., 三圍四圍, 求高名之麗者斬之., 七圍八圍, 貴人富商之家求樿傍者斬之. 故未終其天年, 而中道之夭於斧斤, 此材之患也. 故解之以牛之白顙者與豚之亢鼻者, 與人有痔病者不可以適河. 此皆巫祝以知之矣. 所以爲不祥也. 此乃神人之所以爲大祥也.

 

()나라에 형씨(荊氏)라는 땅이 있는데 가래나무와 측백나무와 뽕나무가 잘 자랐다. 그 중 두줌이나 한줌 크기로 자란 것은 원숭이의 말뚝을 구하는 사람이 베어가고, 세 사람이나 네 사람이 둘러쌀 수 있을 정도로 [자란 것은] 유명한 집의 대들보를 구하는 사람이 베어가고, 일곱 사람이나 여덟 사람이 둘러쌀 수 있을 정도로 [자란 것은] 귀한 사람이나 부유한 상인의 집에서 관 옆면에 쓰이는 목재를 구하는 사람이 베어간다. 그러므로 하늘이 부여한 수명을 다 누리지 못하고 도중에 도끼로 인해 요절하니, 이것이 재능이 있는 것의 걱정이다. 그러므로 큰 제사를 지낼 때는 이마에 흰 점이 있는 소와 들창코인 돼지, 치질이 있는 사람은 제물로 쓰일 수 없다. 이것은 모두 무당들도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니, 불길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신인(神人)이 크게 길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형씨(荊氏)는 지명입니다.

의(宜)는 ‘맞다’, ‘잘 자라다’를 뜻합니다.

공(拱)은 ‘두 손으로 쥐다’를 뜻하고, 파(把)는 ‘한 손으로 쥐다’를 뜻합니다.

익(杙)은 ‘말뚝’을 뜻합니다.

려(麗)는 려(欐)와 통용되어 ‘서까래’, ‘대들보’를 뜻합니다.

선(樿)은 ‘관에 쓰이는 목재’를 뜻합니다. ‘옆’을 뜻하는 방(傍)과 같이 사용되어 관 옆면에 쓰이는 목재를 말합니다.

해(解)는 보통 ‘풀다’의 뜻으로 쓰이지만, 여기서는 ‘큰 제사를 지내다’, ‘기도하다’의 뜻으로 사용됐습니다.

치병(痔病)은 ‘치질’을 뜻합니다.

하(河)가 나온 것은 옛날에는 황하에서 제사를 많이 지냈기 때문입니다.

차개무축이지지의(此皆巫祝以知之矣)에서 이(以)는 이(已)와 통용되어 ‘이미’라는 뜻입니다.

 

6.

支離疏者, 頤隱於臍, 肩高於頂, 會撮指天, 五管在上, 兩髀爲脇. 挫鍼治繲足以餬口., 鼓筴播精, 足以食十人. 上徵武士, 則支離攘臂而遊於其間., 上有大役, 則支離以有常疾不受功., 上與病者粟,則受三鍾與十束薪. 夫支離其形者, 猶足以養其身, 終其天年, 又況支離其德者乎!

 

지리소란 사람은 턱이 배꼽에 숨어있고, 어깨가 정수리보다 높고, 상투가 하늘을 가리키고, 오장이 위에 있으며, 양 넓적다리가 겨드랑이에 닿아있다. 바느질과 옷을 빠는 것으로 입에 풀칠하기에 충분하며, 키질을 해서 쌀을 골라내어 열 사람 먹이기에 충분하다. 나라에서 무사들을 부르면 지리소는 팔을 걷어붙이고 그 사이를 유유자적 다니며, 나라에 큰 부역이 있으면 지리소는 항상 병이 있기 때문에 일을 받지 않고, 나라에서 병자에게 곡식을 주면 3()의 쌀과 열 묶음의 땔나무를 받았다. 무릇 그 형체를 지리멸렬하게 만든 사람도 그 몸을 기르고 주어진 수명을 마치기에 충분하거늘, 하물며 그 덕()을 지리멸렬하게 만든 사람이겠는가.

 

지리소(支離疏)까지가 안성자기의 말입니다. 내용상 인간세보다는 덕충부편과 더 잘 어울리는 문장입니다. 지(支)는 지(肢)와 통용되어 ‘사지’를 뜻하고, 리(離)는 ‘떨어져있다’, ‘뒤틀려있다’의 뜻입니다 소(疏)는 이름입니다. 합해서 ‘사지가 뒤틀린’ 소(疏)입니다.

이(頤)는 ‘이마’를 제(臍)는 ‘배꼽’을 뜻합니다.

會撮 이 글자는 “회촬”이 아니라 “괄체”로 읽습니다. 둘 다 ‘모여있다’는 뜻에서 ‘상투’를 뜻합니다.

비(髀)는 ‘넓적다리’, 협(脇)은 ‘겨드랑이’입니다.

좌(挫)는 ‘굽히다’, 침(鍼)은 ‘침’의 뜻입니다. 합해서 ‘바느질 하다’의 뜻으로 사용됩니다.

해(繲)는 ‘헌 옷’인데, 치(治)와 같이 쓰이면, ‘빨래를 하다’의 뜻입니다.

호(餬)는 ‘입에 풀칠하다’의 뜻입니다.

筴 이 글자는 “책”으로 읽습니다. ‘대쪽’, ‘대나무로 만든 키’를 의미합니다. 기(箕)를 쓰지 않고 책(筴)을 쓴 것은 신체적으로 큰 키를 쓰지 못하는 지리소를 염두에 둔 것입니다.

고책(鼓筴)은 ‘키질을 해서 쭉정이를 날리다’의 뜻입니다.

파정(播精)에서 파(播)는 ‘뿌리다’, ‘날리다’를 뜻합니다. 고책으로 쭉정이를 골라내어 백미(精)를 남기는 것을 말합니다.

양비(攘臂)는 ‘팔뚝을 걷어붙이다’를 뜻합니다.

대역(大役)은 성이나 다리를 만드는 것과 같은 큰 공사를 말합니다.

종(鍾)은 쌀의 단위입니다. 매우 큰 단위라고 합니다. 속신(束薪)은 땔나무 묶음을 말합니다.

양기신(養其身)은 직역하면 ‘몸을 기르다’이지만, 여기서는 자신의 몸을 지켜서 수명을 다하는 전생(全生)의 의미입니다.

 

7.

孔子適楚, 楚狂接輿遊其門曰:

鳳兮鳳兮, 何如德之衰也!

來世不可待, 往世不可追也.

天下有道, 聖人成焉.,

天下無道, 聖人生焉.

方今之時, 僅免刑焉.

福輕乎羽, 莫之知載., 禍重乎地, 莫之知避.

已乎已乎, 臨人以德!

殆乎殆乎, 畫地而趨!

迷陽迷陽, 無傷吾行! 吾行郤曲, 無傷吾足!

 

공자가 초나라에 갔을 때, 초나라 사람 광접여가 [공자가 머물고 있던 숙소의] 문에서 거닐며 말했다.

봉새여, 봉새여, 어찌 덕이 쇠하였는가!

다가올 세상은 기대할 수 없고, 지나간 세상은 바꿀 수 없네.

천하에 도()가 있으면 성인은 뜻을 이루지만,

천하에 도()가 없으면 성인은 살아남을 뿐이네.

바야흐로 지금 같은 때에는 간신히 형벌을 면할 뿐이네.

()은 깃털보다 가볍건만 실을 줄을 모르고, ()는 땅보다도 두텁건만 피할 줄을 모르네.

그만두어라, 그만두어라, ()으로 사람을 대하는 것을!

위태롭다, 위태롭다, 땅에 선을 긋고 달려가는 것을!

능력을 감출지어다, 능력을 감출지어다, 내 발을 해치지 말라! 내 물러나기도 하고 돌아가기도 하여, 내 발을 다치게 하지 않으리니!”

 

광접여(狂接輿)는 《장자》뿐만 아니라 《논어》, 《사기》, 《열녀전》, 《고사전》에 나오는 대표적인 은자(隱者)입니다. 광(狂)은 세상을 버린 사람을 뜻하고, 접여(接輿)는 수레에 닿았다의 뜻입니다. 주석에 따르면, 본명은 육통(陸通)인데, 우쌤은 ‘육지의 어디든 다닌다’라고 풀어주셨습니다. 신선으로 분류되면서 동시에 고사에 해당되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합니다. 《열녀전》에서는 와이프의 이야기가 중점적으로 다뤄지는데, 접여가 초나라왕이 금 100일(鎰)과 수레(駟) 두 승을 가져와서 회남 땅을 다스려달라는 부탁을 받았을 때, 아내가 그것을 거절하게 만들고 이사를 리드합니다.

《논어》, 《사기》에 나오는 노래보다 좀 더 분량이 깁니다. 그런데 《장자》가 만들어진 연도를 보면 《논어》에 기록된 것이 먼저일 텐데, 《장자》에 뒷부분이 있는 것은 왜 그런지 알 수 없습니다. 《장자》에 있는 뒤에 구절이 나중에 붙여진 것일 수도 있고, 혹은 《논어》에서 삭제됐으나 《장자》에 남아있는 걸지도 모릅니다. 결국 원본이 뭔지 알 수 없으니 각자 재량껏 읽을 수밖에 없습니다.

대(待)는 ‘기다리다’의 뜻이지만, 여기서는 ‘기대하다’의 뜻입니다.

추(追)는 ‘추억하다’의 뜻이지만, 여기서는 ‘고치다’ 개(改)와 통용됩니다.

성(成)은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재(載)는 주로 물건을 수레에 실을 때 많이 사용됩니다. 이 글자가 쓰인 것은 당시 공자의 상황과 연결됩니다. 공자는 섭공이라는 개혁가를 통해 초나라에서 정치를 하고자 했으나 자서의 반대에 의해 실패한 상황이었습니다. 유세에 실패하면 바로 그 나라를 떠나야 목숨을 보존할 수 있기 때문에 공자에게 수레에 짐 싣고 떠나라는 것을 재(載)로 표현한 것입니다.

중(重)은 ‘두텁다’의 뜻인데, 땅을 표현할 때 자주 나오는 글자입니다.

획지(畫地)는 땅에 금을 그어놓는 것. 우쌤은 이를 선악의 구별, 자신의 판단기준을 세우는 것으로 해석해주셨습니다.

미양(迷陽)은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합니다. 전통적인 해석은 양(陽)을 명(明)으로 봐서 ‘자신의 밝은 능력’으로 보고, 미(迷)는 망(亡)으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합해서, ‘명(明)을 숨기는 것’으로 보는 것이 첫 번째 해석입니다. 두 번째는 초나라 지역에서 자라는 ‘가시풀’로 보는 것입니다.

각(卻)은 ‘물러나다’이고, 곡(曲)은 ‘돌아가다’입니다. 가시풀이 있는 곳, 자신을 위험하게 만드는 곳을 피해서 가는 것을 말합니다.

 

山木自寇也, 膏火自煎也. 桂可食, 故伐之., 漆可用, 故割之. 人皆知有用之用, 而莫知無用之用也.

 

산의 나무는 스스로 해치고, 기름의 불은 스스로를 태운다. 계피나무는 먹을 수 있기 때문에 베어가고, 옻나무는 쓸 수 있기 때문에 잘라간다. 사람들은 모두 쓸모가 있는 것의 쓸모는 알지만, 쓸모가 없는 것의 쓸모는 알지 못한다.

 

구(寇)는 ‘해치다’의 뜻입니다.

고(膏)는 ‘기름’의 뜻입니다.

전(煎)은 ‘졸이다’, ‘타다’의 뜻입니다.

계(桂)는 ‘계피나무’의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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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4-04 10:32
    한 글자, 한 글자에 이야기와 지혜가! @.@ 열심히 후기를 읽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