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탁마 NY

절차탁마NY 7주차 후기

작성자
소소 (최난희)
작성일
2021-04-06 21:46
조회
144
토요일 세미나 후기를 쓰기 위해 문을 열려고 하니 무슨 말부터 시작해야 하나, 갑자기 막막해지네요. 뜬검없는 발언일지 모르겠으나, 며칠 전 제게 닥친 일을 들려드리면서 시작해야겠다 싶습니다. 현주쌤이 이번 에세이 주제로 ‘일상 속에서 철학을 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를 쓰신다고 하죠. 철학이 밥 먹여주는 것도 아닌데(밥이 될 지도 모르죠) 우리는 왜 철학공부를 하는가, 다들 한 번쯤은 짚고 넘어갈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정확한 워딩은 아니지만 대강, 채운쌤께서 언젠가 철학공부가 일상적인 삶에 해답을 줄 거라는 기대를 접어라는 식의 말씀을 한 적이 있습니다. 철학공부가 인간관계나 일을 잘하기 위한, 그러니까 처세를 위한 팁을 얻기 위한 차원은 아니라는 것이죠. 그러나 즉문즉답이나 상담처럼 어떤 문제에 어떤 답을 구하기 위한 차원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학공부는 분명 삶을 위한 것은 확실합니다. 문제를 구성하는 내가 바뀌기 때문이죠.

지난 금요일 푸코의 성의 역사 세미나에 저는 불참했습니다. 이유는 전날 밤 벚꽃구경을 가자며 딸과 길을 나섰다가 꽃구경은커녕 말 한마디에 맘이 상해서 서로 대판 싸우고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이상하게 언젠가부터 저는 화를 내고 나면 몸이 꼭 아픕니다. 딸 중에도 둘째 딸은 저의 아킬레스근을 건드리는 재주가 있는데 이번에도 저는 거기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죠. 화병이 나서 밤새 뒤척이고 나니 아침에는 기운도 없고 매주 아무렇지도 않게 가던 서울이 무지 먼 외국처럼 느껴지는 겁니다. 일정한 시간 일정한 장소에서 공부를 한다는 것은 구속이기도 하지만 한편 그 구속이 해방을 선사하기도 합니다. 저에겐 지난 토요 세미나가 바로 그런 경험이었습니다.

도반들이 뽑아온 니체의 유고 문장들과 모비딕을 이해하기 위해 서로 의견을 주고받는 사이 저는 어느새 딸과 싸워서 헝클어진 저와 ‘거리’를 만들고 있었던가 봅니다. 쌤의 강의에 흠뻑 몰입하면서 규문각 창밖 두 그루 은행나무가 싹을 틔우며 봄비에 젖고 있는 모습을 언뜻언뜻 보았습니다. 니체의 언어와 모비딕과 도반들의 기운과 쌤의 강의에서 받은 감동과 봄비와 은행나무가 모두 ‘힘’이었습니다. 그 힘들과의 관계 속에서 저는 딸과 ‘그런 관계’를 맺었던 시간을 새롭게 해석할 ‘거리’를 다시 만들어내고 있었던 겁니다.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생각이 들었고 인연 끊고 싶었던 딸에게 손을 내밀 여유가 생겨서 지하철에서 그런 마음자리를 글로 써서 보냈습니다.

“대상이란 그 자체로 외관이 아니라 어떤 힘의 출현”이고 “모든 힘은 어떤 다른 힘과 본질적인 관계 속에 있는 것”(니체와 철학25P)이라는 들뢰즈의 문장은 저 대상과 나를 실체화하는 사고방식으론 도무지 출구가 없는 일상에 해방을 선사합니다. ‘이것은 이것’이라는 규정성은 안정감을 주고 세계를 확실히 구획하고 선명하게 해석하게 합니다만, “가장 덜 지속하는 세계가 가장 지속적”(유고20 330P)인 생성의 세계에서는 그렇게 푹 눌러앉는 자세를 털어버리지 않고는 “꼰대”소리를 듣기 십상이지요. 딸이 저를 불지른 말이 바로 “꼰대” 였거든요. 정말 모비딕의 바다는 금긋기 어려운 스무드한 세계입니다. 니체가 말하는 모험이란 하릴없이 세상을 싸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애써 쌓아놓은 규정성의 세계인 육지의 일상에 갇히지 않고 어떻게 다시 바다로 떠나는가, 찰라찰나 명멸하는 생성의 세계와 함께 가느냐하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또 여담이지만, 나를 자극하는 딸과 인연을 끊지 않고 함께 살아갈 것인가의 문제와도 통한다고 생각합니다.

도반들과 나눈 이야기 중 “불쾌와 쾌는 판단을 표현하는 생각될 수 있는 가장 어리석은 수단들이다..쾌와 불쾌는 최종 현상이지 ‘원인’은 아니다...무엇이 불쾌와 쾌를 야기하는지에 대한 결정은 힘의 정도에 의존한다.” (유고20 327P)는 문장은 쾌와 불쾌에 대한 상식을 돌아보게 했는데요. 일반적으로 모든 유기체의 운동은 쾌를 향하고 불쾌는 지양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입니다. 니체의 힘의지의 관점에서는 그런 판단이 가장 어리석다고 하죠. 주영샘은 우리가 보통 불쾌한 상황을 꺼리는 이유가 힘을 많이 써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라 하셨습니다. 생각해보면 정말 그렇습니다. 쾌와 불쾌는 그 자체로 나뉘어지는 것이 아니라 강자와 약자의 입장에서 다르게 구성됩니다. 약자에게 쾌한 상태는 힘을 덜 쓰는 상황입니다. 반면 강자는 힘을 많이 쓰는 상태가 쾌인데, 이것은 ‘외적 정황’을 얼마나 자신에게 유리한 것으로 구부릴 수 있는가,라는 조형력의 차이라고 이해했습니다. “내부로부터 형태를 만들어내는 엄청난 형성력으로 ‘외적 정황’을 이용하고 착취”(유고19 370P)하는 것이 적극적인 힘이라고 하셨던 우리쌤의 강의 내용과도 상통하는 내용입니다. 현주샘이 모비딕에서 발췌해오신 ‘자유롭고 편안한 악당철학’(모비딕292P)과 맥이 닿는 부분이라 봐도 좋겠지요.

이 부분과 관련해 생각나는 또 한 가지 중요한 지적. 루이샘은 요즘 우리는 ‘쾌’를 간단히 조작할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말씀이셨습니다. “우리의 욕망이 이미 사회적”이라는 들뢰즈와 가타리의 안티오이디푸스의 테제를 가져와 이해해봤을 때, 우리는 어떤 상태를 쾌라고 느끼는가를 문제 삼는 것이 니체 공부의 핵심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나의 쾌와 불쾌를 능동적으로 구성할 역량이 있는가. 이 문제를 이번 학기 니체의 힘의지 개념, 제가 공부하는 푸코의 장치 개념과 연결시켜 숙고해보는 것이 목표로 방금 떠오르긴 했는데... 허걱! 적극적인 힘의지는 난관을 고려하지 않습니다. 미리 계산해 중단, 타협, 오버하지 않는다고 하신 쌤의 말씀에 벌써 반하는 순간입니다.

쌤은 적극적임 힘과 반응적인 힘을 설명하시는 자리에서 들뢰즈가 표현한 “그것이 할 수 있는 것의 끝까지 가는 힘”이 적극적인 힘인데, ‘최선을 다한다’ 정도의 오해를 할 수 있는 여지가 있으나, 그 의미는 아마도 ‘무위無爲’가 아닌가 한다고 해석하셨습니다. 우리의 일과는 念, 念..의 행렬입니다. ‘함이 없는 함’이라는 이 무위의 경지를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요. ‘내가 한다, 내가 이 일을 한다. 그 의미를, 그 보상을 달라’는 이 얄팍한 구도를 벗어나지 않는 한 우리는 전혀 새로운 대상을 출현시키지 못할 겁니다. 그러니 적극적인 힘을 쓴다는 것도 주체만의 소관으로 삼을 때 우리는 어느새 신자유주의의 일인 기업을 재생산하는 주체를 능동적으로 수행하고 있을 겁니다. “있는 힘껏, 최선을 다해, 열심히” 말이지요. 이때 가장 적극적으로 보이는 힘의지조차도 사실 가장 반응적인 힘의지일 것입니다. 그러니 흔히 저항에 대해 떠올리는 흔한 이미지인 ‘폭력적 저항’이 사실은 가장 반응적인 양식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지네요. 멜빌의 다른 책 ‘필경사 바틀비’의 힘의지는 어떤 힘의지일지, 샘들과 나눈 이야기의 한 자락이었습니다.

이쯤 후기를 마무리할까 합니다. 도반들의 해석에 크게 눈 뜨인 순간들을 글로 다 담아내지 못하는 것이 아쉽습니다. 우리 조 반장인 나영쌤은 격무로 인해 출타 중이셨고, 그 빈 자리가 컸긴 했지만, 일일 반장을 맡아 수고하신 인영쌤의 리더쉽이 빛을 발한 것은 사실입니다.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전체 3

  • 2021-04-07 10:18
    샘~ 한편의 문학작품같아요~ㅎㅎ
    도반들의 해석에 크게 눈이 뜨이고, 연신 끄덕이시고, 또 봄비와 은행나무의 싹을 보는 동안 샘 안에서 일어난 변화가 전달되는 느낌이에요.
    배움이 이렇게 일상에 밀착되고, 어렵지만 기쁘게 배우시는 분들과 공부한다는 게 새삼 놀랍네요.
    정말로 일상을 새롭게 해석할 수 있는 '거리'를 갖게 되는 경험은 소중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후기 잘 읽었습니다~~

  • 2021-04-08 16:06
    쌤의 일상과 저희 조 토론 내용, 채운샘의 강의가 잘 어우러진 후기 잘 읽었습니다.
    가장 수동적으로 보이는 힘이 가장 적극적일 수 있고 가장 적극적으로 보이는 힘이 가장 반응적일 수 있기에, 적극적인 힘의지에 대해서는 더 디테일하게 봐야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강의에서 '끝까지 가는 힘'과 무위에 대한 연결이 굉장히 인상깊었는데, 끝까지 간다는 것이 어떤 목적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면 함이 없는 함인 무위로서 끝까지 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 저희가 하는 공부가 어떤 목적이나 결과를 위한 것이라면, 결국 끝까지 갈 수 없겠죠. (목적을 달성하면 중단 가능)
    그 동안 목적지향적으로 살았던 습이 금방 바뀌지는 않겠지만, 공부를 통해서 무위로서 끝까지 가는 힘이 무엇인지 실험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듭니다.

  • 2021-04-11 19:52
    샘들의 리더십이 빛을 발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생길 것 같습니다.ㅎㅎㅎ 난희샘 이 후기에서 이어진 풍성한 질문 덕분에 이번주도 재미있는 시간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