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리학 세미나

<명리학 세미나 > 6월 10일 수업 공지

작성자
배현숙
작성일
2020-06-04 11:01
조회
96
적천수를 읽으며 숱한 사주 명식을 만납니다. 아주 오래 전에 살았던 이름 모를 이들이지만 그 사주를 통해 그네들의 모습과 삶을 상상해보곤 하죠. 사주 명식이 죄다 남성이라는 점이 조금 유감스럽긴 하지만 말이죠.^^ 그런데 다른 이들의 사주를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주를 보는 일이 그 사람을 만나는 일보다 어쩌면 더 군더더기 없이 만날 수 있는 일이겠구나. 내 눈앞에 있는 그 사람은 그 시간, 그 장소, 그 조건과 상황 속에서 반응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 사람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한 눈에 파악하기란 참 어렵죠. 아니, 스피노자의 말처럼 어차피 우리 인식은 ‘부적합한 인식’일 수밖에 없으니 그건 당연한 일이겠지만요. 그러나 사주 명식은 (그조차 해석이라는 점에서 부적합한 인식임에는 틀림없겠지만) 그 사람이 겪게 된 삶의 궤적을 전체적으로 파악하고 대강이나마 짐작해볼 수 있기 때문에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을 이해하는 데는 유리한 점이 훨씬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사람이 지금 하고 있는 말과 행동이 어떤 상황과 조건에서 나오게 되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는 건, 그 커뮤니케이션에 나의 감정을 덧붙이지 않고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유용하다는 생각도 들고요. 물론, 이렇게 할 수 있기까지 좀 시간이 걸리긴 하겠지만요. 사주 명식을 해석하는 다양한 도구들을 익혀 이를 자유자재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된다면 우리가 늘 어렵게 여기는 ‘관계 병’을 치료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런데 그 해석 방법이 하도 다양하고 변수가 많아 어렵지요. 이번 수업 시간에도 우리는 그런 이야기들을 나누었습니다. 글자들의 배합이 달라질 때마다 어김없이 해석이 천지차이로 달라지니 도대체 종잡을 수가 없다고요. 똑같은 사주 명식을 가지고도 전혀 다른 삶을 사는 이들이 많다고 하니, 글자 한 두 자가 다를 때는 엄청나게 다른 삶의 파노라마가 펼쳐질 수 있겠죠. 그래서 이 공부는 언제나 시작인 것 같습니다.

용신, 희신, 설, 상, 방, 조, 일주의 왕쇠 강약. 우리는 오늘도 참 많은 해석의 도구들을 익혔습니다. 우리 창고에 도구는 쌓여가는데, 그것들을 잘 보관만 하고 계시진 않겠죠? 도구는 써 먹지 않으면 금방 녹이 습니다. 적천수를 한 장 읽고 도구 한 개를 얻었으면 그걸 써먹을 수 있는 곳을 자꾸 찾아봐야 합니다. 어떤 공부든 마찬가지겠지만, 아는 만큼 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실제 써 먹지 않으면 이 공부는 의미가 없습니다.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자꾸 궁리해보세요. 어떤 도구를 사용해서 그 사람을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는지 실험하는 일이 매우 중요합니다. 적천수 한 장 읽는 일보다 사주 명식 하나 만나 궁리하는 일이 훨씬 큰 공부가 될 것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자신이 잘 알고 있는 이들의 사주 명식을 가지고 우리가 공부한 내용을 복기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전상(全象) - 상관생재(傷官生財), 관인상생(官印相生), 재관병현(財官竝見)
全象喜行財地하니 而財神要旺이라 (전상희행재지 이재신요왕)

➪ 온전한 상은 財의 운으로 향하는 것을 좋아하니 財神은 반드시 왕성해야 한다.

전상은 兩氣나 獨象과 다르게 五行을 완전하게 갖춘 中和의 形象을 뜻합니다. 철초 선생은 일주, 희신, 용신의 三者가 갖춰진(三者爲全)것을 전상이라고 하며, 이는 일주와 상관과 재성만을 가리킨 것이 아니라, 상관생재(傷官生財), 관인상생(官印相生), 재관병현(財官竝見) 모두를 全象으로 봅니다. 따라서 일주가 왕하여 재성을 용신으로, 상관을 희신으로 삼았다면(食神生財, 傷官生財), 운은 財로 흐르는 것이 가장 마땅할 것이고, 사주에 비겁이 많아 재성이 겁탈을 당하면 비겁을 극하는 관성의 운이 좋을 것이며, 상관의 운 또한 이들을 흘려(洩氣) 유통시켜 줄 수 있으니 이 또한 아름답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일주가 왕하고 상관이 약한데 사주에 인수가 있다면, 인성을 극하는 재성은 반가우나 인성을 생하는 관성을 반갑지 않을 것이며, 일주가 왕하고 재성은 약한데 사주에 비겁이 있다면, 비겁을 극하는 관성은 반가우나 비겁에게 극을 당하는 재성은 반갑지 않겠죠. 재성과 관성이 함께 나타났는데 일주가 왕상하면, 인성을 극하는 재성은 반가우나 인성을 생하는 관성을 반갑지 않을 것이고, 일주가 휴수 되어 약한데 관성이 인성을 생조해 주고 있다면 관성의 생을 받는 인성은 반가우나 관성의 극을 받는 비겁은 반갑지 않을 것입니다.

억부(抑扶)- 왕자의억 약자의부(旺者宜抑, 弱者宜扶)
形全者宜損其有餘. 形缺者宜補其不足.(형전자의손기유여. 형결자의보기부족.)

➪ 形이 完全한 者는 남는 것을 덜어내는 것이 마땅하고, 形에 缺陷(결함)이 있는 者는 부족한 것을 보완하는 것이 마땅하다.

자평진전에서는 ‘일주가 왕하면 식상으로 설하거나 관살로 극해야 함이 마땅하고, 일주가 약하면 인성으로 생하여 도와주거나(生助) 비겁으로 패거리를 이루어 도와주는(방부幇扶) 을 반긴다고 합니다. 이는 왕한 것은 눌러주고 약한 것은 도와준다(왕자의억 약자의부旺者宜抑 弱者宜扶), 또는 형상이 완전하면 덜어내고 형상에 결함이 있으면 보태준다(形全者宜損 形缺者宜補)와 같은 억부법을 가리키는 말이죠.

철초 선생은 설상방조(洩傷幇助)’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용렬하고 속된 사람들은 단지 사주가 왕하면 설상을 쓰고 약하면 방조를 쓴다고 말은 하면서도 그 용법은 자세히 모르는 경우가 있다. 그러다보니 길흉이 뒤바뀌게 되고 그래서 좋고 나쁜 것이 뒤범벅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선생은 ‘설상방조(洩傷幇助)’ 이 네 글자는 그 쓰임새를 분명하게 구분하여 사용해야 하며, 그 변화에 통하는 기준은 ‘마땅할 宜’ 이 한 글자에 있다고 말합니다.

“‘흘려보냄이 마땅하다(宜洩)’는 것은 설洩하는 것의 오묘함을 의미하고, ‘손상시킴이 마땅하다(宜傷)’는 것은 극하여 상하는 것의 공로를 의미한다. 설은 식상을 말하고, 상은 극하는 관살을 일컫는다. 이 두 글자가 의미하는 방법은 모두 일주가 왕한 경우에 쓰이는데, 때로는 설이 해롭고 상이 해로울 수도 있으니 이 두 글자는 마땅히 그 용도를 구분하여 사용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또한 방부幇扶생조生助일주가 쇠한 경우에 쓰이는데, 방부는 비겁으로 패거리를 이루어 도와주는 것을 말하고, 생조는 인성으로 생하여 도와주는 것으로, 때로는 방부가 흉하고 생조가 길할 수도 있고 그 반대일 수도 있으니 방과 조의 두 글자는 용도를 구분하여 써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설상방조의 논리는 철초 선생이 처음 적용한 것으로, 적천수 원주에서 유백온 선생이 일주의 왕약旺弱을 단순히 그 일주가 월령을 차지했는지의 여부만으로 구분한 것에 대해, 철초 선생은 ‘월령을 차지하면 그 사주는 왕하다’라는 단순한 논리에 동의하지 않고 ‘왕중변약(旺中變弱)’도 있고 ‘약중변왕(弱中變旺)’도 있으니 한 가지 논리에만 집착해서는 안 된다는 걸 주장하며, 이러한 논리에 따라 억부법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일주가 왕하고 재관이 무력할 경우- 관살의 극이 유리하고 식상의 설은 불리하다.
▶ 일주가 왕한데 관살은 보이지 않고 비겁이 가득한 경우 - 식상으로 설하는 것이 좋다.

▶ 일주가 쇠약한데 재성이 가득한 상황 - 비겁으로 재성을 제어하고 일주의 부족을 돕는다.

▶ 일주가 쇠약한데 관살이 넘쳐날 때 - 인성으로 살의 기운을 화하여 일간을 돕는다.
◈ 다음 시간에는 제2장 方局편(391-422)을 읽어 오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수업 시간에 각자 맡으신 사주 명식에 대해 많은 질문을 준비해주세요. 이미 해설은 충분히 되어 있으니 그 해석에 대해 미심쩍은 부분이나 다른 이들과 공유하고 싶은 용어들에 대해 정리해오셔서 나누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 다음 주 간식과 후기는 김경아 샘께서 맡아주시기로 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

◈ 이번 주 한 주 동안은 그동안 공부하며 익힌 도구들을 다양하게 실험해보시기 바랍니다. 세미나 시작 전에 두 분 정도 발표합니다.^^(반장 권한으로 지목할 거임!!)

◈ 발빠른 태미쌤께서 벌써 후기를 올리셨네요. 오월 생이신데 저릏게 발빠르신 건 어떤 작용때문일까요? 물상학적으로 말(午)이라서 그럴까요? ㅎㅎㅎ 암튼 고맙습니다.

◈ 건강하고 평안한 한 주 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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