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과 글쓰기

4.18 주역과 글쓰기 공지

작성자
혜원
작성일
2021-04-13 22:50
조회
119
길흉회린(吉凶悔吝)


계사하전 3장에 따르면 역은 상징입니다. 자연을 본받고 그것을 상징화 하는 작업이죠. 여기 인간적인 면이 덧붙는데 바로 길흉회린입니다. 저희 조에서는 이 길흉회린이 무엇인가를 두고 오랫동안 토론한 것 같습니다(다른 조에서도 그런 것 같구요^^;). 주역을 읽으면 대개 길흉회린을 점치면서 끝맺는데, 이것은 절대적인 것인가? 도대체 어떻게 결정되는 것인가? 이런 질문들이 오갔죠. 자연에는 길흉회린이랄 게 없습니다. 오직 인간만이 길과 흉을 판단하고 그것을 미리 알고 싶어하지요. 그 이유는 뭘까 생각하다가 결국 인간은 기억하는 동물이기 때문에 이런 판단을 하게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자연의 나무는 작년보다 좀 덜 꽃을 피우거나 열매를 맺었다고 해서 아쉬워하지 않지요. 그건 자기가 얼마나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나무인지 생각하지 않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오직 인간만이 그 기억에 매달리고 판단을 합니다. 결국 길흉회린이란 인간 마음의 움직임인 것입니다. 채운샘께서는 이걸 인간의 자아와 연관해서 설명해 주셨습니다. 우리의 자아가 비대해질 때는 자신의 실존과 머릿속에 그리는 내가 일치하지 않을 때입니다. 그때 결과에 대해 '더 좋을 수도 있었는데' 같은 말이 나오죠.


<주역>을 계속 들여다보게 되는 이유는 자연을 본받는 상징체계와 인간의 관점인 길흉회린이 어떻게 연관되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인간의 관점에서 어떤 상황은 길/흉으로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주역>은 어떤 상황이든 자연의 관점에서 보면 그것이 행/불행이 되진 않는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그리고 상황마다 견지할(그리하여 흉을 피해 무구할) 태도를 알려주지요. 이 심플하면서도 뭐 하나 빠뜨리지 않는 역의 세계는, 비대한 자아를 껴안고 후회하는 인간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적선(積善), 업(業)


이번에 읽은 <계사전> 중 적선(積善)이라는 말과 도올샘 설명에 꽂혀서 줄을 진하게 쳤는데, 역시 멋있는 부분은 누가 봐도 그런가 봅니다. 열띤 토론을 또 하게 되는 걸 보니^^;; 계사하전 5장은 시간에 관한 구절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가고 옴(往來), 굽히고 폄(屈伸)과 같은 시간을 연상시키는 개념들이 등장하지요. 요는 쌓여가는(積) 시간성입니다. 5장에는 "선이 쌓이지 않으면 이름을 이루기에는 부족하고 악 또한 쌓이지 않으면 몸을 망가뜨리는 데까지 이르지는 않는다(善不積不足以成名, 惡不積不足以滅身)." 이라는 구절이 나오며 적선(積善)이라는 말을 새삼스럽게 보게 합니다. 우리는 쌓는다고 하면 공간적인 이미지를 먼저 떠올립니다. 특정하고 한정된 공간에 계속해서 쌓여가는 것을 연상하죠. 이때 쌓이는 것은 일종의 마일리지 개념입니다. 채운샘은 기독교의 '죽음의 침상'을 얘기해 주셨습니다. 사람이 살아서 아무리 악행을 저지르며 살아도 죽을 때 교회에 왕창 기부하고 나면 천국행 티켓을 얻을 수 있다는, 그야말로 마일리지식 '적선' 개념입니다.

이런 마일리지식 선악의 시간성이 어떻게 보면 심플한 것 같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사고방식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게 왜 문제일까요? 이렇게 선-악을 생각하는 건 어떤 행위의 과보를 오로지 자신에게 환원할 때만 가능합니다. '착하게 산 나는 복을 받는다/나쁜 짓을 많이 하면 그것을 상쇄할 좋은 일을 하면 된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자기가 한 일을 자기 스스로 다 책임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죠. 동양의 시간성은, 일단 그런 시간성을 단순하고 좁은 시야라고 할 겁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하는 일 중 독립적으로 행하고 맺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채운샘은 불교의 '업' 개념으로 이를 설명해 주셨죠. '업'은, 말하자면 이번 생의 문제가 아닙니다. 내가 이 모양 이 꼴로 지내고 있는 까닭은 10대의 나, 혹은 나의 부모 때문이 아니라 아득한 차원까지 포함하고 있죠.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원인과 결과가 아니라, 지금 내가 심어 놓은 씨앗이 반드시 언젠가 발아한다는 것 뿐. 때문에 동양에서는 선행을 하는 게 아니라 악행을 고치는 것에 역점을 두었습니다. 매번 하는 행위가 언제 발아할지 모를 씨앗이라면, 중요한 건 마지막 선행 '한 방'이 아니라 악을 계속해서 심는 습관을 단속하는 것이기 떄문입니다.

개인적으로 요즘 생태 공부를 하다보니 많은 생각이 드는 '적선' 개념이었습니다^^;; 200년 전 산업문명이 그저 잘 살기 위해 했던 일이 지구의 기후위기를 초래했듯 우리가 지금 잘 먹고 잘 살자고 하는 일이 나중에 어떤 결과를 미칠지 알 수 없겠죠. 우리가 <주역> 공부를 하는 이유는 당장의 길흉을 점치는 게 아니라, 이 더 큰 관점을 갖기 위해서가 아닐까요?






-<계사전> 하전 7장(244쪽)까지 읽고 이야기할 거리를 체크해 옵니다.

-<주역> 택풍대과(澤風大過), 택수곤(澤水困) 읽고 이야기할 거리를 체크해 옵니다.

-<티마이오스는> 2부 (82~127) 읽습니다. 프린트로 나눠드린 복사본도 가져오세요~

+) 중계세미나가 17일 토요일 8시(!) 온라인으로 시작합니다. <중용>은 <계사전>을 읽고 동양적 사고방식을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텍스트입니다. 아직 신청 안 하신 분은 늦기 전에 어서 들어오시죠!


후기는 호진샘

간식은 혜원, 영주샘.


일요일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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