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시아

소생 프로젝트 철학팀 세미나(8.2.) 후기

작성자
최경미
작성일
2018-08-07 14:52
조회
95

일시 : 2018. 8. 2.(목) 14:00 ~ 16:00 , 참가자: 강지영, 구혜원, 김혜림, 최윤희, 민호, 최경미.


안녕하세요? 소생 프로젝트에 깍두기 최경미입니다. 터키로 떠나기 전, 채운샘과 선민샘도 한 번 더 뵙고, 소생에 참여하고 계신 샘들과 만나 세미나를 함께 할 수 있어서 즐거웠습니다. 글·정에서 만난 정옥샘과 혜림샘도 다시 뵐 수 있었고요. 규문 연구실에 계신 손지, 황지, 혜원, 건화, 규창 반장님, 민호. 샘들과 공부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이 날 처음 만난 윤희샘, 지영샘도 반가웠습니다. 계속 함께 할 수는 없지만 터키에서 다시 보면 더 반가울 듯합니다.

모든 책과 짐을 터키로 보낸 저는, 그나마 두께가 얇은 자끄 엘륄의 『이슬람과 기독교』 한 권을 달랑 들고 아무런 계획도 준비도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규문에 갔습니다. 하루라도 샘들과 같이 공부를 해보아야겠다는 마음뿐이었지요.^^ 우연인지 필연인지 제가 세미나에 참여 한 날, 철학 팀에서 달랑 한 권 들고 간 이 책을 읽고 있을 줄이야! 저에게 끊임없이 공부하라는 알라에 계시인걸까요? ㅎㅎㅎ

각설하고, 이제부터 자끄 엘륄의 『이슬람과 기독교』를 읽고 나눈 세미나 내용을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혜원샘이 준비해 온 발제 <‘타자’ 이슬람의 미화와 대상화>를 먼저 읽고 토론을 시작했습니다. 자끄 엘륄은 1980년대 프랑스 지식인들이 이슬람에 대한 호의적인 관심을 갖게 된 배경에 대해 프랑스인과 외국인 노동자인 마그레브인을 연관 지어 이야기 합니다.

1991년 프랑스에 500만 명이라는 엄청난 수로 존재하는 마그레브인은 서방 이슬람이며, 프랑스령에 속해서 위임통치를 받았던 리비아, 튀니지, 알제리, 모로코 등 북 아프리카계 이주 노동자를 말하는데요. 프랑스의 위임통치 이후 유입된 마그레브인은 프랑스 경제에 없어서는 안 되는 노동자 계층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프랑스인들이 더는 할 수 없는, 절대 하기를 원치 않는 각 종 더럽고 힘든 노역에 종사하며 ‘풍요로운 프랑스 사회에서 가난한 자’로 사회를 떠받치는 존재였습니다. 처음에 프랑스인은 정치적 탄압과 가난으로부터 마그레브인을 구제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어느덧 상황이 역전되었지요. 없어서는 안 될 일상 노동의 서비스를 제공해 주는 자들이 무슬림인 것을 깨닫게 된 프랑스 지식인들에게 ‘착취당하는 단순 노동력인 마그레브인들을 향한 선의’가 발동한 것입니다. 프랑스인은 과거 ‘식민지 개척자이라는 서구의 떳떳하지 못한 양심에 대해’, ‘비타협적 종교로 결집할 수 있는 무슬림이라는 새로운 힘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를 느꼈겠지요. 프랑스인에게 이미 마그레브인들은 거부할 수 없을 만큼 일상과 접해있는, 일단 끌어안고 관계를 형성해야하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조건에 따른 선의가 무슬림과 관계를 맺겠다는 적합한 태도일까요?

프랑스 지식인들에게 무슬림에 대한 호의적인 관심은 기독교와 이슬람의 유사성 찾기로 표출됩니다. 책에서는 이것을 “세 가지 기둥”이라고 표현합니다.
  1. 우리는 모두 아브라함의 자손이고,  2. 두 종교는 유일신론이며,  3. 책의 종교들이다.


자크 엘륄은 이 세 가지 유사성을 주장하는 논지에 대해서 기독교와 이슬람은 다르다고, “다른 것을 유사하다고 말하지 말라”고 합니다. 자끄 엘륄에 따르면 둘은 유사하기보다 다르다는 것인데요. 정반대의 두 관점입니다.그렇다면 왜 프랑스지식인들은 이슬람과의 유사성을 주장한하는 것일까요? 생각해보면 낯선 것, 타자와 관계 맺으려고 할 때, 우리는 빨리 친해지기 위해 또는 공통의 대화꺼리를 찾기 위해  유사점부터 찾는 경향이 있습니다. 유사한 점을 찾고 나서야 낯선 것에 대한 안도감이 생기는 것이죠. 사실 공통분모를 찾는 일은 자기 동일화의 연장선에 있는 행위입니다. 타자와 관계 맺기에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이질감이나 차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려는 것이 아니라 나의 관점으로 편입시키려는 의도가 담겨있는 것이지요. 어떻게든 공통된 속성을 발견함으로써 낯설음을 피하고 기존의 내 입장을 상대방에게 주지시키겠다는 태도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세 가지 기둥 중 하나의 논지인 “우리는 모두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라는 유사점에 대해서 자끄 엘륄은 반박합니다. 아브라함은 신에게 축복받은 자입니다. 아브라함의 적자인 이삭의 혈통(그리스도인)과, 장자인 이스마엘의 혈통(무슬림)만이 신의 축복을 받았다는 것인가? 자끄 엘륄은 이것은 혈통 모델과 관계가 없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모두 아브라함의 자손이다.”라고 하는 것은 “우리는 모두 아담의 자손이다.”라고 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일반화일 뿐입니다. 자끄 엘릘은 성경에서 예수가 삭개오의 선행을 보고 진정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선포한 일화를 들어 혈통의 문제가 아니라 행동의 문제라고 설명합니다.성경의 ‘진의(眞意)’를 파악해보자면 혈통보다도 ‘아브라함의 행위’에 포인트가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같은 행동을 실천한 자가 누구인가?’의 문제가 핵심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더 알았습니다. 우리가 우월적 지위나 기존의 입장을 포기하지 않고 타자를 포섭하려고 할 때, 우리의 태도는 정확한 사실에 입각하지 않는 다는 것이지요. 프랑스의 지식인들도 성경이 함의하고 있는 ‘진의’를 파악하고 그 기준에 따르려는 것이 아니라 표면적인 의미인 혈통관계로 기독교와 이슬람을 얼렁뚱땅 유사한 종교로 해석해버리는 것입니다. 자끄 엘륄은 이 부분을 지적하는 것이지요.

한 예로, 우리나라 제주도에서 예멘 난민을 수용하느냐 거부하느냐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여기에도 낯선 자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있지요. 무조건적인 난민에 대한 미화로, 그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과 무조건적인 공포로 그들을 절대로 국내로 들여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이들, 두 가지 입장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두 가지 입장을 표명하기 이전에 우리는 예멘 난민에 대해 얼마나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일까요?

이 날 토론을 하면서 우리는 각 자에게 난민에 대한 엉뚱한 이미지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요. 저는 제주도에 난민은 보트 피플이라고. 바다를 건너 왔을 것이라는 상상했기에 생명이 위태로운 이들을 받아 줄 수밖에 없지 않느냐 라고 주장했는데요. 저의 예상과는 달리 예멘 난민은 비행기를 타고 입국했다고 혜원샘이 얘기해 주었습니다. 배를 타고 큰 바다를 건너와 위태로운 상황에 처한 것이 아니라 안전하게 공항으로 입국했다니! 이 사실을 알고 나니, 목숨에 위협을 받는 상황도 아닌데, 서구처럼 식민지 개척자도 아닌 우리나라가 굳이 예멘 난민을 받아 줄 필요가 있을까라는 반감이 들어서, 난민에 대한 연민을 상실했습니다. 이를 봐도, 우리는 낯선 타자를 정확한 팩트나 앎을 기준으로 태도를 취하는 것이 아니라 무지한 상태에서 각 자의 이미지에 바탕을 두고 호의적이거나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유럽의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이 선점한 우월적 입장에서 타자를 끌어들이기 위한 방편으로 호의적으로 이슬람을 대할 뿐이지요. 무슬림이 사회적으로 가난한 계층에 있을 지라도 “종교적 잔류성”(64)이 있기에, 언제라도 이슬람으로 결집할 수 있는 잠재적 힘을 갖고 있는 타자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착취당하는 단순 노동력으로 마그레브인’으로만 보는 시선이 앞서기 때문에 이슬람과 유사성을 찾아 차이점을 소거하고 관계하려는 의도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이번 세미나를 통해서,

이슬람과 기독교의 관계를 통해서 우리가 어떻게 타자를 대상화하지를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쉽게 호의를 베풀거나 적대시하는 태도가 얼마나 무지에 입각한 것인가? 에 대해 질문해 본다면 흔히 이분법적인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한 쪽으로 기우는 시선을 조율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전체 4

  • 2018-08-07 16:24
    철학팀에서 원래 이런 토론이 있었던 건가요, 아니면 책이 바뀌어서 그런 건가요, 아니면 경미쌤이 오셔서 그런 건가요? 이슬람이 본격적으로 지금의 문제와 만나서 고민이 스멀스멀 일어나는 냄새가 나는 군요...! 시간이 더 있다면 역사팀에 오셔서 저희 토론에도 참여해주셨으면 좋았겠어요. 저희도 재밌는 얘기 많이 해요. ㅋㅋ 다음 시간에도 같이 할 수 있기를 빕니다!

    • 2018-08-08 20:03
      반장님 그럼 내일은. 역사팀에 꼽사리를 끼어 볼까요? 역사팀에 대한 흥미가 스멀스멀 올라옵니다!

  • 2018-08-08 08:49
    정말 곰꼼하게 정리해 주셨군요 그날틔 토론 시간이 새록새록 기억이 납니다^^ 자끄 엘륄의 글은 카렌과 이즈쓰 도시히코의 글을 읽고 이슬람에 대해 갖게 된 호의(?)를 그저 막연할 뿐인 호의는 그저 뿐이라는 사실을 상기시켜준 책이었습니다. 아주 자기중심적인 생각이라는 것도요ㅋㅋ

    • 2018-08-08 20:13
      각 자의 무지에 의거한 근거없는 호의죠!
      카렌 암스트롱의 <이슬람>을 읽고 이슬람과
      기독교의 차이가 먼가? 물었을 때, 딱히 명료하게 대답하기 어려웠는데 이 또한 어슬프게 알고 있어서였네요. 문제의식을 벼리지 못하는 원인은 결국 무지에 기인한 것일뿐.
      아는건 ‘내가 모르는구나! ‘ 이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