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과 글쓰기

4.4 주역과 글쓰기 공지

작성자
혜원
작성일
2021-03-29 18:31
조회
111
<계사전> 상(上) 마지막장은 "하늘이 돕는다(自天祐之)"라는 구절로 시작합니다. 이번 주 토론 시간에는 '돕는다'는 말에 대해 오래 얘기했지요. 보통 우리는 '돕는다'는 것을 물질적/정신적 원조로 생각합니다. 없는 사람에게 돈을 준다든가, 바쁜 사람을 방해하지 않는 등 결여된 부분을 보충해주는 것을 도움이라고 생각하지요. 이런 도움의 이미지는 도움을 주는 사람과 도움 받는 사람을 상정하고 받는 쪽을 수동적이게 합니다. 어려운 사람이 있고, 도움의 손길 여부에 따라 그의 처지가 결정된다는 식의 공익광고는 은연중에 우리 머릿속에 돕는 자와 도움 받는 자의 우열을 상정하게 하지요. 그런데 계사전에서 하늘이 돕는다는 건 곧 순리(順理)와 미더움(信)을 의미합니다. '하늘이 돕는다'고 하지만 이 구절은 우월한 하늘과 그의 결정만 기다리는 인간을 말하지 않습니다. 하늘의 도리에 따라 살고(順理) 그렇기 때문에 미더운(信) 사람을 말할 뿐이지요. 자강불식하는 하늘을 따라 사심 없이, 이치대로 사는 인간, 자신이 어떤 맥락에 존재하는지 이해한 중심이 잘 잡힌 사람. <계사전> 12장은 이런 사람의 행위가 우주의 변통과 무관하지 않음을 말합니다. 선(善)한 자에게는 선 자체가 보상이라고 말한 스피노자의 말처럼, <계사전>에서 말한 하늘의 도움은 곧 하늘의 이치를 체화한 것 자체인 것이죠.


그럼 이치를 따른다는 건 뭘까요? 이를 알려면 이치에 대한 공부, 그것을 체화하는 수련이 동반되어야 합니다. 고대 그리스의 에피쿠로스, 스토아학파의 목표는 결국 영혼의 평정이었습니다. 그들의 수련은 어떤 외부 자극 속에서도 수동적으로 반응하지 않을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이었지요. 여기서 채운샘은 수련이 곧 이치를 따르는(順) 것이라고 하셨죠. 그렇다면 수행의 내용은 어떤 것일까요? 에피쿠로스학파는 영혼의 평정 즉 아타락시아에 도달하기 위해 자연학을 공부했습니다. 자연학적 이해는 곧 내가 지금 어떤 맥락 속에 있는지를 놓치지 않는 힘을 기르는 것이지요. 안 그러면 인간은 금방 자아에 매몰되어 자기 망상 속에서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상처 입은 내 감정, 내가 본 손해, 나의 쾌락...따져보면 그 '나'에게 달린 일이라고 할 것은 별로 없는데, 그 따져보고 생각하고 체화하는 과정이 없으면 내려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나'라는 것입니다. 정이천은 이를 사심(私心)이라고 말했고요. 우리가 살면서 배우고 수련하는 이유는 결국 이 '나'와 결별하기 위함인 것 같습니다. 자아가 놓인 원경(遠景)을 계속 계속 뇌에 새겨 넣는 일이라고 할까요^^; 이를 위해 결국 눈 돌릴 곳은 우리를 둘러싼, 끊임없이 운동하는 자연이겠지요. 문득 64괘의 괘 하나하나가 하늘과 땅 사이에 놓인 인간을 상징한다는 게 떠오르네요. 마치 어떤 일이든 인간 혼자서 할 수 있는 건 없다는 걸 계속해서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다음주에는

- 도올의 <주역 계사전 강의록>  계사전 하(下) 2장까지 읽어옵니다(189쪽까지). 읽으시면서 드는 질문을 중심으로 체크해옵니다.

- <신들의 계보> 는 '정의 ' 부분을 중심으로 읽어옵니다. (78~82쪽, 110~115쪽)

- <주역>은 택천쾌(夬), 중택태(兌)를 읽고 체크해옵니다.

-  건(乾)괘가 위에 있는 여덟 괘를 모두 읽었습니다! 이번 한 주 동안 복습하시면서 발견하게 된 이 괘들 사이의 관계나 드는 생각을 a4 한 페이지 정도 메모해 옵니다. 메모는 주역과 글쓰기 숙제방에 올려주세요:)


후기는 규창

간식은 은정샘, 정우샘. 떡과 과일 중심으로 준비해 주세요~!


일요일에 만나요//
전체 1

  • 2021-03-29 18:46
    덕분에 주역과 글쓰기 시간이 더욱 알차게 만드는 자세한 공지, 혜원쌤! 고맙습니다. ^^~~ 근데 제 기억으로는 건(乾)괘가 위에 있는 여덟 괘의 복습에서 새롭게 문제 제기가 되는 내용을 a4 반페이지 정도로 정리해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 페이지로 늘리면 아니, 아니되옵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