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기너스

비기너스 시즌2_여덟번째 시간 후기

작성자
소현
작성일
2019-10-13 21:31
조회
88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 이번 세미나는 에너지의 임계점과 공정성을 이해하는데 시간을 많이 할애했습니다. 에너지를 사용함에 있어서 ‘이 지점이 임계점이다!’라고 말하려면 기준이 있어야 하지 않나? 기준은 뭔가? 공정성을 ‘기회균등’과 동일시해도 되는 것인가? 그리고 기술에 대한 일리치의 생각은 무엇인가? 이런 질문을 중심으로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에너지 사용량 증가, 기술 발전은 앞으로 더 가속화될 텐데 우리는 어느 지점을 문제 삼아야 할까? 사회적 해체가 일어나는 지점, 즉 인간이 대지와 맺어 온 관계와 삶을 일구어 온 방식에 있어서 인간의 능동성이 파괴되는 지점을 문제 삼아야 합니다. 모두가 사물과 관계 맺는 것이 자유롭던 시기에서 이젠 누군가가 소외되는 지점, 바로 이 변곡점이 임계점이며 공정성 파괴도 시작되는 지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기술의 문제로 넘어갔는데요, 속도와 관련하여 자동차가 요주의 인물로 떠올랐습니다. 기술 자체만 얘기하면서 존폐를 논하는 상황까지 갔었죠.ㅎㅎ 그래서 다시, 기술만이 아닌 인간과 기술과의 관계를 보아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기술이 인간을 지배하는, 즉 정신적으로 노예가 되는 지점을 생각해야 한다구요.^^

속도 증가로 인해 사회구성물이 재배치되었고 공간이 확장되었습니다. 이런 시점에서 사회적 해체가 일어나기 전의 속도로 돌아가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가능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얘기해보았습니다. 속도를 줄이면 활동 공간은 줄어들 것이고, 그 공간에서 새롭게 관계 맺기를 하면되지 않을까. 그러나 서비스에 의존하던 편리한 삶의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축소된 공간으로 다시 가져오려 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일리치가 말하는 속도는 이동수단의 발전이 우리의 활동 반경을 넓혀주고 삶의 질을 높여주고 자율성을 넓혀준다는 생각이 얼마나 순진한 발상인지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활동반경이 넓어졌지만 우린 이미 정해져있는 길만을 사용하고 있고, 수송수단에 실려서 두 발의 사용법은 잊었고, 혀가 얼마나 큰 정치적 힘을 갖고 있는지도 망각했습니다. 공간과 관계 맺을 수 있는 능력은 상실되었고, 지도상의 활동 범위만 넓어졌습니다. 자본주의의 길을 따라 더욱 더 예속된 노예로서 충실히 살아갈 뿐입니다. 일리치가 말하는 속도를 통해 활동의 범위는 넓어졌으나 그 공간에서 무엇 하나 새로운 것을 만들지 못하고 그저 자멸적인 길을 가고 있는 우리를 발견한 시간이었네요.

-다음 시간 간식은 경혜샘과 진아샘이구요,  책은 《병원이 병을 만든다》로 다시 시작해요.  다음주에 봬요~
전체 2

  • 2019-10-14 10:54
    언급해주신 '정치적 힘'에 관한 구절 저도 정말 인상깊게 읽었습니다. 우리는 "인간의 두 발과 혀가 얼마나 큰 정치적 힘을 갖고 있는지 믿지 못하"(46쪽) 게 되었다! 속도가 정치에 대한 우리의 감각에 까지 영향을 미치리라고는 상상해보지도 못했습니다. 푸코와 일리치의 책들을 연달아 읽고 있노라니 정말로 모든 것은 정치적이라는 사실을 깊이 느끼게 되네요~

  • 2019-10-14 19:59
    후기를 읽을 뿐입니다만, 기술 앞에서 순진하다는 말씀에 놀란 가슴 쓸어 내립니다.
    정말 순진한 것이지요. '편리'를 도대체 뭐라고 생각하는지.
    기술에 도대체 무엇을 넘겨주고 있는지 되묻게 됩니다. 새책으로 들어가시는군요. 기대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