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기너스

비기너스 시즌2 2차 에세이 발표 (11.26)후기

작성자
민호
작성일
2019-11-27 13:54
조회
211
드디어 ‘비기너스 시즌2 : 푸코 일리치 읽기’가 마무리되었습니다. 이번 주는 2차 에세이 발표 시간이었고 진아샘, 장청샘, 후남샘, 선희샘, 영아샘, 미현샘, 보은샘, 소현샘, 현숙샘의 에세이를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주된 쟁점은 학교화와 의료화 그리고 대항품행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우선, 에세이 시작 전에 마련된 엄청난 간식에 대한 보도(?)를 먼저 하겠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화요일 저녁이 되면 연구실의 주방은 비기너스 샘들께 점령(?)당하기 시작했는데요. 지난주 발표 때에는 미현샘이 오뎅탕을 조리해주시더니 이번주에는 경혜샘께서 준비해오신 재료들로 샌드위치를 제조하셨습니다. 먹어본 사람이라면 팔아도 될 정도라고 극찬을 하게 되는 맛이었습니다~



'비움'에서의 공부를 계기로 기존의 자격증을 따고 커리어를 쌓기 위해 하던 공부를 의심하고 계시는 진아샘과 자동차의 속도에 의존하게 되는 자신을 발견하신 영아샘의 모습입니다.



'환경'이라는 개념으로부터 무언가를 관리하려는 의도와 꿍꿍이(?)를 눈치채신 보은샘 . 환경보호 담론을 재생산하지 않으면서 환경을 더 폭넓게 이해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환경이란 말의 개념의 효과를 더 확장시켜서 생각하는 것이 정치적인 문제가 될 것이라는 코멘트가 있었습니다.



'다르게'를 추구해오신 미현샘. 그러나 그것은 과연 남들과 다르게 되는 것으로 충분한 문제일까요? '다르게'가 대항품행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족의 아픔과 그 상황 속에서 어떻게 가족과 자신을 지킬 것인가를 고민하고 계시는 선희샘. 그러나 중간에 재밌는 이야기가 나왔는지 웃으시는 선생님들과 머리를 쥐어 싼 한역이형님의 모습이 보이네요. 역시 함께 공부를 하는 사람들과 자신의 문제를 나누는 것이 혼자 끙끙거리는 것보다는 자신을 지키는 일이 되는 것이겠지요?



의료화의 문제를 고민하시는 후남샘과, 비움에서의 공부화 학교화를 고민하시는 장청샘, 자녀분들의 교육을 고민하시는 현숙샘의 모습입니다. 뭔가 또 재밌는 이야기가 나온 것 같죠?

의료화와 관련된 문제에 있어서 저희는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후남샘의 문제의식에는 주치의와의 갈등에서 경험하셨던 모멸감과 아쉬움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이 나타나 있습니다. 왜 우리는 의사에게 우리의 몸을 내맡기고 좌지우지당하는 것에 분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더 좋은 의사를 바라게 되는 걸까요? 모멸감과 아쉬움, 이 두 감정은 가만 보면 고객의 감정인 것 같습니다. 소비자로서 어떤 서비스를 소비할 때 실망과 동시에 더 좋은 것을 기대하게 되듯이 의료에 대해서도 동일한 느낌을 갖는 것입니다. 소비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잘 알아야 합니다. 무엇이 나에게 정말 필요하고 그것을 내 힘으로는 만들어 볼 수 없는지를 자문하고 그 방법들을 실험해야 합니다. 그것은 무조건 의존을 반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든 누군가에게 의존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어느 정도까지 의존하고 있는지를 되돌아보고 그 의존의 정도를 어떻게 조절할 것인지에 대한 자신의 임계점을 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의존과 의료화에 대한 비판이 결코 병원에 등 돌린다는 식의 가벼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은 가족이 아픈 경우에 확실히 느낄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은 내가 환자일 경우와는 매우 다른 문제입니다. 내가 아플 때에는 우선 자기의 몸을 잘 생각해보아 병원치료(수술)에 얼마나 의존할지 결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족이 환자일 경우에는 병원의 서비스를 이용하지 말라고 강요할 수 없는 노릇입니다. 어떤 방식으로 몸을 치유할지 환자와 충분히 상의해야 하는 문제이며 이때는 무엇보다 환자의 마음이 편안할 수 있는 방향을 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환자가 아닌 자신에게 오는 다른 방식의 고통인 걱정(그것이 환자에 대한 것이든 환자와 가적 전체에 대한 것이든)과 당면한 문제들을 침착하게 대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는 선희샘의 문제의식이었는데 저도 많이 공감이 되었습니다. 당연히 경제적인 생각을 해야 합니다. 채운샘은, 힘든 문제가 닥쳤을 때가 공부의 기회이며 그럴 때 정신을 바짝 차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가족과 함께 아프지 않다는 것이 미안할 일은 아닙니다. 그리고 같은 아픔을 느낀다는 것이 아픔을 상쇄시켜주는 것도 아닙니다. 선희샘 말대로, 나는 나를 지켜야 합니다. 이것은 정답이 정해져 있지 않은 문제입니다. 왜 의료화의 문제가 단순히 병원권력 비판으로 축소될 수 없는지, 왜 그것이 삶에서 ‘괴로움’을 대면하는 문제와 이어지게 되는지 이번 에세이 발표를 통해 조금 알게 알 것 같습니다.

학교화의 문제는 자주 ‘더 나은 학교 제도’라는 대안을 낳는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억압적인 주입식 교육이 아니라 자율성과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기. 돌아보면 제가 경험했던 대안교육을 포함해, 다양한 장기를 살려 수시 전형을 준비하는 교육, 취업을 공략하는 마이스터고등학교 등의 시도들은 일률적인 규율교육 극복한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과연 이 같은 달라진 교육법들이 일리치가 말하는 학교화의 문제에 대한 대항품행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학교화는 학생들에게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에 대한 문제입니다. 그것은 자기 배움을 교육자와 대학이라는 전문가 체제에 맡겨버리는 것 뿐 아니라 자신의 몸을 의사에게, 이동을 자동차에게, 놀이와 즐거움을 상품의 소비에 내맡기게 되는 문제입니다. 이때 우리는 일방적인 억압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그러한 의존을 욕망하고, 끊임없는 필요를 만들어 내는 주체가 되어버립니다. 그런 점에서 학교화는 무엇이 가치 있는 것인가에 대한 결정을 제도에 맡겨버리게 되는 현상, 가치의 제도화라는 현상과 같은 문제입니다. 돌아보면 자율성이나 창의성을 위해 개선된 학교제도들은 경로들을 다르게 마련하긴 했지만 여전히 사회적인 가치들(더 잘 벌고 더 많이 누릴 수 있는 삶)을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학교화를 벗어났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오히려 ‘자율성’이라는 이름하에 더 효율적인 방식으로 사회적 요구들에 봉사합니다. 이러한 예는 근무환경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강압적 규제 속에서 이뤄졌던 노동이 (마치 구글이나 카카오처럼) 보다 유연한 조건 속에서 이뤄진다고 해서 더 자유로워졌다고 할 수 있을까요? 보다 유연한 조건 속에서 직원들은 인센티브를 받기 위해 보다 자율적인 방식으로 창의적인 방식으로 자신을 착취하게 됩니다. 학교화의 문제를 고민한다는 것은 대체 자율성은 어디까지인지, 제도적 차원의 개선은 어느 정도까지 필요한지, 교육 자체가 전제하고 있는 목표는 무엇인지 등에 대한 질문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 같이 의료화되고 학교화된 사회 속 주체가 대항품행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채운샘은 단지 남들과 ‘다르게’ 되기를 지향하는 것은 대항품행이 될 수 없다고 말하셨습니다. 싸울 지점을 발견하는 일 없이는 대항품행도 없습니다. 여기서 싸운다는 것은 나의 바깥의 무언가가 아니라, 내가 가져온 생각과 욕망, 즉 품행이며 동시에 그러한 품행을 인도하는 권력관계를 발견하고 문제 삼는 것입니다. 때문에 ‘다르게’는 남과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엄밀히 말하면 나 자신과 다르게 되는 일입니다. 즉 나의 품행과 그것을 낳는 조건들과 싸우면서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대항품행은 자기와 투쟁해 단련하는 과정인, 아스케시스를 필요로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배우는 철학자들의 공통된 특징입니다. 카프카가 거대한 관료 사회 속에서 똑같이 관료화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매일 밤 글을 썼기 때문입니다. 루쉰 역시 죽는 날까지, 누구도 용서하지 않겠다고 말하면서 글을 썼습니다. 학교화와 의료화와 같이 제도화된 가치를 욕망하게 하는 권력으로부터 그것을 욕망하지 않을 수 있는 자신만의 리듬을 만들어 내는 부단한 싸움. 대항품행은 결코 편안히 앉아 자신을 보존하는 것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우리에게 치고 들어오는 의존성들과 싸우는 일에서 만들어지는 것이었습니다.





한 학기 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럼 다음 시즌에 뵙겠습니다~~

*다음 주 중에 뒤풀이가 있을 예정입니다~ 자세한 날짜가 결정되면 알려드리겠습니다!
전체 4

  • 2019-11-27 18:56
    긴장감 있게 공부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멀리서 걸음하신 부천 선생님들, 감사합니다.

  • 2019-11-27 21:10
    한역샘이 비움과 함께 공부할 수 있어서 좋았다니 반갑네요. 우리도 샘들의 공부하는 자세도 배우고 좋았어요. 또 민호샘의 후기 잘읽었어요. 이리저리 여러샘들의 글 잘 엮어 주었네요. 함께한 다른 샘들도 감사해요.

  • 2019-11-28 23:05
    현장감 넘치는 후기 잘 읽었습니다. 전 긴장과 흥분으로 정신없었던 것 같았는데, 후기를 보니 화기애애하고 좋으네요^^
    지금의 나 자신과 '다르게' 되는 것이 대항품행이라는 말이 기억에 남네요.
    각자의 문제를 가지고 각각의 에세이를 썼지만 결국 "나는 어떻게 다른 내가 될 수 있을까?"라는 하나의 주제를, 지금의 나와 직면해서 풀어야 하는 문제라는 게 확 와닿는 시간이었습니다.
    아무튼 중간에 결석이 많아 중도하차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함께 마무리하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 2019-11-29 20:32
    오오~ 모든 샘들의 고유한 리듬이 살아 있는 후기~^^
    한 학기 동안 제가 '1센티'까지는 아니지만 1미리라도 달라졌다면, 문턱은 각자 달라도 '다른 내가 되기'라는 지점에서 만나 함께 공부한 샘들과 스승님 덕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