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기너스

비기너스 시즌2_열한 번째와 열두 번째 시간 후기

작성자
박경혜
작성일
2019-11-12 01:48
조회
95
호기롭게 쓴다고 했던 후기를 쓰지 못하고,  어떻게든『호모 사케르』 세미나를 정리를 해 보는 글

조르조 아감벤은 서문에서 이 책은 한나 아렌트와 푸코의 연구에서 빠졌거나 못했던 부분을 연구한 것이라 밝힌다. 한나 아렌트는 생명 정치적 관점이 빠진 전체주의 권력 연구를 했으며 푸코는 생명정치의 대표 영역인 20세기 강제수용소와 거대 전체주의 국가들의 구조에 연구의 중심을 두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감벤은 고대정치로부터 ‘정치적 신체를 생산하는 것이 바로 주권 권력 본래의 활동이라 말할 수 있다’고 하며 서양의 정치가 벌거벗은 생명의 배제(이며 동시에 포함인)에 기반하고 있는지를 묻는 것이 필요하고, 정치와 생명이 어떤 관계인지를 묻는다.

아감벤은 이 책 주인공이 호모 사케르, 벌거벗은 생명이라고 말한다. 호모 사케르는 살해는 가능하되 희생물로는 바칠 수 없는 생명(이 설명은 몇 번에 걸쳐 반복된다)이다. 예외상태에 놓임으로 포섭되고 희생물이 될 수 없음으로 이미 바쳐진 생명인 호모 사케르가 놓인 공간은 주권이 만들어지는 공간과 유사하다. 주권의 역설로 표현되는 “주권자는 법질서의 외부와 내부에 동시에 존재한다.”에서 ‘동시에’라는 표현이 주권자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주권자는 법질서 외부에 있으면서 법의 외부란 없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예외 관계라 부르는 이 구조는 스스로 효력을 정지시킴으로서 예외를 창출하는 것으로 ‘예외와의 관계를 유지함으로써만 비로소 자신을 규칙으로 만들 수 있는 것(61쪽)’으로 무언가를 배제시킴으로써만 그것을 포함시키는 극단적인 형태의 관계이다.

여기까지 그리고 여기서부터 알기도 힘들고 설명하기도 힘든 개념들을 함께 헤맸다. 조에(살아있음이라는 단순 사실을 가리키는 생명)와 비오스(어떤 개인이나 집단에서의 특유한 삶의 형태나 방식)에서 ‘벌거벗은 생명’과 조에의 차이는 무엇일까? 제헌적 권력과 제정된 권력, 그리고 주권권력에서 내재된 잠재성은 어떤 것일까? ‘주권적 추방령의 구조란 효력을 가지지만 의미는 없는 법의 구조(123쪽)’란 무슨 의미인가? 현재의 정치에서 ‘호모 사케르’는 누구일까? ‘순수한 폭력’은 무슨 뜻인가? 남은 분량을 나누어 요약 정리해 오기로 한 채 『호모 사케르』 세미나 첫 시간은 혼란과 물음표 속에서 마무리되었다.

『호모 사케르』 두 번째 시간 세미나는 어렵다는 말도 필요가 없는 시간이었다. 남은 분량을 1~2 챕터씩 나누어 요약 정리해 온 것을 읽었고 발표자가 간단하게 맡은 부분 내용에 대해 설명하거나 질문이 생겼던 부분을 이야기했다. ‘신성함’이라는 부분은 이미 가지고 있던 편견을 깨는 것도 아감벤이 말하는 개념으로 이해하기도 힘든 것이었다. 종교 범주에 있었던 양가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으며 ‘신성하고 저주받은’이라는 대립적 의미로 정식화 된 용어로  호모 사케르가 가진 이중적 예외의 신성화 구조와 비교해야 한다는 것이다. ‘포함인 배제 속에서 작동하는 벌거벗은 생명(179~180쪽)’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아감벤은 주권자를 대신해 불태워 지는 밀랍인형, 전투 전에 사자의 신들에게 바쳐졌지만 죽지 않고 살아 돌아온 전사들인 ‘데보투스’를 통해 주권자의 신체와 신성한 신체의 법적·정치적 지위의 유사성과 일치점들을 찾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근대 정치에서 호모 사케르에게 생명을 부여하는 생명정치의 강은 지하에서 계속 흐르고 있었다. 아감벤은 심층코마, 난민, 수용소, 인간 모르모트와 같은 근거를 가지고 이를 설명한다.

하지만 결국 두 번에 걸친 세미나를 통해 우리는, 공통적으로 우리가 모르는 것에 합의를 하고 그 질문을 강의 시간에 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예를 들자면 ‘아감벤은 푸코의 연구로부터 그가 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연구를 하겠다고 했는데 아감벤이 말하는 주권 권력이 푸코의 생명 정치에서 무엇을 더한 것일까?’. ‘심층코마, 난민, 수용소와 같은 문제들이 어떻게 비식별역에 위치하는지 알게 되면 앞서의 문제를 알 수 있지 않을까?’. ‘근대의 호모 사케르로 명명된 이들에게 적용되는 이중배제는 무엇일까?’. ‘근대 생명정치에서 호모 사케르가 누구인가의 문제보다, 호모 사케르가 작동하면서 얻어지는 정치적 효과를 보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물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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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11-14 16:47
    채운샘 강의를 듣고 나니 그나마 아감벤의 큰 그림(?)이 좀 보이는 것 같습니다. 도식화하자면, 푸코가 권력의 긍정적인 차원(권력은 무엇을 생산하는가?)을 고민했다면 아감벤은 그 부정적 차원, 즉 그 폭력성을 강조했던 것 같아요. 그러고 보면 헤매면서도 우리가 영 잘못 읽고 있었던 건 아닌 것 같기도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