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시아

소생 프로젝트 7월 19일 역사팀 후기

작성자
건화
작성일
2018-07-25 21:23
조회
76
후기가 늦어서 죄송합니다.

다른 팀들이 이슬람 철학과 예술을 열심히(?) 공부하시는 동안, 저희는 기원전 5세기 근처를 떠돌고 있습니다. 무함마드가 계시를 받으려면 610년하고도 약 500년이 더 남았네요! 간혹 ‘우리가 뭘하고 있는거지’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헤로도토스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감탄하며 차근차근 읽어나가고 있습니다.

지난주에 저희가 읽은 《역사》 4, 5권은 페르시아 왕 다레이오스의 원정이 주된 내용을 이루고 있습니다. 다레이오스가 누구인가요? 다레이오스는 3권에서 캄뷔세스가 말을 타다 자기 칼에 찔려 죽은 뒤 페르시아의 왕으로 즉위했습니다. 캄뷔세스가 원정을 떠난 동안 그의 동생 스메르디스를 사칭하여 왕위를 찬탈하려 하던 마고스 형제를 죽이고 캄뷔세스의 빈 자리를 대신하게 됩니다. 페르시아 제국의 세 번째 정복군주라고 할 수 있겠죠. 그 유명한 크세르크세스의 아버지이기도 합니다.



이번 주, 다레이오스는 스퀴티스로 원정을 떠났습니다. 보시는 것처럼 스퀴티스는 흑해와 카스피해 위쪽에 자리하고 있던 유목국가입니다. 지금의 이란 북서부 지방에 있던 메디아를 포함한 상부 아시아를 잠깐 통치하기도 했습니다. 스퀴티스는 우리가 생각하는 형태의 국가라기보다는 지금의 우크라이나와 카자흐스탄 사이를 떠돌던 유목부족들의 연합이라고 보는 편이 적절할 것 같습니다. 뭐랄까, 스퀴타이족은 제가 가지고 있던 ‘유목민’의 표상에 들어맞았습니다. 호전적이고, 활쏘기와 말타기에 능하고, 잔인한!

역시 가장 눈길을 끌었던 것은 전쟁 관습이었습니다.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스퀴타이족은 맨 처음으로 죽인 적의 피를 마시고 전투에서 죽인 자들의 머리를 모두 왕에게 갖다 바칩니다. 머리를 가져오지 못한 자는 전리품 분배에 참여할 수 없죠. 이들은 자신이 죽인 적의 머리 가죽을 벗겨 말고삐에 매달고 다니며 과시하는데, 많은 사람들은 머리가죽들을 모피처럼 꿰매서 옷을 입고 다녔다고 합니다. 머리 가죽으로 끝나는 게 아닙니다. 이들이 철천지원수를 죽이게 되면, 두개골의 눈썹 아랫부분을 톱으로 자른 뒤 윗부분을 깨끗이 청소합니다. 그런 다음 가난한 자는 소가죽을, 부자는 금박을 입혀 술잔으로 사용합니다.



스퀴티스에는 순장 전통이 있었습니다. 왕이 죽으면 왕의 후궁 중 한 명, 술 따르는 자, 요리사, 마부, 집사, 사자(使者) 한 명씩을 죽여서 순장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것으로 끝나지 않고 1년 뒤 아직 살아 있는 왕의 시종 가운데 가장 훌륭한 50명과 왕의 준마 50필을 목 졸라 죽입니다. 스퀴타이족은 외국의 관습, 특히 헬라스(그리스)의 관습에 적대적이었습니다. 가만 보면 당시 헬라스는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정도의 문화의 중심지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헬라스인들이 온갖 신들의 이름들과 관습들을 다른 나라로부터 빌려오는 반면에 다른 민족들은 헬라스의 관습에 대체로 적대적인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다레이오스는 스퀴티스 원정에 실패했습니다. 오히려 나중에는 스퀴타인인들에게 쫓겨 달아날 걱정을 해야 했죠. 어떻게 북쪽의 떠돌이 유목민들이 70만 대군에 600척의 함선을 지니고 있던 다레이오스군을 물리칠 수 있었을까요? 이들이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지킬 게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들에게는 경작지도 도시도 없었기 때문에 자신들의 기동력을 살려 도주와 기습공격을 반복하며 페르시아군이 지치기를 기다릴 수 있었던 것이죠. 급기야 스퀴티스인들이 눈 앞의 페르시아군을 무시하고 갑자기 나타난 산토끼를 쫓기 시작하자 다레이오스는 스퀴티스 원정을 포기하고 물러나게 됩니다. 이에 헤로도토스는 스퀴타이족을 불패의 부족으로 칭합니다.

“나는 다른 점에서는 스퀴타이족이 훌륭하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한 가지 가장 중대한 인간사에 있어, 그들은 우리가 아는 모든 부족들을 능가한다. 그들이 해결한 중대사란 그들이 추격하는 자는 아무도 그들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들이 따라잡히고 싶지 않으면 아무도 그들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도시도 성벽도 없고, 집을 수레에 싣고 다니고, 말을 타고 활을 쏘기에 능하고, 농경이 아니라 목축으로 살아가는데 그런 그들이 어찌 다루기 어려운 불패의 부족이 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역사》 p.393)

지난시간에 이어 이번시간에도 관습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헤로도토스는 헬라스 관습에 적대적이었던 스퀴타이족 사람들이 헬라스 관습을 받아들인 같은 부족 사람을 살해한 사례를 이야기합니다. 이런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 이들에게 관습이란 절대적인 것이었습니다. 문화적 상대주의를 운운하는 지금의 감각으로는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죠. 그런데 관습이란 무엇일까요? 관습이라고 하면 저는 악습, 미신, 불합리 같은 말들이 먼저 떠오릅니다. 세계에 대한 부적합한(비과학적인) 인식에 기초한 온갖 번거로운 전통과 의례들. 그런데 관습이란 정말로 비과학이나 미신이라는 말로 폄하해도 괜찮은 무엇일까요?

헤로도토스를 읽으며 (물론 니체의 영향으로^^;) 한 민족의 관습이란 그 민족이 자신들이 놓인 조건(기후, 환경, 이웃민족과의 관계 등)을 해석하는 방식이 드러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자신들이 처한 조건을 지배하고 그것에 독특한 양식을 부여하려는 힘의 표현. 민족들은 자신들이 처한 환경에 공동으로 대처하기 위해 특정한 삶의 양식을 스스로에 부여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고, 이웃한 민족들과 스스로를 구분 짓기 위해 고유한 가치들을 창조해야 했을 것입니다. 즉 한 민족의 관습에는 자신들이 처한 곤경과 위기를 극복해온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자기 자신을 극복해온) 기억들이 새겨져 있는 것이죠.

헤로도토스가 관습을 이해하는 방식에도 니체와 비슷한 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는 온갖 민족들의 관습들을 소개하는데 그는 그것을 ‘문명 vs 야만’이라는 (혹은 그에 준하는) 이분법을 통해 구분하지 않습니다. 각각의 관습이 지닌 고유함을 (지나칠 정도로;) 상세하게 소개하고 그것이 어떤 점에서 현명하거나 또 어리석은지를 이야기하죠. 가령 이번 스퀴타이족의 경우에도 헤로도토스는 그들을 문명화가 덜 된 야만인으로 보지 않았죠. 지킬 것이 없는 유목민 특유의 탁월함을 보여줄 뿐입니다. 관습 소개해주는 남자 헤로도토스... 알게모르게 그의 매력에 빠져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이번에 읽은 4, 5권에는 스퀴티스 원정 외에도 리뷔에 원정과 이오니아 반란이라는 굵직한 사건들이 있었지만... 분량 상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6, 7권 후기에서는 본격적인 헬라스 원정과 크세르크세스의 등장을 기대해주세요~ 그럼 이만.

전체 1

  • 2018-07-27 10:14
    스퀴타이족의 관습, 전쟁 방법은 무시무시하네요. '그들이 추격하고자 하는 자는 아무도 그 추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아, 공부를 이렇게 해야하는 것을. .
    유목민들의 죽음관도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