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과 글쓰기

3.21 주역과 글쓰기 5주차 후기

작성자
류수정
작성일
2021-03-22 11:22
조회
149
도올의 책을 읽으면 생경한 단어 중에 하나가 심볼(상징)입니다.  천과 건, 지와 곤이 각각 하늘과 땅을 지칭하지만 천과 지는 하늘과 땅이지만, 건과 곤은 하늘과 땅의 운동성을 보고 상징화한 문자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심볼이라고 하면 무엇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언어가 즉, 심볼입니다.  언어가 어떤 사물을 묘사한다고 할 때, 사물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언어는 없습니다. 그러나 언어는 있는 그대로 묘사는 불가능하지만 핵심만을 남겨서 어떤 사물을 지칭할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언어에서 핵심만을 남기는 과정을 상징이라고 할 수있습니다. 동물은 현생을 이어가기 위해 청각적 신호와 후각적 신호를 이용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이러한 지각과 감각한 것을 바탕을 상징체계를 만들어 언어화하였습니다. 사물이 담고 있는 것 그 이상을 상징을 통해 담아내는 활동이 언어입니다. 이런 언어를 통해 의미를 생성합니다. 하나의 사과라는 물질에 세잔의 사과, 선악과의 원죄, 또는 만유인력을 각각 상징되고 의미가 발생됩니다. 각각 사과를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세계를 어떻게 해석하는 지를 보여줍니다.

초월론과 내재론도 그렇습니다. 창조자는 변화하지 않고 피조물은 변화를 매 순간 겪으며, 창조자는 완전하고 피조물은 불완전한 것과 같이, 창조자와 피조물 사이에 차이가 있으면 초월론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창조자와 피조물이 원인과 결과로 존재하며 이 사이에 위계가 없으면 내재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몸이 자연입니다. 몸 안에 이미 태극이 있고, 태극이 음양을 낳고, 음양이 팔괘를 낳아 인간의 모든 것이 내재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동양에서 생이라는 것은 창조가 아니라 transformation이라는 것을 연결해 생각해 보면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몸에서 나타나는 모든 것이 하나의 기호로 작용하고 사랑한다는 것은 상대방의 몸의 기호(상징)을 읽어낼 수 있는 것일 수 있습니다. 사건이 발생한다는 것은 비단 단일한 하나의 사건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시대상의 기호들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사건과 범죄들의 기호를 읽어내고 기호에 대한 상징을 읽어서 우리 시대상을 읽고 욕망을 읽을 수도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군자는 현상을 보고 상징(기호)를 읽는 것이고 소인은 지각과 감각속에서  사건을 읽는 사람들입니다. 그러기에 군자는 사건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 수 있고, 소인은 사건의 발생 지점만을 알 수있습니다. 역사적인 사료들만 봐도 그렇습니다. 역사적은 사료들은 지나가버린 흔적입니다. 그것들을 이리저리 엮어보지 않으면 단일적인 사건으로 존재하지만 그것들을 엮는 순간 통합이 되고 거기에서 상징(기호)를 읽을 수 있고, 이후에 일어날 일을 알 수 있습니다. 역사적인 사료(현상)은 그저 발생하는 우연의 사건이지만, 우연이 발생하기 위한 많은 힘의 의지인 기호를 읽어 낼수 있는 존재가 군자입니다. 계사전 11장에 성인은 문명을 만드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문명의 문은 천문과 인문이고, 명은 인식능력 또는 이해하는 능력입니다. 문명이라는 것은 우리가 누리는 삶의 지반이 아닌, 천문과 인문을 인식 또는 이해는 것입니다. 인간은 사유를 통해 자연을 의미화하고, 세계의 의미를 구축하면서 문명이 시작되었습니다. 성인은 자연의 인격체를 구현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시의 리듬, 우주의 원리를 구현할 수 있는게 성인입니다. 그래서 문명은 성인과 더불어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천지와 더불어 만물의 자리가 정해지고, 천지의 법칙에서 인간의 자리도 정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동양에서는 성인은 신의 계시를 받는 사람이 아닌 이미 내가 알고 있는 것으로 부터 알게되는 사람입니다. 성인은 간단한 자연 현상 (8괘)를 조합하여 압축적인 상징으로 보여주는 사람입니다.

동양에 성인이 있다면 서양에도 성인이 있습니다. 서양에서 성인은 saint라고 하며 종교를 위해 순교한 사람을 지칭합니다. 성인이라는 단어는 같지만 동양에서 성인과 서양에서의 성인은 문화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동양의 성인과 같이 생각해볼 서양에는 히어로(영웅)이 있습니다.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에게 불을 준 제우스의 아들입니다. 그러나 프로메테우스는 불(문명)도 주었지만 그러면서 경작을 해야하는 노동하는 인간의 고통도 같이 주는 존재입니다. 프로메테우스는 신전에서 불을 훔쳐서 신의 질서를 어겼고, 불을 훔쳤다는 죄로 프로메테우스는 간을 쪼이는 벌을 받게 됩니다. 신의 질서를 어기고, 인간에게 불과 노동의 고통을 두 가지 모두 주며, 자신도 간을 쪼이게 되는 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에 반해 동양의 성인은 특별한 존재가 아닌 자신의 근간에 있는 것으로 깨닫고 그것을 후대에 전해주는 사람입니다.

천지비는 지천태 다음에 오는 괘입니다. 천지비와 지천태는 내괘와 왜괘가 서로 반대입니다. 양적인 것으로 봤을 때는 둘 다 양효가 3개이고, 음효가 3개입니다. 그러나 지천태는 소통의 괘이지만  천지비는 불통의 괘입니다. 양적 차이는 없지만 상괘와 하괘의 배치로 인하여 다른 효과가 발생가 하게 되었습니다. 천지비는 건괘가 위에 있고 곤괘가 아래에 있어 건괘는 위로 향하고 곤은 아래로 향하는 성질이 있어서 서로 완전히 갈라져서 어떠한 운동성도 발생하지 않습니다. 또한 소인인 음효가 내괘에 배치하고 있어 이제는 소인이 군자를 몰아낼 상황만 남았습니다. 이러한 상황에 군자가 해야하는 일은 자신의 능력을 아끼고 내세위지 않고, 동지들과 연대하여 바름을 지켜야합니다. 문제가 발생하고 어려움일 발생할 때 해결되거나 포기하는 윤리만을 가졌지 어떻게 물러날 것인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지 못하였습니다. 지화명이, 천산둔, 천지비괘등 대인에게는 어려운 상황에 어떻게 행동을 해야하는지 보여주는 괘가 있습니다. 그러나 난세도 다 다른 난세 입니다. 난세에 따라 어떻게 은둔할 것인지에 대한 윤리로 살아야 하는 지 생각해 봐야 겠습니다.

천화동인은 연대의 괘입니다. 천화동인의 괘사에서 동지와의 연대는 광야에서 이루면 형통하다고 하였습니다. 광야에서 이루어야하는 이유는 사심없이 연대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심없이 연대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연대하여 사업을 할 때 듣는 이야기 중에 하나가 투명한 수익 공개 및 공평한 수익 배분입니다. 그러나 수익에 대한 윤리만 마련된다면 연대하여 사업할 수 있을까요? 연대한다고 하면 자연스레 따라오는 말이 동지와 연대한다는 것입니다. 동지는 같은 동에 뜻지 입니다. 여기서 뜻지는 마음의 방향성입니다. 동지는 마음의 방향성이 동일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음의 방향성이 같은 사람들이 모여서  사업을 하는 것이 연대일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의 방향성이 같더라도 각자 사심이 가득하여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드러내지 않으면 연대는 불가합니다. 그래서 사심 없는 마음이 천화동인에서는 중요할 것 입니다.
전체 3

  • 2021-03-22 14:52
    자세한 후기 잘 읽었습니다 ^^!
    군자는 현상을 보고 상징을 읽고 소인은 지각과 감각속에서 사건을 읽는다는 것의 예시로 올해 지방대학들이 정원을 못채운 사건을 본다면, 군자는 여기에서 출산율의 지속적 저하, 수도권 집중 현상, 대학의 지식 독점력 저하 등등의 상징을 볼수있다는 말이지요? 그렇다면 상징화란 추상적 개념화라고도 할 수있을까요?

    • 2021-03-24 13:01
      혹시 쌔~앰 이건 소인이 본다는 사건의 발생지점이 아닐까요? 사건의 분석 같은 거요. 추상화 한다는 건 보편적인 법칙을 제시하여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아닐까요? 성인이 그랬듯이 방향성을 통하게 해주고 해야 할 일을 정해주고... 보편화 작업은 인간의 욕망과 사회적 조건 모두를 읽어야 되는 부단한 일인 거 같아요. 군자가 왜 자강불식해야 하는지도 말하는 것 같구요.

  • 2021-03-24 12:53
    다시 수업을 듣는 듯한 상세한 후기 고맙습니다. 동양과 서양의 성인 비교가 아~ 이렇게나 다르다니 하며 흥미로웠어요. 백성을 걱정하고 사랑하는 마음은 같지만 이렇게 다른 방식이라뇨. 아뭏튼 성인이 아무리 문명을 밝힌다 한들 스스로 문명하려는 노력이 없으면 밝아지지 않겠구나 하는 것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